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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산업은 날로 부흥하지만 사는 것 자체가 바쁜 현대인들이 여행 한 번 가기는 쉽지 않다. 늘 일상처럼 다니는 여행전문가도 있으나 보통 사람들은 크게 마음먹어야 떠날 수 있는 게 여행이다.

남편과 자녀를 뒷바라지하느라 한창 때(?)를 다 보낸 엄마들은 더하다. 가족 걱정 때문에 혼자서는 맘 편히 집 밖을 나서지 못한다. 그런데 여기 의기투합한 여인 셋이 관광 아닌 여행 한번 해보자며 무작정 제주여행을 계획하고 육지를 탈출했다. 가족없이 떠난 그들의 좌충우돌 여행기를 옮겨봤다.

마음 내키는 대로 가는 자유여행이 즐겁다 

지난달 25일이다. 모처럼 떠난 여인 셋은 알찬 여행을 위해, 가는 날 새벽에 일어나는 수고를 감수하고 의욕에 찬 발걸음을 재촉했다. 비행기로 한 시간이면 갈 거리를 가면서 가족 걱정하는 친구에게 장난 섞인 타박이 이어진다.

"아직도 식구들 밥 걱정하니?"
"요즘 먹을 게 얼마나 많은데? 알아서 해먹을 때 됐어." 
"애들도 다 컸고."

제주에 도착하니 오전 9시 무렵. 공항 근처에서 차를 빌려 첫날은 그야말로 갈지자 여행을 다녔다. 지리를 모른 채 무턱대고 가고 싶은 곳을 향해 달렸다. 제주시에서 서귀포시로 쭉 내려가 안덕면 대평리에서 바닷바람과 인사했다.

 
천혜의 절경과 비경이 넘치듯 많은 제주도. 그러나 그 속살까지 파고든 아픔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천혜의 절경과 비경이 넘치듯 많은 제주도. 그러나 그 속살까지 파고든 아픔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노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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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화덕피자 맛집에 들러 제주의 피자 맛에 흡족해한 후 강정포구에 들렀다. 강정해군기지 앞에는 여전히 제주해군기지를 반대하는 깃발을 볼 수 있었다. 주민들의 숙원은 바람결에 날려간 걸까. 최근 제주에 공군기지까지 들어선다는 말이 있어 잠시 답답한 가슴을 토닥였다.

동백꽃이 보고 싶다는 친구의 소원을 들어주러 서귀포시 남원읍 제주동백수목원에 갔다. 동백은 색바랜 꽃잎만 띄엄띄엄 남아있었다. 한숨 쉬는 친구를 위로한 말. "다음에 또 오자!" 언제 올지 몰라도 다음을 기약하는 여행은 즐겁다.

 
서귀포시 안덕면 송악산 둘레길. 바다와 제주의 바람, 해안 절경이 어우러진 걷기 좋은 길이다.
 서귀포시 안덕면 송악산 둘레길. 바다와 제주의 바람, 해안 절경이 어우러진 걷기 좋은 길이다.
ⓒ 노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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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안덕면으로 가서 보말미역국과 고등어구이를 먹었다. 특히 보말미역국은 육지에서 쉽게 먹을 수 없는 음식이어서 더 맛있게 느껴졌다. 그러고는 근처 송악산 둘레길을 걸었다. 비가 뿌리기 시작해 돌아갈까 하다가 "무지한 여정은 쭉 가는 거"라고 깔깔거리며 언덕을 올랐다. 해변을 따라 이어진 산책로는 딱 걷기 좋았다. 1시간 남짓이면 여유롭게 돌아볼 수 있었고 멀리 보이는 산방산과 형제섬도 걷는 길의 풍광을 더해주었다.

 
 약 1시간 정도면 다 걸을 수 있는 송악산 둘레길. 저 멀리 보이는 곳이 산방산이다.
  약 1시간 정도면 다 걸을 수 있는 송악산 둘레길. 저 멀리 보이는 곳이 산방산이다.
ⓒ 노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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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왔던 제주의 기억을 떠올리며 한 친구가 남원읍 양갈비 맛집을 소개했다. 다시 남원읍과 안덕면을 왔다 갔다 하는 동선을 알고서도 "우리 정말 웃긴다"며 연신 웃음꽃이 터지는 여인 셋.

"아마 남편이랑 애들과 같이 와서 이렇게 왔다 갔다 했으면 벌써 난리가 나도 한참 났을 거야." 한 친구의 말에 모두 긍정의 폭소를 터트렸다.

여고 시절로 돌아간 세 여인은 실수투성이어도, 공연히 먼 거리를 돌아도 내내 즐거움과 만났다.

양갈비를 맛있게 먹고는 우리끼리 여행 온 제주의 첫날밤을 그냥 보낼 수 없어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치킨집에서 치킨을 사 들고 용두암 근처 숙소에 도착했더니 밤 10시다. 대책 없이 숙소를 북제주에 잡고는 계속 서귀포 일대를 다니는 무지한 센스 덕에 갈지자 여행의 정점을 찍는다.

제주에 왔으니 제주의 맛을 봐야 하는 법. 제주산 소주 2종류를 준비했다. 술을 잘 못 하는 세 여인은 한 모금 맛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제주의 첫날밤을 웃음 만발한 수다로 장식했다.

가는 곳마다 만족이 꽉 찬 여행

첫날은 무지함으로 즐겼지만 나름 알차고 싶은 여행이기에 둘째 날은 지도를 펼쳐놓고 목적지를 스캔했다. 본태박물관과 근처 화순곶자왈이 눈에 들어왔다.

본태박물관은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갔지만 대만족이었다. 세 시간 넘게 있었는데 지루한 줄 몰랐다. 일본의 유명한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지은 박물관은 그 자체만으로 예술적인 건물이었다.

 
물을 건축의 주요한 요소로 이용한 안도 타다오. 그의 건축에선 물이 흐르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물을 건축의 주요한 요소로 이용한 안도 타다오. 그의 건축에선 물이 흐르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 노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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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전시관 내부. 따뜻한 온돌바닥을 걸으며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관.
 2전시관 내부. 따뜻한 온돌바닥을 걸으며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관.
ⓒ 노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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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관이 5곳인데 5관은 불교 관련 기획전시를 열고 있었다. 4관에서는 우리나라 전통장례문화 물품을 전시했는데 자진해서 설명해준 해설사의 설명에 모두 쏙 빨려 들어갔다.

해설사의 설명에 따르면 지금의 우리 장례풍습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우리 정신과 문화를 말살하기 위해 변질시켜놓은 것이라는 것. 그는 "우리 전통 꽃상여는 종이꽃을 다는 게 아니라 고인의 일상을 표현한 꼭두각시를 상여에 부착해서 애도를 표현했다. 수의를 별도로 입히지 않고 고인이 평소에 즐겨 입던 옷을 수의로 입혔으며 부모를 보낸 상주들이 삼베 옷을 입었다"고 말했다.

 
4전시관은 장례문화에 관한 전통 소품이 전시돼있다. 이곳에서는 우리가 몰랐던, 그러나 꼭 알아야 할 장례문화에 대해 해설사의 친정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사진 속 상주들 모습에 많은 비밀이 숨겨 있는데 직접 가서 들어야 확실히 인상에 남을 듯.
 4전시관은 장례문화에 관한 전통 소품이 전시돼있다. 이곳에서는 우리가 몰랐던, 그러나 꼭 알아야 할 장례문화에 대해 해설사의 친정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사진 속 상주들 모습에 많은 비밀이 숨겨 있는데 직접 가서 들어야 확실히 인상에 남을 듯.
ⓒ 노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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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빈소 앞에 국화를 놓는 관습은 일본 천황을 숭배하는 의미가 담겨있다는 놀라운 이야기를 해주었다. 해설사의 설명을 들은 관람객들에게서 '잘못 뿌리 내린 문화가 이렇게 우리 정신을 멍들게 했구나' 하는 탄식이 새어 나왔다.

3관에서는 일본의 유명 작가 쿠사마 야요이의 '무한 거울방-영혼의 반짝임'과 'Pumpkin' 작품이 전시돼있었다. 관람객들이 줄을 서서 쿠사마의 작품을 감상했다.

 
대형 호박이지만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에는 단순한 호박의 느낌이 아닌 강렬하고 특별한 매력이 있다.
 대형 호박이지만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에는 단순한 호박의 느낌이 아닌 강렬하고 특별한 매력이 있다.
ⓒ 노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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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백남준 등 세계적인 작가들의 현대미술품을 전시한 2관은 내부가 온돌 바닥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1관은 한국전통수공예품의 다양함과 고급스러움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이어 간 화순곶자왈은 제주 태초의 원시림을 간직한 곳이었다. '제주의 허파'라고 불리는 곶자왈. 때가 겨울이어서 곶자왈의 속살을 그대로 들여다볼 수 있었다. '새덕이'라는 나무가 있는 곳은 마치 여름 숲처럼 우거졌다. 겨울 속의 여름을 보는 감회가 새로웠다. 전망대까지 오르자 또다시 봉긋 솟은 산방산을 만났다.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 떼를 눈앞에서 보는 것도 이채로웠다.

해 질 무렵 모슬포항에서 대방어회를 맛봤다. 겨울이 제철인 대방어 맛에 세 여인은 '다이어트가 뭐니?'란 구호를 외치며 실컷 먹었다. 역시 여행의 화룡점정은 맛집 순례다.

3일 밤낮 빈틈없는 여행 

마지막 날은 아침부터 아쉬웠다. 한 친구가 "아이~ 벌써 가는 날이야" 하면서 괜한 투정을 부렸다. 그래서 더 열심히 길을 나서 '아점'으로 제주 토속음식을 맛봤다. 허름한 식당에서 먹는 성게알비빔밥과 갈치국이 맛났다.

제주 성산 AMIEX 전시관 '빛의 벙커'에서 구스타프 클림트 작품으로 완성한 '프랑스 몰입형 미디어아트전'을 열고 있었다. 전시관 안에 들어서자 환상 그 자체였다. 클림트의 화려한 색감과 작품의 모티브들이 영상과 어우러져 벽과 바닥에서 자유로이 변화하며 새로운 예술 장르를 선보였다.

 
시시각각 변하는 작품. 커다란 작품 속을 사람들이 유영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시시각각 변하는 작품. 커다란 작품 속을 사람들이 유영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 노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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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어울리는 음악 또한 가슴을 울렸다. 한 친구는 너무 감동한 나머지 울고 말았다. 역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예술 작품 하나에 가슴 깊은 곳 순수감성을 끌어내 전율을 느끼니 말이다.

 
벽과 바닥에 흐르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들. 작품 안 모티브 하나 하나가 따로 또 같이 움직이며 환상적인 영상과 변화무쌍한 변화를 보여주는 미디어 아트.
 벽과 바닥에 흐르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들. 작품 안 모티브 하나 하나가 따로 또 같이 움직이며 환상적인 영상과 변화무쌍한 변화를 보여주는 미디어 아트.
ⓒ 노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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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코스는 김영갑 갤러리. 충남 부여 출신인데 제주에 반해 제주에서 평생 살다가 소천한 사진작가 김영갑이다. 그의 사진엔 제주의 민낯이 있고 제주에만 있는 바람의 흔적이 담겨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김영갑 갤러리에선 사진 촬영이 금지다.

 
김영갑 갤러리 내부는 사진촬영이 금지다. 정원밖에 찍을 수 없었지만 정원의 겨울 모습은 한창 푸른 잎이 무성했을 때 얼마나 아름다울지 상상이 가는 꽤 넓은 정원이었다.
 김영갑 갤러리 내부는 사진촬영이 금지다. 정원밖에 찍을 수 없었지만 정원의 겨울 모습은 한창 푸른 잎이 무성했을 때 얼마나 아름다울지 상상이 가는 꽤 넓은 정원이었다.
ⓒ 노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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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으로 가는 발걸음은 아쉬웠지만, 여인 셋은 제주의 마지막 저녁으로 흑돼지구이를 먹겠다고 비행기를 놓칠뻔한 긴박감까지 즐기는 대범함을 보였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도 제주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무작정 찍어댄 사진들을 보며 또 다시 웃음꽃 터지는 건 당연지사. 친구들끼리 간 초보여행, 시간과 일정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이 즐겼기에 가슴에 깊이 남을 멋지고 의미 있는 추억이 되었다.

<친구들끼리 가는 초보여행 알짜팁>

1. 렌트카는 평소 운전하던 차종이 부담이 적으며 만일을 위해 자차보험까지 들어두는 것이 좋다. 여행 가서 사고 처리나 하고 있다면 상상만 해도 싫을 듯. 또 운전을 혼자 도맡아 하는 여행은 삼갈 것. 즐기자고 가는 것인데 굳이 혼자 운전하며 피로를 쌓을 필요는 없다. 혼자 가는 여행이 아니라면 둘 이상은 운전할 사람이 있는 게 낫다.

2. 본태박물관보다 빛의 벙커를 먼저 들르길 권한다. 박물관 입장료가 2만원이고 빛의 벙커 입장료는 1만5000원이다. 빛의 벙커를 먼저 들르면 박물관 입장료를 30% 할인해준다. 빛의 벙커 전시는 10월 27일(일)까지다. 특히 박물관에선 해설사의 설명을 꼭 듣길. 새로운 지식과 사실을 흥미롭게 설명해준다. 아는 만큼 더 보이는 건 진리다.

3.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 맛집 탐험. 셋이서 2인분씩 시켜서 나눠 먹으면 짧은 기간 제주의 온갖 맛을 볼 수 있다. 그래서 하루 5끼를 먹었다는 사실은 전설이다. 여인 셋의 잔꾀에도 흔쾌히 고개를 끄덕여 주는 제주 맛집들이다.

4. 2박 3일의 짧은 기간이지만 나름 알차게 다닐 수 있던 이유는 가는 날 이른 아침 비행기를 탔고, 오는 날 밤늦은 비행기를 탔기 때문에 가능했다. 꽉 찬 3일이 여유로운 5일과 맞먹는 여행이 되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천안아산신문에도 올라갑니다.


태그:#제주여행, #제주재밌게즐기기, #제주맛집, #제주갈만한곳, #제주전시볼만한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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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과 천안 아산을 중심으로 한 지역소식 교육 문화 생활 소식 등을 전합니다. 지금은 출판 분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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