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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백날 아끼면 뭐 해요, 남편이 홀랑 다 써버리는데... 저도 그냥 지를 거예요."

요즘 익명의 남편들 욕을 자주 듣습니다. 저도 아저씨라 그런지, 일면식도 없는 남자분들이 까이는 이야기를 듣는 게 썩 유쾌한 일은 아닙니다. 보통 이런 남편 욕은 아내의 미니멀 라이프 블로그 댓글이나 지인을 통해 접하게 되는데요, 처음에는 으레 하는 말이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자주 같은 유형의 고민이 반복되었습니다. 급기야는 아내가 진지하게 저를 붙잡고 물어봤습니다.

"자기야, 아끼면 좋은 거잖아. 근데 왜 이렇게 남편 때문에 힘들어할까? 남자로서 말해봐."

흠, 남자로서 말해보라니 마치 제가 전국남편연합 대표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절약을 해서 집에 돈이 모이면 좋지요. 그런데 실천 과정에서 분명 어려운 점이 있었을 거예요. 저야 미니멀리스트 부부를 지향하며 산 지 3년 차니 익숙해져서 괜찮은데 처음에는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제 일기장과 마음을 더듬어 미니멀리스트 부인의 남편으로 사는 유형별 고충과 도움말을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미니멀라이프 실천 후, 집에 남은 인테리어 소품은 사진에 있는 것이 전부입니다.
 미니멀라이프 실천 후, 집에 남은 인테리어 소품은 사진에 있는 것이 전부입니다.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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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충분히 공유하자

시험 공부 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처음에 무슨 책부터 봐야 하나요? 그렇습니다, 일단 총론을 익혀야 해요. 총론을 통해 큰 그림을 그린 다음에야 각론으로 들어가는 게 정석이지요. 그런데 최소한의 소비를 위한 미니멀 라이프는 아무래도 생활밀착형 공부다 보니 당장 오늘 장바구니 품목부터 달라지게 됩니다. 비유하자면 총론을 건너뛰고 각론부터 실행에 옮긴다고 해야 할까요. 문제는 열의에 불타는 아내가 갑자기 절약 실천에 돌입하게 되면 남편 입장에서 당황스러울 수 있다는 것이지요. 

요 근래 소박한 삶, 미니멀리즘, 절약 등 담백한 인생을 다룬 콘텐츠가 대거 나왔어요. 특히 육아 카페나 중고 커뮤니티 등지에서 세가 급속히 확장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미니멀리즘 콘텐츠를 먼저 접한 아내들이 실천 의지를 불태우는 경우가 많아요.

첫 갈등은 보통 마트에서 발생합니다. 저는 호기심이 많아 새로 나온 과자나 라면, 음료를 우선 주워 담는 편입니다. 이탈리아에서 왔다는 탄산수 신제품이 있길래 6개들이 팩을 카트에 넣었어요, 아몬드 초콜릿도 몇 봉지 집었던 것 같고요. 그런데 아내가 한 개씩만 남기고 다 빼는 거예요. 장난인가 싶어서 웃었는데, 계산대로 직행하는 겁니다. 아무리 아내 육아휴직 중 '외벌이 기간'이라고는 하지만 야박하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게 다 우리 가계 경제의 건전화를 위한 거야. 의사도 자기 군것질 줄이라고 했잖아."

틀린 말이 아니어서 잠자코 있긴 했지만, 힘들게 일해서 벌어온 돈으로 사소한 것조차 마음대로 못하나 싶어 잠깐 꼬여 있었습니다. 우리 집 카트에서는 탄산수와 아몬드 초콜릿이었지만 다른 집에서는 맥주가, 치킨이, 연어 초밥이 밖으로 나왔겠지요. 알뜰한 아내가 고마우면서도 야속한 감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집에 와서 제 감정을 솔직하게 밝혔습니다. 아내는 무척 당황하며 그런 줄 몰랐다며 사과를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최근 읽은 책들을 소개해주기 시작했습니다. 마이크 비킹의 <휘게 라이프>,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제프 시나바거의 <이너프>였습니다.
 
 삶의 동반자가 되어 주는 책이 없었다면 남들 시키는 대로만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삶의 동반자가 되어 주는 책이 없었다면 남들 시키는 대로만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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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책 제목은 처음 들었지만 <월든>은 고전 명작이라고 익히 들어왔기에 호감이 갔습니다. 펼쳐보니 오래전 대입 준비를 위해 잠깐 들추었던 책이더군요. '자연주의자'의 책이라고만 단정 짓고 넘어갔었는데 미니멀리스트를 위한 핵심 도서인 줄은 몰랐어요. 저는 월든을 정독하며 쉴 새 없이 밑줄을 쳐야만 했습니다. 소로우는 현대인의 스트레스와 고단함이 지나친 사치품 의존 때문이라며 우아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일갈했습니다. 조금만 옮겨 볼게요.

'가장 힘든 것은 당신이 당신 자신의 노예 감독일 때이다.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하고, 영혼을 살찌우지 못하는 사람들.'

'간소하게, 간소하게, 간소하게 살라! 제발 바라건대, 여러분의 일을 두 가지나 세 가지로 줄일 것이며, 백 가지나 천 가지가 되도록 하지 말라.'


물론 아내와 제가 꽂힌 문장은 달랐지만 바탕에 깔린 철학의 줄기는 닿아 있었어요. 그렇게 <월든>을 읽고 또 읽고, <와비사비 라이프>로 넘어가는 방식으로 미니멀리즘 선배님을 만났습니다.

이제는 제가 계산하기 전 카트를 점검해요. 더 뺄 건 없나 하고요. 2+1 과자 묶음이 자주 걸리긴 하는데, 차라리 그 돈으로 맛있는 샐러드 드레싱을 먹자며 항목을 바꾸기도 합니다. 맹목적 절약이 아니라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 선택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월간 경제 계획을 짜자

혹시 신년 계획 세우셨나요? 대부분 있으시더라고요. 그런데 며칠 안 가죠? 괜히 작심삼일이라는 사자성어가 회자되는 게 아닙니다. 남편들이 일시적으로 소박하고 아껴 쓰는 삶의 철학에 동의했다고 해도 안심해서는 안 됩니다. 진짜 고비는 이제부터거든요. 처음 한두 번 절약에 성공할 때는 신선하고 재미있는데 3~4주가 넘어가면 슬슬 고비가 와요. 미니멀리즘이 몸에 익으려고 하면 기존에 해오던 버릇들이 끈덕지게 저항합니다. 특히 일터에서 스트레스받거나 지칠 때 온갖 유혹이 들지요. 

'야. 언제까지 구질구질하게 살래? 인생 한 번인데 누려!'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안 쓰고 놀 수 있냐? 적당히 쓰고 살아.'


나름 일리가 있는 발상이라 내적 갈등이 심해집니다. 직장 동료에게 고민을 털어놓아도 별 도움이 안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너의 돈인데 왜 네가 마음대로 못해." 소리 한 번 듣고 나면 타격이 굉장해요. 인생 뭐 있나 싶기도 하고, 한 푼 두 푼 모아서 빌딩 세울 것도 아닌데 무슨 고생인가 싶습니다. 

저는 그럴 때마다 아내와 함께 월간 경제 계획을 짜고 지난달 결산을 했어요. 적게는 몇십만 원에서부터 많게는 백만 원 단위까지 생활비 계좌에 돈이 쌓이는 걸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나면 '허허 내가 무슨 삿된 망령에 휩싸였던가' 하며 평온을 되찾게 됩니다. 
 
 저희는 하루 수입 지출 기록도 합니다만, 하루가 힘들다면 일주일 단위부터 시작하셔도 좋습니다.
 저희는 하루 수입 지출 기록도 합니다만, 하루가 힘들다면 일주일 단위부터 시작하셔도 좋습니다.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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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에게 추상적인 명제보다 구체적인 숫자를 보여줘야 합니다. 누가 돈 버는 걸 마다하겠습니까. 절약하면서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면 반드시 부채의 수렁에서 탈출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겁니다. 지긋지긋한 신용 카드 할부와 대출금을 다 갚았을 때의 쾌감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자본주의 족쇄로부터 벗어난 장발장이 되어 소리라도 치고 싶다니까요. 

"나는 지금부터 플러스 인생이다! 이자는 내는 게 아니라, 받는 것이다!"

상상만 해도 기쁘시죠? 그럼 지금부터 월간 계획 짜는 법을 설명하겠습니다. 참고로 월급이 정해진 날짜에 예측 가능한 규모로 입금되는 상황을 전제로 하고 있으므로 감안하여 읽어주세요.

우선 달력을 펴 놓고 월중 행사를 적습니다. 누구누구 결혼식, 동생 생일, 겨울 평창 여행같이 굵직한 일정이 잡히겠지요. 그 일정을 바탕으로 월간 예산을 잡습니다. 예상 수입은 플러스, 예상 고정지출 기타 지출 변동지출은 마이너스가 됩니다. 고정지출은 관리비, 전기세, 통신 요금, 보험료 등이 해당되고 기타 지출은 경조사비, 기부, 재산세 정도가 되겠지요. 고정지출과 기타 지출은 어차피 나가야 할 돈이기에 줄이기가 어렵습니다. 핵심은 변동지출입니다.

변동지출에는 식비, 의복미용비, 생활용품비, 교통유류비, 의료비, 여가활동비가 포함되는데 저희는 식비와 의복미용비, 생활용품비에서 예산을 아끼는 편이에요. 과거 체크카드 내역을 정리해보니 의외로 외식비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더라고요. 제일 많이 쓴 달은 150만 원에 육박했습니다. 외식 마니아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쓸데없이 많이 일해야 했어요. 닥치는 대로 외부 강의를 수락했고, 수당이 떨어지는 프로젝트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목과 어깨가 늘 결렸어요. <월든>에서 소로우가 지적한 가엾은 현대인의 모습이 딱 저였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먹는 데서 큰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들이라, 양질의 음식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값비싼 외식을 대신해 집밥을 제대로 차려 먹었습니다. 신선한 재료를 풍성하게 구입해도 외식비의 절반 정도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물론 요리와 설거지의 수고로움은 건강한 노동으로 감수해야 하지만요. 저희 집은 아내가 요리, 제가 설거지와 분리수거를 합니다. 서로의 적성대로 합의를 보았습니다. 
 
 파스타도 해먹고, 동지 팥죽도 끓여 먹어요. 집밥은 사랑입니다.
 파스타도 해먹고, 동지 팥죽도 끓여 먹어요. 집밥은 사랑입니다.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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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복도 마찬가지예요. 저희는 분기별(계절별)로 의복비를 1인 기준 10만 원으로 고정하고 범위 내에서 지출했어요. 저는 옷을 좋아해서 필요하면 용돈(저희 집은 생활비 계좌를 중심으로 경제를 운용하고 사생활은 용돈을 받아 생활합니다)으로 더 사입기도 했습니다. 

기왕 용돈 이야기가 나왔으니 잠깐 언급하자면, 월 15만 원을 매달 받습니다. 그리고 개인 활동으로 획득한 가욋돈을 개인이 가져갑니다. 예를 들어 원고료의 100%, 외부 강의비의 25%, 대회나 공모전 수상금의 50% 이런 식으로요. 실제로 용돈보다 부부가 따로 버는 돈이 더 많기 때문에 용돈이 부족하다고 느낀 적은 없었습니다. 

이렇게 지출을 세분화하여 월간 계획을 짜면 내가 쓸 수 있는 돈의 단위가 보이기에 과소비를 막을 수 있습니다. 신랑 각시가 가계부를 뒤적거리며 월말 결산을 하는 재미는 해본 사람만 압니다. 기회가 된다면 자유적립식 적금 계좌를 터서 월간 결산에서 잉여 돈을 저축해 보세요. 자투리라고 우습게 여겼던 돈이 몇 년 만에 효자로 변신하는 마법을 보시게 될 겁니다. 자축의 의미로 그중 일부를 떼어 여행까지 다녀온다면 더욱 만족스럽겠죠?

너는 내 운명, 무조건 아내 편 들어주기

어쩌면 가장 사소하지만 아주 중요한 것을 말씀드리려고 해요. 바로 정서적 지지자가 되어주는 거예요. 한국처럼 과시 문화, 체면문화, 소비문화가 강한 곳에서 짠돌이 짠순이를 자처하며 사는 게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아내나 남편 둘 중 한 사람만 뼈 빠지게 노력하고 배우자가 방관하면 속이 터져요. 남편 중에는 단지 궁상맞아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싫어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또 오해도 쉽게 받습니다. 집을 소유하고 있고, 대출도 없는데 왜 그렇게까지 사냐고 해요. 저희 부부는 삶을 단순하게 살고 싶어서 절약합니다. 절약은 단순히 돈의 축적보다도 일상의 생활 자체를 가볍게 해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사치품이나 외식에 의존하지 않게 되니 큰돈이 필요치 않고, 일을 과하게 할 필요도 없어집니다.

같은 맥락으로 안 쓰는 물건을 버리거나 주변 사람에게 나눔 하면 집안 공간을 넓게 쓸 수 있고, 물건을 관리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과 노동이 줄어들어요. 아이들과 그림책 읽고, 산책 갈 여유가 확보됩니다. 
 
 킥보드 들고 농구장 돌기, 커피 알갱이 녹여 붓질 놀이하기. 물건에 시간을 덜 뺏기면 만들 수 있는 가족과의 시간입니다.
 킥보드 들고 농구장 돌기, 커피 알갱이 녹여 붓질 놀이하기. 물건에 시간을 덜 뺏기면 만들 수 있는 가족과의 시간입니다.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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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모든 의미와 동기를 현실 세계에서 설명하고 다닐 수는 없지요. 절약하며 간소하게 하는 삶이 즐거워지려면 남들이 뭐라 하건 말건 함께 사는 부부가 뜻이 잘 통해야 합니다. 사회에서는 소수 의견일지라도 우리끼리 쿵짝이 맞으면, 신명 나고 의욕이 솟아요. 배우자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응원해 주세요. 지지와 격려의 말 한마디는 정말 힘이 셉니다. 

아내에게 삶을 진지하고 건강하게 살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멋지다고 말했더니 아내가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감동으로 울릴 마음은 전혀 없었는데 졸지에 괜찮은 남편처럼 되어버렸어요. 절약해서 통장 잔고 두둑해지지, 깨끗하고 맛있는 집밥 해주지, 근사한 책 추천해주지 그러니까 저는 고마운 일밖에 없어서 그렇게 말한 것뿐이었거든요. 게다가 립서비스는 무료예요. 공짜인 데다 효과도 만점이면 자주 해야죠. 아, 공짜 좋아하는 걸 보니 저도 뼛속까지 미니멀리스트 부인을 둔 남편이 된 것 같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아내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dahyun0421)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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