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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에 처음 들어선 꼬마평화도서관으로 뜻이 깊다
▲ 운문유치원에 둥지 튼 서른 번째 꼬마평화도서관 전경 유치원에 처음 들어선 꼬마평화도서관으로 뜻이 깊다
ⓒ 변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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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5일 경산에 있는 운문유치원에 꼬마평화도서관이 둥지 틀었다. 광주에 있는 선운중학교 복도와 그리고 제주 덕수리에 있는 덕수초등학교에 이어 교육기관에 들어서는 세 번째 들어서는 꼬마평화도서관이다.

'한반도 중립화'를 내걸고 평화모임을 만들자고 처음 뜻을 낸 윤구병 선생께서는 "우리는 흔히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말하는데 '아니!'라고 손사래 친다. 교육은 백년지대계가 아니라 '생존지대계'란다.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몸도 가누지 못하고 태어나는 사람은 배우지 않고는 목숨을 이어갈 수 없다. 더구나 휘청휘청 걷는 사람은 홀로 살아갈 만큼 힘이 세지도 못하다. 그래서 더불어 살아가기를 몸에 익혀야만 목숨을 이어갈 수 있다.
 
오른쪽부터 꼬마평화도서관을 안내하는 운문유치원 원장 도진스님 꼬마평화도서관 바라지 변택주, 꼬마평화도서관에 힘실어주는 박삼선 선생, 살림지이 이상희 선생
▲ 운문유치원 꼬마평화도서관 오른쪽부터 꼬마평화도서관을 안내하는 운문유치원 원장 도진스님 꼬마평화도서관 바라지 변택주, 꼬마평화도서관에 힘실어주는 박삼선 선생, 살림지이 이상희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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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말을 하게 된 까닭은 홀로 살아갈 만큼 힘이 세지 못해서 머리 맞대고 힘을 모아 더불어 살아가려는데 뜻을 두고 있다. 이 바탕에서 꼬마평화도서관사람들은 평화란 '더불어 살림살이' 또는 '어울려 살림살이'로 풀고 있다.

나는 나이 예순이 다 되도록 평화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저 살았다. 둘레 사람을 다독이며 남을 해치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이익이 남으면 조금이나마 힘겨운 이웃과 나누는 것으로 위안을 삼으며 살았다. 내게 평화가 뭐냐고 묻는 이도 없었다. 그런데 2012년 가을 윤구병 선생님이 불쑥 물으셨다. "변 선생은 평화가 뭐라고 생각해요?"
   
갑자기 머릿속이 하얬다. '평화? 도대체 평화가 뭐지?' 싶어 머뭇거리자 윤구병 선생이 뭐라고 하셨는데 하얬던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오지 못했다. 가운데가 끊어지고 남은 말씀은 이 땅이 평화로워져서 우리 아이들이 마음 놓고 뛰어놀게 하려면, 세상에서 가장 거칠고 드센 미국과 중국, 일본과 러시아 사이에 낀 우리나라가 "영세중립국"으로 가는 것밖에는 길이 없다는 말씀이었다. 영세중립은 영구히 어느 편도 들지 않고 살아가겠다는 스스로 서는 줏대 세움을 가리키는 말이다.
 
왼쪽이 꼬마평화도서관 바라지 변택주, 오른쪽이 운문유치원 원장 도진 스님
▲ 꼬마평화도서관 명패전달식 왼쪽이 꼬마평화도서관 바라지 변택주, 오른쪽이 운문유치원 원장 도진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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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세중립국으로는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그리고 군대를 없애고 저 홀로 영세중립을 하겠다고 외치고 나선 코스타리카와 1995년 제50차 유엔총회에서 유엔에 들어있는 185개 나라 모두가 뜻을 맞춰 영세중립국이 된 투르크메니스탄이 있다. 영세중립까지 얘기하기에는 힘이 달린다는 생각에 평화를 먼저 배워가기로 했다. '도대체 평화가 뭘까?'하는 말머리를 붙들고 이듬해 봄부터 가까운 이들과 첫 번째와 세 번째 수요일 오후 두 시에 모여 평화를 떠올릴 수 있는 책을 읽었다.
      
가장 먼저 펴든 책은 <사막에 숲이 있다>였다. 중국에서 네 손가락 안에 꼽히는 내몽고 자치구 마오우쑤 사막에 있는 징베이탄. 물 한 방울 풀포기 하나 남기지 않고 모래에 묻어버리는 사막 가운데 겨우겨우 살아내는 사내가 있다. 이 앞에 한 여인이 나타난다. 아버지가 친구하고 오래 전에 했던 약속이니 "넌 여기서 살아" 내던지듯이 내려놓고 떠났다. 이곳에는 무기력하고 말 수도 없는 사내뿐 먹을거리도, 마실 물도 없었다. '어서 이곳을 벗어나야 해' 몸부림쳤지만 퍽퍽 빠지는 모래언덕과 모래바람이 막아섰다.

눈물로 지새우던 여인 이름이 인위쩐이다. 인위쩐은 나무를 심어 이곳을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야 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한 그루 두 그루 메마른 모래밭에 심은 나무들은 뿌리 내리지 못하고 거듭 죽고 만다. 나무 죽이기를 거듭하면서 나무 아래에 풀들이 자라면 나무가 살아남을 확률이 훨씬 높아진다는 것을 알아낸다. 풀씨를 뿌리는 일이라고 해서 만만할 까닭이 없었다. 인위쩐은 고민 끝에 나귀 등에 풀씨 주머니를 매달고 돌아다니도록 한다. 이렇게 풀과 더불어 나무가 힘을 받으면서 오랜 고생 끝에 커다란 숲을 만들어간다는 얘기책이다.
 
운문유치원 꼬마평화도서관에 참석한 학부모
▲ 꼬마평화도서관 개관식 풍경 운문유치원 꼬마평화도서관에 참석한 학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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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한 달에 두 번 만나 책을 읽어나가다가 '우리뿐 아니라 나라사람들이 두루 평화 책을 읽어 가다보면 자연스럽게 평화가 와 닿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평화란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민주주의와 인권, 생태보전과 평등이구나 하는 마음이 들면서 일어난 생각이다. 자연스럽게 나라 곳곳에 평화도서관을 열면 좋겠다고 뜻을 모았다. 그러나 도서관을 여는 데는 큰돈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돈도 힘도 없는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그림 속에 담긴 떡'일 뿐이라는 생각에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사막에 숲이 있다>는 꼬마평화도서관사람들이 가장 먼저 펴든 책이면서 가장 오래도록 들고 있는 평화 책이다. 이 책을 아울러 한 달에 두 권을 열두 해쯤 읽어 내리면서 내게 든 생각은 "평화는 살림이다"는 것이었다. 살림은 죽임에 맞선 말씀으로 살림살이란 살림을 삶에 가운데 두며 살아가는 삶을 일컫는다. 전쟁 위험이 끊이지 않는 이 땅에서 살림과 평화를 묶으면서 떠오른 말씀이 "2030년 우리 아이 어떤 세상에서 살도록 하고 싶으세요?"하는 물음이다.

우리가 사랑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눈에 넣어도 아깝지 않을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는 어떤 세상을 물려줄 수 있을까 하는 안타까움에서 솟구친 물음이었다. 그래서 평화도서관 만들기 내려놓고 한숨만 쉬고 있을 수 없었다. 우리 아이들을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려면 '사람들 가슴에 평화가 담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 길을 아무리 거칠고 메말랐더라도 평화도서관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바탕에서 궁리를 짜고 또 짜냈다. 그 끝에 마침내 모래 틈에도 들어설 수 있을 만큼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상자만한 평화도서관을 열기로 뜻을 모았다.
 
운문유치원 아이들이 빛어낸 평화 빛깔
▲ 평화는 여러 빛깔 어울림 운문유치원 아이들이 빛어낸 평화 빛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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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작아도 큰 뜻을 세운지 다섯 해. 그동안 느릿느릿하니 서툰 걸음을 떼어왔다. 2017년 한 해는 한 개도 열지 못하고 지나치기도 했다. 그렇지만 꼽아보니 카페나 밥집에, 반찬가게와 카센터 한 군데 한 군데. 고즈넉한 절과 뜻있는 목사들이 교회 대신 문을 연 도서관이나 카페 하나하나. 뜻있는 신부가 세운 영성센터 안에 한의원에 작은 도서관 안에도 가만가만 살살. 쓰라린 한국전쟁이 빚은 민간인 학살 현장인 노근리평화박물관과 광주항쟁 터무니를 담은 518기록관에 들어섰다. 엊그제에는 조그만 연립주택 현관에도 꼬마평화도서관이 비집고 들어가 똬리를 틀었으니 참으로 뜻깊은 걸음걸이다.

무엇보다 지난 3월 5일에 운문유치원에 들어선 꼬마평화도서관은 그 뜻이 더욱 새로웠다. 사랑어린 아이들이 올망졸망 모여 서로 살려가는 교육기관인 유치원에 꼬마평화도서관이 들어서다니… 잠을 설쳤다. 꼬마평화도서관을 열러 다닌 지 서른 번째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다섯 살에서 일곱 살배기 말간 가슴에 평화가 소복하게 쌓인다면 이 아이들이 자라서 그려가는 누리는 더없이 평화로운 결이 펼쳐지지 않을까 싶은 나머지 가슴이 벅차올랐기 때문이다.

지난해와 올해 유치원과 초등학교, 중학교에 뿌려진 이 평화 풀씨가 다른 유치원과 초등학교,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와 대학에, 아울러 군부대에까지 퍼져나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꼬마평화도서관 바라지를 맡은 내가 해야 할 일을 나는 "사람들 옆구리를 찔러 꼬마평화도서관 열기"라고 다졌다. 교육마다 꼬마평화도서관이 열릴 그날을 빌면서 느리더라고 꾸준히 옆찌르기를 하러 다니면서 이 글과 마주앉은 분께 여쭙는다. "어디 꼬마평화도서관이 들어설 만한 모래 틈 없나요?"

태그:##꼬마평화도서관, ##한반도 평화, ##사막에 숲이 있다, ##운문유치원, ##모래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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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평화도서관사람들 바라지이 “2030년 우리 아이 어떤 세상에서 살게 하고 싶은가”를 물으며 나라곳곳에 책이 서른 권 남짓 들어가는 꼬마평화도서관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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