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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골 할머니댁엔 최상의 동물 복지를 누리는 닭들이 산다. 닭들의 심정이야 내 알 도리가 없으나, 적정 평수와 흙, 먹이를 기준으로 본다면 닭들의 낙원이라 해도 틀리진 않을 것이다. 신선한 먹이를 먹고, 평화롭게 마당을 돌아다니며 흙목욕을 하다가, 저녁이 되면 제 발로 집(닭장)에 들어간다. 

미안하지만, 그 닭들을 좋아한 적은 없다. 익숙치 않아 무서웠다. 할머니는 손주들이 올 때마다 닭들을 닭장 속에 가두셨으니 닭도 우리를 좋아하긴 힘들었을 것이다. 뿐인가.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할머니는 우리를 위해 잘 자란 닭 한 마리를 잡으셨다. 명실공히 우린 닭들의 천적이었던 듯하다.

할머니의 정성이었건만, 나는 그 날 닭백숙을 거부했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닭'과 내가 좋아하는 '치킨'의 관계를 깨닫는 순간이었다. 닭 잡는 장면을 직접 보진 않았지만 그 동물이 어떤 과정을 거쳐 식탁 위에 오르는지도 어렴풋이 눈치는 챌 수 있었다. 그 때의 충격이란. 

그 후로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하면 주체적이고 결단력 있는 나의 근성을 보여줄 수 있겠지만, 그렇진 않았다. 심지어 그 날 밤, 삼촌이 사오신 후라이드 치킨 앞에서 나는 무너져버렸다. 쭈뼛쭈뼛, 아까보다 약한 거부감을 표했고, 그 닭이 그 닭이 아니라는 엄마의 모호한 설명을 믿기로 했다. 먹고 싶었기 때문에.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책표지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책표지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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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의 저자도 비슷한 경험을 이야기한다. 아홉 살 때 진실을 깨닫고 몇 년 간 채식주의를 고수했다고 하니, 나보다는 심지가 곧은 어린이였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육식에 관한 의문을 애써 떨치며 다량의 고기를 먹은 적도 있고, 수도 없이 잡식과 채식을 오갔다고 한다.
 
"밤에 침대에 누워 하는 생각과 다음 날 아침 식탁에서 하는 선택이 따로 놀았다. 뭔가 크게 잘못된 일에 끼어 들었다는 불안을 (가끔 잠깐씩만이라 하더라도) 떨치지 못하면서도, 이것이 갈피를 잡기 힘들 만큼 복잡한 사안이며, 인간은 원래 오류를 저지르기 쉬운 존재라서 이해해주어야 한다는 점을 받아들였다."(p18)

그는 고기에 관한 한 자신과 놀랄만큼 흡사한 역사를 지닌 여인을 만나 결혼했다고 한다. 그들은 주로 채식을 하고 가끔씩 고기를 먹는 채식주의자가 된다. 이 정도면 윤리적인 식단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으나, 아들이 생긴 뒤로 저자는 사안을 보다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로 한다. 
 
"음식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들, 곧 우리의 역사와 우리의 가치에 관한 이야기이다."(p22)

애초에 책을 계획하진 않았다고 한다. 자신과 가족을 위해 고기를 제대로 알고 싶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어디에서 오는지, 어떻게 생산되는지, 어떻게 다루어지는지, 이것이 왜 중요한지, 어떤 영향이 있는지 등등. 그러나 부모로서 깨달은 진실을 시민으로서, 작가로서 혼자만 간직할 수는 없었다고.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관해서는 양극화로 치닫게 하는 뭔가가 있다. 아예 먹지 않거나, 아니면 먹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의문을 제기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이다. 이 대립하는 입장들, 그리고 어떤 입장을 취하기를 꺼리는 태도는 결국 동물을 먹는 것이 중요한 문제라는 사실을 암시한다."(p47)

저자는 축산업이 엄청나게 복잡한 주제임을 말한다. 어떤 동물도, 농장도, 농부도, 먹는 사람도 서로 같지 않고, 또한 육식은 사람들이 불편한 지점을 건드려 방어자세나 공격적 반응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저자는 불필요한 충돌을 막고, 진실을 대면하기 위해 대화를 재구성할 필요가 있음을 말한다. 

공장식 축산의 폐해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공장식 축산'이다. 미국에서 식용으로, 또는 우유와 계란 때문에 키우는 모든 육지동물의 99퍼센트는 공장식으로 키워진다고 한다. 내가 찾아본 바에 따르면 한국 역시 다르지 않다. 마치 자연스러운 일인양 구제역과 조류독감 뉴스를 정기적으로 접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공장식 축산은 실천이라기보다는 마음 자세이다. 생산 비용을 할 수 있는데까지 최대한 절감하고, 환경파괴, 인간의 질병, 동물의 고통과 같은 데 들어가는 비용을 체계적으로 무시하거나 그 비용의 책임을 '외부로 돌리는' 것이다."(p49)

정보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공장식 축산의 모습이 끔찍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을 듯하다. A4용지 1장보다 작은 공간에 갇혀 몇층으로 쌓여있는 배터리식 닭장. 골절, 탈골, 마비, 내출혈, 빈혈, 시력상실에 심지어 돌연사 하는 닭들. 육계는 한달 만에 잡아먹지만, 반복된 유전자 조작으로 오래 살 수도 없다고 한다.

죽은 닭을 식히기 위해 초대형 냉장 물탱크를 이용하는데, 수천 마리가 한번에 들어가므로 온갖 오물과 박테리아가 떠 있는 '똥물'이라고 한다. 닭들은 그 물을 흡수한다. 책에 따르면 95% 이상의 닭이 대장균에 감염되어 있고, 소매점의 닭 중에서도 39~75%는 여전히 감염된 상태라고 한다. 미국의 통계지만, 한국이라고 다를까. 

공장식 축산업으로 인한 토지 오염으로 미국이 입는 손실이 260억 달러라고 한다. 돼지 축산업에서 나오는 막대한 양의 배설물 쓰레기에는 똥뿐 아니라 사산한 새끼 돼지, 토사물, 피, 오줌, 항생제 주사기, 고름, 털 등도 포함되며 각종 병원균이 100가지도 넘게 포함되어 있다고. 이것은 강과 호수, 바다로 섞여 들어가 공기, 물, 땅을 오염시키고 당연히 인간의 건강에 치명적이다. 
 
"도대체 축산업과 도축이 얼마나 더 결함투성이라야 도를 넘었다고 할 것인가?"(p251)

1918년, 스페인 독감으로 불리며 24주만에 2400만 명의 희생자를 낸 유례없는 유행병이 있었다. 미국에서는 한 주만에 2만 명이 죽었고, 전세계적으로 5000만에서 1억 명까지 이 병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저자는 스페인 독감을 재현할 수 있는 잡종 바이러스를 탄생시킬 조건을 인간이 만들고 있음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

저자는 공장식 축산으로 동물성 식품이 저렴해졌지만, 환경에 대한 영향, 인간의 질병 등을 따지면 이는 역사상 유례없이 높은 가격임을 지적한다. 그는 이 방법은 결코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지구는 결국 공장식 축산을 없애고 말 것인데, 변하지 않고서는 인류 역시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가축들이 사육되는 조건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면(혹은 관심만 보여도) 감상주의자라고 무시를 당하기 일쑤다. 하지만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누가 감상주의자이고 누가 현실주의자인지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 좋겠다."(p100)

책은 모두가 채식주의자가 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다만, 공장식 축산의 현실을 들여다보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매일 하는 선택보다 환경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없다고 주장한다. 우리의 결정과 산업 자체가 결국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책을 읽을수록 내 눈으로 확인한 할머니의 건강한 닭 대신, 어떻게 자라고 죽었는지 알 수 없는 닭을 택한 내 어리석음을 깨닫게 된다. 당장 고기를 먹을 생각은 없지만, 내 선택이 단지 나의 한 끼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되새길 일이다. 우리의 선택은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설을 앞두고, 또 구제역 소식이 들려왔다. 이 소식들에 무감해지고, 살처분을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해답은 아닐 것이다. 마치 겨울이 가고 봄이 오듯 찾아오는, 이제는 익숙하기까지 한 구제역과 조류독감. 악의 고리를 끊기 위한 고민과 실천이 필요할 때다. 
 
"웨이터가 주문을 기다릴 때, 혹은 쇼핑 카트나 장바구니에 마음 내키는 대로 뭔가를 골라 담을 때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골리앗 같은 식품 산업 전체가 궁극적으로는 움직이고 결정된다."(p221)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민음사(2011)


태그:#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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