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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을 배우다]는 한림대학교 2018년 2학기 <커뮤니케이션 개론> 수업을 통해 언론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실제 언론보도 및 뉴스를 확인하고 비교하며 고민한 나름의 결과를 담았습니다.[편집자말]
어린 시절, 나에게 저녁 9시는 뉴스를 보는 시간이었다. 아버지는 이 시간만 되면 채널을 9번으로 맞추셨고, 나는 옆에 앉아서 함께 뉴스를 봤다. 뉴스를 통해 사회를 배웠고, 그것이 옳다고 믿었다. 언론은 믿을 만한 존재이며 나와 사회를 연결해주는 창구라고 생각하면서 자라왔다. 그래서 언론의 공정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본 언론은 전혀 공정하지 않았다. 사회적 쟁점을 보도함에 있어서 각 언론의 입장 차이는 분명히 달랐다. 언론사들은 저마다 "저희 언론은 공정하고 객관적인 보도를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데, 모든 언론이 공정하고 객관적인 보도를 하고 있다면 기사의 논조는 비슷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럼 언론이 보여준 행동은 언행불일치가 아닌가. 나는 궁금했다. 왜 그들은 공정하지 않을까? 그런데 객관적인 보도는 무엇일까?

때마침 전공수업인 <커뮤니케이션 개론>에서 언론 보도를 확인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언론사의 기사를 비교분석해서 한국언론의 정파성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이 과제라면 내가 의문을 갖고 있는 부분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사회적으로 큰 쟁점이 되고 있는 사안을 찾아야 했다.

대법원의 '양심적 병역거부' 판결, 극과 극인 '여론'

최근에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된 판결이 있다. 대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2018년 11월1일 현역병 입영을 거부해 병역법 위반 등으로 기소된 오모(34)씨의 상고심에서 대법관 9(무죄) 대 4(유죄) 의견으로 유죄 선고한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무죄로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결 직후, 국민적 여론은 극과 극이었다. 보수진영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반대했으며, 진보진영은 소수에 대한 처벌이 멈췄다고 환영하는 분위기다. 한국언론에 정파성이 존재한다면, 이 판결에 대한 보도는 분명히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의 양심적 병역거부 보도를 조사했다.

분석대상은 대법원의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판결일 다음날인 11월 2일부터 11월21일까지 약 3주간 양 언론의 지면 기사다. 양심적 병역 거부 기사는 총 24건(조선일보 10건, 한겨레신문 14건)으로 이를 토대로 기사 및 사설의 헤드라인·보도량·내용의 차이를 비교분석해 정파성을 확인했다.
 
<표 1>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 지면의 ‘양심적 병역거부’ 보도
 <표 1>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 지면의 ‘양심적 병역거부’ 보도
ⓒ 양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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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을 강조하는 조선일보, 당연한 판결이라는 한겨레신문

대법원의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판결 다음날인 11월2일,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의 지면 기사를 비교분석 했다. 1면은 언론사가 생각하는 그날 가장 중요한 기사들이 게재되는데, 양 언론사 모두 "대법원의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판결"을 1면에 게재했다.

조선일보는 1면에 ""대법 "종교적 병역거부" 무죄… 14년 만에 뒤집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재판부의 판결 사유를 간단히 게재했고, 특별한 언급은 없었다. 그러나 1면의 기사가 이어지는 10면에서 논조가 드러났다(<표 2> 참고). ""양심적 병역거부 석방을" vs "누군 양심이 없어 군대갔나""라는 제목으로 대립적인 표현을 사용했다.

내용에서도 "판결 이후 여론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대법관들 사이에서도 의견은 극명하게 갈렸다"고 말하면서 여러 의견들을 대립적으로 보여줬다.

그러나 진보단체의 의견은 소수에 불과했고, 비판의견은 여러 단체들의 다양한 의견을 인용해 훨씬 많은 양을 보도했다. 이는 한 쪽의 의견만 집중적으로 보도해서 그 부분만 보이게 하는 조선일보의 의도적 행위이다.
 
<표 2> '양심적 병역거부 판결'에 대한 대법원의 소수의견
 <표 2> "양심적 병역거부 판결"에 대한 대법원의 소수의견
ⓒ 양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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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대법원의 판결을 보도할 때 9 대 4로 다수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다수의견은 "양심을 처벌하는 건 자유민주정신에 위배한다"가 전부였고, 소수의견은 3개나 더 서술했다. 즉 대법관들의 의견이 극명하게 갈렸다고 씀으로써 의도적으로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한겨레신문은 1면에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대법, 헌재보다 더 전진"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제목에서부터 진보적 판결을 내렸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1면의 기사가 이어지는 8면에서 다수와 소수의견을 비교해서 보여줬다. 조선일보와는 다르게 대법원의 다수의견 3개, 소수의견 2개로 어느 정도 균형 있게 보도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소수의견 외에 비판의견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후 이어지는 내용에서 판단 기준이 모호하다는 논란이 있기 때문에 대법원의 판단 근거를 예시로 들어 앞으로의 명확한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 이외에도 대법원이 제시한 '양심적 병역거부 교리 남용'을 막기 위한 기준에 대해 쉽게 판정하기 힘든 '양심의 진정성'을 놓고 새로운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표 > '양심적 병역거부 판결'에 대한 대법원의 다수 의견
 <표 > "양심적 병역거부 판결"에 대한 대법원의 다수 의견
ⓒ 양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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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해보면 한겨레신문의 이번 판결이 당연한 판결이기 때문에 비판의견을 굳이 서술하지 않은 것이다. 대신에 판단 기준을 명확히 해서 이후 판결에 대한 혼란을 미리 방지하고자 하는 식의 보도를 했다. 대법원의 '양심적 병역거부 판결' 다음날,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의 기사를 비교분석해 본 결과 국민적 여론이 극과 극으로 갈리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양측의 상반된 입장이 양적으로 균형 있게 보도되지 않았다. 즉 객관보도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국가안보 vs 소수자에 대한 관용
 
<그림 1>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의 11월 2일자 사설
 <그림 1>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의 11월 2일자 사설
ⓒ 양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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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이란 시사문제에 대하여 신문사가 자신의 책임으로 표명하는 의견이나 주장이다. '논설'이라고도 한다. 따라서 사설은 신문사의 성격에 따른 특징과 논조를 지니게 된다. 그러므로 사설을 비교한다면, 스트레이트 기사보다 더 정확한 언론사의 논조를 파악할 수 있다.

조선일보는 판결 다음날인 11월 2일 사설에서 대법원의 판결은 한국의 안보 상황을 무시하는 판결이라며 비판했다. 한국처럼 엄중한 안보 상황에 있지 않은 나라라면 '소수자에 대한 관용'이 존중돼야 하지만, 한국의 안보적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한겨레신문은 11월 2일자 사설에서 "자유민주주의는 다수결 원칙에 따라 운영되지만 소수자에 대한 관용과 포용을 인정해야만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며 대법원의 진일보한 판결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에 국제기준에 비춰 대체복무 방안이 서둘러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통해 조선일보는 '국가안보'를 한겨레신문은 '소수자에 대한 관용'을 중요시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처럼 서로의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보는 관점이 다른 것이다.

같은 주제, 비슷한 제목, 다른 느낌

기사의 제목은 기사가 담고 있는 정보를 정확하게 요약하여 전달하는 기능을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사의 제목을 통해 내용을 유추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언론사의 정치적, 이념적 성향도 파악할 수 있다.

대법원의 판결 이후 논제가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판결에서 대체복무의 기간과 방식에 대한 것으로 바뀌었다(<표 4> 참고).

11월 15일,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은 대체복무제 방안에 대해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비판적인 표현을 찾을 수 없었지만, 한겨레신문은 '징벌', '강행'이란 표현을 써서 비판적인 느낌을 주었다. 대체복무심사기구에 대한 기사 제목도 마찬가지로 조선일보는 비판적인 어투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한겨레신문은 '결국'이라는 표현을 써서 결과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다. 조선일보는 현재 국방부가 추진하는 대체복무 방안에 대해 큰 이견이 없는 반면, 한겨레신문은 강한 표현을 사용해서 매우 비판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표 3> 대체복무제와 대체복무 심사기구 뉴스 헤드라인 비교
 <표 3> 대체복무제와 대체복무 심사기구 뉴스 헤드라인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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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은 공정하지 않다

비교분석한 결과 언론은 공정하지도 객관적이지도 않았다.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은 같은 사건을 보도하는데 시각적인 부분에서 가장 큰 차이를 드러냈다.

조선일보의 경우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제목에서부터 기사 내용까지 비판하는 표현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객관보도를 함에 있어서 상반된 입장을 균형 있게 보도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겨레신문은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긍정적이며 당연하다는 식의 보도를 했다. 제목부터 기사 내용까지 판결을 지지하는 기사의 양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런 점에선 조선일보와 마찬가지로 양적 균형성이 지켜지지 않았다. 그러나 대법원의 양심적 병역거부 판결과는 다르게 국방부가 추진하는 대체복무 안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인 표현을 사용했다.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의 가장 큰 정파적 차이는 중점가치에 대한 판단이다. 조선일보는 한국의 안보현실에 대한 특수한 상황을 예로 들면서, '안보관'을 중요시 여기는 보수적 태도를 엿볼 수 있었다. 한겨레신문은 민주주의 가치가 잘 실현되고 있는 서구국가를 예로 들면서, '소수자에 대한 관용'을 중요시 하는 진보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처럼 애초에 서로가 추구하는 중점가치가 다르기 때문에 언론은 편향된 시각을 가지고 보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독자를 위한 '뉴스 리터러시'

두 언론의 이념적 차이로 인한 보도의 양극화는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 독자층 사이에 간극이 발생해 여론의 양극화를 초래한다. 또한, 극단화된 대립구도 하에서 언론이 서로 부정적인 뉴스를 추구하고 강조하다 보면 사실이 왜곡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SBS에서 방영된 드라마 '피노키오'에 이런 대사가 있다. "사람들은 피노키오가 진실만 말한다고 생각하죠. 그리고 사람들은 기자들도 진실만 전한다고 생각해요". 드라마 대사처럼 사람들은 뉴스의 출처가 언론이라는 이유로 사실 확인 없이 신뢰한다. 결국 이런 보도 행태는 독자에게 편향된 시각을 이끌어 사회적 갈등을 더욱 심화시킬 뿐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뉴스를 소비해야 하는가? 나도 그랬고, 많은 사람들이 언론은 공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언론이 공정해야 한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언론은 전혀 공정하지도 객관적이지도 않기 때문에 독자가 어떻게 수용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독자는 뉴스를 보다 정확하게, 비판적이면서도 객관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뉴스 리터러시'가 요구된다. 뉴스 리터러시(News Literacy)는 글자 그대로 표현하면 '뉴스'를 읽고 쓰는 능력으로, 단순히 글을 읽을 줄 아는 것이 아니라 메시지를 분석하고, 이해하고 이를 자신의 생각으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능동적 자세는 독자가 뉴스의 본질을 알고 올바른 정보를 습득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언론사의 성향에 따라 편향된 기사가 난무하는 현실 속에서 뉴스 리터러시는 정보에 대한 비판적 접근과 사회적 소통능력을 강화시켜 독자 간의 간극을 줄어들게 할 것이다.

태그:#언론을 배우다, #양심적 병역거부, #커뮤니케이션 개론, #뉴스 리터러시, #언론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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