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도쿄의 한 한일교류회 모습. 한국인과 일본인들이 조를 나눠 앉아 모임 진행방식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도쿄의 한 한일교류회 모습. 한국인과 일본인들이 조를 나눠 앉아 모임 진행방식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 김경년

관련사진보기

 
한국인과 일본인의 만남, '교류회'를 아시나요

이곳에 온 지 얼마 안 돼 지인의 소개로 재미있는 모임을 알게 됐다. '교류회'라는 모임인데, 일본에 사는 한국인과 한국을 알고 싶어하는 일본인들이 서로 만나 교류하자는 취지이다. 검색을 해보면 내가 살고 있는 도쿄에만도 대충 신주쿠, 신오쿠보, 닛포리, 시모기타자와 등에서 하는 교류회가 5-6개 눈에 띈다.

내가 알게 된 교류회는 서울의 홍대 앞처럼 카페나 소극장이 많고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시모기타자와(下北沢)라는 곳에서 주말마다 열린다. 10여 평 정도의 작은 공간에서 열리는데, 적으면 20명 많으면 30명 정도 나오는 것 같다. 매번 한국인, 일본인이 거의 반반씩 수를 맞춰 참석하는 걸 보면 참 신기하다.

참가하는 한국 사람들은 주로 워킹홀리데이로 온 젊은이들이나 회사원, 유학생들로 대부분 타국에서 혼자 사는 외로움을 달래려고 나오는 사람들이다. 여기서 일본 친구를 사귀면 좋고, 안되더라도 오랜만에 만난 한국 사람들과 일주일동안 한마디도 못해본 한국말이라도 실컷 해보고 싶은 사람들 같다. 한편 일본인들은 이러저러한 계기로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사람들인데 20대 여성부터 70대 남성까지 의외로 층이 다양하다.

5-6명씩 조를 나눠 앉아 자기소개를 한 뒤, '한국(또는 일본)에 가면 먹고싶은 음식', '올해 못 이룬 소망' 같이 그날의 주제에 대해 얘기하며 분위기를 달구어간다. 뭐 뻔한 주제에 뻔한 답변들이지만, 다소 엉뚱하고 의외의 얘기들에 서로가 말 한마디 한마디 귀를 쫑긋 세운다.

지난 연말 마지막 모임의 주제는 '크리스마스 하면 생각나는 영화'였다. 우리 조에 속한 한국 사람들은 당연히 <나홀로 집에>를 꼽았는데, 일본 사람들은 <호마롱>이라고 답했다. 호마롱? 그런 일본 영화가 있었나? 주인공이 어떻게 생겼는지, 줄거리가 어떻게 되는지 몇 번 문답이 오간 다음에 한국 사람들은 그제사 손뼉을 치며 빵 터지고 말았다. "그게 나홀로 집에잖아." 그러니까 호마롱은 '홈 얼론(Home Alone, 나홀로 집에)'이었고, 결국 같은 영화를 두고 헤맸던 것이다.

 
 일본 NHK TV에서 매주 일요일 밤 방영되는 <옥녀-운명의 여인>의 한 장면. 사진은 한국어로 돼있는 DVD판을 캡처한 것이어서 일본어 자막이 있다.
 일본 NHK TV에서 매주 일요일 밤 방영되는 <오크녀-운명의 여인>의 한 장면. 사진은 한국어로 돼있는 DVD판을 캡처한 것이어서 일본어 자막이 있다.
ⓒ 김경년

관련사진보기

 
꺼진 불도 다시 살려주는 '한류' 이야기

그러나 그날의 주제와 관계없이 교류회의 가장 인기있는 이야깃거리는 아무래도 '한류'가 아닐까. 서로 질문거리가 떨어질 즈음 K팝이나 한국드라마에 관한 질문을 하면 흐릿해진 눈동자에 다시 생기가 돌 정도로 한류라는 주제는 분위기를 살리는 즉효약이다.

교류회에 나온 일본인들에게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를 물어보면 둘 중 하나는 반드시 K팝, 아니면 한국드라마 때문이라고 답을 한다. 누굴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비꾸방(빅뱅), 토와이스(트와이스), 보탄쇼넨단(방탄소년단), 세븐틴, 갓세븐 등 우리 귀에도 익숙한 유명 아이돌들의 이름이 줄줄이 나온다.

재밌는 건 우리가 전혀 듣도 보도 못한 아이돌의 이름이 나온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데뷔하지 않고(못하고?) 일본으로 바로 건너와 시작한 아이돌들도 많은 모양이다. 실제로 '한류의 성지'라고 불리는 신오쿠보에 가면 그곳에서 공연하고 팬을 모으는 '신오쿠보 아이돌'들이 상당수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매일 일정 시간이 되면 키가 크고 화려한 옷을 입은 미소년 너댓명이 거리를 돌아다니며 행인들에게 '몇 시까지 공연장에 오면 우릴 볼 수 있다'는 전단을 나눠주는 광경을 볼 수 있다. 그 뒤엔 피켓을 든 일본인 여성팬들이 줄지어 따라다니기도 한다. 대한민국 아이돌 파이팅이다!!!

지난주 교류회에서 만난 한 50대 후반 일본인 아주머니가 작년에 한국의 파주에 다녀왔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파주는 일반 외국인 관광객들이 잘 가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한국 아이돌 중 한 명이 군대에 가기 때문에 팬클럽 회원들과 함께 배웅을 다녀왔다는 것이다. 그룹 이름을 물어보니 우리 조 누구도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다. 가끔 한류스타가 입소할 때 뉴스를 보면 일본인 아줌마부대들이 부대 정문에서 배웅하는 모습을 보고 신기해했는데, 그중 한 명을 눈앞에서 보게 된 것이다.

드라마 <겨울연가>나 <대장금>으로 처음으로 일본에서 한류붐이 일었던 2000년대 초반에는 팬층이 30대~50대 주부들이었지만, 지금은 트와이스, 방탄소년단 같은 K팝을 좋아하는 10~20대 젊은층까지 확실히 파고들고 있다.

요즘 강제징용자 배상판결이나 방탄소년단 원폭티셔츠 착용 등으로 한일 관계가 냉각되어 있지만, 젊은층들은 정치문제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다. 필자가 공부하고 있는 게이오대학의 한 한국인 교수는 이렇게 얘기했다.

"수업시간에 방탄소년단을 좋아한다는 학생 한 명이 '정치는 정치고 문화는 문화잖아요, 아무리 국가간 관계가 나빠져도 방탄소년단은 계속 좋아할 것 같아요'라고 말하더라고요. 내가 처음 부임했을 때와 격세지감이 느껴졌어요."

 
 혼밥하는 직장인의 모습을 그린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 사진은 지난해 서울 로케 장면이다.
 혼밥하는 직장인의 모습을 그린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 사진은 지난해 서울 로케 장면이다.
ⓒ 김경년

관련사진보기

 
한류 인기에 으쓱하지만, 그게 다일까

매주 일요일 밤 11시 일본의 TV채널 1번 NHK종합(한국의 KBS1같은 채널이다)에서는 '오크녀-운명의 여인'란 제목의 한국 사극 드라마가 방영된다. 2016년 MBC에서 '옥중화'란 이름으로 방영된 것인데, NHK가 위성방송(BS)에서 내보내다가 반응이 좋자 지상파로 승격된 것이다. 주인공 '옥녀'를 '오크녀'라고 부르고, 조선시대 임금님이나 갓 쓴 선비들의 대화가 일본말로 더빙돼서 나오니 좀 웃길 때도 있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다.

민방TV나 지방TV에서는 거의 매일 한국의 아침 드라마같은 게 일본어 자막을 넣고 한국말 그대로 나오는데, 평소 드라마에 별 관심이 없던 나는 무슨 드라마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어쩌다 식당이나 술집에 갔다가 한국 드라마 팬을 만나는 건 드물지 않은 일이다. 한번은 도쿄의 번화가 아카사카의 한 술집에 갔는데, 우리가 한국 사람임을 알아본 주인이 NHK위성방송에서 <태왕사신기>, <주몽>같은 한국 역사극을 재밌게 봤다며 "옛날 한국 역사가 그렇게 대단했는지 몰랐다"고 말해 어깨가 으쓱했다.

그러다 지난 여름 치바에 함께 여행갔던 70대 일본인 기자에게 "조선왕조를 알려고 한국의 TV사극을 열심히 보고 있다"는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과연 일본의 TV사극을 본 적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없다. 왜일까. 한국의 공중파 TV에서는 일본의 드라마를 틀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번호도 외우기 힘든 변두리 케이블TV에서 요즘 유행하는 <고독한 미식가> 정도를 본 기억이 다다.

아직은 일본에 대한 국민감정이 공중파TV에서까지 일본 드라마를 틀어주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미 한 해 700만 명이 넘는 한국인이 일본을 찾는 시대가 됐고, 웬만큼 유명한 일본 드라마는 유튜브 등 인터넷 사이트에서 다 찾아보고 있다.

일본인들이 이렇게 한국을 잘 알아가고 있을 때 우린 과연 일본을 얼마나 잘 알고 있나 싶다. 그런 일본을 경계해야 한다는 얘길 하자는 게 아니다. 일본은 곱든 밉든 어쨌든 과거에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천년만년 이웃으로 함께 살아가야 할 나라다. 그리고 과거의 불행했던 역사를 반복하지 않고 평화롭게 살아가자면 가장 먼저 알아가야 할 나라이기도 하다. 좋으면 좋아서 알아야 하고, 미우면 미워서 알아야 한다.

20년 전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결정할 때, 한국에서는 일본의 문화가 물밀 듯 밀려올 것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컸다. 그러나 결과는 거꾸로였다.

물론 처음부터 앞머리를 밀고 칼을 찬 사무라이가 나오는 드라마를 당장 도입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비교적 거부감이 덜한 현대물부터 문을 연다면 어떨까. 한류의 인기에 마냥 어깨를 으쓱하고 있을 때만은 아닌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한국언론진흥재단 후원으로 도쿄 게이오대학에서 1년간 방문연구원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