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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혜경, <동사를 그리라고 하는 이웃집 아이>
/문학과지성사, 문학과지성 시인선 506 <나는 적극적으로 과거가 된다> 수록


얼마 전 꿈에서 깨어났을 때, 하루 종일 마음이 착잡했다. 며칠이 지난 지금 꿈의 내용이 조금씩 희미해져가고 있으나 대강의 상황은 이랬다.

꿈 속의 나는 현실보다는 조금 더 어린 나이로 돌아가 여러 사람과 함께 어울리고 있었는데 그냥 친교 자리는 아닌 듯했고 일종의 오디션을 보는 자리 같았다.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에게 과자 한 봉지가 주어졌는데, 앞에서 진행을 보는 이가 그것을 갖고 각자 음악을 만들라고 했다.

우리가 나누어 가진 과자는 모두 같은 종류였는데 쉽게 부스러졌고 평범한 과자였다. 과자로 음악을 만들어야 하는 테스트. 나는 당황해서 과자를 손에 쥐어 보았지만 과자의 바스라지는 감촉은 음악과는 전혀 다른 감각이었다.

시간은 조금씩 흘렀는데 주위를 돌아보니 각자 모두 훌륭하게 음악에 가까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듯했다. 나는 머리 속에 아무 것도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내 차례가 돌아왔다. 나는 종이컵에 과자 몇 개를 넣어, 종이컵을 흔들며 그 리듬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그 즈음에 잠에서 깨었다. 꿈 속에서 느꼈던 긴장과 적막은 현실에 돌아온 이후에도 하루 종일 잊혀지지 않았다.

개꿈이다, 라고 웃어 넘길 수도 있지만 그 꿈이 각별하게 기억되었던 건 오랜 시간동안 품었던 고민 때문이었다. 과자로 음악을 만들어야 하는 이 꿈은 창의에 대한 열등감을 느껴야 했던 무의식이 꿈으로 튀어나온 거라고 생각했다.

창의(創意). 국립국어원의 정의에 따르면 새로운 의견을 생각해 내는 것이라 했다. 세상에 많은 이가 창의적인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외치며, 창의라는 단어가 가정에서도 회사에서도 사회 곳곳에서 사용된다.

그런데 나는 단 한 번도 나 스스로를 창의적인 인간이라고, 창의력이 높은 존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기발한 아이디어, 엉뚱한 생각, 난관을 돌파하는 번뜩이는 아이디어,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논리적인 해결책, 그 어떤 수식어로 묘사해도 좋다.

내가 생각하는 창의란 다른 이들보다 앞서서,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무언가를 제시할 수 있는 걸 말했는데, 내가 생각하는 나는 앞서가기 보다는 뒤따라 갔고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존재했던 것들을 보기 좋게 다듬는 정도의 위인이었다. 그러니까 능동태(能動態)가 아닌 수동태(受動態)의 삶, 사동과 피동의 삶을 살아간다 믿었다.

어릴 때 수동태의 삶은 크게 문제될 것이 없었다. 입시 경쟁은 전국 수많은 수험생과의 경쟁이지만 본질적으로 나와의 사투였으니, 내가 앞서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야 하는 조급함을 느끼지 않아도 좋았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가고, 대학에서 패기 넘치는 친구들과 경쟁하며, 또 그들과 함께 조금씩 구직 경쟁의 장(場)으로 넘어갈 때 수동태의 삶은 조금씩 한계에 다다르기 시작했다.

2009년 여름이었나. 모두가 가고 싶어하는 S기업 인턴과정에 참가하게 되어 일주일간 수많은 학생들과 함께 연수를 받은 적이 있었다. 거대한 열정의 용광로였던 그곳은 비슷한 학력, 비슷한 전공만 끼리끼리 모여있진 않았다. 다양한 학력, 전공, 나이, 배경, 성별...

이들은 모두 앞을 향해 능동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했고 말했다. 나는 이들과 섞여 지냈던 일주일이 끝났을 때에야 비로소 숨을 제대로 쉴 수 있었다. 세상에 이처럼 새로운 아이디어와 영감으로 무장된 이들이 많았던가 싶었고 이들이 온 몸으로 경쟁적으로 발산하는 창의력의 기운에 나는 입을 여는 것이 쉽지 않았다. 숨이 가빠왔다. 그 여름은 질식, 이라는 단어로 기억되었다.

남의 생각을 뒤 따라가는 삶. 남의 생각에 얹혀 사는 삶. 그런 삶에 대한 부끄러움은 회사 생활을 할수록 더 강해졌다. 어느 날 점심시간 같은 팀 동료와 점심을 먹고 경복궁을 지나 청와대까지 산책을 다녀오는 길에, 나는 다른 이의 생각에 기생하는 것 같다고 고백했던 적이 있다. 내가 잘하는 건 남이 어느 정도 만들어 놓은 내용을 보기 좋게 편집해서 잘 다듬어진 보고서를 만드는 것이었는데 달리 말하면 혼자 독립적이고 능동적으로 살 수 없는 걸 의미했다.

기생(寄生) ...... 그건 본질적으로 나 혼자 살 수 없는 존재였다. 나는 나 혼자 보고서를 만들지 못했고, 다른 이가 있어야 보고서를 만들 수 있었다. 내 손에서 태어나는 디자인, 레이아웃, 교정, 시각적인 도형들은 탄생된다기 보다 조합되는 것에 가까웠다. 회사는 언제나 내게 이것을 좀 예쁘게 다듬어줘, 라고 말했다. 나는 보고서라는 표현 이전에 표현되는 대상 자체를 더 가치 있다고 여겼다. 나는 표현을 잘했고 표현을 가졌으나, 대상을 갖지 못했다. 그게 나를 부끄럽게 했다.

회사에서 직장 생활을 한 지 10년이 되었다. 여전히 여러 선배, 동료들로부터 비슷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 너는 보고서를 잘 만들어. 그러나 보고서를 만드는 것 이외에도 잘 해야 하는 것이 있어.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다른 이들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고, 토론을 하고, 논쟁을 하고, 참신하고 논리적인 생각을 계속 양산해 내는 것, 창의적 존재에 대한 기대와 요구가 계속 내게 부여된다.

안타깝게도 창의적 존재로의 변신은 회사에서 보낸 시간에 비례하지 않았다. 나이는 어린 후배이지만 어쩌면 저렇게 새로운 생각, 지식으로 무장한 존재가 있는지 깜짝 놀라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마음이 싱그러워지면서 동시에 무겁게 내려 앉는다. 저들은 스스로를 전진시켜 나갈 그 대상을 속에 품고 있구나. 저들이 표현을 가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최소한 표현할 수 있는 대상은 저 안에 품고 있구나. 동경, 질투, 선망, 어떤 하나의 단어로는 그들을 바라보는 감정을 담아내지 못했다. 탄식할 뿐이었다. 저들은 주체가 되어 행동하는 주동사(主動詞)였구나 …… ▨


느린 정원을 찾아오라고 해서 빨리 걷지는 않겠지만
주문하는 동사 앞에서 움직여 걷긴 걸어야겠지만
오직 하기에 힘써서 해야 하기에

동사를 그리라고 하는 이웃집 아이
나는 아직 모르는 걸 그려 볼 거예요 못해 본 걸 그려 보세요
나는 살면서 세 번 죽기로 할 텐데
시간이 갈수록 죽음도 가망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야 살아 있길 잘했니

하다 보면 힘을 얻어서
서고 걷고 뛰고 웃고
얘야, 그렇게 주동사(主動詞)가 될 수 있을까 나도-

- 황혜경 시인의 <동사動詞를 그리라고 하는 이웃집 아이>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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