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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는 못했지만 나만의 미래를 꿈꾸며 현재를 성실히 살아가는 낙관주의자입니다. 불안하지만 계속 나아가는 X세대 중년 아재의 좌충우돌 일상을 소개합니다.[편집자말]
 서울 근교의 템플스테이 연말 일정은 전부 마감된 지 오래였다. 가장 빠른 일정은 1월 둘째 주. 거침없이 예약했다.
 서울 근교의 템플스테이 연말 일정은 전부 마감된 지 오래였다. 가장 빠른 일정은 1월 둘째 주. 거침없이 예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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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새해 첫날, 좌천 발령으로 하루아침에 책상이 사라지는 경험을 했다. 그때 이후로 연말만 되면 불안감이 온몸을 휘감는다. 이제는 제법 시간이 지나 충격이 많이 가시기는 했지만, 여전히 두려움은 남아 있다.

무신론자이지만 이번 새해 인사발령 때는 부디 아무 일이 없기를 빌고 싶었다. 마침 차분히 생각을 정리하며 2019년을 맞이해야겠다 싶던 차에 템플스테이가 떠올랐다. 지금의 내게 딱이라는 생각에 서둘러 알아봤다. 지난 2018년 세밑의 일이었다.

이럴 수가. 나처럼 번뇌에 빠진 중생들이 이리도 많단 말인가? 서울 근교의 템플스테이 연말 일정은 전부 마감된 지 오래였다. 가장 빠른 일정은 1월 둘째 주. 거침없이 예약했다.

하지만 입소(?) 날짜가 점점 다가오니 불경스러운 근심들이 봄날 아지랑이처럼 솟아났다. 산속 추위 걱정을 시작으로 낯선 사람과 한방에서 자야 한다는 불안감까지. 설상가상으로 감기몸살 기운까지 찾아왔다. '굳이 무리해서 가야 할까...?' 내 마음 한구석에서 악마의 속삭임이 들려오는 찰나, 아내가 말했다.

"당신, 템플스테이 가기 싫어서 핑곗거리 찾으려고 머리 굴리는 거지? 정 그렇게 가기 싫으면 위약금 더 커지기 전에 빨리 취소를 하든가!"

아내는 나의 정신까지 꿰뚫고 있음이 분명하다.

걷고 쉬고 느끼고

템플스테이 입소 당일. 아내는 든든하게 먹고 가라며 돼지고기가 듬뿍 들어간 김치찌개를 차려줬다. 아무리 템플스테이지만 그래도 절에 들어가는데...?

"부처님이 이건 이해해 줄 거야."
 

내가 괜찮다고 극구 만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절 앞까지 따라왔다. 다음 날 일정 마치는 시간에 맞춰 음식이라도 싸올 기세였다. 나는 아내의 극진한 배웅 덕에 딴 길로 새지 않고 무사히 도착했다. 그리고 배정된 방으로 안내받았다.

사찰은 재건축이 몹시 까다롭기에 심혈을 기울여 템플스테이 숙소를 손봤다고 한다. 기대 이상으로 깔끔하고 넓은 원룸이었다. 방안에는 온기가 가득했다. 화장실도 비록 좁았지만, 청소가 아주 잘 돼 있었다.

이제 곧 나의 룸메이트가 들어올 시간이다. 제발 코를 심하게 골지 않는 사람이기를, 수다스럽지 않은 사람이기를, 자면서 이를 갈지 않는 사람이기를 빌었다. 그 순간, 나와 하룻밤을 함께 보낼 그 남자가 수줍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20대 후반의 청년이었다. 우리 둘은 간단히 인사한 뒤 오리엔테이션 장소로 함께 이동했다.
 
 1시간가량의 걷기 명상이 시작됐다. 스님은 발뒤꿈치, 새끼발가락, 발바닥 전체 순으로 평소보다 천천히 걸으며 우리 몸의 감각을 조금씩 느껴 보라고 말했다. 확실히 뭔가 다른 느낌이 들었다.
 1시간가량의 걷기 명상이 시작됐다. 스님은 발뒤꿈치, 새끼발가락, 발바닥 전체 순으로 평소보다 천천히 걸으며 우리 몸의 감각을 조금씩 느껴 보라고 말했다. 확실히 뭔가 다른 느낌이 들었다.
ⓒ 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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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사찰을 스님과 함께 둘러 보았다. 그리고 1시간 가량의 걷기 명상이 시작됐다. 스님은 발뒤꿈치, 새끼발가락, 발바닥 전체 순으로 평소보다 천천히 걸으며 우리 몸의 감각을 조금씩 느껴 보라고 말했다. 확실히 뭔가 다른 느낌이 들었다. 반면에 겨울 방학을 맞아 엄마 손에 이끌려 강제 입소한(?) 중학생 두 명은 걷기 명상을 하며 산을 오른다는 이야기에 울상이 됐다. 과연 저 학생들은 무사히 모든 과정을 마칠 수 있을까...?

하산 길에 외국인 참가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홍콩대학교 도시 경제학과에 다니는 그들은 한국의 전통문화를 체험하고 싶어 이곳을 찾았다고.

스님의 말씀에 따르면, 템플스테이는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정부의 요청으로 전국 20여 개의 사찰에서 시작됐다 한다. 이후 외국인과 내국인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은 덕에 현재는 100여 개의 사찰에서 운영 중이다. 정부 보조금이 있기에 1박에 5만 원 정도의 참가비만 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정부 보조가 없는 일본 같은 경우에는 한화로 1박에 30만 원이 훌쩍 넘는다고.

몸을 움직이니 머리가 비워지네

걷기 명상을 마치니 저녁 공양 시간이 됐다. 시계는 오후 4시 30분을 향하고 있었다. 사전에 이메일로 일정표를 받아봤을 때 가장 의아한 부분이었다. 해지기 전에 저녁을 먹고 오후 9시에 자는 게 가능할까. 한편으로는 맛없는 절밥을 통해 자연스럽게 1일 다이어트가 될 거라는 기대를 하기도 했다.

나의 착각이었다. 절밥은 맛있었다. 너무 맛있었다. 절밥이 이렇게 맛있다니. 반칙 아닌가. 식사 도중 참가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곳이 전국 사찰 중에서 밥이 맛있기로 꽤 유명하다고.

식사 후 예불을 마치니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우리는 에밀레종의 사본 격이라는 종을 쳐 볼 기회를 얻었다. 매년 12월 31일 밤 TV에서만 보던 타종의 기회가 나에게도 주어졌다. 가족의 건강과 나의 발전을 기원했다. 정해진 일정에 따라 생각을 비우고 몸을 쓰다 보니 인사발령에 대한 걱정 따위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0배를 넘어가니 약간의 현기증이 나면서 부처님이 보이는 것 같았다. 마음을 비우고(포기하고) 몸을 계속 움직였다. 그렇게 108배를 무사히 마쳤다.
 80배를 넘어가니 약간의 현기증이 나면서 부처님이 보이는 것 같았다. 마음을 비우고(포기하고) 몸을 계속 움직였다. 그렇게 108배를 무사히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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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템플스테이 일정의 꽃이라 할 수 있는 108배가 시작됐다. 신체의 다섯 곳이 바닥에 차례로 닿는 불교의 큰 절 형태라고 한다. 그야말로 오체투지였다.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육체는 땀으로 흠뻑 젖었고, 정신은 무념무상에 빠져들었다. 몸이 너무 고통스러우니 잡생각이 끼어들 여지조차 없었다. 

절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한숨 소리가 새어 나왔다. 내 무릎에서 나는 소리는 법당의 정적을 깨트렸다. 그만 포기하라는 악마의 속삭임이 다시 들려왔다. 90배를 넘어가니 약간의 현기증이 나면서 부처님이 보이는 것 같았다. 마음을 비우고(포기하고) 몸을 계속 움직였다. 그렇게 108배를 무사히 마쳤다.

"한 분도 포기하지 않고, 참으로 잘하셨습니다. 옆에 있는 서로를 격려해 주세요."

참가자들끼리 '수고했다'고 말하며 물을 나눠 마셨다. 절에서 전우애를 느끼게 될 줄은 몰랐다.

샤워를 마치고 이불 위에 고단한 육신을 누이니 오후 8시 40분이 조금 넘었다. 몸은 피곤했으나, 머릿속은 어느 때보다 맑아진 듯했다. 산사의 고요한 밤이 그렇게 저물었다.

108배를 마친 후의 마음으로

다음 날 오전 5시. 법당에서 촛불 명상을 했다. 오전 4시에 일어났지만 졸리진 않았다. 이후 108개의 구슬을 직접 꿰어 나만의 염주도 만들고, 티베트 스님들의 명상 수련법이라는 소금 만다라도 만들어 보았다. 이런 과정을 거치니 내가 상당한 내공을 가진 수련인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겨우 1박 2일만에?
 
 너무나 힘들었던 108배를 마치고 서로를 격려했던 마음으로 스스로를 다독여 본다.?올 한해도 잘해보자, 김 차장!
 너무나 힘들었던 108배를 마치고 서로를 격려했던 마음으로 스스로를 다독여 본다. 올 한해도 잘해보자, 김 차장!
ⓒ 김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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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정을 마치고 나니 육체가 고단했다. 그만큼 회사생활로 인해 피폐해진 나의 마음은 큰 위로를 받았다. 업무 부담과 스트레스 등으로 마음이 무거워질 때마다 이런 작은 휴식들로 비워내며 나아가면 된다는 것도 배우게 됐다. 이틀간의 수련은 내게 한 해의 회사 생활을 버티게 하는 원동력이 돼 줄 것이다. 비록 월요일 출근과 동시에 연기처럼 사라질지라도.

템플스테이를 끝내고 사찰을 나오자, 저 멀리 아내가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너무나 힘들었던 108배를 마치고 서로를 격려했던 마음으로 스스로를 다독여 본다. 올 한 해도 잘해 보자, 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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