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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주식은 1주도 사본 적 없었다.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곁눈질도 안 했다. "대박! 걔 있지, 주식으로 완전 초초대박 났대."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이 큰돈을 벌었다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내 마음은 꿈쩍하지 않았다. 2017년 11월 27일까지는.

"배지영이, 이거는 무조건 사야 한다. 내가 언제 이런 말 하든?"

나한테는 부모와도 같은 사람이 말했다.
 
"싫어요. 그런 데다가는 쓸 돈 없어요."
"그러면 2000만 원을 나한테 줬다고 쳐라. 주냐? 못 주냐?"


고민할 시간을 갖지 않고도 말할 수 있었다. "알았어요." 큰애 대학 등록금 내려고 모아둔 2000만 원을 찾아서 알려준 은행으로 갔다. 룸에서 근무하는 은행원은 1주에 10만8000원 하는 어떤 회사의 주식 185주를 내 이름으로 사줬다. 스마트폰을 달라고 하더니 투자증권 앱을 깔아주고는 보는 법까지 알려주었다.

틈날 때는 그 앱을 들여다봤다. 주식의 가격은 초 단위로 달라졌다. 어릴 때 우리 집 앞으로 흘렀던 냇가를 보는 것 같았다. 엄마가 빨래하던 냇물은 홍수가 진 뒤에는 맹수 같았다. 참외와 수박 밭을 쓸어버리고, 심지어는 건너던 어린이의 다리까지 물고 늘어졌다. 주식 가격은 쳐다볼수록 멀미가 났다. 나는 투자증권 앱을 삭제해 버렸다.

"그 주식 빨리 팔아, 오를 일 없어"
 
주식 가격은 쳐다볼수록 멀미가 났다. 나는 투자증권 앱을 삭제해 버렸다.
 주식 가격은 쳐다볼수록 멀미가 났다. 나는 투자증권 앱을 삭제해 버렸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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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봄, 큰애는 대학에 다니기 위해서 대전으로 갔다. 우리 집은 국가장학금을 10원도 받을 수 없는 소득분위. 나는 수업료, 입학금, 기숙사비, 조리복, 칼 값으로 580만5700원을 내야 했다. '주식을 안 샀으면 좋았겠지'라고 후회도 잠깐 하면서.

다른 데에 쓰려던 돈을 헐어서 큰애 등록금을 냈다. 매달 큰애 통장에 용돈을 보내고, 환하게 웃는 아이 얼굴을 상상하면서 더 보내기도 했다. 2학기 등록금도 재깍 냈다. "학비 걱정 안 하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말한 큰애는 자기 용돈을 벌어서 쓰기도 했다.

그러나 친구들이랑 놀다가 머리통이 깨져서 간 대학병원 응급실, 수십만 원의 병원비는 없었다. 부모란 무엇인가. 진료비를 보내고, 한겨울에도 "스웩 때문에 이렇게 입는 거예요"라는 아이에게 따뜻한 옷을 억지로 사 입혔다. 대학 공부 1년 시키는 데 2000만 원쯤 들었다.

여윳돈을 야금야금 써버리고 맞은 2019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자고 수 없이 결심했다. 그러나 초등학교도 안 들어간 조카손주들에게 세뱃돈을 5만 원씩 줬다. 학교 선배의 전시회에 가서는 내 월급의 10%에 해당하는 사진을 샀다. 다른 선배의 모임에는 후원금을 또 그만큼 냈다.

내 처지는 빠져나간 통장 잔액을 볼 때만 자각했다. 자동차 스마트키까지 잃어버리는 사람이라서 그럴까. 뒤돌아서면 금방 잊었다. 며칠에 한 번씩은 "이렇게 살다가는 아이들한테 짐을 넘겨줄 수도 있어, 정신 좀 차리자"며 나를 다그쳐야만 했다.

"아직 그 주식 갖고 있어?"
 

지난주에 친구가 고맙게도 내 주식의 존재에 대해서 물어봐줬다. 그 친구는 결혼하기 전부터 주식 투자를 해왔다. 아이들 이름으로 10~20만 원씩 드는 저축도 펀드에 가입한 사람이다. 나보다는 백만 배쯤 잘 아는 친구가 말했다.

"빨리 팔아. 그 회사 재무제표 보니까 작년이랑 재작년이랑 영업이익이 마이너스야. 오를 일 없어."
"사실 나 돈 필요한데. 이참에 팔아야겠다."


집에 와서 스마트폰에 투자증권 앱을 다시 깔았다. 1년 3개월 만에 내가 산 주식 가격을 정면으로 바라봤다. 한숨이 나오면서 저절로 다리 힘이 풀렸다. 나는 아무 짓도 안 했는데... 700만 원쯤 되는 돈이 증발해 버린 거다. 친구한테 전화를 걸었다.

"이거 어떻게 팔아? 증권거래소인가에 가야 해?"
"스마트폰에서 팔 수 있어. 앱의 메뉴를 잘 봐봐. 매도라는 게 나올 거야."


매도를 하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한다. 평소에 쓰는 몇 개의 비밀번호를 써봤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할 수 없다. 1588로 시작하는 투자증권 회사에 전화를 걸어서 오래 기다렸다가 실마리를 찾았다. "은행에 가서 비밀번호를 변경하신 다음에 이 번호로 다시 전화하세요." 시키는 대로 하기 위해서 다음 날까지 기다려야 했다.

내 인내심에 찬사를 보내면서 마침내 투자증권 앱의 매도를 클릭했다. 현금, 신용, 지정가, 시장가, 현금가능, 매수포함 같은 단어가 보였다. 칠판 앞에 나가서 인수분해를 풀던 고등학교 수학시간처럼 머릿속이 하얘졌다. 이번에도 친구한테 기댈 수밖에 없었다.

"혼자서 못 팔겠어. 니네 회사 로비로 갈 테니까 주식 좀 팔아줘."

친구는 몇 분 만에 해냈다. 주식 1주에 7만7100원. 100주를 팔았다. 나머지 주식은 갖고 있다가 파는 게 좋겠다면서 다른 고급 정보도 알려주었다. 주식 판매한 돈은 증권회사에서 바로 주지 않고, 사흘 지나서 통장에 입금시켜 준다는 것을.

차라리 다행이다, 세 달 간 은행 다닐 뻔

주말이 끼어 있어서 나흘 뒤에 '계좌통합관리' 앱에 들어가 봤다. 오, 예! 돈이 들어와 있었다. 원금을 생각하며 머리를 싸매지 않는 나는 은행으로 갔다. 거기는 주거래 은행도 아니어서 체크카드조차 만들지 않았다. 나는 은행 출금표를 쓰고는 30분도 넘게 기다렸다.

"한도계좌네요. 이 돈 한꺼번에 못 찾으세요."
"예? 무슨 뜻이에요?"
"하루에 30만 원밖에 찾을 수 없는 계좌라고요. 이거 풀려면 재직증명서나 재산세 영수증, 주식 매매했다는 증명서 가져오세요."


답답하다고 가슴을 탕탕 쳐야 할 손은, 흘러나오는 눈물을 방어해야 할 손은 본능적으로 스마트폰을 켜고 있었다. 주식 판 돈 770만 원과 원금 2000만 원을 각각 30만 원으로 나눠보았다. 그리고는 메신저로 남편한테 하소연을 했다.

"여보! 망한 게 다행인지도 몰라. 내 통장은 한도계좌라서 하루에 30만 원밖에 못 찾는대. 앞으로 25일 동안 날마다 은행에 가서 줄 섰다가 돈 찾아야 해. 원금 회복했으면 67일 동안, 주말 빼야 하니까 거의 세 달간 은행 다닐 뻔. ㅠㅠ ㅋㅋㅋ"

세상에 공짜는 없다. 만고의 진리를 깨달은 나는 <돈 공부는 처음이라>를 사서 읽었다. 주식 투자를 진행하면서 가장 힘든 행동이 손절매(앞으로 주가가 더욱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고 단기간에 가격상승이 보이지 않는 경우, 가지고 있는 주식을 매입 가격 이하로 손해를 감수하고 파는 일-지식백과 참고)라고 했다. 그 어려운 걸 내가 해낸 거다.

"암요, 잘했네요, 잘했어"라면서 나를 치켜세울 수는 없었다. 세상의 모든 일처럼, 주식을 사는 일에도 정성과 시간을 들여야 한다고 했다. 나 같은 사람을 뭐라고 부를지, 책을 보니 알겠다.
 
"투자하는 금액은 당신의 쓴 시간과 정성에 맞춰야 한다. 1시간을 고민하여 투자를 결심했다면, 투자 금액은 최저시급인 8350원 정도가 되어야 한다. 그 이상을 샀으면 도박이다."

2017년 11월, 주식을 사면서 내가 공부하거나 고민한 시간은 10분 이내. 1390원을 투자하는 게 적당했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주식에 시간과 정성을 들일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그럴 자신과 열정이 전혀 없다. 다시는 이 세계에 발을 딛고 싶지 않다. 다만, 남아있는 85주의 주식은 80% 가격이라도 받았으면 좋겠다. 아니면 70%라도.

태그:#주식 투자, #투자와 도박, #돈 공부는 처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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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소년의 레시피』 『남편의 레시피』 『범인은 바로 책이야』 『나는 진정한 열 살』 『내 꿈은 조퇴』 『나는 언제나 당신들의 지영이』 대한민국 도슨트 『군산』 『환상의 동네서점』 등을 펴냈습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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