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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빨간약, 우린 어디에] 에세이 연재를 시작합니다. 
한국여성노동자회 영영페미 그룹 <페미워커클럽>은 페미니즘과 노동을 함께 고민하는 사람들의 소모임 입니다. '페미니즘의 관점으로 노동을' 혹은 '노동의 관점으로 페미니즘을' 사유하며 세미나를 진행했고, 각자의 삶과 노동을 재조명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페미니즘이라는 빨간약은 그간 억눌려 자책하던 우리에게 큰 해방감을 주었지만, 사실 페미니스트로 스스로를 정체화 한 후에도 갈등은 계속됩니다. 현실과 이상, 상황과 존재의 위치 속에 발생하는 수많은 고민들... 이러한 맥락에서 <페미워커클럽> 멤버들이 나누어온 이야기를 보다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자 에세이로 적어 연재합니다.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친할머니는 우리 가문의 대를 끊어 먹었다며 나를 질책했다. 엄마가 2살 때 돌아가신 후, 아버지와 친할머니 손에서 자라온 나는 그들의 말이 법이고 진리이며 세상의 모든 것이라 생각했다. 주 양육자는 할머니였는데 할머니가 한결같이 하시는 말씀들은 이러했다.

"여자는 절대 천한 여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어디 감히 결혼할 것도 아닌데 남자를 만나."
"여자는 입방정을 떨면 안된다."
"여자는 절대 날뛰어선 안된다."


그런 말들은 나를 죄인으로 만들었다. 유아기의 아이가 뛰어 놀고,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고, 사춘기에 접어든 딸이 남자친구를 사귀는 것은 '별나서' 그런거였다. 보통사람 같지 않은 나는 존재 자체가 죄악이었다. 나는 20년 동안 그런 말을 듣는 것이 당연한 것인줄 알았다.

할머니는 엄마가 나를 낳고 돌아가시고 나서 가문의 대가 끊겼기에 아버지에게 어떤 방법도 상관 없으니 나가서 아들을 낳아오라고 했다. 아버지는 여러 방법을 통해 수많은 여자들을 만났고, 내가 불렀던 엄마는 열명이 넘는다. 그들은 그것이 당연한 것이며 보통 사람들이 그렇게 산다고 가르쳤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여자로 태어난 나는 지고지순하게 결혼할 남자랑만 연애를 해야했고, 남자로 태어난 아버지는 남자를 낳기 위해서 문란히 여자를 만나는 것이 허용됐다. 여자인 나는 죄인이였고, 남자인 아버지는 그 자신 자체가 법이자 진리였다.

나를 죄인으로 만든 할머니의 말. 아버지의 폭력도 내 탓으로..

아버지는 매우 폭력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사업 실패 이후 스트레스로 수술을 받고, 의료사고로 추측되는 이유로 혈액암까지 찾아왔다. 그 이후 아버지는 아무런 사회활동이나 외부와의 교류를 못하셨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아버지의 정신은 피폐해져갔다. 나와 할머니는 아버지의 분풀이 대상이었다. 여편네들이 똑바로 못해서 자기가 망한거라며 쉴새없이 폭력을 행사했다. 고등학교 때 결국 나는 피를 흘리며 집에서 도망쳤다. 폭언과 폭력이 일상이었지만, 더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할머니는 아버지 편이었다. 할머니에게 외아들은 유일한 버팀목이자 전부였기 때문이다.

첫 번째 가출 이후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 이후에도 폭언과 폭력은 계속됐다. 나는 방 문을 두려움에 걸어잠그고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무단지각, 무단결석 상관없이 아버지가 자거나 외출한 틈에만 학교에 갔다. 집안에서 화장실 가는 것 조차 나에겐 절벽 위에 있는 듯한 공포감을 주었기에. 이런 나를 보고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네가 딸만 아니였어도 우리 가문이 무너지지 않았을텐데. 네가 우리 집을 일으켜야 하는데 못하니까 아빠가 저러는거야." 참으로 대단하신 아버지가 가문을 일으키면 될 것을 모든 상황의 탓을 나에게 돌렸다. 견딜 수 없어 성인이 되며 도망치듯 독립을 했지만, 내가 딸만 아니었으면 하는 생각이 머리 속을 가득채웠다. 내가 아들이었으면 뭐든 이뤄냈을거라 생각했다.

내 두딸은 '여자인게 죄인'이 되지 않는 세상에서 살도록
 
 너의 행복만을 바라는 엄마가 너의 행복을 위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페미니즘이란다(자료사진).
 너의 행복만을 바라는 엄마가 너의 행복을 위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페미니즘이란다(자료사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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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보고싶지 않은 나의 어린시절, 지금 생각해도 너무 끔찍하다. 나의 전부였던 그들의 세상에서 나는 죄인이였고,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 말할 수도 없었다. 나는 현재 3대 독자 남편과 결혼한 두 딸아이의 엄마이다. 솔직히 말해서 처음에 두 아이 모두 하필 왜 딸일까 생각한적도 있었다. 혹여나 나와 같은 삶을 살아갈까, 나와 같은 경험을 하게되면 어떡하나 우려됐기 때문이다.

첫째 아이가 간혹 물어본다. "엄마 나는 여자라서 힘이 약하니까 이걸 할 수 없어요?", "엄마 여자는 핑크색을 다 좋아하지요~?". "아가야, 여자라서 그런건 없단다. 동그라미, 세모, 네모처럼 모양과 특성이 다르게 태어났을 뿐 그 무엇도 여자라서 남자라서라고 단정지을 수 없어." 아이가 이해할진 모르겠으나 나는 항상 이렇게 대답한다.

직장맘으로 주양육을 어린이집(유치원), 시어머님에서 맡기고 있는 나로서는, 아이들이 이런 질문을 할 때마다 너무나 죄책감이 든다. 하지만 내가 직접 키우지도 못하면서 이렇게 해주세요 저렇게 해주세요 부탁할 수도 없는 법. 세상에 성차별적 인식이 난무하는데 직접 키우며 성평등적 사고를 가지게 하지 못하는 것도, 이런 상황을 보며 속상함을 느끼는 것도 꼭 죄인이 된 기분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내가 말도 안되는 일들을 겪었던 만큼 나의 딸 아이들은 불편하고 모순된 상황들을 마주하게 하고 싶지 않다. 여자로 태어나서 대를 끊어먹었다고 죄인이 되지도 않고, '여자라서'라는 사슬에 묶여 날개를 펴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지 않고, 당연한 것이 이상하게 받아들여지는 사회에서 손가락질 받게 하고 싶지 않다.

이것이 내가 페미니스트 엄마가 되고자 한 이유이다. 이 인식은 가정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의 나의 생활에도 큰 변화를 불러 일으켰다. 페미니즘 안에서 무엇도 더이상 죄가 아니고, 누구도 죄인도 아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한국여성노동자회 영영페미 모임 '페미워커클럽'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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