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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기억이 꼭 너의 기억과 같지 않다면

/조용미,<기억의 행성>
/문학과지성사, 문학과지성 시인선 395 <기억의 행성> 수록


2012년 여름 서울 J 병원에서 태어난 조카는, 얼마 전 초등학교 입학 통지서를 받았다. 이제 곧 3월이면 초등학생이 된다.

팔 년 전 조카의 출산을 앞두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병원에 미리 가 있었는데, 조금 늦게 내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두 분은 초조한 얼굴로 대합실에서 손을 맞잡고 계셨다. 우리 셋은 대합실에 앉아 있었고, 오래 지나지 않아 조카가 태어났다.

몇 분 뒤 유리창 너머로 작은 얼굴을 보았다. 그 때 보았던 작은 얼굴의 아이는 시간이 팔 년 흘러 어느덧 초등학생이 된다. 조카에게 나는 삼촌이라는 관계로 인연이 매어져 있다. 제 부모의 형제인데 외삼촌과 친삼촌의 구분이 있겠냐는 제 엄마의 뜻에 따라 조카는 나를 외삼촌이라고 부르진 않았다.

얼마 전 내가 사는 집에 누나와 조카가 놀러 왔다. 저녁 식사를 하고 나선 거실을 등지고 설거지를 하는데 조카가 나를 불렀다. 삼촌이라 불렀다. 아직은 어린 아이의 목소리, 그 목소리가 나를 부르는 것이 좋았다. 나는 누군가의 삼촌이었다.

설거지를 하는 삼촌의 등에 대고 삼촌을 부르는 저 아이는, 먼 훗날 지금 이 순간을 과연 기억해 낼 수 있을까. 올 해 여덟 살이 된 조카는, 일곱 살이었을 때도 여섯 살이었을 때도 혹은 세 살, 두 살이었을 때도 나와 함께 놀았고 얼굴을 마주했고 목소리를 나누었다.

조카가 생각하는 가장 오래 전의 삼촌이란 언제 무렵일까, 등 너머로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런 것이 궁금했다. 내가 누군가의 삼촌이듯이, 나에게도 삼촌이 있었다. 나의 어머니는 위로 언니가 하나 밑으로 여동생이 하나, 가장 마지막으로 막내 남동생이 하나 있었는데 그 남동생이 나에게 삼촌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 전의 삼촌의 모습. 그건 애닯게도 그렇게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았다. 초등학교 1학년인가 2학년 시절, 단독주택에 살던 삼촌 집에 놀러 간 적이 있는데 삼촌과 숙모는 따뜻한 물에 타온 코코아 한 잔씩을 나와 누나에게 주었다. 어머니가 사준 적이 없던 코코아는 특별한 맛이었고 때문에 그 기억은 오래도록 간직되었다. 그게 내가 떠올린 가장 최초의, 삼촌에 대한 기억이다.

누군가에 대한 최초의 기억이라는 걸 계속 생각해 보았다. 어머니를 생각했다. 어머니 집에 남겨진 아주 오래된 가족사진. 가끔 집에 가서 가족사진을 볼 때 누나는 사진 찍을 당시의 순간을 기억하지만, 나는 좀처럼 그 기억에 동참할 수가 없다.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어머니의 모습은, 다섯 살인가 여섯 살 무렵으로 조금 후의 일이다. 햇살이 거실로 들어오는 오후였다. 어머니는 어린 내게 면도칼을 보여주더니, 혹시라도 당신이 정신을 잃었을 때 면도칼로 손 끝을 따서 정신이 들게 하라고 당부했다.

어린 나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고, 지금 생각해도 정신을 잃은 것과 손 끝을 따서 피가 돌게 하는 것의 관계는 아리송하다. 어머니는 그때 면도칼을 거실 선반 위에 올려 두셨는데, 아무리 손을 뻗어도 잡을 수 없는 높은 선반이었다. 어머니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시간이 흘러 그때의 일을 여쭤봐도 어머니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 순간을 기억하는 건 나뿐이었다.

아버지. 아버지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가 어렸을 때, 아버지 회사가 있었던 경기도 수원에서 오래 살았다. 그곳에서 유치원을 다녔고 초등학교를 다녔다. 정말 어렸을 때의 기억은 고스란히 수원에 남아 있다. 내가 유치원을 다니고 초등학교를 다닐 때 아버지는 회사 일로 정말 바빴다. 해외 출장이 잦았고 회사에서도 늦은 밤까지 일이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와 평일에 뭔가를 함께 한다는 건 좀처럼 드문 일이었는데, 어느 날 유치원에서 아버지 초청 행사를 열었다. 평일이었는데 아버지는 까만 정장을 입고 넥타이까지 매고 유치원에 오셔서 나와 함께 놀았다. 아마 행사가 끝나고 바로 회사에 가시려는 듯한 그 모습이 유치원 행사와는 꽤나 이질적이라고 느꼈다.

그럼에도, 유치원에 설치된 오락기를 연신 두드리는 내 옆에 앉아 계셨던 아버지가 기억난다. 어색한 표정, 커다란 몸집, 까만 옷, 넥타이, 우리 곁에 있던 유치원 선생님들, 많은 것들이 기억난다.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에 대한 최초의 기억이었다. 다만, 아버지에게 그 순간을 기억하시냐고 물어보진 못했다.

누군가에 대한 최초의 기억을 기억할수록 나는 조금씩 슬퍼졌다. 서른 다섯 해 동안 내 머리 속에 쌓아 올려진 타인에 대한 무수한 기억들. 그러나 각각의 기억이 출발하는 최초의 지점은 생각보다 늦었고, 그들과 어울렸던 그 이전의 순간은 기억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나와 당신의 역사는 내가 탄생하면서부터 시작했으나, 어떤 역사는 기억되지 않고 공백으로 지워져 갔다. 너희들도 다르지 않을 거라 믿었다. 너희들, 이제 태어난 지 몇 년 되지 않은 어린 너희들은 지금 이렇게 웃고 떠들고 어울린 시간을 먼 훗날 기억할 수 있을까. 너희들에게 지금 이 시간은 기억될 역사인지, 혹은 공백으로 지워져 갈 역사일지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물어보고 싶어졌다.

누군가의 기억이라는 것이 나에게만 존재한다면 그건 참 외롭고 슬플 일이다. 어떤 일이 발생했고, 어떤 시간이 존재했음을 나는 알지만 네가 모른다고 할 때, 그 때의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기억의 행성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나의 기억이 꼭 너의 기억과 같지 않다면, 만약 그렇다면 우린 어쩌면 다른 행성에서 살아가는 것일 텐데.


기억은 지구를 반 넘어 채우고 있습니다 지구는 기억의 출렁이는 파란 별, 지구는 기억이 파도치는 행성, 지구의 정체는 바로 인간의 기억입니다 빙산이 녹아 해마다 기억의 수위가 높아집니다 기억이 뛰어 오르거나 넘쳐나는 것을 막기 위해 강에는 얼음이 덮이지요

수증기가 끊임없이 대기권 밖으로 빠져나가도 지구의 기억이 줄어들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바다나 육지에서 증발한 기억은 구름이 되고 비와 눈이 되어 내리고 또 구름이 되고 바다로 가 다시 빗물이 되어 지상으로 스며듭니다 얼마나 많은 기억들이 대기 중에 흐르고 있는지요

기억은 영상 4도에서 가장 무겁기 때문에 한겨울에도 온갖 기억의 파편들은 굳어버리지 않고 얼음장 밑에서 헤엄쳐 다니며 살 수 있습니다 기억은 지구에서 가장 풍부한 자원입니다 그러므로 지구를 기억의 행성이라 부르지요

- 조용미 시인의 <기억의 행성>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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