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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빨간약, 우린 어디에] 에세이 연재를 시작합니다.
한국여성노동자회 영영페미 그룹 <페미워커클럽>은 페미니즘과 노동을 함께 고민하는 사람들의 소모임 입니다. '페미니즘의 관점으로 노동을' 혹은 '노동의 관점으로 페미니즘을' 사유하며 세미나를 진행했고, 각자의 삶과 노동을 재조명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페미니즘이라는 빨간약은 그간 억눌려 자책하던 우리에게 큰 해방감을 주었지만, 사실 페미니스트로 스스로를 정체화 한 후에도 갈등은 계속됩니다. 현실과 이상, 상황과 존재의 위치 속에 발생하는 수많은 고민들... 이러한 맥락에서 <페미워커클럽> 멤버들이 나누어온 이야기를 보다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자 에세이로 적어 총 8회 연재합니다. <편집자주)


아르바이트와 학교를 병행하며, 학교를 다니던 많은 어떤 날 중 하루였다. 지하철 안에서 한 대학의 교지 속에 있던 글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K였다>을 읽었다. 필자K는 알바를 하며 겪었던 부당한 경험에 대해 담담히 서술하고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말 한마디 못하고 입 한번 못 여는 스스로가 무서웠다. 하지만 이런 태도가 나중에 사회 나가서도 도움이 될 거야" 라고 스스로를 자위하며 갑질에 대해 굽히는 자기 자신의 합리화가 한편 무서웠다고 필자는 쓰고 있었다. 그러던 중, 자신이 만났던 수많은 알바노동자인 K들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하며 무언가를 실천하고 바꿀 생각을 했을 때, 자신이 마주한 불편함이 사라졌다고 마무리하고 있었다.

나도 누군가의 K 였다
 
 젊은 여직원이 말했다. "치한 신고하고 출근하겠다"라고.
 "여성" 노동자라서 죄송해야만 했다.
ⓒ pixabay
 
나도 그때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었다. 나도 수많은 누군가의 K였다. 낮에는 학교 다니고, 짬 내서 공부하고 학교 끝나고 저녁 시간대에 세미나를 하고, 밤에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쪽 잠을 자다가 학교를 가고 그렇게 24시간을 숨 가쁘게 살았던 때였었다. 밤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 동네의 큰 프렌차이즈 체인점인 마트에서 알바를 했었다. 계산하는 업무 외에 매장 청소하고 재고조사해서 채워 넣고 정리하는 일이었다.

월 4회 휴무에, 주 6일 근무, 월급제의 교묘한 방식으로 최저임금도 되지 않는 돈을 받으면서 일하고 있었고, 명백하게 부당한 대우였다. 그리고, 항상 을의 입장에서 손님을 대하다 보면 정신이 메마르는 느낌을 받았었다. 아무 이유도 없이 폭언을 30분째 들은 날에도, 죄송할 일을 한 것이 없음에도 죄송하다고 사죄해야 했다.

밤마다 막걸리 사려고 찾아오는 나이든 무례한 아저씨, 할아버지들이 성희롱을 했고, 술 냄새를 풍기면서 자신의 6.25 시절부터 거슬러 올라가 일장 연설을 늘어놓고 해도 동네 장사하면서 손님들과 문제 일으키지 말라는 사장의 지시 때문에, 혹은 주위 동료들의 눈치 때문에 경찰을 부를 수가 없었었다. 그런 날은 일 분이 왜 이렇게 길게 느껴지던지. 모니터에 떠있는 전자시계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분침이 얼른 움직여서 퇴근시간이 오기를 바랐다.
  
여성 알바 노동자, 멋대로 나를 상상하는 할재(할아버지+아재)들

학교에서는 내 이름 세 글자로 사는데, 일하는 공간에 오면 "어이", "처자" 혹은 "아가씨"였다. 그리고 아저씨들이 "처자, 몇 살이야? 바깥 사람이 아픈 거 아니에요?" 라며 술 냄새를 풍기면서 괜히 꼭 말을 걸곤 했는데, 이렇게 어린 처자가 일을 하고 있냐며 결혼은 일찍 한 것이냐, 아니면 바깥사람이 어떻게 아픈 것 아니냐, 하면서 맘대로 나를 상상하고 있었다. '곱게 집에나 가시지..' 속으로 생각하며, 까만 새벽 계산하는 카운터 입구에 혼자 서서 얼마나 조마조마 하던지, 그렇게 나는 일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다. 일하는 중간 중간에 과일 깎아오고 커피 타오는 노동을 시켰는데, 당시에 난 이런 부당함에 대해 따지지 못했다. 나이 많은 남성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나는 딸 나이에 조카뻘인 기특한 이미지의 당연한 역할 인식에 맞추어서 살았고, 당연히 그래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 였다.

'어린 여자'인 나를 제일 먼저 문자로 해고하다

'오늘부터 나오지 않아도 됩니다. '문자로 통보 받은 해고, 그렇게 지내기를 반 년. 야간 장사가 그만큼 이익을 못 뽑았는지 수지가 맞지 않자 제일 빠르게 제일 먼저 부당해고까지 당했었다. 이유는 여성 노동자였기 때문이다. 인력을 줄일 때 가장 소수의 인원으로 운영을 하기 위해서는 남자 직원을 해고하는 것보다 여성 직원을 해고하는 것이 낫다 판단했는지 같이 일하던 여성들만 제일 먼저 해고를 당했다. 그때 나 말고도 장기적으로 일 해왔던 몇몇 중년 여성 노동자도 해고당했었다. 그나마 나는 대학생이고 절반만 일하는 임시 인력이라 밀린 월급은 받긴 했지만, 내가 아닌 다른 중년의 전업으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밀린 월급을 받았는지는 모르겠다.

나랑 똑같이 근무하던 또래 남성 노동자들이랑 비교하였을 때 나의 월급이 그들보다 10 만원 정도 더 적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 일이 있고 한참 뒤에 직접 들어서 알게 되었다.

수많은 노동자 K 속에 여성은 포함될까?

나야 곧 뜰 곳이라 생각하며 일하던 알바자리였지만, 그런 곳을 뜰 수 없는 환경에 놓인 사람들은 부당 해고를 당했을 때 너무나 차고 시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전히 생업으로 일하는 사람들에게 차별 속의 차별이 더해지는 것을 목도했다. 노동 안에 성별이 생략되어 있었다는 것을 이때 발견하였다.

그때 수많은 K들 속에서 여성인 내가 그 K안에 포함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K이지만, 여성K라고 해야할까, 아니 H,I,J,K,L,M,O,P.... 의 'M'정도이지 않을까? 그럼 나 말고 그 중년 여성 노동자분들은... 'P'정도 되려나?

학교동아리 세미나에서는 노동자, 노조, 고용주, 노동, 최저임금 등을 말하는 나였지만, 실제 일하던 현장에서는 아무 저항을 못하고 무력하게 떨어져 나간 나였다. 노동의 어려운 부분이 바로 이것, '먹고사니즘'의 문제와 결합되어 있는 그것이다. 결국 노동권의 빈틈과 성차별의 족쇄가 여성들에게는 생존권의 박탈을 초래한다. 수많은 K속에도 들지 못하는 존재 여성. 우리에겐 그래서 성평등한 노동이 더욱 절실하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한국여성노동자회 영영페미 모임 '페미워커클럽'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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