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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와 정용기 정책위의장이 지난 1월 28일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회의에서 귓속말을 하고 있다. (자료사진)
▲ 귓속말하는 나경원-정용기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와 정용기 정책위의장이 지난 1월 28일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회의에서 귓속말을 하고 있다. (자료사진)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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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의 5.18 망언 파문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고 있다. 자유한국당 지도부의 안일한 대응도 문제지만, '5.18 망언' 당사자인 김진태, 김순례, 이종명 의원에 대한 자유한국당 윤리위원회의 미흡한 조처 역시 비난을 사고 있기 때문이다.

김진태, 김순례 의원은 당규를 빌미로 징계 유예 처분을 받은 데다 이종명 의원에 대한 제명 조치 역시 한국당 의원총회에서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효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야 4당은 즉시 "꼬리자르기", "민주주의 부정", "시간벌기용의 망발", "물타기 쇼"라며 강하게 성토하고 나섰다.

그러자 정용기 자유한국당 정책위의장은 15일 원내대책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자기들(여야 4당) 마음대로 (징계가) 처리되지 않았다고 해서 저희를 공격하는 것은 법치주의 하지 말고 당헌, 당규 다 무시하고 헌법, 법률 무시하고 하자"라는 것이라며 "이게 인민민주주의입니까. 이런 것은 말이 안 되는 얘기라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이 발언의 맥락을 보면, 정용기 한국당 정책위의장은 자당 윤리위원회 결정의 독립성과 정당성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인민민주주의"라는, 다소 생경한 개념을 거론한다는 점이다. 

한국당의 조치가 미흡하다고 지적하는 여야 4당을 "인민민주주의"라는 프레임을 동원해 반박하려 한 듯하다. 정용기 정책위의장이 내뱉은 발언의 맥락에서, 누군가는 인민민주주의를 인민재판과 연결시켜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인민민주주의가 법치주의와 상반되는 개념으로, 법을 초월한 정치가 이루어지는 체제인가?

인민민주주의는 '무법천지' 체제가 아니다

우선 정 위원장의 발언은 '인민민주주의'의 역사적, 학술적 개념과는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세계사적으로 인민민주주의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한 시기는 2차 세계대전 이후였다. '연합성 민주주의', '신민주주의'라고도 불린 이 개념은, 당시 전세계 각국 좌익의 여러 노선 중 하나였는데, 비사회주의 정치세력과의 '통일전선' 형성과 '혼합경제' 체제를 그 특징으로 한다. 즉, 인민민주주의 그 자체는 결코 법을 초월하는 식의 '무법천지 체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좌익 내부의 여러 이론 중 다양한 정치세력과 경제 주체 간의 공생, 또는 유산계급과 무산계급의 연합을 적극 지향하고자 했던 인사들의 논리가 인민민주주의론이었다. 실제 해방 직후 우리나라 좌익 내부에서 좌우합작을 지향한 인사들이 제기한 논리가 바로 이것이기도 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저명한 맑스-레닌주의 학자로 당시 조선신민당을 이끌었던 백남운이었고, 그가 쓴 <조선민족의 진로>는 이를 이론화한 저작이었다.

일반적으로 사회주의 이론은 국제주의 노선을 지향하고, 민족주의는 보수주의의 노선으로 이해되지만, 이제 막 제국주의에서 해방된 탈식민 주변부 국가(뒷날의 제3세계)에서는 민족해방론 또는 민족국가 건설 논리와 같은 민족주의가 혁명성을 지닐 수 있었다. 인민민주주의는 바로 이러한 현실에 주목했다. 탈식민 주변부 국가의 현실에 비추어볼 때 국제주의나 계급논리가 무조건적인 교조성을 지니며 적용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인민민주주의에서 '인민'이라는 용어 역시 이를 보여준다. 여기서 인민은 특정한 계급을 지칭하는 용어가 아니다. 단지 다양한 계층의 대중 일반을 지칭하는 용어일 뿐이다. 여기에도 인민민주주의의 특징이 반영되어 있는 셈이다.

정용기 정책위의장의 발언에서 드러나듯, 한국사회는 단지 북에서 자주 사용한다는 이유만으로 '인민'이라는 용어를 이념적 편견을 가지고 바라본다. 이 역시 잘못된 인식일 뿐이다. 단적으로 1919년 4월에 공표된 임시정부 최초의 헌법이라 볼 수 있는 '대한민국 임시헌장'에는 "대한민국 인민"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예컨대 대한민국 임시헌장 제3조는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 귀천 및 빈부의 계급이 없고 일체 평등임"이라고 되어 있다.

오히려 "국민"이라는 용어야말로 "국민학교", "국민저축조성운동" 등에서 보이듯 1930년대 전시 총력전체제를 추구한 일제 당국에 의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정부수립 전후 제헌헌법을 기초한 유진오 선생이 "인민이라는 좋은 용어를 북에 빼앗겨서 (제헌헌법에) 국민이라 썼다"라고 했다는 말도 전해진다(정근식 이명천 엮음, <식민지 유산, 국가 형성, 한국민주주의>2, 476~477쪽 참조).

또 우리는 흔히 "국민"이라는 용어의 의미를 자명하게 생각하기 쉽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예컨대 중국에선 '인민'과 '국민'을 구별해 사용한다고 한다. 즉, 중국에서 국민은 '단순히 중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이라면, '인민'은 국가권력에 대한 주권자를 의미한다는 것이다(윗 책, 478쪽 참조). 이처럼 '국민'과 '인민'은 각국의 상황에 따라 유동적일 수 있는, 단위집단에 대한 호명일 뿐, 이념적으로 재단할 수 있는 개념은 아니다.

이상에서 드러나듯 정용기 한국당 정책위의장의 발언은, 반지성주의 또는 무지의 소치라고 보여진다. 한국사회 특유의 "인민"이라는 용어에 대한 이념적 편견, 또는 "인민민주주의"라는 용어가 대중에게 줄 수 있는 인상에 기대어 자신들의 정치적 곤란을 면피해보려는 태도처럼 보이기도 한다. 5.18 광주항쟁이 북한군의 폭동 혹은 개입으로 시작됐다는 망언 역시 이러한 반지성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보수는 '반지성주의'를 먹고 자란다?

기실 한국 보수세력 내부에서 이런 식의 반지성주의는 이미 그 이전에도 있었다. 인민민주주의와 관련된 사례 하나를 들어보자. 지난 2016년 <주간조선>은 '좌파는 왜 친일프레임에 목을 매나'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유광호 연구교수의 발언을 인용한다.

유 교수는 "북한의 대남 혁명전략인 '남조선 혁명전략'은 소위 '민족'을 앞세워 미국을 한반도에서 축출, '인민민주주의 체제' 수립에 목표를 둔다. 그 주요작업이 '친일인명사전' 배포와 같은 과거사 파헤치기"라고 말한다. 이어 "이승만·박정희 등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통치자들을 증오하고 4·3제주사건, 보도연맹, 통혁당사건, 인혁당사건, 1980년대 반미투쟁사건, 동의대사건 등이 새롭게 조명되고 신원되지 않으면 안 됐다"는 말이 이어진다.

이러한 발언을 통해 친일파 청산을 주장하는 이들이 북의 인민민주주의에 동조하거나 북의 사주를 받은 것처럼 몰아붙인 것이다.

물론 이는 사실이 아니다. 친일파 청산 주장과 인민민주주의가 대체 무슨 관계에 있다는 말인가. 아마 인민민주주의에 내포된 민족주의적 성격을 이런 식으로 갖다 붙였다고 보여지지만, 인민민주주의 그 자체가 민족주의도 아닐 뿐더러 사실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 역시 적어도 공식 담론에서 때때로 그러한 민족주의를 활용했기 때문이다. 이승만 정권 초기의 '일민주의'나 박정희 정권이 주창한 '한국적 민족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 점에서 민족 담론을 내세워 친일파 청산을 주장한다는 것만으로 '북한의 주장', 더 나아가 '인민민주주의에 동조한다'고 몰아붙이는 건 그야말로 반지성주의라고 생각한다. 만일 그런 논리대로라면 이승만 정권도, 박정희 정권도 모두 인민민주주의를 추구했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승만, 박정희가 과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이는 이승만이 왜 쫓겨났으며, 박정희 유신체제가 어떤 성격을 지녔는지에 대해 기초적인 지식만 있으면 충분히 알 수 있는 문제다.

그런 점에서 지금 자유한국당과 한국의 보수세력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계급'이나 '민족'에 기초한 당파적 이해도 아니요, 노선으로서의 이념도 아닌 단순한 '반지성주의'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반지성주의는 개념을 정확하기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부족한 결과다. 

해방 공간에서 연합성 민주주의(=인민민주주의)를 제창했던 백남운이 <조선민족의 진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7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시사점을 주는 이야기다.
 
남선(남조선, 당시에는 흔히 이렇게 썼다) 정계의 지금까지의 걸어온 발자취를 통관하건대, 대체로 신경적 모략전이나 전단전(傳單戰)으로 일관하였을 뿐이고, 인민 앞에서 정강정견으로써 당당한 정전(政戰, 정치 논쟁)을 해온 일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비록 백남운은 당시 조선공산당과 그 지도자인 박헌영을 겨냥해 이렇게 말한 것이었지만, 오늘날 우리의 현실을 놓고 본다면 지금의 자유한국당, 더 나아가 한국 보수세력에게 적용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정치의 수준을 타락시키는 반지성주의는 퇴치의 대상일 뿐이다. 이제 우리 시민들은 수준 높은 정치를 보고 싶고, 또 그러한 정치를 누릴 자격 역시 충분하다. 냉전 반공 담론에 기초한 반지성주의는 우리 시민들을 우민시(愚民視)하는 오만한 행태일 뿐이다.

태그:#정용기 자유한국당 정책위의장, #인민민주주의, #반지성주의, #백남운, #민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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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공부하고 있는 시민. 사실에 충실하되, 반역적인 글쓰기. 불여세합(不與世合)을 두려워하지 않기. 부단히 읽고 쓰고 생각하기. 내 삶 속에 있는 우리 시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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