집 근처 벚나무에 맺혀있던 꽃망울이 마침내 톡 터졌다. 연분홍 예쁜 얼굴을 내밀고 있는 벚꽃을 보니 정녕 봄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녁 무렵에 밥을 챙겨 나가니 차 밑에서 기다리던 녀석들이 폴짝 뛰어나와 발밑을 돌며 인사를 건넨 뒤 다시 차 밑으로 들어간다. 그 곳이 밥 자리라는 것을 녀석들도 잘 알고 있다.
고양이라면 질색을 하던 내가 우연한 일이 계기가 되어 밥을 챙겨주게 된 지도 이년째다. 이제는 혹시라도 길에서 만나게 될지도 모를 아이들을 위해 차 뒤 트렁크에 사료를 싣고 다닌다. 그동안 지지난해 봄, 태어난 네 마리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녀석과 그 해 가을, 같은 어미에게서 태어난 두 마리 중 살아남은 한 마리, 그리고 또 다른 한 마리, 이렇게 세 마리를 챙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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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지난해 봄에 태어난 네 마리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녀석. 2년 가까이
밥을 주다보니 녀석도 나도 정이 많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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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지난해 가을에 태어난 두 마리중 한 녀석. 두 마리가 꼭 붙어다녔는데
그해 겨울 추위에 형제를 떠나보내야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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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녀석들의 어미. 사람들 눈치를 봐가며 차밑으로 밥을 넣어주는 것도 무척 신경쓰이는 일이지만 차밑에서 불편하게 밥을 먹는 녀석들도 안쓰럽기만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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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일 년쯤 지나고 어느 날부터 다른 한 마리가 보이지 않았다. 걱정스런 마음에 매일 밥 때만 되면 주위를 둘러보며 찾던 중 보름 만에 다시 나타났다. 그 뒤로도 영역을 옮겼는지 가끔 한 번씩 보이곤 한다. 평소 식성이나 행동으로 볼 때 사람손을 탄 게 분명한데 잘 견딜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녀석들의 어미는 지난 가을에 또 세 번째 새끼를 낳았다. 꼬물꼬물 네 마리가 어미곁에 모여있는 걸 봤는데 결국 한 마리만 남아 어미와 같이 다닌다. 그래서 요즘은 나를 기다리는 녀석들이 넷이다. 국물을 우리고 건져내어 말린 멸치와 사료를 섞은 밥을 녀석들은 맛있게 먹는다.
두 번째 녀석을 볼 때면 지지난해 겨울, 혹독한 추위에 돌덩이처럼 굳어버린 형제앞에 앉아 어서 일어나라는 듯 툭툭 치던 모습이 떠올라 애잔하고 안쓰럽다. 까만 털이 예쁘던 녀석이었다. 전날에도 내가 주는 밥을 맛있게 먹고 고맙다는 듯 눈빛을 반짝이며 나를 올려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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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내리는 날이면 사료가 젖을까봐 지붕을 만들고 돌을 얹어 놓았다.
그 따뜻한 마음이 내게 온전히 전해져 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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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나운 추위가 몰아친 다음날 돌덩이가 되어 풀밭에 누워 있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다시 아파온다. 그래서 더욱 겨울을 두 번이나 견디고 버텨준 녀석들이 고맙고 기특하다.
지난해 겨울이 시작될 무렵, 예전에 밥을 주던 집 앞 작은 공터 구석에 누가 냥이집을 가져다 놓았다. 빈 상자에 비닐을 야무지게 입혀 드나들 문을 내고 바닥에는 짚을 깔았다. 그 따뜻한 마음이 정말 고마우면서도 불안했다. 길냥이 밥을 왜 주느냐며 녀석들이 먹고 있는 밥그릇을 뺏어 집어던지고 고래고래 소리치던 공터 맞은 편 아파트에 사는 노인이 또 내다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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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발, 제발 치우지 말아주세요. 나중에 제가 꼭 치울께요" 어떤 사람이 차마 내다 버릴 수 있으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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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지금까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어제 녀석들 밥을 주며 슬쩍 공터에 가서 구석에 놓인 냥이 집 문을 들추니 간절한 마음을 담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제발, 제발 치우지 말아 주세요. 나중에 제가 꼭 치울게요.'
녀석들 밥을 주며 알게 된 한 아주머니는 캣맘 5년째라고 했다. 주문한 사료가 집으로 배달되는 날은 남편이 엄청 눈치를 준다며 웃었다. 하얀 털을 가진 큰 녀석은 누가 중성화수술을 해주었는지 어느 날 보니 귀 한쪽 끝이 잘려있다. 이젠 어미 차례라며 얘기를 나누었다.
그래도 이처럼 따뜻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 있기에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매일을 전쟁처럼 살다가 3년도 못 되어 스러지는 가여운 생명들. 사람도 동물도 똑같은 생명이다. 길고양이를 괴롭히지 말고 그저 바라봐 주기만 하는 것도 고마운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