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스 스파이> 포스터

<폴리스 스파이> 포스터 ⓒ 블리트 필름


2017년 한국에서 몇 안 되는 장르영화 감독인 오인천 감독은 <데스트랩>을 통해 제27회 미국 애리조나 국제영화제 최우수 액션 영화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게 되었다. 이 작품은 제22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도 초청되며 주목을 받았다. 탈옥한 연쇄살인마를 쫓던 형사가 DMZ 인근 숲속에서 지뢰를 밟고 범인과 대치하는 상황을 그린 이 작품은 긴박함을 유지하는 효율적인 연출과 쉴 틈 없는 스릴감, 적절한 유머와 강렬한 여주인공을 내세우며 공포 장르에서 아쉬움을 남겼던 오인천 감독의 예상치 못한 번뜩이는 재능을 보여주었다.
 
<폴리스 스파이>는 <데스트랩>의 연장선처럼 느껴지는 작품이다. 전작처럼 여성이 주인공이며 DMZ 근방에서 사건이 벌어진다. <데스트랩>에서는 간첩을 등장시켜 긴장감을 불어넣었다면 이 작품은 여주인공들을 간첩으로 설정하며 예기치 못한 스토리 진행을 선보인다. 아이돌 연습생 연주와 뛰어난 성과로 1계급 특진을 한 경찰 지원은 위장 간첩이다. 어느날 지원은 고위간첩 연주에게 목숨보다 귀중한 운반품을 갖고 북으로 복귀하라는 긴급명령을 하달 받는다. 육로를 통해 이동하던 지원은 DMZ 부근에서 운반품을 잃어버린다.
  
 <폴리스 스파이> 스틸컷

<폴리스 스파이> 스틸컷 ⓒ 블리트 필름

 
이 지점까지 작품을 본다면 전작 <데스트랩>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데스트랩>의 권민이 연쇄살인마를 쫓는 임무를 수행하다 DMZ에서 곤란한 상황에 처한 것처럼, <폴리스 스파이>의 지원 역시 가족의 목숨이 걸린 귀중품 운반이라는 임무를 수행하다 DMZ에서 곤란한 상황에 맞닥뜨린다. 이 지점에서 오인천 감독은 전작과 다른 방식으로 스릴을 유도한다.

<데스트랩>은 권민이 지뢰를 밟았다는 점, 손에 쥔 총 말고는 자신을 보호할 길이 없다는 점, 재다이얼 밖에 되지 않는 핸드폰과 연결된 블루투스 스피커를 이용해 구조를 요청한다는 점을 통해 긴장감을 주었다.
 
여기에 더해 연쇄살인마와 일본어를 쓰는 간첩의 등장은 권민의 상황과 맞물려 캐릭터 간에 강한 충돌을 이끌어 냈다. 반면 <폴리스 스파이>는 네 명의 여성 캐릭터를 통해 묘한 긴장감을 유발한다. 지원은 운반품을 북한으로 가져가지 못하면 가족이 목숨을 잃는 처지에 처해있다. 운반품을 잃어버린 지원 앞에는 두 여성 살인범이 나타난다. 이 두 사람은 시체를 처리해야 되지만 지원의 등장으로 일이 꼬여버린다. 여기에 북으로 올라간 줄만 알았던 연주가 사정이 생겨 지원에게 총구를 들이대면서 네 여성 사이의 관계가 스릴과 서스펜스를 형성한다.
  
 <폴리스 스파이> 스틸컷

<폴리스 스파이> 스틸컷 ⓒ 블리트 필름

 
여기에 양념처럼 더해진 무기가 블랙코미디이다. 블랙코미디는 비극의 제재로부터 웃음을 유발시킨다. 작품의 도입부에서 지원과 연주가 서로의 모습을 보며 "북한 간첩 주제에 남한 생활에 잘 적응했다"고 비아냥 대는 모습은 '웃픈' 느낌을 준다. 그녀들의 현실은 간첩이며 언제 국가에 의해 버림받거나 제거 당할지 모르는 처지다. 그럼에도 그녀들은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하며 남한 내에서의 자신들의 모습을 만들어 간다.
 
이런 웃음은 지원이 북으로 가져가야 되는 귀중한 운반품의 정체에서도 잘 드러난다. 일련번호가 적히지 않은, 김일성이 그려진 물건은 그녀 가족의 목숨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물품이었다. 전작에서 강인한 여성 형사를 등장시키며 여성의 용기를 강렬하게 전달했던 오인천 감독. 그는 이번 작품에서 사회의 체제와 현실의 장벽 속에서 고통과 아픔을 겪는 여성들의 심리를 스릴러의 형식으로 긴장감 넘치게 묘사해냈다.
 
오인천 감독은 스릴러의 장르적 특성에 있어서 희생자 혹은 나약한 존재로 소비되었던 여성 캐릭터를 주체적인 위치로 올려놓는 데 성공했다. 작품 속 네 명의 여성에게 개성 강한 캐릭터성과 동력을 부여한 이 작품은 독특한 전개와 긴장감을 유지하는 서스펜스, 여기에 '웃픈' 유머를 장착한 예상치 못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 키노라이츠, 루나글로벌스타에도 실립니다.
폴리스 스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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