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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내 것이었던> 표지
 <원래 내 것이었던>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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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변화에 따라 예술이 다루는 영역도 달라진다. 냉전 시대에는 거대 담론과 이데올로기가 주 소재였다면 현대에는 세분화된 개인의 감정과 정서를 담은 작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런 시대의 흐름은 장르 소설에서도 변화를 가져왔다. 전형적인 인물상에서 탈피, 내면의 심리를 정교하게 다루면서 인물을 통해 벌어지는 사건의 흐름을 조명한다. 인간 내면의 뒤틀린 욕망과 사회성의 결여, 결핍된 지점들을 담아내면서 더 폭 넓은 공감과 이해를 이끌어내는 게 최근 장르 소설의 흐름이다. <원래 내 것이었던>은 이런 흐름을 따름과 동시에 1인칭 주인공 시점이 지니는 2가지 트릭을 선보이며 독자들에게 몰입감을 선사한다.

엠버는 인기 라디오 방송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다. 그녀는 베스트셀러 작가인 남편 폴과 절친한 친구 조, 예쁘장한 외모의 여동생 클레어 부부 등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라디오 방송의 진행자인 메들린과의 불편한 관계 때문에 둘 중 하나는 프로그램에서 나가야 되는 문제가 닥쳐온다. 청취자들의 사랑을 받는 건 물론 프로그램의 기둥인 메들린이 나갈 리는 만무한 일. 엠버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큰 고민에 빠지게 된다.

새해를 앞둔 12월 말, 엠버는 병원에서 눈을 뜬다. 그녀는 차 밖으로 튀어나오는 교통사고를 당했고 그 사고로 코마 상태에 빠진다. 코마 상태에서도 정신은 살아있는 엠버는 사고가 난 당일을 정확히 기억해내지 못한다. 그녀의 병실을 찾아오는 폴과 클레어, 그리고 전 남자친구 에드워드 사이에서 엠버는 무서운 진실을 서서히 기억해낸다.

이 작품은 시간을 기준으로 세 개의 파트가 섞여 진행된다. 첫 번째는 크리스마스 시즌이다. 해고를 걱정하는 엠버와 그의 가족 관계, 그리고 갑작스러운 에드워드와의 만남을 중점으로 서술된다. 동시에 엠버가 왜 병실에 누워있는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파트이다.

두 번째는 연말이다. 병실에 코마 상태로 누워있는 엠버는 폴과 클레어, 그리고 에드워드의 말을 통해 파편적으로 진실을 추리한다. 동시에 오래 전 돌아가신 부모님과 분홍 옷을 입은 꼬마 등 유령의 존재와 직면하기도 한다. 움직일 수 없는 엠버에게 가해지는 위협과 사건에 대한 진실 은폐 시도는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세 번째는 약 20년 전이다. 앞서 두 파트가 엠버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반면 이 파트는 정확히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여자아이가 일기장에게 일기를 쓰는 내용으로 진행된다.

이 일기 파트가 중요한 이유는 모든 사건의 원인이 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장르 소설에서 과거는 사건을 결과로 두고 그 결과가 생긴 원인 또는 동기를 밝혀준다. 작가는 일기 파트에서 이 일기를 누가 적었는지 정확히 밝히지 않으면서 독자의 호기심을 유발한다. 동시에 인물이 어떤 환경에서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며 결말과 관련된 섬세한 심리의 기틀을 마련한다.

<원래 내 것이었던>은 이런 흥미로운 전개에 1인칭 주인공 시점이 지니는 두 가지 트릭을 활용해 미스터리에 정점을 찍는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은 주인공의 시점에서 사건을 전개하기에 인물과 강하게 동화된다. 인물의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물의 시점에서 사건을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독자들은 두 가지를 착각하고 이는 작품의 트릭으로 작동된다.

첫 번째는 주인공은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이다. 주인공이 보는 그대로를 말할 것이라 독자들은 생각하고 그리 믿는다. 설마 자신이 보는 걸 혹은 자신이 느끼는 걸 거짓으로 말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원래 내 것이었던>은 표지에 'SOMETIMES I LIE(나는 가끔 거짓말을 한다.)'라는 문구를 넣어 이와 관련된 힌트를 주지만 주인공의 캐릭터에 동화된 독자들은 상황과 사건에 집중하게 된다.

두 번째는 주인공이 착할 것이라는 착각이다. 작가가 주인공으로 삼은 인물이 꼭 착할 것이라는 확신을 독자들은 품고 있다. 특히 위험한 상황에 몰린 주인공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선한 사람은 매번 악한 사람에 의해 위협을 받는다는 고정관념 때문이다.

이런 두 가지 착각은 작품이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펼치는 반전에 힘을 더한다. 엠버의 시점에서 바라보았던 모든 것들이 흔들리고 무너지면서 큰 충격을 전달한다. 작가 앨리스 피니는 이런 충격을 가하기 위해 인물들의 심리 층위를 꼼꼼하게 쌓는다. 자신이 만든 캐릭터들의 독특한 심리를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시간 순서에 따라 파트를 나눠 전개하고 시점을 통한 트릭을 사용한다.

<원래 내 것이었던>은 <나를 찾아줘>, <부탁 하나만 들어줘> 같은 작품들처럼 인물의 심리에 많은 공을 들이면서 이 심리를 바탕으로 한 충격을 선사한다. 어쩌면 조만간 극장에서 만나보게 될지도 모를 이 작품은 시점을 통한 트릭과 섬세한 심리, 꿈과 환상을 넘나드는 이야기의 조화가 인상적인 소설이라 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준모 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 키노라이츠, 루나글로벌스타에도 실립니다.


원래 내 것이었던

앨리스 피니 지음, 권도희 옮김, 알에이치코리아(RHK)(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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