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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과옥조로 새기고 사는 문장들이 있다. 그중 하나는 노예해방운동가 소저너 트루스(Sojourner Truth)의 연설에서 나온 "나는 여성이 아닙니까?(Ain't I a Woman)"이다. 1851년 오하이오에서 열린 여성 권리를 위한 집회(Women's Rights Convention)에서 발화된 이 문장은, 분열 당하는 정체성을 가진 자가 사회에서 늘상 어떤 감각을 느끼고 살아가야만 하는지를 명확히 설명해 준다.

당시 미국에서 흑인민권운동과 여성인권운동 진영 각각이 수호하는 권리는 마치 별개의 것처럼 여겨졌다. 각 운동을 대표하는 얼굴은, 한쪽은 가난한 피지배민으로서의 흑인 남성으로, 다른 한 쪽은 그런 흑인을 지배하는 중산층 백인 여성으로 표상됐다. 이때 노예 출신 흑인 여성이었던 소저너 트루스는 흑인이자 여성인 자신의 인권을 도저히 반으로 나눌 수 없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들어갈 수 없는 '성평등'의 자리  
 
 2017년 2월 16일 오후 서울 중구 페럼타워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당시 후보가 주도하는 '대한민국 바로세우기 제7차 포럼'이 '새로운 대한민국, 성평등으로 열겠습니다'를 주제로 열렸다. 성소수자 단체와 장애인단체 회원들이 성소수자 보호 등의 내용을 담은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사실상 반대 뜻을 밝힌 문 전 대표를 규탄하며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2017년 2월 16일 오후 서울 중구 페럼타워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당시 후보가 주도하는 "대한민국 바로세우기 제7차 포럼"이 "새로운 대한민국, 성평등으로 열겠습니다"를 주제로 열렸다. 성소수자 단체와 장애인단체 회원들이 성소수자 보호 등의 내용을 담은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사실상 반대 뜻을 밝힌 문 전 대표를 규탄하며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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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성이고 동성애자인데 제 인권을 반으로 나눌 수 있습니까?"

2017년 한국에서 정체성의 분열을 강제 당한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곽이경 활동가다. 그 직전 해에 벌어진 이화여자대학교 미래라이프대학 신설 반대 시위는 한국 사회 전반의 변혁을 예고하는 신호탄이었다. 집회 참석 누적 인원 1500만 명을 넘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시위가 기어이 성공하자, 한국인들의 가슴은 장밋빛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으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드디어 2017년 2월, 가장 유력한 대선 주자였던 문재인 당시 대통령 후보는 '대한민국 바로 세우기 제7차 포럼'에 참석했다. 해당 포럼의 주제는 성평등이었다. 그 자리에서 논의된 성평등은 정확히 어떤 것이었나? 나는 잘 모르겠다. 한 가지는 명확하다. 그 '성평등'의 자리에 성소수자가 들어갈 수는 없었다.
 

불과 포럼 3일 전 문재인 당시 대통령 후보는 보수 기독교계와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는 논의를 했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 그는 '현행 국가인권위법이 있으므로 추가 입법으로 불필요한 논란은 막아야 한다'는 요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차별금지법 제정은 참여정부의 국정 과제이지 않았나.

19세기 미국의 소저너 트루스와 21세기 한국의 곽이경은 같은 취급을 당했다. 소저너 트루스는 여성사에 길이 남은 이 발언을 한 현장에서, '여성 인권'을 말하러 모인 동료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무대에서 끌어 내려질 뻔했다. 그들이 말하는 여성 안에 흑인의 자리는 없었기 때문이다.

곽이경은 '성평등'을 논하는 자리에서 진보계열 참석자들에 의해 발언을 저지당했다. 그들이 논하는 성평등한 진보 정권의 미래에 성소수자의 자리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둘러 싼 구도적 배경과 흐름이 놀랍도록 유사하다.

그 '청년'이 무엇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강남역여성살인사건이 발생한지 이틀이 지난 19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에서 피해자를 추모하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강남역여성살인사건이 발생한 지 이틀이 지난 2016년 5월 19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에서 피해자를 추모하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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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처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느낀다.

"20대 남성의 국정 지지율이 떨어졌다."

온 나라에 비상이 걸렸다. 이윽고 문제는 '젠더갈등'으로 명명됐다. 온갖 언론과 기관에서 자리를 만들어 이 문제를 연구했고, '청년 전문가' 다수가 포진한 판에 '청년 당사자' 몇몇을 양념처럼 불러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말하게 시켰다. 그러나 2015년 한국에 '페미니즘 리부트'가 시작된 이후 5년째 실패와 성장을 거듭하며 정치세력화를 시도해 온 젊은 여성들의 목소리는 오간 데 없었다.

지금 나는 도처에서 이런 광경을 목격한다. 정상생애주기를 군말 없이 따라갈, '산업 역군(요즘은 'IT 스타트업'이 대세다)'이 돼 임노동을 해낼 남성의 얼굴을 한 청년만이 청년의 대표가 되는 일. 결혼과 출산의 소임을 기꺼이 수행해 '정상가족'을 만드는 데 기여할/한, 그리하여 중산층 이상의 계급 대물림을 성공적으로 해낼/낸,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만이 여성의 대표가 되는 모습. 이 두 얼굴을 중심으로 정책 논의 테이블이 양분화되는 현실.

그 '청년'이 도무지 뭔지 모르겠고, 그 '여성'도 도통 내 몸에 맞지 않는 젊은 여성으로서 한국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나는 오늘 이렇게 묻고 싶다.

"나는 청년이 아닙니까? 청년이자 여성인 제 인권을 반으로 나눌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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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저자. 소수자의 눈으로 세상을 봅니다. 관심사는 마이너리티/섹슈얼리티/몸/시민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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