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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규, <겨울밤 0시 5분>
/문학과지성사, 문학과지성 시인선 R 09 <겨울밤 0시 5분> 수록


인상이 낯선 여자 두 명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탔다. 대화를 들어보니 모녀 관계 같았다. 누구지, 휴대폰을 보던 고개를 들지 않고 손만 뻗어 내릴 층수 버튼을 눌렀다. 7층입니다. 엘리베이터 안내 음성이 울렸다. 그런데 엘리베이터가 출발했는데도 저들이 내릴 층수가 무엇인지 안내 음성이 들리지 않는 거다. 의아해서 고개를 들어보니 7층 이외에 버튼이 눌린 것이 없고, 그렇다면 저들도 나와 같이 7층에서 내리는 듯 했다.

정사각형 모양의 아파트에는 각 귀퉁이 한 세대씩 총 네 세대가 한 층에 사는데 나와 반대편에 살고 있는 사람인가, 혹은 최근에 이사 왔나 이렇게 생각하며 7층에서 다 같이 내렸다. 그들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나의 반대가 아닌 내 뒤를 쫓아오는데 바로 옆 집에 사는 이들이었다. 우리는 어깨를 나란히 한 채 각자 도어락에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1층에서 집으로 들어설 때까지 서로 한 마디도 말을 섞지 않았고 어두운 복도는 고요하기만 했다.

어릴 때의 기억이 났다. 거의 30년 전일까, 초등학교에 막 입학한 여덟, 아홉 살 무렵에도 아파트에 살았는데 한 층에 두 세대씩 서로 마주보는 구조였다. 전자식 도어락이 없어 은색 열쇠로 문을 열고 닫았던 시절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에 어머니가 외출할 때면 내가 열쇠를 가져가야 했는데, 하교 시간이 빨랐던 내가 먼저 돌아와 열쇠로 문을 열어 놓으면 한 두 시간 뒤에 세 학년 차이의 누나가 집으로 돌아오는 식이었다.

그러나 가끔 열쇠 챙기는 걸 잊고 학교에 가곤 했는데, 그럴 때면 문을 열 도리가 없어 집 앞 복도에 혼자 주저앉아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리던 적이 많았다. 이때의 기억이 났던 이유는, 적어도 그때는 내 옆집에 살던 이가 누구인지 모르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옆집에 살던 아줌마는 볼일이 있어 외출하다가 복도에 주저 앉아 있던 나를 발견할 때면, 잠시 당신의 집으로 들어와 거기서 기다리라고 말하곤 했다. 아줌마는 따뜻한 보리차 혹은 차가운 오렌지 주스를 내주었는데 한 번도 내게 엄마를 기다리냐고, 엄마는 언제 오시냐고 물어보지 않았다. 사정이 있어 가족을 기다리고 있겠거니…… 어쩌면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는 이웃집이 아닌 복도에서 어머니를 기다릴 때가 더 많았다. 그 복도가 생각난다. 창문 너머로 오후의 붉고 노란 햇살이 들어오고, 세 평 혹은 네 평 정도 될까 싶은 좁았던 복도가 생각난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왼쪽과 오른쪽으로 집이 있었고 맞은 편에 위층과 아래층으로 향하는 계단이 맞물려 있었다.

나는 차가운 계단 바닥에 앉아 엘리베이터를 바라보며 앉아 있었는데 지금이 몇 시인지도 모르고 무작정 기다리기 시작하는 거다. 1990년대 중반, 휴대폰이 없던 시절이었다. 지금 어디에요, 언제쯤 올 수 있나요 라고 물어보고 확인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열쇠가 없으면 집에 들어갈 수도 없던 시절이었다. 나는 엘리베이터 층수를 나타내는 전광판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1이라고 쓰여진 전광판은 좀처럼 숫자가 바뀌지 않았는데, 그건 엘리베이터를 타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걸 의미했다.

시끄러운 기계 소리가 나더니 숫자 1이 2로, 3으로, 4로 …… 내가 살았던 13층까지 숫자가 높아져갈 때면 나의 마음도 덩달아 고조되었다. 혹시 숫자가 13에 멈추어서 바로 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릴까, 그 안에 어머니가 있을까. 그러나 숫자가 힘을 내지 못하고 8, 혹은 11 이런 층수에 머물면 다시 주위는 고요해졌고 나는 지금까지의 기다림을 처음부터 반복하는 식이었다.

어머니가 언제 올지 알 수 없었다는 것이 비로소 기다림을 가능하게 했다. 기다림은 기다리는 대상이 언제 그리고 정말 현실이 될지 알 수 없을 때 가능해진다. 기다리는 대상을 비로소 만나더라도, 그 대상과 함께 하는 이후가 어떻게 전개될지 짐작할 수 없을 때 기다림의 감정은 진실해지고 절박해진다. 다시 말해 기다림은 불확실성과 함께 공존했다. 미래가 정해진 것, 미래가 어떻게 흘러가며 결정될지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기다릴 것도 없고 무언가를 절박하게 기다리는 사람도 존재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무언가를 간절하게 기다렸던 순간은 불확실성에 내몰린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지던 순간과 같았다.

2003년 겨울, 대학 합격자 발표가 홈페이지에 공지되었다고 했다. 인터넷에 접속해서 수험번호를 입력하고 확인 버튼을 눌렀는데, 그때는 인터넷 속도가 지금보다 훨씬 느려서 다음 화면으로 넘어갈 때까지 몇 초의 시간이 걸렸다. 나는 이 다음 화면에 등장할 어떤 문구가 등장할지, 합격일지 그렇지 않을지 여부를 몰랐고 때문에 몇 초의 시간이 몹시 길게 느껴졌다. 화면이 바뀌었다. 실눈을 뜨고 보니 대학에 합격했다고 했다. 스무 살을 경계로 다음 사회로 나아가는지 아니면 다시 수험생활의 도돌이표인지를 확인하기까지의 기다림, 그런 종류의 기다림은 결코 잊혀지지 않는다.

이런 기다림도 있었다. 이십 대 후반에 꾸준히 글을 써오던 것을 토대로 몇 군데 작은 출판사에 원고 투고한 적이 있는데 그 중 한군데에서 일단 한 번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첫 미팅에서 우리는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었고 원고를 몇 군데 보완한 뒤에 두 번째 미팅을 갖자고 했다. 며칠 만에 해야 할 것을 마친 뒤 두 번째 미팅을 가졌다.

회사 근처 어느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 퇴근하고 약속 시간인 일곱 시 이전에 미리 카페에 가 있었는데, 만나기로 한 출판사 사람을 기다리는 순간은 말할 수 없는 행복으로 가득했다. 첫 번째 미팅의 화기애애한 예감이 떠올랐고, 오늘 출판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내일이라도 책이 나올 것만 같았다.

일곱 시. 출판사 직원이 도착했다. 나는 신이 나서 원고를 이런 식으로 보완했다고 십여 분간 떠들었다. 내가 할 말을 모두 마치자 이윽고 그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아쉽게도 책이 잘 팔릴 것 같지 않다는 내부 의견이 있어 더 이상의 출간 논의를 그만두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다음에 인연이 닿으면 또 보자는 말과 함께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똑 같은 자리에 앉아 그가 오기 전보다 그가 떠난 후에 더 많은 시간을 기다렸다.

사실, 무엇을 기다려야 할지는 몰랐으면서도…… 말이다. 
 
여자가 들릴까 말까 그러나 단호하게
'이제 그만 죽어버릴 거야,' 한다.
가로등이 슬쩍 비춰주는 파리한 얼굴,
살기(殺氣) 묻어 있지 않아 적이 마음 놓인다.
나도 속으로 '오기만 와봐라!'를 몇 번 반복한다.

별 하나가 스르르 환해지며 묻는다.
'그대들은 뭘 기다리지? 안 올지 모르는 사람?
어둠이 없는 세상? 먼지 가라앉은 세상?
어둠 속에서 먼지 몸 얼렸다 녹이면서 빛 내뿜는
혜성의 삶도 살맛일 텐데.'
누가 헛기침을 했던가,
옆에 누가 없었다면 또박또박 힘주어 말할 뻔했다.
'무언가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사람 곁에서
어둠이나 빛에 대해선 말하지 않는다!'
별들이 스쿠버다이빙 수경(水鏡) 밖처럼 어른어른대다 멎었다.
이제 곧 막차가 올 것이다.

- 황동규 시인의 <겨울밤 0시 5분>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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