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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빨간약, 우린 어디에] 에세이 연재를 시작합니다. 
한국여성노동자회 영영페미 그룹 <페미워커클럽>은 페미니즘과 노동을 함께 고민하는 사람들의 소모임 입니다. '페미니즘의 관점으로 노동을' 혹은 '노동의 관점으로 페미니즘을' 사유하며 세미나를 진행했고, 각자의 삶과 노동을 재조명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페미니즘이라는 빨간약은 그간 억눌려 자책하던 우리에게 큰 해방감을 주었지만, 사실 페미니스트로 스스로를 정체화 한 후에도 갈등은 계속됩니다. 현실과 이상, 상황과 존재의 위치 속에 발생하는 수많은 고민들... 이러한 맥락에서 <페미워커클럽> 멤버들이 나누어온 이야기를 보다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자 에세이로 적어 연재합니다. 


미투운동의 한 해였던 작년, 우리학교에서도 많은 피해자들이 자신의 사건을 이야기했다. 모든 피해자들의 사건이 명쾌하게 해결되지는 못했지만, 그 시간들을 겪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내 사건을 공론화하지 못한 피해자 중 한 명이다.

내게 일어난 일에 '성폭력'이라 이름 붙이기까지

새내기였던 1학년 여름방학, 동기오빠와 술을 마셨고, 정신을 차리니 모텔이었다. 이 사건을 성폭력이라고 이름 붙이는 데 1년이 걸렸고, 인권센터를 찾아가기로 결심하는 데에 다시 또 1년이 걸렸다. 처음에는 내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조차 어려웠고, 성폭력이라고 이름을 붙이면 이 헤프닝이 엄청난 사건이 되는 것 같아 무서웠다. 사건이 사건이 아니라 사소한 헤프닝이 되면 나에게도 큰 일이 아니게 될 거라고 믿었다. 물론 바보같은 생각이었다.

성폭력이라는 단어만 봐도 벌벌떨고 잠을 못 이루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결국 사건을 해결해보기로 결심했다. 과에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인권센터를 찾아간 이유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밝혀지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여성학 수업과 반성폭력 내규가 있는 학과였지만 성폭력 대응에 대한 회칙조차 없는 과이기도 했다. 내가 사건을 밝히면 누가 어떻게 무슨 방식으로 나를 도와줄 수 있을 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 대신 모두가 사건을 알게 되기만 할 것이었다. 나를 알거나 모르는 사람이 나에 대해 수군거릴까봐 무서웠고, 그 수군거림이 나에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 자체로 나에 대한 낙인이 될 거라는 걸 알았다. 그래도 가해자에게 사과만 받으면, 진심이 담긴 사과만 받으면 나도 '치유'가 될 것 같았다. 나도 생존자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인권센터를 찾아가 조용히 사건을 해결하려고 했다.

하지만 인권센터의 연락을 받은 가해자는 술 취한 내가 유혹해 모텔을 간 것이라고 사건을 부정했다. 사건을 성폭력이라고 부르지 못하고 연락했던 기간을 그 근거로 이용했고, 중간에서 연락을 맡았던 친구는 나를 의심했다. 내 용기는 거기까지였다. 사건 자체가 너무나도 확실했기 때문에 이 일은 다행히 성폭력으로 정리됐지만, 차마 수정요구를 하지 못한 사과문을 받았고 읽을 수가 없어서 서랍 구석에 처박아놨다. 나와의 인연을 구구절절 나열하며 소중한 관계를 망쳐서 미안하다는 사과문을 받으려고 인권센터를 찾아간 게 아니었다. 나는 성폭력 가해자에게 본인의 가해사실에 대한 인정과 사과를 받으려고 찾아간 거였다.

페미니즘을 배울수록 내가 못난 사람 같았다

인권센터는 친절했고, 상담을 받는 동안 처음으로 내 사건을 타인에게 털어놓았지만 그 이상의 용기는 내지 못했다. 그래서 내 공론화는 '공론화'되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과방에서 가해자를 보면 먼저 도망쳐야 하는 상황이었고, 그런 내가 혐오스러워서 술을 마시고 우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한동안은 후배들에게 나를 페미니스트라고 소개하는 게 부끄러웠고, 페미니즘을 배우면 배울수록 내가 너무 못난 사람 같았다. 내가 사건의 당사자가 아니었을 때, 지지자로서 친구와 동생에게 해주었던 '너의 잘못이 아니'라는 말이 얼마나 공허한지도 깨달았다. 내가 생각한 페미니스트는 사건의 당사자든 지지자든 본인이 잘못하지 않았음을 분명히 알고, 절대 힘들어하지 않으며, 오히려 자신의 사건을 계기로 더 많이 싸울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당사자인 나는 페미니스트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여전히 두려워하며 힘들어하는 피해자일 뿐이었다. 정말로 공론화를 하고 싶었지만 정말로 공론화하기가 무섭고, 그래서 내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인권센터까지 찾아간 이유는 훗날 누군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서였다. 피해가 발생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어느 한 순간도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피해자들은 그렇게 논리적일 필요도, 이유도 없다. 당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그 많은 이유들이 사실은 이 사회가 피해자들에게 쥐어준 죄책감일 뿐이다. 그러니 스스로 너무 자책하지 말라는 말을 나 역시 누군가에게 하고 싶었다.

피해/생존자의 강박에서 벗어나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2015년, 자신이 페미니스트임을 밝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구호.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SNS에서 이 구호를 활용한 해시태그 운동이 일기도 했다.
▲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2015년, 자신이 페미니스트임을 밝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구호.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SNS에서 이 구호를 활용한 해시태그 운동이 일기도 했다.
ⓒ 김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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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말을 듣고 체화하기 까지 너무 긴 시간 동안 힘들었다. 처음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신고하지 못한 것도, 과에 밝히지 못하는 것도, 사건에 '합의'하지 않았으면서 사과문을 받고 합의서를 쓴 것도. 모두 내 잘못 같았고 이런 사람이 페미니즘을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끊임없이 논리적으로 내가 왜 공론화하지 못했는지 설명하려고 애썼고 내가 얼마나 가련하고 불쌍한지에 대해 말했다. 나를 끊임없이 피해자의 틀 안에 가둬놨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페미니스트일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내가 나 자신을 괴롭히던 시간이 끝나고 깨달은 건 내가 여전히 살아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나뿐만이 아니라 내 옆의 수많은 여성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있었다.' 대학을 와서 페미니즘을 배우면서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매일 성폭력의 위협 속에 살아가고 있는지 알게 됐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깨끗함을 요구받는지도 알게 됐다. 이 더러운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여성은 피해자여서는 안됐고, 피해자임을 깨닫는 순간 생존자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했다. 나는 살아있으면서도 살아있기 위해 노력했고, 내 피해를 없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애썼던 셈이다. 하지만 나는 내 사건  후에도 여전히 살고 있고,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있으며, 많은 피해자와 연결된 한 사람이다. 그 뿐이다. 그것이 전부다.

결론은 그렇다. 자기 사건을 공론화 못했다는 이유로 자신을 학대하는 친구에게, 그리고 나에게. 어느 날 말하고 싶어질 때, 말할 수 있는 세상을 같이 만들자고. 그래서 나는 페미니즘을 하고 있고,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 세상을 만들고 싶어서.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한국여성노동자회 영영페미 모임 '페미워커클럽'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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