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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빨간약, 우린 어디에] 에세이 연재를 시작합니다. 한국여성노동자회 영영페미 그룹 <페미워커클럽>은 페미니즘과 노동을 함께 고민하는 사람들의 소모임 입니다. '페미니즘의 관점으로 노동을' 혹은 '노동의 관점으로 페미니즘을' 사유하며 세미나를 진행했고, 각자의 삶과 노동을 재조명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페미니즘이라는 빨간약은 그간 억눌려 자책하던 우리에게 큰 해방감을 주었지만, 사실 페미니스트로 스스로를 정체화 한 후에도 갈등은 계속됩니다. 현실과 이상, 상황과 존재의 위치 속에 발생하는 수많은 고민들... 이러한 맥락에서 <페미워커클럽> 멤버들이 나누어온 이야기를 보다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자 에세이로 적어 연재합니다. 

11살이 되던 해의 마지막 날 첫 생리를 했다. 팬티에는 피가 약간 묻어났는데 당시에는 그게 뭔지 몰랐다. 내 몸에서 나온 후 한참이 지나서야 발견해서 갈색이 되어버려 처음에는 피인지도 모른채 마냥 기분만 나빠 샤워를 다시 하고 잠들었다. 다음날이 되어도 정체모를 분비물은 여전했고 뇌리를 스친 기시감에 화장실에 쪼그린 채 엄마를 불렀다.

새해 첫날이라 문 닫은 가게가 유난히도 많았다. 어떻게 구했는지 초코파이에 작은 초를 케이크 모양으로 쌓은 부모님은 이제 여자가 되었다며 축하해주었지만 그 어린 나는 축하가 뭔지, 나는 원래 여자였는데 왜 이제야 여자가 되었다고 하는지 어리둥절하다가 곧 잊어버렸다. 한달에 한번 귀찮은 일이 생겼고 초코파이는 맛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사는 게 '여자'라는 존재?

어영부영 시간은 흘러 스무 살이 되던 해 남자랑 첫 관계를 가졌다. 상대방은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교회 집사님이었고 예쁘고 성격 좋은 부인도 있고, 사랑스러운 자녀도 있었다. 맛있는 음식과 술을 사주며 모텔로 데려갔는데 거절하면 불편한 사이가 될까봐 따라가버렸다. 성폭행의 피해자가 되기 싫다는 생각을 합의하에 했다는 자기암시로 덮어버렸다. 다음날엔 두려움에 점심시간에 산부인과에 찾아가 사후피임약을 처방받았다. 자존감이 맨틀을 뚫고 내핵까지 내려가는 것 같았다. 그런 관계는 이후로도 몇 차례 반복되었고 어느 순간 교회를 안 나가버렸다. 연락은 종종 왔지만 무시해버렸다. 그것을 성폭력이라고 정의한 것은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23살, 직장을 옮기며 환영회가 있었다. 그날 나는 필름이 끊길 정도로 술을 많이 마셨고 다음날 눈을 떠보니 어딘지 모를 모텔에서 발가벗겨진 채 눈을 떴다.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는데 출근은 해야했다. 직장 동료들이 전부 괴물로 보였고 마음을 추스리는 데는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나서 누구의 소행인지 알게 되었지만 나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산해진미를 놓고 축하해도 싫은 '여자 되기'

같은 해 였을까 직장 동료가 남자를 소개시켜준다며 부담갖지 말고 술이나 먹으러 가자해서 별 생각 없이 따라갔다. 소개받은 남자는 마음에 안들었지만 성격은 좋아보였고 안주는 맛있었다. 그날 밤 나는 두 남자에게 강간을 당했다. 술기운에 저항은 마지 못했다. 그 이후 소개남은 진지한 만남을 가지자며 연락을 계속해왔지만 나는 수치심에 깊고 깊은 잠수를 탔다.

순진한건지 눈치가 없는건지 헤픈건지 왜 그렇게, 몇번이나 바보같이 당하고 사냐며 자책을 했지만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다고 맞서 싸울 용기도 없었다. 그저 직장과 거처를 바꿔가며 도망치는 게 전부였고 그 시절의 나를 아는 사람들이 무서웠다. 나를 대하는 사람들의 눈빛 저편에 비웃음이 사려있는것만 같았다. 내가 너무나도 모지리 같은 사람으로 느껴졌다. 첫 생리의 기억을 떠올리며 왜 여자가 되었다고 축하를 받았는지 납득할 수 없었다. 꼴랑 초코파이 먹고 이런 삶을 납득하라는건가! 만약 초코파이가 아니라 산해진미를 먹었어도 위로가 되지는 않았을거란 생각도 들었다.

페미니즘이란 진짜 초코파이
   
지금은 우리가 함께해야 할 시간 '미투' 세계 여성의 날인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3.8 여성의 날 민주노총 전국 여성노동자대회에서 주최 측이 참가자들과 시민들에게 나눠주기 위한 미투 배지가 진열돼 있다.
▲ 지금은 우리가 함께해야 할 시간 "미투" 세계 여성의 날인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3.8 여성의 날 민주노총 전국 여성노동자대회에서 주최 측이 참가자들과 시민들에게 나눠주기 위한 미투 배지가 진열돼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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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텅 빈 껍데기가 되어버린 채 지냈다. 내가 숨어도 세상은 아무 관심 없다는 듯 시간은 무심히도 지나갔다. 어느 날 미투가 불거졌을 때, 페미니즘이 수면위로 떠올랐을 때 접하게 된 여러 이야기들은 작은 위로였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괜찮다고 나를 다독여주고 혼자가 아니라고 손잡아주며 그래도 앞으로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이제껏 도망만 다녔던 나는 나를 마주보기로 했다. 다시 사랑하기로 했다. 아직도 예전의 나를 생각하면 눈가가 뜨거워지지만 이제는 더이상 예전처럼 숨어있지만은 않겠다고 다짐했고 내 또래 영페미들과 만나게 되었다. 친구들에게 내 얘기를 풀기까지는 또다시 많은 용기가 필요했지만 내 얘기를 들은 친구들은 함께 분노하고 응원해줬다. 이제 나는 정말로 행복한 생존자가 될 수있을것같다. 분명 혼자 힘으로는 여기까지 못 왔을 것이다.

나에게 다가온 페미니즘은 그 시절의 초코파이였을지 모른다. 여성으로서의 삶이 힘들고 아파도 초코파이가 있다고, 빨간약은 초코파이였을거라고.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한국여성노동자회 영영페미 모임 '페미워커클럽'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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