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진지한 양심에 근거한 병역거부가 무죄라는 대법원의 판결이후 후속조치로 정부안의 대체복무법안이 입법예고까지 되었는데, 국방부가 느닷없이 병역거부가 양심적이면, 병역이행이 비양심적으로 비춰지는 오해가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에 '양심적 거부' 대신에 '종교적 거부'로 바꾸어 사용하겠다는 발표를 하면서 해묵은 용어 시비가 산불 번지듯이 확산되고 있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양심이란 용어의 의미를 설명하면서 오해할 필요가 없다고 신신당부를 하면서까지 판결문에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용어를 명기했는데, 국방부가 갑자기 판결의 취지에 역행을 하니 진의를 의심받는 것이다. 양심적 거부(conscientious objection. 'CO')라는 용어는, 헌법에 양심의 자유 조항을 명기한 국가에서 고유명사화 되어 있다. 병역거부를 혹독하게 처벌했던 소비에트 시대에도, 나치 시대에도 병역거부를 종교적 병역거부로 표기하지 않았다.

병역거부의 동기가 된 사유는 철학적, 윤리적, 정치적, 도덕적, 등 다양하지만 양심적 병역거부로 통칭하고 있다. 용어시비는 대체복무가 시작되어도 끊임없이 계속될 것이다. 그렇다고 자살자 사고자가 빈발하도록 대체복무를 만들어서 해결할 수는 없다. 병역이행자들의 환경을 개선해야만 용어에 대한 시비는 사라질 것이다. 법률용어로 다양하게 사용되는 '양심적 거부'라는 용어는 오해의 대상이 아니다.

예를 들면, 양심적 거부 뒤에 낙태가 따라오면 양심적 낙태거부다(conscientious objection to abortion) 가톨릭 신자가 교리에 따라서 낙태를 거부한다고 낙태를 하는 내가 비양심이냐고 아무도 분노하지 않는다. 신자가 아니어도 생명에 대한 신성때문에 낙태를 거부하기 때문에 양심적 낙태거부로 부른다. 

병역거부의 유래가 종교에서 시작되었지만, 비종교인도 병역거부를 하기 때문에 당연히 양심적 거부로 부른다. 어느 사회도 군대가 존재하고 군복무자가 있지만, 한국처럼 양심이라는 용어로 다투지 않는다.  유럽인권재판소, 미주인권재판소 등 국제사법계가 병역거부를 사상, 종교 신념의 자유 위반으로 포괄하면서도 총칭하여 양심적 거부라는 용어를 사용해서 의미 전달을 분명히 해 놓았기 때문이다. 병역거부가 공론화된 2000년 초기부터 국방부는 수차례 공모까지 하면서 명칭 변경을 했지만, 돌고 돌아도 늘 그 자리에 멈추는 회전문처럼 대체 용어는 통용되지 않았다.
따라서 명칭 변경을 취소해야 한다.

앞장서서 지지 성명을 낸 보수교계의 대표인 교회 언론회는, 그동안 일관되게 거부가 종교적이면 병역 이행을 하는 개신교가 비종교로 비쳐질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반대를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동일한 명칭임에도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해서 이를 두고서도 해석이 분분하다. 긴 안목을 가져야 한다.

이번 판결로 더 이상 병역거부를 처벌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에, 개신교 소속 교단의 청년들 가운데서도 양심의 갈등 없이 대체복무를 선택할 것이라고 예상을 할 수 있다. 만약 한국 개신교 청년들도 병역거부 선언을 한다고 가정했을 때, '양심'이란 용어를 살려 놓아야 병역거부를 이단시한 개신교단도 교리시비에서 벗어날 수가 있고 청년들도 보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함에도 종교적 병역거부라는 용어 변경에 찬성을 하여 왜 운신의 폭을 좁히고 있는지 지켜 볼 일이다.

명칭은 행위의 속성이나 본질을 가장 잘 표현해야 하고 그래야만 의미가 분명해진다. 병역거부자들도 양심이라는 용어가 거부감을 주고 오해를 가지게 하여 확산과 포섭을 어렵게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양심적 병역거부라고 주장하는 것은 행위의 정당과 당위 때문이다. 이제 법적으로는 인정되었지만, 아직 다수가 가진 오해를 풀려면, 더 시간이 필요하다. 이 오해가 해소되어야만 이행자나 거부자 모두 시민으로서 누려야하는 양심의 자유가 더 폭넓게 침해를 받지 않게 된다. 병역 이행자들은 양심이라는 용어에 예민해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거부자 어느 누구도 이행자를 향해 비양심적이라고 한 적이 없기에 거부자를 상대로 억울함을 풀려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따져보면, 이행자의 상실감과 박탈감, 거부자의 수감 생활, 이 모두는 분단의 현실 때문이다.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마음을 넓히면 각자의 영역에서 공동체를 위해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병역거부 당사자들이 변경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국방부가 어떻게 부르든 의미가 없고 통용이 될 수 없다. 아무런 논거도 제시하지 않고, 다만 다수의 오해 해소를 위해서라고 하는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오해는 오해를 하고 있는 당사자가 풀면 간단하게 해결이 된다. 자칫 용어 시비가 징벌적 대체복무제도 도입으로 이어지게 하는 에너지가 되게 해서는 안 된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이유-사회의 제반 문제거리들에 대한 해결책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고 그 이면 에 숨은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리고저.... 관심분야- 소수자의 인권문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