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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호진 시인은 소년원 출원생을 비롯한 학교 밖 청소년에게 일자리와 밥을 주기 위해 경기도 부천에 카페 '소년희망공장'을 2016년 만들었다. 그리고 위기청소년 스포츠문화예술 공간 '소년희망센터'를 2018년 부천역 골목에 만들었다. '조호진 시인의 소년희망편지'는 가정해체 등의 불우한 환경으로 인해 거리를 떠도는 소년들의 절망 '팔할'(八割)과 희망 '이할'(二割)에 관한 이야기다. -기자 주-
 
소년의 봄은 언제 올까?
 소년의 봄은 언제 올까?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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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샘바람에 당했습니다. 기지개를 펴면서 "야, 이젠 봄이다!"라고 두 팔 벌렸다가 꽃샘바람에 당했습니다. 저만 당한 게 아닙니다. 폐지 줍는 할머니도 당했고, 노점상 아주머니도 당했고, 공사판 아저씨도 당했습니다.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기습하는 봄에 당한 게 한두 해가 아닌데도 올해 또 당했습니다. 이런 봄이 밉기도 하지만 이래야 산천에 꽃이 피고 강산이 푸르러진다니 참겠습니다.

갈까, 말까 약 올리다 시동을 걸어 불을 지르기 시작하면 어떤 소방수도 진화(鎭火) 할 수 없는 방화 봄, 남녘은 이미 봄꽃들이 미쳐 날뛴답니다. 산천을 울긋불긋 물들이는 연쇄 방화 봄아, 어서 북진해서 우리 동네도 불 질러주라. 네가 와서 불 지르면 나도 봄 산천에 뛰어들련다. 너희들만 불 지르랴! 나도 불 지르겠다! 부화뇌동하면서 공범이 되고 싶다. 어서 오라 방화 봄!

소년의 슬픈 봄
 
조호진 시인의 <소년원의 봄>
 조호진 시인의 <소년원의 봄>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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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아

왔으면
면회 오든가
빼내 주든가

까까머리
소년범은 놔두고
지들끼리 환장해서

사방천지
꽃불 지르는
연쇄 방화 봄아
 

(졸시 '소년원의 봄' 전문)
 
부천역에서 7년째 떠돌고 있는 봉수(가명·22)에게 이 시를 보여주었더니 무슨 말인지 알겠다고 했습니다. 다행입니다. 소년원 출신이 소년원 이야기를 읽고도 뭔 말인지 모르겠다고 하면 틀림없이 엉터리 시입니다. 시를 읽었다면 위기청소년도, 폐지 줍는 할머니도, 노점상 아주머니도, 공사판 아저씨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방 끈 길고 돈 많은 사람들만 이해할 수 있는 시는 노리개에 불과하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봉수는 열다섯부터 소년원에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엄마가 떠난 뒤 거리를 떠돌기 시작한 봉수는 자전거를 훔치고 삥 뜯는 등의 죄를 짓고 모두 세 차례 소년원 생활을 했습니다. 가장 오래 생활한 건 소년법에서 가장 무거운 처분인 10호를 받고 20개월을 산 것입니다. 한창 뛰어놀아야 할 소년이 담장에 갇혀서 가고 싶은 곳에 가지 못하고 먹고 싶은 것을 먹지 못하는 영어(囹圄)의 몸이 됐던 것입니다.

부모가 온전했다면 '법자'(법무부의 자식들이란 은어)가 됐을까요. 엄마는 어린 봉수를 버리고 떠났고 아빠는 공사판을 떠돌았습니다. 봉수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떠난 엄마는 소식이 끊겼습니다. 꽃 피는 봄엔 누가 좀 꺼내줬으면 하고 기다렸다는 봉수는 "봄아// 왔으면/ 면회 오든가/ 꺼내 주든가"라는 대목에서 눈가가 붉어졌습니다. 창살 안에서 "사방천지/ 꽃불 지르는/ 연쇄 방화 봄"을 보면서 소년원에서 벗어나 봄과 놀고 싶었지만 아무도 봉수를 꺼내주지 않았습니다.

봉수 엄마는 공장에 다녔고 아빠는 공사장 인부였습니다. 엄마는 야근 때문에 밤늦게 집에 왔고 공사판을 떠돌아다니며 일했던 노가다 아빠는 가끔 왔다고 했습니다. 봉수는 일곱 살 때부터 밥을 했다고 했습니다. 반찬이 없으면 돼지저금통에서 동전을 꺼내 비엔나소시지를 사와서 두 살 아래 동생과 밥을 먹었다고 했습니다. 엄마아빠는 자주 싸웠는데 그 때마다 봉수는 동생을 껴안고 두려움에 떨었다고 했습니다.

부모가 싸우면 아이들은 전쟁터에 던져진 공포에 휩싸인다고 합니다. 포탄이 터지고 총알이 날아다니는 전쟁터, 사람이 죽거나 피 흘리며 신음하는 전쟁터의 공포에 휩싸인다고 합니다. 부모가 서로를 죽일 듯이 싸울 때마다 공포에 떨어야 했던 봉수는 초등학교 때부터 우울증을 앓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전쟁터가 된 집에서 공포에 떨며 허기진 밥을 먹다가 걸린 가슴 아픈 병입니다.

봉수는 눈물이 많습니다. 그런데 울면 쪽 팔리기 때문에 눈물을 웃음 뒤에 감추었습니다. 주먹으로 벽을 치는 건 눈물을 감추기 위해서입니다. 주먹에서 피가 흐르는데도 벽을 치는 것은 눈물을 억누르기 위해서입니다. 나는 봉수의 눈물을 압니다. 나도 어릴 적에 떠난 엄마가 보고 싶어 많이 울었습니다. 저 하늘에 걸린 슬픔 때문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어리다고 해서 슬픔을 모르진 않습니다.

소년 희망, 봄 파티로 오라!
 
봉수(가명)의 방.
 봉수(가명)의 방.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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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받지 못할 때가 가장 슬퍼요!"

봉수에게 어떤 때 가장 슬프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소년희망센터'에서 운동하면서 희망을 쥐기 시작한 봉수는 나의 밥 친구입니다. 밥은 참 묘합니다. 한 끼 같이 먹고, 두 끼 같이 먹고, 일주일 같이 먹고, 한 달 가까이 밥을 먹었더니 봉수가 닫았던 가슴을 열었습니다. 봉수와 밥을 먹은 뒤에는 부천역 뒷골목을 거닐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가난했고 슬펐던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더니 봉수도 자신의 슬픈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슬픔을 감추면 병이 된다."

봉수와 나는 가슴 속의 슬픔을 꺼내 봄볕에 말리기로 했습니다. 봉수와 나는 슬픔으로 통했습니다. 젖은 빨래를 눅눅한 곳에 놔두면 곰팡이가 슬고 가슴 속에 슬픔을 감추면 병이 됩니다. 그 병을 끼고 살면서 병원에만 다니면 슬픔은 약물에 취합니다. 슬픔을 치유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슬픈 사람과 슬픈 사람이 만나 감추었던 슬픔을 꺼내 놓고 진실로 슬퍼하며 서로 위로하고 공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햇볕에 말린 빨래처럼 젖은 슬픔이 마릅니다. 이렇게 해서 슬픔이 뽀송뽀송 마른 것을 나는 경험했습니다.

웃녘에도 봄이 오면 산에 들에 개나리와 진달래가 필 것입니다. 그렇다면 거리 소년들도 피어야 합니다. 활짝 피지 못한다면 살짝이라도 피어야 합니다. 쉬이 오기가 힘들지 막상 오기만 하면 온 산천을 불꽃 천지로 만드는 봄처럼 슬픈 소년들도 희망을 맛보면, 그래서 절망보다 희망이 훨씬 잘 어울린다는 것을 알게 되면 봄처럼 마구 피어날 것입니다. 희망의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멋쟁이가 될지도 모릅니다.
 
"소년희망, 봄 파티를 열까?"
 
봉수와 나는 5천 원짜리 김치찌개를 먹습니다. 날마다 김치찌개를 먹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봄이 왔는데 김치찌개만 먹어서야 쓰겠는가? 우리의 슬픔을 말려주실 봄님을 환영하는 파티를 열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소년 희망, 봄 파티'를 열기로 했습니다. 징하게 맛있는 음식을 먹고 가슴 설레게 하는 선물을 나눠주면서 '졸라게' 재밌는 게임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봉수와 봉수처럼 불우한 소년들의 가슴 속에서 슬픈 봄은 꺼내고 그 가슴 속에 따뜻한 봄을 넣어주면 좋겠습니다.
 
배고픈 거리 소년들.
 배고픈 거리 소년들.
ⓒ 김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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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소년 희망, 봄 파티'에 관심 있거나 자원봉사 하고 싶은 분들은 아래를 참조해 댓글이나 쪽지 남겨주시면 됩니다.
 
<봄 파티 자원봉사자 모집 안내>
 
▶일시 : 3월 28일(목) 오후 7시
▶장소 : 부천역 청개구리 식당
▶주최 : 위기청소년의 좋은친구 어게인
 
봄 파티를 함께할 자원봉사자 열 분을 모십니다. 조건은 참가비 10만원, 소년들에게 줄 선물, 빨간색 드레스코트(빨간 나비넥타이, 빨간 머리띠, 빨간 양말 등에서 택일)를 준비하시고 오시면 됩니다. 조금 까다롭죠~^^ 소년 희망을 보려면 이 정도는 갖추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문턱을 조금 높였습니다~^^


태그:#소년희망공장, #소년희망센터, #소년원의 봄, #위기청소년의 좋은친구 어게인, #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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