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수원지방법원에서는 성남 FC 전 선수 이원규, 문창현이 구단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건 항소심이 열렸다. 성남 FC는 이원규, 문창현과 2015년 1월 1일부터 2017년 12월 31일까지 3년간 선수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2016년 시즌이 끝난 후 두 선수를 방출했고 연봉 지급도 중단했다. 이에 이원규, 문창현 선수는 구단이 자신들과의 계약을 무단으로 파기했다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날 법정에서 직접 항소심을 지켜봤다. 

"저희 판단으로 인해서 마음 아파하는 분이 없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사건번호 XX 항소인 이원규, 문창현씨 피고 피항소인 주식회사 성남시민프로축구단. 주문 제 1심 판결을 취소한다. 피고는 원고 이원규에게 2800만 원, 원고 문창현에게 3600만 원과 2017년 1월 1일부터 2017년 4월 17일까지는 약 5%.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15%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 소송 총 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예스!" 이원규 선수는 판사의 말이 끝나자마자 작지만 빠른 소리로 외쳤다. 2심 재판부는 "선수 계약에서 연봉 협상 기간(1년)과 별도로 계약 기간(3년)을 둔 취지는 적어도 위 계약 기간 동안 해당 선수 활동이 부진하더라도 구단의 일방적인 무단 방출 또는 부당한 차별을 금지하기 위함"이라며 "스포츠 계약은 선수가 신체적인 활동을 구단에 제공한다는 면에서 고용 계약과 유사하다. 또한 합숙·훈련 등 단체생활이 전제된다는 점에서 구단은 선수에 대한 신의칙상 보호 의무가 있다"고 설명했다.

구단을 상대로 한 선수들의 최초 소송이었고, 1심에서 패소했기 때문에 2심에서 뒤집어지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소송을 시작한 후 1년 7개월을 기다렸다는 이원규 선수는 의외의 결과에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성남구단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한 이원규 전 축구 선수. 1년 7개월 만에 희소식을 듣고난 후 법정 카페에서 찍은 사진.

성남구단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한 이원규 전 축구 선수. 1년 7개월 만에 희소식을 듣고난 후 법정 카페에서 찍은 사진. ⓒ 수피아

 
- 어떻게 소송까지 결심을 했나.
"잃을 게 없다고 생각했다. (합의금) 없어도 충분히 살 수 있다는 배짱으로 부딪혀보자 싶었다. 또 우리 같은 피해자가 또 생기지 않았으면 한다고 생각했다. 김훈기 형(축구선수협회 사무총장)과 얘기를 했고, 박지훈 변호사님 등 주변에서 도와주었다.

계약기간이 남았는데 부상을 당해서 활동이 불가능하다면 (재활 후) 다른 구단으로 보내든지 한다. 그런데 저와 창현이는 에이전트도 없고, 2군인 데다 신인을 벗어나지 못한 선수들이었기 때문에 구단이 남은 기간 동안 보상해주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 축구를 아예 그만두든지, 창현이처럼 군대를 가든지, 여태까지 축구만 했는데 다른길이 뭐가 있겠나."

'소송 결과를 누구에게 제일 먼저 알려주고 싶냐'는 질문에 이원규 선수는 망설이지 않고 '군대에 가 있는 문창현 선수'를 꼽았다. 친구이자 동료와 같이 소송까지 하게 된 사연이 무엇인지 좀 더 자세히 들어보았다.

"저희가 3년 계약 중 2년을 채우고 1년이 남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만두더라도 계약기간 만큼에 대한 보상은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럼 쉬면서 개인 운동하면서 다른 팀을 알아보든가, 아님 진짜 좀 빨리 준비해서 다른 팀을 알아보든가. 이 2가지 방법 밖에는 없었다. 우리도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구단 측에서는 '3개월치만 받고 나가라'고 했다."

계속된 구단의 말바꿈

"처음에 얘기한 것은 최저 연봉이라도 달라. 2천만 원이라도 주면 나가겠다고 했는데 '그럼 방법이 없다'는 식으로 계속 말했다. 그 사이에 그 담당 주무관은 해임됐고, 팀 스케줄을 관리하며 지내던 형이 그 역할을 맡게 됐는데 친했던 사람과 서로 적대하면서 협상을 하려고 하니 그것도 힘들었다. 지금은 그 형도 일을 그만두고 여행을 가 있는 상태다.

어쨌든 담당자가 바뀌고 나니 (구단은) '2천만 원 최저연봉까지 해줄테니까 받고 끝내자'고 하더라. 갑자기 바뀐 상황에 우리는 어이가 없었다. 처음부터 그렇게 협상했으면 우리도 받고 빨리 끝내고 다른팀을 알아보든지 뭔가 했을텐데 2개월이 지나고(담당자 바뀌고 소송까지 간 기간) 나서야 그렇게 얘길하니. 소송을 했던 4~5월은 이미 K리그는 시작됐던 시기다. 이미 시간은 갈대로 갔기에 원래 연봉대로 합의 안 되면 소송까지 하겠다고 결심했다."


이원규 선수는 2000만 원 합의금에 대해 자신보다 연봉이 더 높은 문창현 선수가 더 억울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단에는 '승리 수당'이 있어, 한 경기 이길 때마다 각 선수들에게(선수들마다 다르겠지만) 꽤 큰 금액이 지원된다고 한다. 그런데 왜 처음부터 최저 연봉으로도 지원해주지 않으려 했는지 의아해했다.

소송을 결심하고 나자 구단은 또 말을 바꿔 '구단으로 다시 복귀하라'고 통보했고, 두 선수는 순진하게도 승낙하려고 생각했다고 한다. 1년을 뛰다보면 어떻게든 다시 기회를 얻을 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었다는 것. 그러나 그들이 생각한 복귀와 구단이 말한 복귀는 달랐다.

"연봉은 2000만 원을 받지만 다른 선수들과 같이 물품 및 숙식 제공은 안되고, 전력외 선수로 훈련도 똑같이 못하고 운동만 시킨다는 거였다. 이런 얘기를 듣고 어떻게 들어가나. 1년간 잡혀서 아무것도 못하는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구단이 구단의무를 안 하는데 우리가 들어갈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부상을 당했지만 계약서에 명기된 것 만큼은 지켜줘야 한다는 최소한의 자기 보호를 위해 법정까지 갔던 이원규 선수. 그런 그에게 부상에 대해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정강이가 부러졌는데 타박이 아니라 피로 골절(스트레스성 골절)이다. 근육에 과부하가 오면 딱딱해지면서 뼈를 당기고, 균열이 일어나면서 부러진다. 뛰다가 갑자기 빡 부러지기도 하는 등 축구선수들 정강이나 발목 쪽에 많이 나타난다. 구단은 다친 선수에게 의무 지원을 해줄 방침이 있는데 K리그 연맹에 들어가 있는 조항이다.

그러나 한 구단에 닥터는 2~3명 정도가 있고, 선수 40명을 다 못 돌본다. 주로 메인 선수들을 챙기는데 저랑 똑같이 피로골절로 들어온 선수 형은 5개월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푹 쉬고, 2개월 재활 뒤 복귀했다."


잘못된 진단

"그러나 나에게는 '괜찮으면 계속 운동 해 봐라'는 처방을 내렸다. 알고보니 3개월 푹 쉬면 나을 진단이었는데 1년이나 지속된 것이다. 심경이 복잡했다. 푹 쉬라는 처방을 내려줘도 (눈치 보여서) 잘 못 쉴텐데 처방까지 그렇게 내리니까 잠시 치료받고 좀 괜찮아지면 다시 훈련하기를 반복했다.

2군 선수들은 감독 눈에 잘 보이지도 않고, 기회 잡기도 힘들다는 건 알고 있다. 그러나 남은 계약 기간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갑자기 '나가라' '3개월 월급만 받고 나가라'고 하니 안 그래도 부상 때문에 속상한데 너무 억울했다.

요즘은 운동하는 아이들도 공부와 병행한다고 하던데 우리 때는 운동만 했다. 그만두면 할 게 없다. 같이 고민을 많이 하다가 창현은 군대 갔고, 저는 이 소송을 지켜보려고 했다. 구단은 이런 선수들의 고민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성남 FC 측은 27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이번 항소심 결과에 대해 "특별히 입장을 낼 게 없다"며 "상고 여부 역시 결정된 게 없다"고 밝혔다.

2002년 월드컵 때 축구선수를 꿈꾼 이원규

1992년생 이원규는 4학년 때부터 축구를 시작했다. 방과 후 학교 앞에 있던 논술학원에 가야했던 어린 원규는 학원 대신 학교 운동장에 남아 친구들과 축구를 했다. 도통 출석을 하지 않는 원규를 찾은 논술학원 선생님은 엄마에게 축구를 권했다.

실행력이 빨랐던 어머니는 어린 원규의 손을 잡고 한강 둔치로 데려갔다. 그곳에는 굉장히 많은 아이들이 공을 차고 있었는데 바로 '차범근 축구교실'이었다. 이후 중고등학교에서 기숙생활을 하며 축구를 했다고 한다.

어릴 때 즐거웠던 축구는 시간이 지날수록 힘들게 느껴졌다. 해마다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이제와서 그만두고 뭐 할거냐'는 어른들의 말에 다시 또 설득되었다. 그러다 고3 시절 다시 흥미를 느꼈고, 인천대 4학년 때 성남구단 선수들과 경기를 뛰면서 감독의 눈에 들어 그해 학교에서는 혼자 K리그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에게는 첫 K리그였다.

이원규 선수에게 '앞으로 뭐 할거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그동안 너무 힘들게 훈련을 했기 때문에 어떤 일을 해도 크게 힘들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 하나는 얻었다"고 당차게 말했다. 그의 대답에 조금 안심이 되었다. 앞으로 축구장이 아닌 곳에 발을 내딛을지 모를 그에게 건투를 빌어본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이원규 문창현 축구선수협회 박지훈 성남구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 세계사가 나의 삶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일임을 깨닫고 몸으로 시대를 느끼고, 기억해보려 한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