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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매체에서 '는'으로 써야 할 표현을 '늘은'의 형식으로 썼다. 요즘 기사들엔 이런 문제가 꽤 있다.
 어떤 매체에서 "는"으로 써야 할 표현을 "늘은"의 형식으로 썼다. 요즘 기사들엔 이런 문제가 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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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어느 매체에서 기사 제목을 "하루 더 늘은 2차 북미정상회담…"이라 쓴 걸 보았다. 김정은· 트럼프 간 2차 북미정상회담 일정이 하루 더 '는' 것을 그렇게 표기한 것이다. 이 동사의 기본형은 '늘다'니 그 관형사형은 '늘 + ㄴ→ 는'으로 써야 한다. 

'늘은'이 아니라 '는'이다

'늘다'뿐 아니라, 어간의 끝소리가 'ㄹ'로 끝나는 모든(!) 동사·형용사는 같은 형식으로 써야 맞다. 이런 용언은 'ㄴ'으로 시작하는 어미(-ㄴ/-은/-는) 앞에서 반드시 'ㄹ'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예외는 없다. 그래서 이러한 활용을 '규칙활용'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위와 같은 실수를 한다.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ㄹ'이 떨어진 형태로 적으면 시각적으로 본래의 뜻과 멀어진 듯한 느낌을 받는지 모른다. '날다'의 현재 관형형은 '나는'이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날으는'으로 쓰는 것은 그래서가 아닐까. 

전 GS칼텍스 감독 조혜정이 1970년대 배구 국가대표 공격수로 날릴 때 그의 별명은 '날으는 작은 새'였다. '하늘은 날으는 피터팬'처럼 대중공연 제목 등에서 이런 표현을 대수롭지 않게 쓰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시인들이 은근히 어법에 어긋난 표현을 써서 새로운 느낌을 의도하는, 이른바 '시적 허용'에 해당하는 비슷한 표현이 눈에 익은 탓도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이유로 '불은'(국수), '눌은'(밥)처럼 활용되는 용례에도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일단 이런 표현들은 형태상 'ㄹ' 뒤에 관형사형 어미 '-은'이 떨어지지 않고 붙어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언뜻 이 낱말의 기본형이 '불다'·'눌다'라고 오해할 수 있다는 말이다. [관련 글 : '퉁퉁 불은 국수'와 '몸달은 KBS']

이와 관련된 '5지 선다형' 문제를 한번 풀어보자.
 
다음 밑줄 친 용언의 활용 중 어법에 맞게 쓴 것은?
  ① 퉁퉁 불은 국수
  ② 몸 달은 KBS
  ③ 하루 더 늘은 회담 
  ④ 울은 옷깃
  ⑤ 회사서 알은 사람

보기 ①~③은 실제 매체에서 보도한 표현이고, 나머지는 있을 수 있는 표현이라 싶어 만든 예다. 보기는 모두 어간의 끝소리가 'ㄹ'이라는 점이 같다. 어간에 붙은 어미 '-은'은 뒤의 명사를 꾸며주는 관형사형 어미다. 

우선 각 낱말의 기본형을 파악해 보자. ① 불다, ② 달다, ③ 늘다, ④ 울다, ⑤ 알다. 네 개(②~⑤)는 더 볼 게 없이 모두 'ㄹ'이 끝소리인 용언(동사·형용사)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이들 낱말에는 모두 'ㄹ'이 떨어지는 규칙이 있다. 바로잡으면 다음과 같다.
 
  ② 몸 KBS
  ③ 회담
  ④ 옷깃
  ⑤ 회사서 사람

그런데 ① 은 어쩐지 긴가민가 싶다. '불다'? 뭔가 찜찜하다. '국수가 불었다'니 이는 '물에 젖어서 부피가 커지다'는 뜻인데 기본형을 '불다'로 볼 수 있을지 의심스러워지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 말의 기본형은 '불다'가 아닌 '붇다'다.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위쪽은 활용할 때 어간이 바뀌지 않는 규칙활용이고, 아래쪽은 'ㄷ'이 'ㄹ'로 바뀌는 불규칙활용이다. 그중에서도 '붇다'나 '눋다', '겯다' 같은 말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일상에서 기본형으로 쓰이는 일이 드물어서다.
 
'눋다'는 'ㄷ불규칙용언'이다. '눌어, 눌으니, 눋는'과 같이 활용한다.
 "눋다"는 "ㄷ불규칙용언"이다. "눌어, 눌으니, 눋는"과 같이 활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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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눋다'는 "누런빛이 나도록 조금 타다."의 뜻인데 '밥이 눋는 냄새', '밥이 눌어 누룽지가 되었다.' '눌은 보리밥', '방바닥이 눌었다.' 등으로 쓰인다. '눌은'은 과거형, '눋는'이 현재형, 미래형은 '눌을'로 쓰인다.
 
'붇다'도 마찬가지다. '불어, 불으니, 붇는'과 같이 활용한다.
 "붇다"도 마찬가지다. "불어, 불으니, 붇는"과 같이 활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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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붇다'는 "① 물에 젖어서 부피가 커지다. ② 분량이나 수효가 많아지다. ③ 살이 찌다."는 뜻인데 '콩이 붇다', '오래되어 불은 국수', '젖이 불었다', '재산이 붇는 재미' 등의 형식으로 쓰인다. 그런데 '붇는'보다 '불어'의 형식으로 쓰이는 일이 많아서 '붇다'가 낯선 것이다. 

'겯다01'은 "① 기름 따위가 흠씬 배다, ② 일이나 기술 따위가 익어서 몸에 배다."의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때에 겯고 기름에 결은 작업복', '손에 결은 익숙한 솜씨' 등과 같이 쓰이는데, 실제로 우리 일상에서 잘 쓰이지 않는 말이다. 

'겯다02'는 "①대, 갈대, 싸리 따위로 씨와 날이 서로 어긋매끼게 엮어 짜다. ② 풀어지거나 자빠지지 않도록 서로 어긋매끼게 끼거나 걸치다. ③ 실꾸리를 만들기 위해서 실을 어긋맞게 감다."의 뜻으로 쓰인다. '바구니를 겯다', '어깨를 겯다', '실을 겯다' 등으로 쓰이는데, 집회·시위에서 '어깨를 겯다'는 표현이 더러 쓰이기도 한다. 
 
'겯다'는 그 기본형이 일상에서 잘 쓰이지 않아서 낯설다.
 "겯다"는 그 기본형이 일상에서 잘 쓰이지 않아서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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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 '붇다' 등도 '싣다'·'묻다'와 같은 형식으로 쓰인다

우리에게 그 기본형이 다소 낯설긴 하지만 이들 낱말도 'ㄷ불규칙용언'으로 쓰임새가 같다. 그림 '시제별 관형형 활용'에서 보는 것처럼 '묻다'나 '싣다'와 다르지 않은 형식으로 활용되는 낱말인 것이다. 생각나는 대로 적어봐도 'ㄷ불규칙용언'은 꽤 된다. 
걷다, 겯다, 긷다, 깨닫다, 눋다, 듣다, 묻다, 붇다, 싣다……. 
 
시제에 따른 관형형 활용은 '묻다'나 '싣다'와 같은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시제에 따른 관형형 활용은 "묻다"나 "싣다"와 같은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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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낱말을 쓰는 데 지장을 받는 이는 없다. 토박이말 사용자에겐 그게 굳이 어법을 의식하지 않더라도 입에 밴 말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겯다', '눋다', '붇다' 등도 '듣다'와 '싣다'와 같은 형식으로 편하게 쓰면 되겠다.

태그:#ㄷ불규칙용언, #'눋다'와 '붇다', #겯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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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이 넘어 입문한 <오마이뉴스> 뉴스 게릴라로 16년, 그 자취로 이미 절판된 단행본 <부역자들, 친일문인의 민낯>(인문서원)이 남았다. 몸과 마음의 부조화로 이어지는 노화의 길목에서 젖어 오는 투명한 슬픔으로 자신의 남루한 생애, 그 심연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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