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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5일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서대문형무소 3.1운동 수감자 현황과 특징' 학술심포지엄이 열렸다. 이날 발표자와 토론자가 앉아 있다. 이날 심포지엄은 3.1혁명 참가 수형자 자료집 발간을 기념해 마련된 것이다.
 지난 25일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서대문형무소 3.1운동 수감자 현황과 특징" 학술심포지엄이 열렸다. 이날 발표자와 토론자가 앉아 있다. 이날 심포지엄은 3.1혁명 참가 수형자 자료집 발간을 기념해 마련된 것이다.
ⓒ 신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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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혁명 참가자 중 20대, 서울·경기 출신, 농민 비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현존하는 서대문형무소 수형기록카드(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전체 6264장 가운데 3.1혁명기(1919~1920) 수감자 1014명의 수형카드 분석을 통해 나온 결과다. 

서대문형무소는 일제강점기 한반도 최대 규모 감옥이다. 1919년 12월 기준, 수감자는 3075명으로 확인된다. 연구자에 따르면 일제는 수감시설 미비, 검사·판사 수 부족으로 3.1혁명 관련자 중 '주동자'만 기소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관장 박경목)은 오는 '3.1혁명 100주년'을 앞두고 지난 25일 '서대문형무소 3.1운동 수감자 현황과 특징' 학술심포지엄을 열어 3.1혁명기 수감자만을 별도로 분류, 자료집을 발간한 사실을 알렸다. 그간 일제가 생산·활용한 수형기록카드에 대한 연구는 많았으나, 3.1혁명기에 수감된 수용자군을 대상으로 ▲출신지 ▲신분 및 직업 ▲나이 ▲죄명 ▲형량 ▲수감자 관계망 등을 포괄적으로 연구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박경목 관장은 "1919년 이후론 일제가 (수형카드에) 양반과 상민을 구분하는 신분 기재를 안 했다"면서 "3.1혁명에 참가한 양반 비율이 약 15%로 집계됐는데, 이는 높은 비율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참가자의 직업에 대해선 "농업 겸 천도교 전도사, 농업 겸 기독교 전도사가 많다"며 "앞으로 이들의 판결문에 대한 연구도 진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현존하는 수형기록카드 앞면엔 수감자의 사진과 성명·출생연도·본적 및 출생지·주소·지문번호 등이 있다. 뒷면엔 죄명·형명과 형기·언도 재판소·형 시작일·출옥연월일·집행감옥 등의 수형기록이 있다. 이날 박 관장의 발표에 따르면, 참가자 중 20대가 39.3%(387명)로 가장 높았다. 30대가 22.7%(224명), 40대 15.1%(149명), 10대 12.8%(126명), 50대 7.3%(72명), 60대 2.7%(27명)로 뒤를 이었다.

나이를 확인할 수 있는 수감자 985명 가운데 최소연령은 불과 15세로, 총 7명이 확인됐다. 이들은 학생 5명, 여관조합 급사 1명, 무직 1명으로 확인됐다. 최고령자는 69세(1850년생) 차제남으로, 황해도 수안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해 체포·수감됐다. 

신분이 기록된 카드 총 766매 중 상민은 85.2%(653명), 양반은 14.8%(113명)로 나타났다. 3.1혁명 참가자의 직업은 70여 종으로 집계됐다. 농민·간호부·인쇄원·점원·고물상·사무원·잡화상·기독교 목사 및 전도사·천도교 도사·불교 승려·공장 노동자·마차꾼 등이다. 이 가운데 절반을 넘는 54.4%(424명)가 농업이고, 다음으로 학생 13.9%(108명), 종교인 6.6%(51명), 교사 5.9%(46명), 상인 5.2%(40명) 순으로 분석됐다. 

특기할 만한 것은 군수, 면장과 면사무소 직원, 구장(이장), 순사보 등의 참여다. 이들은 식민통치체제의 행정기관에 속해 일제에 협력한 이들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주도적으로 참여한 몇몇 사례가 확인된다. 이들 중 순사보 정호석은 덕수궁 대한문을 지키던 순사였다. 그는 왼손 약지를 깨물어 피로 그린 태극기를 들고 20여 명의 흥영학교 학생들을 이끌며 서울 마포 공덕동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했다. 

출신지 별로는 서울·경기가 36.9%(361명)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경북이 12.5%(122명), 강원 9.8%(96명), 황해도 9.7%(95명), 평남 6.5%(64명), 함북 5.1%(50명) 순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해 김진호 충남대 충청문화연구소 연구원은 "대체로 경북지역에서 가장 활발하게, 가장 오랫동안 계속해서 만세운동이 전개된 것이 확인된다. 서울·경기지역에 주소는 두고 있지만, 어느 지역에서 활동했는지 명확치 않은 분이 30명"이라며 "지방 중 경북이 122명이고, 모두 주소와 활동지가 경북으로 일치한다. 이는 상당히 이례적 결과"라고 설명했다. 

"북한 지역 7곳에서 3.1 만세운동... 학살 사건 등 주목해야"
 
 학술 심포지엄 포스터.
 학술 심포지엄 포스터.
ⓒ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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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대상자 중 보안법 위반이 92.6%(1011명)로 압도적으로 높으며, 1년 6개월~6개월이 언도됐다. 이외 소요·출판법 위반·강도·기물손괴·전신법 위반·업무방해·공무집행 방해·가택침입·건물손괴 등이 병기돼 있는 경우가 100여건 확인됐다. 

한편 분석대상 1014매 가운데 33매(6.5%)가 여성으로 확인된다. 이들 가운데 24명은 서울 배화여학교(배화여고 전신) 학생들로, 이는 기존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배화여학교는 다음해인 1920년 만세운동 1주년 때에도 만세 시위를 했다. 이밖에 서울 종묘·개성·천안·파주 등지에서 시위를 전개한 여성이 9명이다.

김진호 충남대 연구원은 "서양의 제국주의는 식민지 간접 지배를 취했다. 직접 지배한 것은 전 세계에서 일본뿐"이라며 "주재소·헌병제를 통해 말단까지 일본인 관리가 지배한 것은 우리밖에 없다. 대만도 총독만 일본인을 임명했다. 8년 6개월이라는 식민지 직접 통치를 경험한 뒤 3.1혁명이 일어났다. 무단통치가 직접적 원인"이라고 피력했다. 

김 연구원은 이어 "이러한 수형자들의 수감 전 활동을 보면 3.1혁명의 특징이 고스란히 나타난다"며 "만세만 부른 것이 아니라 일본상품 불매운동, 일본 화폐 찢어버리는 행위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는 "1919년 3월 1일 만세 시위가 일어난 전국 9곳 중 서울과 경기 고양을 제외한 7개 지역이 현재의 북한 지역"이라며 "헌병 분견소 안에 54명을 몰아넣고 사살한 평남 맹산 학살사건은 23명이 학살된 제암리 사건보다 더 많은 희생자를 냈다. 분단으로 인해 이런 것들이 주목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날 3.1혁명의 전체 참가자 수 및 사상자 수가 책마다 다른 것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혔다.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는 총 참가자 수를 200만이라고 밝혔으나, 이후 김병조가 쓴 <한국독립운동사략>엔 150만 명이라고 기록됐다. 최근 국사편찬위원회가 구축·공개한 데이터베이스엔 최대 103만, 최소 80만으로 나와 있다. 

박걸순 충북대 교수는 이에 대해 "상하이 임시정부가 <한일관계사료집> 편찬 당시 국내로 5명의 조사원을 들여보냈지만 모두 붙잡혀 돌아오지 못했다. 일본 자료조사도 다 압수당했다"면서 "이후에 박은식이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썼는데 전자와 통계 차이가 너무 크다. 김병조가 쓴 <한국독립운동사략> 하고도 또 다르다. 어떤 통계가 옳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박 교수는 또 "이번에 공개된 자료는 본적 주소가 북한으로 돼 있는 분이 적지 않다. 3.1혁명의 북한지역 지방법원 1심 재판자료가 없어서 구체적인 전개 양상을 알기 어려웠는데, 북한이 판결문 자료를 내놓고, 우리의 연구자료도 북한에 전달하면서 공동연구를 통해 화해협력의 마중물이 됐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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