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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중심인 종로는 수많은 예술인들이 600여 년 동안 문화의 역사를 일궈온 유서 깊은 도시입니다. '종로의 기록, 우리동네 예술가'는 종로에서 나고 자라며 예술을 펼쳐왔거나, 종로를 중심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이 시대의 예술인들을 인터뷰합니다.[편집자말]
일제의 무단통치에 저항해 민족이 하나 되어 독립 만세를 외치된 1919년 3월 1일. 연극 <세기의 사나이> 속 주인공 박덕배는 바로 그날 얼떨결에 3.1운동을 이끄는 선봉에 서게 되고, 125년이라는 오랜 생까지 부여받게 된다. 박덕배라는 평범한 소시민의 삶이 거대한 역사적 수레바퀴와 맞물리는 순간들을 효과적으로 조명해낸 이 작품은 오늘을 사는 관객들에게 지난 과거를 회고하게 하며, 잔잔한 감동과 깊은 울림을 전한다.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해에 민족대표들이 모여 독립선언식을 거행했던 태화관(泰和館)이 있던 뜻 깊은 곳, 종로에서 특별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최원종 연출가를 만났다.
 
극단 명작옥수수밭 극단 명작옥수수밭의 최원종 대표
▲ 극단 명작옥수수밭 극단 명작옥수수밭의 최원종 대표
ⓒ 극단 명작옥수수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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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판타지의 결합, 웃음 속 진한 여운이 남는 이야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18 공연예술창작산실-올해의 신작' 선정작이기도 한 극단 명작옥수수밭의 신작 <세기의 사나이>는 기네스북에 등재된 최장 생존기간인 125년을 산 남자 박덕배의 인생사를 따라가며 경술국치와 3·1운동을 거쳐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 이르기까지 비극적인 역사의 한가운데를 관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관객들을 애절한 역사의 증인으로만 소환하지 않는다. 낙관적인 세계관으로 역경의 순간들을 극복해온 인물의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도록 이끈다.

"이 작품을 쓴 차근호 작가의 의도처럼 우리가 잊고 있던 아픈 과거들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면서 우리가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지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어요."
 
잊지말아야할 역사를 회고하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18 공연예술창작산실-올해의 신작’ 선정작
▲ 잊지말아야할 역사를 회고하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18 공연예술창작산실-올해의 신작’ 선정작
ⓒ 명작 옥수수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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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분의 공연 시간 동안 다양한 역사적 사건들이 숨 가쁘게 이어지다보니 25명의 배우들이 약 300벌의 의상을 갈아입으며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는 것도 연극의 큰 볼거리 중 하나다.

"한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장면들을 포착해내고, 그것을 직관적으로 이해시키기 위해 장면을 공들여 만들다 보니까 출연진의 숫자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생각될 정도였어요. 25명의 배우 분들이 마치 250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엄청난 연기 투혼을 불사르면서 공연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세기의 사나이> 애니메이션과의 효과적인 결합을 선보이는 연극 <세기의 사나이>
▲ <세기의 사나이> 애니메이션과의 효과적인 결합을 선보이는 연극 <세기의 사나이>
ⓒ 극단명작옥수수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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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무대 위 인물과 만화 영상이 함께 어우러지도록 하는 '애니메이션' 기법을 도입해 우리가 흔히 접해온 역사극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을 도입한 것이 이 작품의 특징. 무대 위에서 성공적으로 구현된 만화적 상상력은 이야기의 설득력과 흥미를 배가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비극적인 장면들만을 보여준다면, 관객들이 그 무거움에 눈 감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웹툰과 애니메이션이 결합한 장르들이 가지고 있는 코믹함이나, 때로는 시공간을 초월하고 비틀며 생략과 함축이 가능한 그 만화적 상상력을 도입해 관객들이 흥미롭게 지켜볼 수 있도록 하고 싶었죠. 이 작품을 만들면서 제가 좋아하는 영화 <택시운전사>와 <아이 캔 스피크>를 많이 떠올렸어요. 두 작품 모두 무겁고 비극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소시민적이고 유머러스한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했죠. '코믹드라마'라는 장르의 변주를 통해 소재를 더욱 친근하게 받아들이면서도 마음속에 깊은 여운을 남길 수 있는 그런 방식을 선택하고 싶었거든요."
 
<세기의 사나이> 역사와 판타지의 결합, 관객의 마음을 적시다
▲ <세기의 사나이> 역사와 판타지의 결합, 관객의 마음을 적시다
ⓒ 극단명작옥수수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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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 작품이 오르기 전까지만 해도 이 아이디어가 무대에서 제대로 구현될 수 있을까 우려했다는 최 연출은 첫 공연이 끝난 후에 많은 관객들의 호응과 주변 동료들의 격려에 큰 힘을 얻었다고 말한다.

"작품 자체가 영화 시나리오처럼 쓰여 있어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영화 <국제시장> 같은 연극인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던 영화라 과연 어떻게 저 많은 이야기들을 한 작품 안에 담으셨을까 궁금했었는데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들고 제작하려고 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족히 영화 10편이 될 만한 이야기를 한 작품 안에 다 넣었다고 불가능할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세기의 사나이>도 시대별로 나눈다면, 족히 연극 10편으로는 쪼갤 수 있지 않을까요? 그만큼 많이 힘들었지만, 저에게는 10배로 뜻 깊고 즐거웠던 시간이었습니다."

좌절과 고통을 잊게 해 준 깨우침의 시간

극단 명작옥수수밭을 이끌고 있는 최원종 연출은 2002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내마음의 삼류극장>으로 등단해 극작가로 활동해오다 2011년 이후 <에어로빅 보이즈>, <헤비메탈 걸스> 등 자신이 쓴 작품을 직접 연출하면서 연출가로서 두각을 서서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작가에서 연출가로 영역을 넓힘과 동시에 어둡고 무거운 주제의 이야기를 탈피해 코미디 장르를 선보인 것 자체가 그에게는 엄청난 모험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 작품들이 그의 연극 인생에 놀라운 전환점이 되어주었다.

"작가만 한 10년 째 하던 시절이었는데, 하는 작품마다 다 망하죠. 어둡고 무거운 작품만 쓰니까 관객이 힘들어하죠. 배우와 스태프가 파이팅 넘치게 시작했다가도 제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점점 어두워지는 거예요. 왜 나는 무거운 이야기를 써서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할까? 하는 고민을 진지하게 하던 시기였어요. 작가로서 활발하게 활동하지 못하니까 대인기피증까지 생겼었죠. 그러던 어느 날 대학로를 지나는데 맞은편에서 또래 연출가가 다가오고 있는 거예요. '어떻게 지내?'라는 그 질문이 너무 무서워서 걷던 길에서 반대로 돌아가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 모습을 아내인 이시원 작가가 보고, 엄청나게 화를 냈어요. 무작정 작가의 꿈을 접으려하지 말고 제가 하고 싶은 연극을 직접 쓰고, 원하는 배우를 캐스팅하고, 연출, 제작까지 다 해보고 그것까지 망한다면 그만둬도 좋다고요."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최원종 작연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최원종 작연출
ⓒ 극단명작옥수수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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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포기할 수 없는 절실함은 그를 다시 연극의 세계로 끌어당겼다. 그러나 그간 축적해온 세계관을 쉽게 바꿀 수도, 대중의 사랑을 받는 코미디로 장르적 변화를 쉬이 꾀할 수도 없던 그는 자신이 인생의 멘토로 손꼽는 극작가이자 시나리오 작가로 유명한 이만희 선생을 찾았다.

"선생님께서 '인생은 먼지 같은 거야. 무슨 고민이 그리 많니?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삶의 고통을 이겨내는 데에는 코미디만 한 것이 없어. 그런 점에서 코미디는 위대한 거야. 너는 극단적으로 어두운 애니까 코미디 잘할 수 있을 거야. 극과 극은 통하는 법이거든'이라고 하셨는데 그 말씀이 제게는 큰 충격이었어요. 먼지 같은 인생을 왜 나는 진지하게만 살아왔을까 싶더라고요. 돌아보니까 제 어두운 작품 속에는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는 코미디가 있었던 것 같아요. 선생님께서 그걸 알고 계셨기에 제게 오히려 코미디를 더 잘 쓸 것 같다고 말씀해주신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그의 성공적인 변신의 서막을 알린 작품이 서울연극협회가 주관하는 2010 차세대 연극연출가 육성 프로그램 '요람을 흔들다'에 선정된 <에어로빅 보이즈>이다. 과격한 분장과 거친 연주를 일삼던 헤비메탈 밴드 멤버들이 에어로빅 센터 직원으로 변신하는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을 통해 그는 잃어버린 자신의 꿈을 다시 돌아보게 됐다.

"저처럼 어두운 계열에서 활동하는 비슷한 부류가 누구일까? 하는 질문에서 시작해서 헤비메탈 밴드를 떠올리게 됐어요. 테크닉적으로는 굉장히 뛰어나지만, 대중적이지는 않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꿈을 접는다면,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했죠. 그래서 밴드 멤버들이 음악의 꿈을 접고 에어로빅 체조대회에 나가는 도전기를 그려내게 되었어요. 그 과정이 마치 제게는 꿈을 포기하고, 새로운 꿈을 찾아나가는 과정처럼 느껴졌어요. 이 작품은 제 삶에서 먼저 출발한 이야기에요. 저는 절절하게 써내려갔는데 완성하고 보니 코믹드라마가 되었더라고요."
 
 <헤비메탈 걸스>로 많은 웃음의 미학을 전하다
 <헤비메탈 걸스>로 많은 웃음의 미학을 전하다
ⓒ 극단명작옥수수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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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함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던 그가 선보인 코믹드라마에 관객들은 열광했고, 직접 체감한 웃음의 힘은 그가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데 가장 큰 동력원이 되어주었다.

"이제까지 저는 아내밖에 웃길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관객들이 공연을 보며 폭발적으로 웃는 현장을 목격하는 순간, '이제 내가 관객들을 더 이상 힘들게 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하는 안도감을 느꼈어요. 웃음이 정말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닫게 되었죠. 경제적으로는 상당히 힘들지만, 그래도 제가 남들을 웃게 할 수 있다는 것에 더없이 큰 행복함을 느낍니다."

이후 역시 직접 쓰고 연출한 작품 <헤비메탈 걸스>가 2013·2014년 '공연예술 창작산실 지원사업' 우수작품으로 선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관객들에게 큰 사랑을 받으면서 웃음과 동시에 감동을 선사하는 작·연출가로서의 그의 진가를 다시 한 번 입증하게 되었다. 영화로도 제작 중인 이 작품은 앙코르 공연을 통해 관객과 다시 만날 계획을 갖고 있다.

*<연극연출가 최원종 인터뷰 ②>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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