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은 다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각자가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서로의 외모, 취향, 생각이 다른 것을 이야기하며 그 다름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도 하고, 또 비슷한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며 좀 더 친근한 관계로 발전하기도 한다.

누군가와 친구 혹은 관계를 만들어감에 있어 '다름'을 인정하는 것은 그 관계의 시작을 의미한다. 아무리 비슷한 구석이 많은 사람들이 만나더라도 다른 부분은 분명히 있다. 각자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 이야기 나눌 때, 그 관계는 진정한 교류를 나눌 수 있는 것이 된다.

<증인>은 변호사 순호(정우성)가 그의 시선으로 자폐아 소녀 지우(김향기)를 바라보는 영화다. 순호가 지우를 대하는 태도는 우리가 흔히 장애인을 대하는 태도와 비슷하다. 사실 상대방의 상태에 대해서 잘 모르고, 그 사람의 태도가 어떤 것에서 오는 것인지 알기 어려워 상대방을 평범한 사람과 다르게 대하는 것이다. 그런 시선을 영화는 순호 역을 맡은 배우 정우성의 얼굴을 통해 보여준다.

민변 출신 대형 로펌 변호사 순호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자폐아

극 중 순호는 민변 출신의 변호사로 집안의 빚 때문에 좀 더 돈을 벌 수 있는 대형 로펌으로 이직하여 근무하는 인물이다. 영화 전반에 그가 아직은 사회의 어두운 영향을 많이 받지 않은 인물들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의 주변 인물인 아버지(박근형), 같은 학교 출신의 과거 민변 동료(송윤아)와 관계를 맺고 대화하는 장면은 그동안 순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는 사회의 어두운 곳에서 법적인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을 대변하며 살아왔던 인간적인 인물이다.

지우는 조금 다른 고등학생이다. 자폐아인 그는 등하교 때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고 여느 자폐아들이 그렇듯 소리에 예민하다. 돌출적으로 상황과 다른 말을 내뱉기도 하는 그를 바라보는 다른 친구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하지만 지우는 암기력이나 계산능력이 뛰어나 어떤 일이나 글을 정확히 기억하고 자신이 본 어떤 것을 잊지 않는다. 그런 지우가 어느 밤 건너편 집에서 벌어지는 어떤 사건을 목격하게 되면서 사건의 유일한 증인이 된다. 모든 것에 예민한 그는 본인이 기억하는 내용을 바탕으로 법적 진술을 하지만 자폐아라는 특성 때문에 법정에서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받는다.
    
대척점에 서있는 순호와 지우의 관계

영화는 순호와 지우를 대척점에 세운다. 순호는 한 사건의 살인자로 의심되는 사람을 변호하고, 지우는 그 사건을 목격한 증인으로 서로 반대되는 입장을 보인다. 순호는 의뢰자의 진술은 믿고 자폐아인 지우의 진술은 믿지 않는다. 그가 지우의 말을 믿지 않는 이유 중 가장 큰 부분은 자폐아의 진술이기 때문이다.

이건 흔히 우리가 그들에 대해 생각하는 방향과 비슷하다. 우리는 자폐아나 장애인들이 평범한 삶을 살지 못한다고 생각하거나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한다고 단정한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영화 속 순호의 변론과 논리가 더 신빙성이 있다고 쉽게 생각한다. 영화가 진행되는 초반 우리는 순호의 시선과 동일하게 지우를 '자폐아'로서 바라본다. 그렇기 때문에 지우가 본 어떤 상황이 잘못된 기억이나 진술일 거란 판단을 내리기 쉽다. 그건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편견이 그만큼 강하다는 뜻이다.  

지우의 생활이나 행동을 보면서 가장 쉽게 느낄 수 있는 건 동정심이다. 그가 일반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것이 고통스럽고 안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실제로 자폐아 가족의 삶에 어려운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삶의 대부분이 그런 어렵고 힘든 상황에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영화 속 순호는 지우의 엄마(장영남)에게 "저렇게 똑똑한데 자폐아만 아니었으면 참 좋았겠어요"라고 이야기한다. 사실 그의 말은 지우를 비하하려는 뜻은 아니었다. 극 중 지우의 엄마를 조금은 위로하기 위해 적당한 배려를 담아 던진 말이다. 그 말에 지우 엄마는 순호의 눈을 똑바로 보며 이렇게 답한다. "그러면 그건 지우가 아니죠."

우리는 눈이 나빠 안경을 쓰는 것에 대해 그게 다른 사람과 크게 다르다거나 결격 사유가 된다고 하지 않는다. 자폐아 그리고 장애인들도 단지 조금 다를 뿐이다. 그들도 우리와 같이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비장애인의 시선 속에서 장애인의 삶은 불행이 가득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들도 각자의 삶을 살며 나름의 행복을 누리고 있다. 그리고 그들도 각자 자신이 잘하는 것이나 좋아하는 일이 당연히 있다.

영화는 변호사 순호의 시선으로 지우를 바라본다. 순호는 본성적으로 착한 인물이다. 그가 새로운 대형 로펌에서 일하는 모습, 술자리의 모습은 너무나 어색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마치 자신의 자리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배우 정우성의 얼굴로 보여준다. 그가 가진 특유의 목소리와 선한 얼굴은 이 영화의 상황에 설득력을 더해준다. 순호가 지우를 만나 그들만의 규칙을 만들고 점점 자주 연락하게 되면서 지우를 바라보는 순호의 얼굴은 조금씩 변한다. 지우를 이용하려는 모습에서 진심으로 지우를 위하는 진정한 친구의 얼굴로 탈바꿈한다.

배우 김향기는 과장되지 않게 자폐아인 지우의 모습을 묘사했다. 특유의 말투와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는 모습, 소리에 예민해 귀를 막고 공포에 질려하는 모습을 표현하며 공감을 이끈다. 말을 하며 손을 움직이고 사람 눈을 피하는 등 다양한 몸짓을 활용하며 자폐아의 삶을 관객 앞에 가져다 놓는다.
    
흥미로운 법정 공방 통해 자폐아에 대한 정보 바로잡다 

영화 <증인>은 기본적으로 이런 두 인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두 인물의 관계가 가까워지는 과정에서 보이는 감정선도 좋지만 법정에서 벌어지는 공판의 모습도 흥미롭다.

두 인물이 법정 밖의 모습을 통해 자폐아가 어떤 삶을 살고 어떤 식으로 세상을 보는지를 보여준다면, 법정 안에서는 우리가 자폐아들에게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는지를 구체적인 자료로 보여준다. 물론 치열한 법정 공방 속에 짜깁기된 잘못된 정보를 주기도 하지만, 그건 영화의 긴장감을 주기 위한 도구일 뿐 곧 사실관계를 바로잡아 올바른 정보를 전달한다.

예를 들어, 순호와 지우가 밖에서 만났을 때 그들은 같이 하교를 하고 순호가 낸 퀴즈를 풀며 재미있게 보낸다. 자폐아의 시선으로 다가가 지우와 가까워지는 모습은 우리가 그들과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반면 법정에서 증인으로 나선 지우는 상대측 변호사인 순호와 다른 변호사에 의해 자폐아를 설명한 책의 일부 내용만 가지고 공격 당한다. 이는 일반적으로 자폐아에 대해 가지고 있는 우리의 편견을 이용한 것인데, 그것이 얼마나 심각하고 단편적인 부분인지에 관해 영화는 후반부에 하나하나 보여준다.
    
이 영화가 무엇보다 훌륭한 건 두 배우의 목소리와 얼굴로 자폐아가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걸 설득해낸다는 데 있다. 조금 다르게 보이는 이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 모두에겐 약점이나 고치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이 크든 작든 하나만 고치면 좀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 자신이 변할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하지만 어쩌면 그 특성은 변화시킬 수 없는 걸 수도 있다. 그래서 영화는 이야기한다. 그런 약점조차 나 자신이고, 또는 상대방이라고. 

영화는 자폐아나 장애인도 한 명의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단지 그들은 조금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이들을 바라볼 때 '장애가 없다면'이라는 가정을 하기보다 그들 자체를 그대로 인정하고 그들을 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부분의 우리들은 그들을 대할 때 그런 편견 속에서 관계를 시작하려 한다. 영화 속 순호가 지우에게 했던 실수들을 우리도 똑같이 하면서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건 결국 우리는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극 중 지우는 마치 관객에게 말하듯이 묻는다. "당신은 좋은 사람... 입니까?"라고.

<증인>은 기본적으로 아주 따뜻한 영화다. 이한 감독은 과거에도 이런 따뜻한 이야기가 담긴 영화들을 많이 만들어왔었다. 과거 그의 영화들이 감성적인 부분이 다소 강했던 데 반해 영화 <증인>은 감성적인 감정을 기본에 깔고 이성적으로도 자신의 할 말을 해내는 수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