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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서울 낙원악기상가 인근에서 어르신들이 장기를 두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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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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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자(66, 여성) 어르신이 농약이 든 박카스병을 책상 위에 올려놨다.

"이거 마시고 죽을 거야."

어르신은 복지관에 2019년도 노인일자리 사업 참여 신청서를 냈지만 떨어졌다. 복지관을 비롯한 노인 일자리 수행기관(대한노인회, 시니어클럽)에는 일자리 사업에 참여 못하게 된 노인들의 항의가 매년 되풀이된다.

일자리는 적고 신청자는 많으니 당연한 결과다. 이혜자 어르신도 복지관에 따졌지만 결정을 뒤집지 못했다. 절박한 마음으로 평소에 친분이 있는 나를 찾아와 일자리를 연결해 달라고 하소연했다.

이혜자 어르신은 30세에 혼자가 돼 아들을 키웠다. 노점에서 떡을 팔고, 화장실 청소를 하면서. 더 일하고 싶었지만 65세가 되니 청소일조차 못하게 됐다. 40세인 아들은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데, 어르신을 도울 형편은 아니란다. 그나마 65세가 돼 받는 기초연금 25만 원과 노인 일자리 수당 27만 원이 이혜자 어르신의 최소한의 생계를 이어주는 생명줄이다.

"노인 연령 상향한다고 하던데, 그래서 내가 떨어진 거 아니야?"

어르신은 자신이 노인 일자리 심사에서 떨어진 게 최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노인 연령 상향을 검토하겠다고 한 발언과 관계가 있다고 여겼다.

박능후 장관은 지난 1월 24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민간위원 전체 워크숍에서 "노인 연령 기준을 단계적으로 조정하는 방안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노인 연령을 현재 65세에서 70세로 올리면 2040년 기준 생산가능 인구는 424만 명(8.4%P) 증가하고 노인부양비(생산가능인구 100명당 65세 이상 고령자 비율)는 59.2명에서 38.9명으로 낮아진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합계출생률이 1명을 밑돌 만큼 저출생도 심화하고 있어 일하는 노인을 늘려 생산가능인구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라고도 덧붙였다.

박 장관의 말에 따르면 이혜자 어르신은 생산가능인구에 들어간다. 그런데 일자리가 없어서 농약을 마시겠다는 극단적인 생각을 한다. 노인 나이를 올려서 생산가능인구에 편입시킨다고 일자리가 저절로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대책 없이 반복되는 '노인연령 상향'

노인 연령 상향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2년 이명박 정부는 중장기 전략보고서를 통해 노인 연령을 70~75세로 올릴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2012년 말 대통령 선거 당시 정치권은 노인 표를 의식해 연령 상향을 현실화하지 못했다. 2015년 박근혜 정부 때, 공무원 연금 개혁으로 사회적 논란이 일자 대한노인회는 노인 연령을 상향하자고 제안했다. 대한노인회의 취지를 요약하면 이것이다.

'노인도 기초연금을 깎는 고통을 감수할 테니, 공무원들도 연금을 깎아라.'

정치적인 의도가 의심됐다. 이 의심은 당시 이심 대한노인회 회장이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비례대표에 신청하면서 뒷받침됐다. 그렇지만 총선을 앞둔 정치권은 65세에서 69세 사이 노인들의 반발을 가라앉힐 방법을 찾지 못했다. 논의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10월, 사회적 논란과 해결 과제들이 많아서 당분간 노인 연령 상향 공론화를 하지 않겠다고 했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4개월 만에 태도를 바꿨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2018년 11월 통계청은 '소득 상위 20%는 소득이 늘고 하위 20%는 소득이 줄었다'고 발표했다. 특히 1분위 근로소득은 2017년에 비해 22.6%가 줄어들어 감소 폭만 놓고 보면 2003년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다. 양극화는 더욱 더 심해졌고, 소득주도 성장에 빨간불이 켜졌다. 이혜자 어르신은 이렇게 말했다.

"복지 혜택이 줄어드는 것에 대한 대안은 발표하지 않고 노인 기준 올리면 도깨비 방망이처럼 모든 게 다 해결될 줄 아나 봐. 이건 아니지 않아?"

생물학적 측면과 사회·경제적 측면을 함께 고려해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사진은 지난 1일 오전 서울 중구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2019년도 제2차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모습.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사진은 지난 1일 오전 서울 중구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2019년도 제2차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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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세 노인 기준'은 UN에서는 1956년에, 우리나라에서는 1981년에 노인복지법이 제정되면서 생겼다. 1981년 기대수명은 66세였지만 2016년은 82세다. 그러니 38년 전 생물학적 노인 기준을 바꿔야 한다는 게 노인 연령 상한에 찬성하는 이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생물학적으로는 예전보다 오래 살게 됐지만, 경제적·사회적 측면에서 노인의 삶은 더 일찍 시작된다. 고독사에 대한 국가적 통계는 없지만 최근 부산시 통계에 의하면 고독사한 68명 중 50∼64세 사이의 장년층이 34명(65%)으로 가장 많았다.

정년이 60세라지만, 이 정년을 지키는 곳은 공공기관뿐이다. 대부분 민간기업에서는 48세~53세 사이에 직장에서 나오게 된다. 명예퇴직을 권고받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업무감사를 통해 직장을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진다.

직장에서 나와 12년을 버티면 받을 수 있던 복지 혜택이 17년 뒤로 밀린다면 고독사는 더 늘어날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오래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경제적·사회적으로 50대부터 고령자로 취급받고, 고독사 위험에 노출되는 게 현실이다.

재정적인 부담

리얼미터가 CBS의 의뢰로 1월 25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노인 연령 상향에 찬성하는 이는 55.9%, 반대는 41%였다(전국 성인 504명 대상,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4.4%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리얼미터나 중앙선서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하지만 여론조사는 질문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만약 '기초연금 수급 연령을 5년 후로 미루는 데 찬성하십니까?'라고 물었다면 정반대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리얼미터는 "노인 연령 기준 상향 찬성 여론은 평균 수명 증가에 따라 노인 복지비용 증가로 젊은 층의 부담이 늘어나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으로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그런데, 정말 복지비용이 부담되는 걸까.

유럽 선진국은 국민 소득이 1만 달러일 때 10~15%, 2만 달러일 때 30~35%를 복지재정으로 지출해 왔다. 우리나라는 국민소득 1만 달러일 때 7.4%, 2만 달러일 때 8.4%, 3만 달러일 때 10%를 복지 재정으로 사용한다. OECD 평균복지 복지지출은 21%다. '자린고비' 복지 지출로 인해 노인 빈곤율은 49.6%다. OECD 평균 12%의 3배가 넘는다.

노인 연령 상향의 전제조건

우리나라보다 고령화를 먼저 겪은 일본, 미국, 독일도 노인 기준은 65세다. 다만, 일본이 65세를 70세로 올릴 것을 계획하고 있다.

이 추진 계획에도 선행조치가 있다. 일본은 2004년에 정년연장 법적 의무화를 실시했다. 2013년에는 정년이 63세, 14년에는 정년이 65세로 연장됐다. 미국은 1986년에 정년제가 폐지됐다. 독일도 연령에 따른 노동 제한제를 철폐했다.

이들 나라는 국민연금을 중심으로 수급개시 연령을 단계적으로 상향 조정했다. 그에 상응하는 조치로 노인들이 노동시장에서 오래 머무르게 정년 폐지, 일자리 확대, 파트타임 노동자 권리 보호를 활용한다. 노인 연령 조정을 통해 부족한 재원을 확보하고자 하는 한국과는 방향이 다르다.

재정 절약 아닌 사회 연령 통합적 관점이 필요

젊어도 건강이 안 좋아서 의료보장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 취업을 못 해서 생계가 곤란한 청년도 있다. 노인이지만 청년 못지 않게 건강과 능력이 뛰어난 사람도 있다. 이혜자 어르신은 자신의 취업 체험을 이렇게 말한다.

"면접에 합격해서 주민등록등본을 가지고 가면 합격 취소. 이렇게 나이 많은 줄 몰랐다고, 정년도 한참 지났잖아요, 이렇게 말해."

특정 연령대의 사람들에게 기대하는 연령 규범이나 연령 차별주의가 먼저 사라져야 이혜자 어르신 같은 이들이 취업에 성공할 수 있다. 사회보장 정책을 결정하는 기준은 생물학적 연령이 아니라 '욕구'에 기초해야 한다.

모든 게 노인들 탓?
 
노년유니온의 한 조합원.
 노년유니온의 한 조합원.
ⓒ 고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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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통계청이 1월 고용동향을 발표했다. '실업자 122만 명, 9년 만에 실업률 최악'이라고. 이를 두고 정부 관계자는 이렇게 분석했다.

"노인 일자리 사업 1월 시행으로 구직 활동을 하는 노인이 13만5000명이 늘어난 결과다."

노인 일자리 사업은 일부 사업을 제외하고, 대부분 사업이 3월에 시작한다. 올해는 경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예산의 조기 집행으로 대부분 사업이 1월부터 출발한다. 이혜자 어르신은 통계청 발표와 정부 관계자의 분석 내용을 들으면서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난, 노인 일자리 사업 신청 전에도 실업자였어. 구직활동으로 나타난 새로운 실업자가 아니야. 노인 때문에 실업자가 늘고, 기초연금 때문에 복지비용 많이 들어 국가가 힘들고, 지하철 무임승차 탓에 적자가 난다 그러고... 그래서 노인 연령 상향한다고? 이건 아니지 않아?"

이혜자 어르신을 보고 어떤 이는 젊다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나이가 많아서 일 할 수 없다고 한다. 노인 기준이 올라가면 65~69세 어르신들이 낀 세대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 자식에게 부양 받기 어렵고, 스스로 삶을 꾸려가기엔 힘이 부치고, 사회의 부양을 받기엔 복지가 허술하다.

이혜자 어르신은 "노인 연령 상향은 자신에게 죽으라는 말과 같다"라며 "노인 일자리 생기면 꼭 연락 달라"라고 부탁하면서 집으로 갔다.

농약이 든 박카스병은 아직 내 책상 위에 놓여 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고현종씨는 노년유니온 사무처장입니다.


태그:#노인연령상향, #연령차별, #노인빈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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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세대에게 존경받는 노인이 되는게 꿈. 꿈을 실천하기 위해 노인들과 다양한 실험을 진행중인 남자. 세대간 연대를 위해 청년세대의 주거 안정, 생활지원을 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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