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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버지와 어머니는 십오 년 넘게 살던 곳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집을 옮겼다. 내가 대학교에 입학한 뒤 얼마 안되어 예전의 집으로 이사를 갔고, 나는 그곳에서 대학을 다니고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하고 또 결혼하여 분가를 했다.

내게도 적지 않은 기억과 사연이 담긴 곳이다. 새로운 집으로의 이사라고 해도 직선거리로 1km가 채 안 되는 곳이니 사실 거기서 거기인 셈이다. 새로 이사 가는 곳은 서울 시내 최대 규모의 단지라는 문구로 대대적으로 홍보를 하고 있었는데, 무려 9,510세대가 이 곳에 터를 잡고 살고 있다고 했다.

통계청 발표 자료에 의하면 2018년 한국 사회는 세대당 평균 인구 2.35명을 기록했는데, 그렇게 계산해보면 새로 이사간 곳은 산술적으로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이었다. 아파트 단지라는 단어로는 그 규모를 다 담지 못할 것 같았다. 지하철에서 내려 아버지 어머니 집으로 걸어가는 길은 꼭 어느 도시 시내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벨을 눌렀다. 나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새 집 냄새가 났다.

얼핏 보기에는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는 것 같았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정리된 것을 모두 꺼내어 다시 제 자리를 잡도록 정리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우선 집이 괜찮다고 말하며 주방으로 향했다. 주방이 단정해 보였다. 찬장을 열었다. 그릇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것들이 제 자리에 있지 않았고 그것들의 위치가 낯설다고 했다. 사물들이 어디에 자리 잡아야 하는지는, 사물들과 함께 살아온 이들만이 안다. 우리는 그릇을 모두 꺼내 순서와 쓰임새에 맞게 다시 정리했다. 자주 쓰는 것은 키가 높지 않은 곳에, 자주 쓰지 않는 것은 구석과 그늘 속에 두었다. 주방이 다시 단정해졌다.

거실로 향했다. 아직 충전재 속에 쌓여 있는 사진, 장식 그릇, 기념품을 꺼내 펼쳤다. 어머니는 장식 그릇과 기념품만을 분류해서 거실 한 켠에 놓았다. 그럼 원래 거실에 두었던 가족사진들은 어떻게 하나요, 라고 묻자 어머니는 그것들을 모두 다른 방으로 가져오라고 했다. 그곳은 어머니만의 작은 방이었다. 어머니는 이십 년 넘게 쓰는 당신의 문갑 위에 사진을 하나씩 올려 두었다. 원래 집에는 사진이 거실과 이곳 저곳에 흩어져 있었으나, 새로운 집에서 그것들은 새로운 위치를 부여 받았다.

나란히 놓인 사진을 봤다. 사진은 시간의 순서대로 놓여 있었다. 내가 백일 때 사진이 있었다. 그때의 아버지는 지금의 나와 같은 서른 다섯의 나이를 통과하고 있었다. 기분이 묘했다. 그 다음은 우리가 어렸을 때의 가족 사진, 그리고 몇 년 뒤의 가족사진. 이어 누나가 결혼하고 나서의 가족사진. 이어 내가 결혼하고 나서의 가족 사진 …… 시간이 지나며 사진에 등장하는 사람은 점차 늘어났고, 우리는 모두 웃고 있었다.

맨 처음 사진 속 아버지 어머니의 나이가 이제 나와 누나의 나이가 되었다. 이 사진들은 이전 집에도 계속 있었겠지만 이토록 눈 여겨 본 것은 십오 년 만이었다. 십오 년 …… 이사와 함께 십오 년 만에 다시 일깨워진 시간의 흐름은 너무나 빨랐던 것이고, 빠른 것 앞에 나는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왜 어머니는 사진만 따로 떼어 당신의 공간에 두었을까

그러나 그러한 감각도 잠시, 나는 어머니가 왜 사진만을 따로 자신만의 방에 두었는지 궁금해졌다. 모두가 함께 모이는 공용 공간에 이것들을 놓는다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사진을 목격하고 감상하고 증언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 왜 이다지도 작은 방에, 당신만의 공간에 사진을 두었던가. 나는 끝내 어머니에게 답을 묻지 못하고 집을 나섰다.

집에 돌아가는 길은 택시로 오십 분, 긴 거리였다. 나는 아까의 질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왜 어머니는 사진만 따로 떼어 당신의 공간에 두었을까. 문득 어머니는 자신만의 영역을 포기하지 않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만의 영역을 지킨다는 것이 자녀와 가족과 타인에 대해 이타적이고 헌신적이지 않다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어머니는 당신의 시간 대부분을 가족 다른 이들을 위해 배정하고 사용했다.

어머니의 시간을 갉아먹었던 건 우리였다. 그러나 다 갉아 먹히지는 않고 아주 조금은 끝내 남아있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만큼은 가족이라도 쉽게 양보됨 없이 어머니가 자신을 위해 지켜둔 공간이었다. 그 공간 속에 무엇이 있었는지는 지금도 알 수가 없다.

책과 글에 관심이 많던 대학생 때의 꿈, 유화를 그리던 사십 대 무렵의 나날, 당신 어머니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 그 누구도 쉽게 범접할 수 없는 당신만의 사유와 고집. 아마 이런 것들과 사진이 결을 나란히 하고 있지 않았나,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었다. 아무래도 좋았다. 사진은 어머니 당신만의 방에 놓여 있었다. 그것은 당신만의 것이었다.

누구나 자기만의 방을 갖고 살아 간다. 자기만의 방이 있다고 해서 꼭 그 속에서 살아가는 건 아니다. 방에서 나와 사람들과 어울리고 웃고 떠들고 또 그곳에서 잠을 자고 잠에서 깬다.

각자 자기만의 방에 앉아 각자의 생각 속으로

그러나 우리는 안다. 내가 웃고 떠드는 바로 이 순간에도, 내 등뒤에는 텅 빈 고요한 방 하나가 존재함을 안다. 어떤 날에는 사람들과 숨을 함께 쉬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날이 있다. 그럴 때면 붉어진 얼굴을 견디지 못하고 젖은 어둠처럼 자기만의 방으로 흘러 들어온다. 정지되어 있는 사진 속 시간을 보기도 하고, 술을 한 잔 하며 창 밖을 바라보기도 하고, 눈을 감고 죽은 이들을 떠올리기도 한다.

이 곳에는 아무도 들어올 수 없다. 동료도, 친구도, 가족도 들어올 수 없다. 달리 말하면 저들에겐 나의 방에 들어올 자격이 없는 것이다. 나만의 고요한 생각이 무엇인지 들춰볼 자격이 없는 것이다. 각자 자기만의 방에 앉아 각자의 생각 속으로 잠식하고 있다 …… 그런 것을 떠올리자 문득 소름이 돋았다. 나는 아마 어머니에게 그 사진에 대해 끝까지 물어보지 못하리라. ​
하나둘 불이 켜지는 시간이 되면 창문에 그려진 사내의 삶은 숨겨둔 술을 꺼낸다 그에게는 손을 떠는 습관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와 이 연대기를 기다려야 한다 언제나 그러하듯 슬픔은 완성되지 못한 채 낡아가는 집 같아서 나내는 붉어진 얼굴을 견디고 젖은 어둠이 흘러들어온다 어둠이 곧 촛불을 끌 것이다 한숨에도 흔들리는 사람이란 그런 것이다 그는 잠들지 못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 연대기의 한 장을 찢어내야 한다 밤은 언제나 찾아오므로 그가 꾼 꿈을 들춰볼 자격이 우리에겐 없으므로

- 유희경 시인의 <어떤 연대기>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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