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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추 심는 농부' 최승태 김미숙씨 부부
 "상추 심는 농부" 최승태 김미숙씨 부부
ⓒ 박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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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뛰는 삶을 살고 싶었어요. 철저히 계급사회인 군대라는 게 다분히 목표 지향적이고 융통성 없는 생활이다 보니까 시간적인 개념에서 벗어난 삶을 살아보고 싶었죠."

2014년 12월 전북 남원시 산내면으로 귀농해 상추 농사 짓는 최승태(60), 김미숙(58) 부부를 만났다. 승태씨는 육군 대령으로 34년간의 군 생활을 마치고 단지 지리산이 좋아서 남원으로 귀농을 결심했다. 군인으로 복무하는 34년 동안 스물일곱 번의 이사를 했다. 1.3년에 한 번씩 이사를 한 셈이다.

그들에게 삶의 터전을 바꾸는 일은 어쩌면 익숙하고 당연한 일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부부가 귀농을 한 지도 어느덧 4년의 시간이 흘렀다. 부부에게는 아들 둘이 있는데 모두 장성해 각자의 삶을 살고 있다.

"지리산이 남원에만 있는 줄 알았어요. 학교 다닐 때 '지리산' 하면 '뱀사골'이었기 때문에 남원으로 내려오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나 봅니다."

부부는 조용한 산골 마을에서 작게 농사지으며 각자의 취미 생활을 즐기고 싶었다. 승태씨는 평소 나무 공예인 서각을 즐겼는데 초대작가전을 열었을 만큼 수준급 실력을 자랑한다.

학창시절 무용을 전공한 미숙씨는 잠시지만 광주시립무용단원으로 활동했고 결혼 전까지 중학교에서 무용을 가르치기도 했다. 이사를 자주 해야 하는 남편의 직업 특성상 고정된 직장을 갖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그녀는 농사짓는 시간 외 대부분의 시간을 바느질로 보낸다. 부부는 산내면으로 귀농 후 4년째 상추 농사를 짓고 있다.

좋은 이웃을 만나는 것도 내가 만드는 일

군 생활하면서 워낙에 이동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단체 안에서 움직였으니 그러려니 했다.

"제대하고 남원으로 귀농은 했는데 농사를 지은 적이 없으니 땅도 생소하고 주변 사람들도 생소하고 모든 게 낯설고 생소하기만 하더라고요. 그러던 중에 좋은 이웃을 만나게 된 게 가장 큰 행운이고 복이었던 거 같아요. 결국 좋은 이웃을 만나는 것도 내가 만드는 것이겠지만요.

농사에만 매달려 살다 보면 가장 중요한 사람을 얻지 못하게 되고 주변의 도움이 필요할 때 아무도 손을 내주지 않게 되지요.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겠지만 열심히만 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잖아요. 주변 이웃과 자주 소통하는 삶이 귀농을 하던 귀촌을 하던 가장 중요한 거 같습니다."


승태씨가 귀농 후 상추 농사를 짓기로 결정하게 된 건 매일 일거리가 생기기 때문이라는데 그만큼 시골 생활에 빠르게 적응하기 위한 이유에서다.

"여름철에는 상추를 매일매일 따야 하니까 시간적 여유가 없다고들 하는데 어떤 농사를 짓던 여유 있는 농사는 없더라고요. 어떤 작목을 선택하던 다 바쁘고 힘들어요."

상추 농사를 지으면서 가장 큰 소득은 토양을 알게 된 거다. 상추 농사에 적합한 땅이 어떤 땅인 지도 모르고 하우스를 임대해서 농사를 시작했을 당시만 해도 심기만 하면 잘 자라는 줄 알았다. 그렇게 시작한 상추 농사는 첫해에 결국 실패했다.

"농사를 망치고 기술센터 도움으로 토양검사를 하니까 상추 농사에 적합한 땅이 아니었어요. 그때부터 3년간 상추가 잘 자랄 수 있는 땅을 만드는 데 집중했어요. 이제는 상추가 잘 자랄 수 있는 적정 수준에 도달하니까 상추 값이 내리막이네요. 생각처럼 되는 농사는 없더라고요."

내가 원하는 가방을 갖고 싶어서 바느질을 시작했어요
   
상추를 따고 있는 미숙씨와 승태씨 부부
 상추를 따고 있는 미숙씨와 승태씨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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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상추 한 잎 한 잎 따는 게 너무 행복하데요, 그런데 저는 상추 따는 게 하나도 즐겁지 않은 거예요. 여름철엔 상추가 빨리 자라기 때문에 매일매일 따줘야 해요. 그래서 남편이 상추 농사를 짓겠다고 했을 때 다짐을 받았어요. 수확이 밀리거나 가격이 높을 때만 도와주겠다고요. 저는 상추 따는 거 하나도 안 재밌거든요.

남편 퇴직하고 쉰다는 마음으로 내려왔지만 하는 일 없이 매일 놀면서 여행만 다닐 수는 없으니까 남편은 상추 농사짓고 저는 바느질을 좋아하니까 집에 있을 때는 주로 바느질을 해요."


막상 상추를 따면 미숙씨가 더 많은 양의 상추를 딴다. 승태씨가 한 박스를 따는 동안 손놀림이 빠른 미숙 씨는 두 박스를 딴다.

"처음 6개월은 정말 너무 힘들었어요. 애들이 중학교 입학해서 대학 들어갈 때까지는 주말부부로 떨어져 지내다가 남편 퇴직하고는 남원으로 내려와서 같이 지내고 있는데 주변에 아는 사람도 없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막막하더라고요.

자수 배운다는 핑계로 거의 매일 전주하고 남원을 오갔어요. 아마 적응하기 힘들어서 바느질에 더 매달렸던 거 같아요. 그렇게 배운 바느질로 커튼이랑 손수건도 만들고 컵 받침, 방석, 식탁보, 앞치마 그리고 스커트에도 자수를 놔서 입었어요."


"참 재밌는 게 하루 이틀 바느질을 쉬면 자수 모양이 이상해요. 손에 감각이 떨어지는지 자수가 안 예뻐요. 그 상태로 가방 하나를 완성하고 나면 그 부분이 계속 걸리고 찜찜해서 결국 다 잘라내고 풀어서 다시 자수를 놔요. 작은 부분 하나 때문에 전체가 망가지니까 어쩔 수 없이 힘들어도 다시 시작해요. 손에 놓지 않고 꾸준히 할 때 예쁜 자수가 나오더라고요."

승태씨는 농사일 외에도 옥외 활동이 어려운 마을 어르신들을 모시고 마을회관에서 일주일에 두 번씩 '프롭 테라피'를 하고 있다. 프롭 테라피란 나무로 만든 도구를 이용해 척추를 바로 세워 몸의 균형을 유지해주는 유산소 운동을 말한다.

"작년부터 운동을 시작했는데 마을 어르신들이 좋아하시고 제법 잘 따라 하세요. 이제는 저 없이도 어르신들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예요."

농사, 절대 쉽지 않습니다

"저와 같은 은퇴자들에게 귀농보다는 귀촌을 권하는데 '가슴 뛰는 삶을 살아보라'고 말합니다. 은퇴 후 굳이 도시에서 각박하게 살 필요가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하거든요. 귀촌은 마음먹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행복지수를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농업을 통해서 부를 축적하겠다고 하면 저는 말려요. 귀농은 말 그대로 농업으로 소득을 내야 하는데 예측도 어렵고 변수가 많기 때문에 심사숙고해서 결정해야 돼요. 절대 쉽지 않습니다."


미숙씨는 가끔이지만 자수를 놓은 가방이나 파우치 등을 판매하기도 한다.

"제가 들고 있는 가방이나 파우치를 보면 사람들이 자꾸 '어디서 샀느냐'고 물어요. 지인들 통해서 주문도 받고, 들고 있던 가방을 팔라고 해서 판 적도 있어요. 더러는 수강할 수 있느냐고 묻는 분들도 있는데 그러기엔 장소 마련도 어렵고 아직은 혼자 하는 게 즐겁고 좋아요."
 
미숙씨가 만든 가방과 자수
 미숙씨가 만든 가방과 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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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작업실 겸 작은 공방을 갖는 게 당장의 바람이다. 전원생활을 꿈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부터 짓는 데 반해 이들 부부는 아직까지 23평 빌라의 전세를 얻어 지내고 있다.

"집에 대해서는 저희도 같은 생각이었지만 다들 '살아 보고 지으라'고 해요. 이제는 지어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집을 지으면 집사람하고 같이 쓸 공방을 만들고 싶어요. 나는 좋아하는 상추 농사지으면서 서각을 하고 집사람은 바느질 좋아하니까 자수를 놓고, 누가 억지로 시키면 하겠어요?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할 때 가장 행복하잖아요."

승태씨는 현재 '귀농귀촌 협의회' 부회장직을 비롯해 '남원 정보화농업 연구회' 그리고 '강소농' 활동 외에도 SNS 스터디 모임인 '밤을 잊은 농부들'과 '친환경 자연농업 연구회'의 운영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난 2018년도에는 임업후계자로 선정되었고 올부터는 '산림복합경영'분야에 새로운 도전을 한다.
 
'함께 그리고 더불어' 살기를 희망하는 농부 승태씨
 "함께 그리고 더불어" 살기를 희망하는 농부 승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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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뺄셈의 인생을 살아보려고 귀농했는데 오히려 더하기 인생이 돼 가고 있어요. 하하하."

"산다는 게 결국 품앗이 같아요. 발품을 팔지 않고 거저 얻어지는 게 없더라고요. 서로 돕고 협업하면서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남원의 농부가 되는 게 가장 큰 바람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남원시 소식지에도 실립니다.


태그:#귀농귀촌, #상추농장, #남원귀농귀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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