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회사 때려치우고 아이를 봐! 그게 우리 모두 살 길이야!"

여느 때와 똑같이 동공이 풀리고 녹초가 되어 3개월 된 딸 아이를 힘없는 얼굴로 바라보며 웃고 있는 남편에게 조용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남편은 사진과를 졸업한 포토그래퍼다. 강남에서 제품 사진을 찍는, 이 업계에선 제법 큰 회사를 다닌다. 주로 옷, 신발 등 잡화물을 찍고 간간이 모델과 같이 콘셉트 사진을 찍는다. 하지만 사진 찍을 소품들을 직접 일일이 다림질하고 세팅하는 일도 하고 사진을 찍지 않을 때는 디자인 작업도 한다.

환기가 잘 안 되는 지층에서 하루종일 햇빛 한번 못 보고 쉼 없이 셔터를 눌러야 하는 남편은 뱅글이 안경을 쓰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보이는 시력이 되었고, 무거운 카메라 때문에 손목은 터널 증후군까지 왔다.

또 사진을 다양한 각도에서 찍어야 하기 때문에 온몸에 근육통은 항상 달고 산다. 도수 치료를 받기 위해 37년 만에 처음 가입한 보험은 병원 갈 시간이 없어 돈만 꼬박 꼬박 쑤셔넣고 있으니, 박봉인 월급은 각종 세금, 통신비, 공과금으로 들어오기 무섭게 제로이다. 

돈도 못 벌어 시간도 없어 몸도 아파... 이만큼 희생해서 얻는 것이 최소한의 생존 뿐인 거 같아 남편이 일하는 것을 보면 늘 초조하고 불안하다. 하지만 남편은 일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며 모두들 이렇게 산다고 한다.

하지만 어차피 소모된다면 남의 일 말고 자기 일을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나는 요리를 가르치면서 카페를 하고 육아를 한다. 물론 엄청나게 힘들고 노동의 강도와 스트레스도 크다. 하지만 나는 원할 때 일하고, 하고 싶은 일만 한다. 내가 기획하고 주최하기 때문에 일한 만큼 대가가 돌아오고 부가가치도 높다.

다만 주의할 점은 폭주 기관차처럼 일을 하고 있을 때가 있다는 것. 습관처럼 자꾸만 일을 만들고 기획하다 보면 자기 일을 하면서 자신을 소외시키는 노동이 될 때가 많다. 허나 나는 우리 부부가 서로에게 페달과 브레이크가 되어 줄 거라 믿는다. 돈은 같이 궁리해서 잘 벌면 된다. 추진은 내가, 뒷감당은 남편이 하면 될 것이다.

그렇게 남편은 백수가 되었다

"나같은 마누라가 어딨냐"라며 큰소리 땅땅 치면서 호기롭게 남편에게 "일을 그만두라"고 했지만 사실 막막하다. 남편은 불안한지 재차 "집에 있다고 뭐라 하지마라", "육아 전담시키고 바깥으로 나돌지마라" 등등 몇 번이고 내 대답을 확인한다.

이런 결정이 시댁 어른들에는 고마운 며느리, 친정 식구들에게는 불쌍한 딸이라는 시선이 날아와 내 마음을 무겁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남편이 집에 있으면 안 되나? 화 낼 일인가? 아이에게도 좋고 나도 좋을 것 같았다. 

1년 동안 가족의 저녁시간을 당당하게 삼켜버린 남편의 회사에 나는 욕이 나오는데 남편은 끝나는 날까지 최선을 다해 일했다. 남편이 회사를 그만 둔 마지막 날 나는 '백수만세, 저녁만세'를 외치고 있다. 앞으로 또 다른 눈물바람이 닥칠지 모르지만 일단 지금은 백수인 남편이 그렇게 싫지도 막막하지도 않다. 남편에게 험난한 육아파파의 길이 펼쳐질지 그때는 우리 둘 다 전혀 몰랐다.

덧붙이는 글 | 육아하는 남편을 옆에서 지켜보는 아내와 좌충우돌 살아가는 이야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