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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꿀벌은 집어치워!> 책표지.
 <착한 꿀벌은 집어치워!> 책표지.
ⓒ 책과 콩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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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북미에서 많은 벌들이 사라지는 '군집붕괴현상'이 잇달아 일어났다. 엄청난 숫자의 벌들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는데, 사체는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 미스터리한 사건은 언론과 학계의 엄청난 관심을 끌었다.  

원인 파악을 위한 수많은 연구도 진행 되었다. 그 결과, 바이러스와 자연환경 변화로 인한 영양 결핍,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 날씨, 살충제, 장거리 양봉, 유전자변형작물(GMO) 등이 복합적으로 만들어 낸 것으로 밝혀졌다. 항공기나 휴대전화의 전자파가 벌들의 군집 활동을 방해한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북미뿐일까. 세계 곳곳에서 꿀벌들이 사라지고 있다. '지구촌에 존재하는 야생벌 2만종 중 40%에 해당하는 8천종이 멸종위기에 처했다'는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최근 발표도 있다. 일부 과학자들은 "꿀벌이 지금과 같은 상태로 사라지면 2035년에 완전 멸종 한다", "꿀벌이 멸종하면 그로부터 4년 안에 인류 역시 멸종할 것"과 같은 극단적인 예측까지 내놓고 있다. 

이에 꿀벌을 '국가보호가축'으로 지정해 보호하거나(미국), 저항력을 높여주는 백신을 개발(핀란드)하는 등, 각 나라마다 꿀벌을 살리기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꿀벌 대신 꽃가루받이를 수행하는 드론을 개발(일본)한 나라들도 있다. 우리나라는 2014년에 꿀벌을 곤충이 아닌 가축으로 인정, 보호하는 한편 '도시양봉'을 권장 실행중이다.  

<착한 꿀벌은 집어치워!>(책과 콩나무 펴냄)는 꿀벌들이 처한 이와 같은 위기를 소재로 열두 살 소년의 성장을 다룬 청소년 소설이다.
 
"해마다 벌들이 몇 마리씩 죽는지 아니?"
엄마가 물었다.
"몇 백만?"
"그래. 우리나라 전체 벌 군집의 30%가량이 죽어."
"삼분의 일 정도요?"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런데 정부는 뭘 하고 있을까?"
"아무 일도 안 해요?"
엄마는 코웃음을 쳤다.
"소위 연구란 걸 하지. 십 년간 해 오고 있는 일이란다. 그동안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농약을 뿌려대고 카운트다운은 계속되고 있어. 울프야,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아."

그러자 나는 목이 메었고, 그 농약을 내가 삼키기라도 한 것처럼 목이 따가웠다. 엄마 말이 맞다. -17~18쪽. 

평소 지구온난화 등으로 인한 지구가 당면한 문제들에 위기를 느끼던 사회운동가인 울프의 엄마 '제이드'는 캐나다 횡단 가족여행을 강행한다. 온 가족이 여러 도시들을 여행하면서 꿀벌이 사라지고 있음과 꿀벌의 중요성을 알리는 '꿀벌 살리기 캠페인'을 하며 동참할 사람들을 모으자는 여행이었다. 

하지만 열다섯 살 바이올렛과 열두 살 울프, 그리고 다섯 살 쌍둥이 아이들은 이 여행이 싫다. 학교와 친구들을 떠나기 싫다. 그럼에도 엄마는 이번 학기가 끝나는 몇 달 뒤 떠나기로 한 여행을 일방적으로 며칠 후로 앞당겨버린다. 하루 늦게 떠나는 그만큼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숫자의 꿀벌들이 죽고 지구가 그만큼 빨리 멸망할 것이란 위기감 때문이었다. 

몇 달이나 계속될 여행이다. 학교도 그만둬야 한다. 여행 때문에 남자 친구와 헤어져야만 하는 누나는 여행 직전 집을 나가버리기까지 한다. 다섯 살 쌍둥이 여동생들도 마찬가지, 그런데 아직 어려서 엄마에게 의사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결국 쌍둥이 동생 중 위스퍼가 아예 말문을 닫아 버리는 등, 떠나기 전부터 삐걱거렸던 여행은 결코 순조롭지 못하다.

설상가상 여행 중 자동차 밴마저 고장 나 가족은 옴짝달싹 못하게 된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가족의 숙소이기도 했던 낡은 자동차가 길에 서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도 엄마의 관심은 온통 꿀벌뿐이다. 그래서 예정대로 여행할 수 없고, 꿀벌 살리기 공연과 캠페인을 할 수 없음이 속상할 뿐인데…. 

책은 낼 모레로 다가온 여행을 앞두고 울프의 엄마 제이드가 꿀벌 살리기 캠페인 공연에 아이들이 입을 꿀벌 옷을 만드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꿀벌들이 처한 위기에 대해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언뜻 청소년들에게 꿀벌들의 위기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책 정도로 생각했다.

아마도 청소년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는 다소 엉뚱해 보이는 가족의 여행을 설정, 여행 중 겪는 에피소드들을 통해 꿀벌의 중요함에 대해 자연스럽게 녹여 들려주는 그런 책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읽어나갈수록 '가족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가족을 깨뜨리는가? 그리하여 꿀벌들이 사라지는 군집붕괴현상과 같은 상황을 초래하게 하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란 생각으로 이어졌다.  

바이올렛 누나처럼 반항도 하지 못하고, 쌍둥이 여동생들처럼 마냥 천진할 수도 없는 화자인 나 울프는 다정다감하며 책임감 강한 착한 아들이다. 그래서 하기 싫어도 엄마가 하라는 대로 한다. 엄마나 누나 대신 쌍둥이 동생도 잘 보살핀다. 울프의 엄마는 울프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자신의 아이들은 자신이 하라는 대로 따르는 착한 꿀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무모한 여행까지 강행한 것이다.

울프는 이런 엄마를 위해 가득 차올라 있는 불만을 드러내지도 못하고 가슴 가득 쌓아가기만 한다. 그러다가 결국 위기라고 느낀 순간 동생들을 데리고 도망친다. 소설은 이 부분을 '벌들이 벌집을 떠날 때'란 소제목으로 부당한 상황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두렵고 낯선 길을 향하는 아이들의 불안한 심정을 세세하게 표현한다.
 
"어떻게 우리가 미래를 설계할 수 있겠니?"
"자기 부모조차 자기 아이들의 미래가 없을 거라고 믿는데 말이지?"
바이올렛 누나의 눈이 빛나고 목소리가 떨렸다.
"난 정말로 도망치고 싶지 않아. 너도 알거야. 그래도 그렇게 해야 될지도 몰라"나는 눈물을 참느라 목이 메었다.-256쪽.

어렵게 아이들과 다시 만나게 된 울프의 엄마는 그럼에도 여행에 대한 꿈을 놓지 못한다. 그런 울프의 엄마에게서 '정작 중요한 눈앞의 문제는 보지 못해 소중한 것들을 잃고 마는 어리석은 인간'과 '자연의 끊임없는 경고에도 이기와 탐욕을 놓지 못해 지구 환경을 더욱 오염시키고 있는 우리 인간들'을 느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울프의 엄마처럼 우리 모두는 사라지는 꿀벌들을 안타까워하고 더 이상 사라지지 않게 뭔가를 해야 한다. 우리의 먹을거리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곤충이라 더더욱 그렇다. 그렇다고 울프의 엄마처럼 가족을 희생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신념에 동조해야 한다거나 따라줘야 한다는 사고방식은 결코 옳지 않다. 이처럼 꿀벌이 처한 위기만이 아닌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 소설이다.  

부당해도 참으며 자신을 희생했던 착한 학생 울프는 이 여행으로 자신의 마음을 살피는 것에, 그리고 그런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 익숙해진다. 그리고 부정적으로만 바라봤던 바이올렛 누나를 가슴으로 받아들인다. 울프의 이런 변화에선 누군가를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지 않는 성숙한 시선과 공감의 깊이가 느껴진다. 사춘기로 접어드는 한 소년의 이와 같은 성장이 잘 묘사된 소설이다. 아이와 삐걱거리는 부모라면 힌트 삼아 읽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계간 <우리교육> 2019년 봄호에 실립니다.


착한 꿀벌은 집어치워!

로빈 스티븐슨 지음, 최은숙 옮김, 책과콩나무(2019)


태그:#꿀벌 (일벌), #군집붕괴현상, #착한 꿀벌은 집어치워, #청소년소설(성장소설), #청소년 문제(가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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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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