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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서 일어난다

10년 전인 2009년 겨울, 나는 대학 졸업을 한 해 앞두고 있었고 겨울방학을 맞아 어떤 단체에서 몇 개월 잠시 일하기로 했다. 일을 한다고 했지만 사실 그 즈음의 경영학과 학생들이 그 타이틀을 얻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인턴 자리였고, 크게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비영리단체였기 때문에 인턴이라고 해봐야 모두의 선망을 받는 자리도 아니었다. 적지만 몇 만원 일한 대가를 받는 것도 없었기 때문에 그래, 경험을 쌓자는 마음으로 그 단체에 있었다고 해야 맞겠다.

우리는 매주 토요일 오전에 한 번씩 홍대입구역 근처 어느 건물에 모였다. 비영리단체 대표는 그 당시 아주 잘 나가는 컨설턴트였는데 뜻이 있어 사회적기업을 돕는 비영리단체를 만들었다고 했다.

우리는 토요일 아침에 모여 가끔 대표의 강의를 듣거나, 각자 자신이 맡은 클라이언트에게 어떤 솔루션을 제공할 것인지 등을 논의했다. 가끔은 클라이언트 회사에 나가서 현황을 듣거나 직원들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직원들은 대개 나이가 많았다. 나이 오십, 육십의 클라이언트를 돕는 스물 다섯의 대학생의 간격, 나는 이 간격이 어색하다고 느꼈다.

가끔은 우리가 클라이언트 회사에 나가지 않고, 그들이 우리가 모이던 건물로 찾아오는 경우가 있었다. 새로운 클라이언트와 프로젝트가 시작되거나 혹은 기존에 진행하던 것이 난관에 봉착해서 대표가 직접 이야기를 듣고 해법을 찾아야 하는 경우가 그랬다.

내가 담당하던 클라이언트의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세미나가 열렸다. 클라이언트 사장은 머리 속에 떠도는 답답함, 하소연, 억울함 등을 두서 없이 이야기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대표는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정면에 걸린 칠판으로 향했다. 그리고 사장이 이야기하는 것을 칠판에 그려가며 당신이 이야기하는 것이 이것이고, 이 부분이 문제이니, 이렇게 해결하는 것이 좋겠다고 순식간에 칠판 가득 도형과 글씨를 채워가며 강론했다.

그것은 일종의 위대한 쇼와 같았다. 듣자 이해하고, 이해하자 한 순간에 문제를 풀어버리는, 미리 각본이 짜인 것이라 믿어도 좋을 쇼였다. 나는 대표가 위대하다고 생각했다. 스물 다섯의 나이가 부끄럽다고 느꼈다. 나는 어서 나이를 더 먹고 싶었다.

누군가의 위대함을 느꼈던 십 년 전 어느 토요일 오전, 집으로 돌아오는 방향이 같았던 친구와 2호선 신촌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던 그때. 나는 플랫폼에 서서 불과 몇 시간 전 보았던 위대한 쇼의 감동을 다시 열변했다.

친구는 달아오른 내 얼굴을 보더니 차분한 얼굴로 말했다. 대표가 우리보다 나이가 열 살이나 많은데 당연히 열 살만큼의 시간이 그에게는 더 있었던 거라고, 그러니까 너는 너보다 열 살이 많은 사람의 수준을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열 살 후의 네가 그보다 더 높은 수준에 갈 것인지 아닐 것인지를 염려해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달아오른 얼굴이 조금 가라 앉았다. 아마 그때부터, 조금은 남다른 취미를 갖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내 삶이 이대로 충분한지, 스스로 부끄러운 수준은 아닌지 걱정될 때 위대한 사람들이 지금 내 나이에는 어떤 지경이었는지 찾아보는 게 재미있었다. 나이 육십에 성공을 거둔 이가 서른이었을 때는, 서른 하나였을 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때에도 그들은 위대함의 싹을 갖고 있었을까, 나는 그런 것이 궁금했다.

나는 일어서는 사람이 됐다
 
 자리에서 일어난 서른 다섯의 나는, 십 년 전 클라이언트에게 위대한 쇼를 보여주었던 서른 다섯 언저리의 대표의 모습에 얼마나 가까워져 있었을까.
 자리에서 일어난 서른 다섯의 나는, 십 년 전 클라이언트에게 위대한 쇼를 보여주었던 서른 다섯 언저리의 대표의 모습에 얼마나 가까워져 있었을까.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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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대표와 나 사이에는 십 년의 간격이 놓여 있었다. 십 년의 간격이라...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의 회사에서 직장생활을 한 것이 올 해로 십 년이 되었다.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 씻고 집을 나서 지하철 5호선을 탄다. 광화문역에서 내린다. 회사에 도착하면 자리에 앉아 일을 하다가 점심을 먹고, 또 가끔은 점심을 거르고 일을 하고 밖이 어둑해지면 퇴근해서 집으로 향한다. 아주 가끔은 저녁에 술을 마신다.

평범한 직장생활이다. 새로운 자극은 많지 않고, 겉보기에는 조금씩 달라 보이지만 대부분 비슷한 성격의 일이 주어진다. 하나의 일을 끝내고 또 무덤덤한 마음으로 다음의 일을 한다. 평범하기 때문에 안정적이지만 동시에 지금 내 안에 얼마나 무엇이 쌓여 있는지, 잘 하고 있는 건지, 조금이라도 진보하고 있는 것인지, 그런 것을 일깨워줄 변곡점이 없다.

때문에 내가 생각하는 직장인의 나는 십 년 전 수준에 머물러 있다. 십년 전의 나는 말주변이 없고, 말주변이 없어 말로 설득하는 것보다 글로 정리하는 것이 좋았고, 누군가의 앞에 나서서 상황을 정리하고 자리를 주도하지 않았다. 내향적이던 신입사원 시절의 모습이 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은 회의를 하다가 종종 자리에서 일어난다. 직장생활의 회의 시간은 생각보다 축축하고 무겁다. 창문이 없는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은 시간이 갈 수록 머리를 쥐어 뜯으며 괴로워한다. 뭔가 머리 속에 든 것은 많은데 하나의 줄기로 엮어지지 않을 때, 무슨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 문제조차 파악되지 않을 때, 어느 정도 결론이 났는데 이걸 보고서로 어떻게 담아야 할지 난감할 때, 사람들은 한숨을 쉬고 괴로워했다.

그럴 때는 나도 모르게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칠판 가득 도형과 글씨를 채워가며 이야기를 나눈다. 사람들은 내 말을 듣는다. 내가 칠판에 써내려가는 것들이 옳은지 정답인지 여부는 중요치 않다. 회의실에 모인 우리들의 표정은 여전히 무겁고 어둡다. 다만 누군가 이야기의 물꼬를 다시 트려고 일어섰다는 것.

자리에서 일어난 서른 다섯의 나는, 십 년 전 클라이언트에게 위대한 쇼를 보여주었던 서른 다섯 언저리의 대표의 모습에 얼마나 가까워져 있었을까.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단 한 번도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들의 고민을 해결하려 애쓸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내 모습을 경험하는 건 정말 낯설었다. 이게 끝이 아닐 것임을 안다. 아직도, 내가 낯설어 하는 내가 더 있었다.
내가 먹는 것은 벌써부터 나였다

내가 믿어온 것도 나였고
내가 결코 믿을 수 없다고 했던 것도 나였다
죽기 전에 가보고 싶은 안데스 소금호수
바이칼 마른 풀로 된 섬
샹그리라를 에돌아 가는 차마고도도 나다
먼 곳에 내가 더 많다
그때 힘이 없어
용서를 빌지 못한 그 사람도 아직 나였다
그때 용기가 없어
고백하지 못한 그 사람도 여전히 나였다
돌에 새기지 못해 잊어버린
그 많은 은혜도 다 나였다

아직도
내가 낯설어 하는 내가 더 있다

- ​이문재 시인 '밖에 더 많다' 중에서(문학동네시인선 052 <지금 여기가 맨 앞> 수록작)

지금 여기가 맨 앞

이문재 지음, 문학동네(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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