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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국어판 <백범일지>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09년 일이다. 당시 대한민국임시정부사적지답사단 단원이 되면서부터이니 어느새 올해로 10년째다. 그 이전에도 <백범일지>를 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른바 조직적으로, 구체적으로, 낱낱이 <백범일지>를 읽기 시작한 것은 그 무렵이다. 그렇게 시작한 <백범일지> 공부는 2년 뒤 대한민국임시정부 고난의 27년 노정답사로 이어졌고, 답사단은 <김구 따라 잡기>(2012. 옹기장이출판)라는 책으로 '백범일지 공부'를 마무리했던 적이 있다.

그것으로 끝난 줄 알았던 <백범일지>와의 인연은 또 다른 곳에서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이어지고 있다. 얼마 전 일본어판 <백범일지(白凡逸志)>(류의석 번역, 2019.3.8. 도서출판 하우)를 받아 든 것이다.
 
백범일지 일본어판 표지 《백범일지(白凡逸志)》(류의석 뒤침(번역), 2019.3.8. 도서출판 하우) 표지
▲ 백범일지 일본어판 표지 《백범일지(白凡逸志)》(류의석 뒤침(번역), 2019.3.8. 도서출판 하우)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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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를 일본어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 4년 전 <백범일지>의 일본어판 원고를 받아들었을 때 나도 그런 생각을 했으니 말이다. 일본어로 번역한 사람은 류의석(柳義錫:1933~2014) 선생이다.

나는 류의석 선생을 본 적이 없지만 대학 후배인 그의 딸, 류리수 박사(한국외대 강사)를 통해 우연한 기회에 '아버지가 써 놓은 백범일지 일본어판 원고'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수시로 만나 일본어판 <백범일지>를 펴내는 데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그러한 과정에서 나는 류 박사의 아버지 류의석 선생이 이 책을 일본어로 번역하게 된 경위를 알게 되었다. 류 박사의 외증조할아버지 이기준 선생은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시절 3.1만세운동에 관련되어 고문을 받고 순국했다.

그리고 친할아버지 류규동 선생도 독립운동을 하다 쫓겨 도피처로 찾은 것이 일본이었는데, 그곳에서 조선인 징용자들과 함께 일을 하다 폭파 작업 중 양쪽 눈을 잃었다. 류 박사 아버지가 일본에서 태어난 것은 따지고 보면 일제침략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다.
 
류의석 일본어로 《백범일지》를 뒤친(번역) 류의석(柳義錫:1933~2014) 선생
▲ 류의석 일본어로 《백범일지》를 뒤친(번역) 류의석(柳義錫:1933~2014)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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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아버지를 둔 류의석 선생은 어린 시절 일본의 두메산골에서 살았고, 일본아이들과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그들과 소중한 우정을 쌓았다. 그래서 해방 뒤 귀국했지만 선생은 고향인 기소후쿠시마를 그리워했고, 고향친구들을 만나러 그곳 두메산골을 자주 찾아 가곤 했다.

선생은 일본에서 초등학교 졸업을 못하고 귀국했지만 68살 되던 2001년, 그곳의 동창들이 주선하여 56년만에 명예졸업식을 가질 수 있었다. 일제침략으로 빚어진 류리수 박사의 아버지 류의석 선생의 삶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것이었다. 그런 파란만장한 삶 속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일본어판 <백범일지>이다.

그러나 류의석 선생이 일본어로 번역한 <백범일지>를 펴내는 작업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따님인 류 박사는 백방으로 이 책을 펴내기 위해 뛰었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일본에서 펴내는 것이었지만 생각같이 일본의 출판사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 무렵 나는 조심스럽게 국내 출판을 제안해 보았다. 물론 국내 출판사 역시 냉담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고맙게도 도서출판 하우에서 출판 허락을 받았다.

문제는 아버지가 소장했던 파일이 소실되는 바람에 원고를 다시 입력해야 하는 작업이었다. 불행 중 다행히도 원고를 인쇄해둔 것이 있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일본어 원고를 입력하는 작업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거기다가 초고에 대한 교정 작업과 초고에 없는 주해를 다는 작업 또한 만만치 않았다.

더욱이 일본어로 책을 내는 것이니 만큼 일본인에 의한 감수 작업은 필수인데 그 작업 또한 어려웠다. 다행히 내가 알고 있는 교토의 시인 우에노 미야코(上野都)에게 상의한 결과 흔쾌히 감수를 자청했다. 우에노 시인은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완역한 한국어 실력자였다.
 
류의석과 아버지 류규동  《백범일지》를 일본어로 번역한 류의석 선생(왼쪽은 선생의 아버지 류규동 선생)
▲ 류의석과 아버지 류규동  《백범일지》를 일본어로 번역한 류의석 선생(왼쪽은 선생의 아버지 류규동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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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의석의 명예졸업  류의석 선생이 졸업 56년 만에 명예졸업장을 받았다는 나가노신문 기사
▲ 류의석의 명예졸업  류의석 선생이 졸업 56년 만에 명예졸업장을 받았다는 나가노신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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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일본어판 <백범일지>는 류의석 선생이 원고를 만들어 놓고 세상을 떠난 지 5년만에 햇빛을 보는 것이어서 그의 딸 류리수 박사에겐 참으로 남다른 감회가 들 것이다.

물론 류의석 선생이 완벽한 원고를 이미 써놓았지만 당시 시대상을 이해하기 위한 주해를 다는 문제, 일본어 감수자 선정, 출판사 섭외 등등 한 권의 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여러 해에 걸쳐 수고를 아끼지 않은 류 박사의 노고는 곁에서 지켜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문학박사인 딸이 없었더라면 아버지의 유작은 결코 세상에 빛을 볼 수 없었던 것이었기에 나는 부녀(父女)의 집념에 그저 고개 숙일 뿐이다.

"아버지는 언제나 손에서 문고판 일본어책을 놓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 서재에는 한국고대사, 한일근현대사 책도 빼곡할 만큼 두 나라의 역사와 문화, 문학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지요. 아버지는 한국과 일본, 두 나라에 대해 똑같이 애정을 가졌고 그런 아버지가 인생의 결론처럼 <백범일지>를 번역하신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일본인들이 이 책을 읽음으로써 한국과 일본의 거리를 좁히는데 도움이 될 거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아버지가 번역한 이 책을 통해 일본인들이 진정 일제강점기에 겪은 한국인의 고난과 역경으로 점철된 역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류리수 박사는 이 책을 펴내는 심정을 이렇게 말했다. 3.1만세운동 100돌 및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돌을 맞이하는 올해, 류의석 선생이 한 자 한 자 정성껏 일본어로 번역한 <백범일지>가 일본사회의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켜 새로운 100년을 여는 중대한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다음은 류리수 박사와의 일문일답.

'한일 사이 진정한 우호'를 꿈꾼다
[대담] 아버지 류의석이 쓴 <백범일지> 펴낸 류리수

 
류리수 아버지가 번역한 일본어판 《백범일지》를 5년의 노력 끝에 펴낸 류리수 씨가 아버지를 모신 납골당에 바치고 있다.
▲ 류리수 아버지가 번역한 일본어판 《백범일지》를 5년의 노력 끝에 펴낸 류리수 씨가 아버지를 모신 납골당에 바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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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가 <백범일지>를 일본어로 번역한 목적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버지는 부모세대가 일제침략기에 죽거나 불구가 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일본에서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일본인 친구들과 일본문학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평생 진정한 한일 사이 우정을 고민해 온 아버지는 <백범일지>가 자칫 일본 친구들에게 마음의 부담을 주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일제침략기에 겪어야 했던 조선인들의 역사를 일본에 알리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본다. 가해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아버지로서는 침략과 전쟁을 뛰어넘어 일본인 친구들이 진정으로 한국인의 역사와 진심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에서 이 작업을 하신 것으로 안다."
 

- 아버지가 일본어를 모국어처럼 쓸 수 있었던 까닭은?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하다가 도피처로 가게 된 일본의 산골마을에서 초등학교 시절을 보내면서 일본인 친구들과 순수한 우정을 쌓게 되었고, 성인이 된 뒤에는 국제중소기업협의회 한국사무장 등 줄곧 국제업무를 해오며 일본인과 교류해왔다. 진정한 아버지의 일본어 실력은 귀국 후 일본어로 된 세계문학서적을 탐독하면서 일본어 고급표현을 익힐 수 있었던 데에 있다고 본다. 그 뒤 삶을 마칠 때까지 잠시도 손에서 일본의 역사와 문학서적을 놓지 않은 덕에 <백범일지> 번역이 가능했을 것이다."
 

- 일본어판 <백범일지>를 한국에서 펴내게 된 경위는? 
"2006년쯤 어느 날 아버지가 <백범일지>를 번역했는데, 출판하고 싶으니 일본출판사를 알아봐 달라고 하셨다. 그때 일본에 알아 보았으나 3곳의 출판사로부터 거절당해 그 뒤 아버지께서 포기하신 것으로 알고 잊고 있었다. 그러나 2014년,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장례를 치르고 난 뒤 친정 서재에서 '백범일지 6차 수정'이라는 서류봉투를 발견하고 놀랐다.

일본에서의 출판을 포기한 줄 알았던 아버지가 계속 수정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꼭 출판해야겠다고 결심했지만 그 뒤로도 일본 출판사로부터 수차례 거절을 당했다. 그것은 아마도 김구 선생을 테러리스트의 수괴로 보는 보통 일본인들의 시각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정을 알게 된 한국의 도서출판 하우 박영호 대표께서 뜻 있는 일을 함께 하고 싶다며 한국에서 일본어판을 펴낼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주었다."
 

- <백범일지>의 일본어 감수자로 시인 우에노 미야코를 선정한 이유는?
"우에노 시인은 고등학교시절 윤동주의 시에 크게 감동하여 40년 동안 한국어를 공부했으며 윤동주의 시를 일본어로 완역하여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2015, 도쿄 콜사크사)를 펴냈다. 이 책은 윤동주의 시어를 가장 잘 번역한 책으로 일본에서 인정받고 있는 것은 물론 우에노 미야코는 중견시인으로 일본 안에서 입지전적인 분이라 아버지의 일본어 번역 감수에 적합한 분으로 생각했다.

감수 기간 내내 낱말 하나하나까지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주어 일본어판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이 자리를 빌려 모국어처럼 구사하는 한국어 실력과 일제 침략 역사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아버지의 일본어 문장을 애정 어린 시각으로 감수해준 우에노 미야코 시인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린다."
 

- 류리수씨도 일본문학 전공자로 알고 있다. 아버지의 유품인 <백범일지> 원고를 처음에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이번에 아버지가 번역한 일본어판 덕에 다시 한 번 <백범일지>를 읽으면서 그 당시의 나였다면 어떤 역할을 했을까를 생각했다. 폭탄을 던지는 독립운동가였을까? 고문에 못이겨 동지를 파는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일본이 지배하는 새시대(?)에 자신을 합리화하며 순종하는 사람이었을까? 등등. 그 당시의 나였다면 몇 차례의 시련으로 무너져 버리고 합리화하며 순응하는 삶을 살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가 다시 보였다. 책을 통해 김구 선생이 목숨처럼 지키려 했던 조국의 온전한 자주독립과 선생이 염원하던 통일에 대한 꿈도 새삼 되새기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다."
 

- 일본에서 나온 번역서에 견주어 류의석 선생이 번역해낸 <백범일지>의 특징은 무엇인가?
"<백범일지> 일본어 번역서는 한국인이 번역한 최초의 번역서이다. 일본에서 <백범일지>가 처음으로 번역된 것은 1973년 일본의 평범사(平凡社)에서 나온 것으로 카지무라 히데키(梶村秀樹)의 작은 문고판 번역본이 있다. 그러나 이번에 나온 일본어판 <백범일지>는 한국인이 번역했다는 점과, 당시 굵직한 사건에 대한 주해와 연보, 사진, 지도 등을 실어 이해를 도운 점이 이번 일본어판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주요사건과 인물에 대한 주해를 달 때, 우리나라와 일본 쪽의 설명이 정반대인 것에 매우 놀랐고 이만큼이나 일본과 우리가 멀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한국 쪽 자료에 따라 주를 달았을 때 일본인들은 잘못된 편파적인 주해라고 비판하며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 자체를 거짓이라고 폄훼할까 두려워서 주해 부분을 지운 적이 있었다.

그래서 다시 두리뭉실하게 고쳤다가 결국은 한 자 한 자를 전쟁하는 심정으로 한국 쪽 자료에 따라 주해를 달았던 점은 잊지 못할 일이다. 앞으로 한국과 일본의 간극을 좁혀나가기 위해 전공자들의 두려움 없는 연구 노력이 절실함을 느꼈다. 이참에 인문학 연구로 생계가 안 되는 우리나라 실정은 개선되어야 할 것이며 연구자들이 마음 놓고 일본과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대폭적인 지원이 따라야 한다는 생각을 얘기한다."
 

- <백범일지>가 일본에서 어떻게 인식되기를 바라는가?
"숨막히게 소용돌이치는 시대에 쓰인 <백범일지>를 일본인들이 읽으면서 한민족의 고난을 알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백범일지>가 한일 사이의 이해와 화합을 이루는 진정한 첫발이 되길 바란다. 또한 김구 선생이 우리나라가 세계 속에 문화를 꽃피워 인류를 아름답게 이끌어가는 기품 있는 나라가 되기를 바랐듯이, 일본인도 함께 기품 있는 미래로 나아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덧붙이는 글 | <白凡逸志(백범일지)> 柳義錫(류의석) 飜譯(번역), 夏雨社(하우사), 2019.3, 15,000원

이 기사는 우리문화신문에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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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시인.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한국외대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냄 저서 《사쿠라 훈민정음》, 《오염된국어사전》, 시집《사쿠라 불나방》,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 》전 8권, 《신 일본 속의 한국문화답사기 》외 다수

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