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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매년 새해가 밝아오면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인들이 꼭 들르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들이 잠들어 계시는 국립현충원입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오늘 오전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 들러 참배하고 "대한민국 새로운 100년, 함께 잘 사는 나라!"라는 방명록을 남겼습니다.

문 대통령이 강조했다시피 올해는 3.1혁명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역사적인 해입니다. 그러한 의미를 생각한다면 현충원에 앞서 우리가 잊지 말고 꼭 들어야 하는 장소가 있습니다.

바로 효창원(효창공원)입니다. 효창원에는 백범 김구 선생을 비롯해 이동녕, 차리석, 조성환 선생 등 임시정부의 지도자들과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 등 독립영웅들이 잠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효창원(효창공원) 임정요인 묘역(좌로부터 조성환, 이동녕, 차리석 선생의 묘)
 효창원(효창공원) 임정요인 묘역(좌로부터 조성환, 이동녕, 차리석 선생의 묘)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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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날을 맞아 정치권에서 일제히 현충원으로 향하는 동안, 한 무리의 시민들도 효창원을 찾았습니다. 이들은 청년백범·효창원을 사랑하는 사람들·선비문화학회 회원들로 매년 1월 1일이면 효창원에 모여 순국선열들과의 만남으로 새해를 시작하는 전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019년 새해 첫 날, 효창원을 찾은 시민들
 2019년 새해 첫 날, 효창원을 찾은 시민들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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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은 최준례 여사 95주기였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사실 하나가 더 있습니다. 1월 1일은 김구 선생의 부인인 최준례 여사의 기일이기도 합니다. 최준례 여사는 독립운동을 하는 남편을 따라 상하이까지 건너와 임시정부의 안살림을 도맡은 분입니다.

하지만 둘째 신(信)을 낳은 뒤 산후조리 도중 계단에서 구르는 바람에 얻은 폐병으로 불과 36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일본의 감시로 인해 운신의 폭이 자유롭지 못했던 남편 김구는 아내의 임종을 보지도 못한 채 사별해야만 했습니다.

효창원에 모인 시민들은 임시정부 요인 묘역(이동녕·조성환·차리석)부터 삼의사 묘역(안중근·이봉창·윤봉길·백정기)을 차례로 참배한 뒤 김구 선생과 최준례 여사의 합장묘역 앞에서 전통방식으로 추모 제례를 지냈습니다.

제례를 주관한 주최 측 관계자는 "많은 사람들이 김구 선생 묘역에 김구 선생 한 분만 계시는 걸로 알고 있다"며 "최준례 여사가 함께 잠들어 있다는 사실을 명시한 안내판 설치가 시급하다"는 바람을 드러냈습니다.
 
김구 선생 부인 최준례 여사 95주기를 맞아 김구 선생과 최준례 여사 합장묘역 앞에서 추모제례를 올리는 모습. 봉분 위에 『임정로드 4000km』를 올림으로써 책을 헌정하는 의식도 함께 치렀다.
 김구 선생 부인 최준례 여사 95주기를 맞아 김구 선생과 최준례 여사 합장묘역 앞에서 추모제례를 올리는 모습. 봉분 위에 『임정로드 4000km』를 올림으로써 책을 헌정하는 의식도 함께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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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창원 백범 김구 선생 묘역에서 최준례 여사 95주기 추모제례를 지내는 모습
 효창원 백범 김구 선생 묘역에서 최준례 여사 95주기 추모제례를 지내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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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선열들께 헌정한 <임정로드 4000km>

어제 현장에서는 <오마이뉴스>에서 기획한 임정투어 가이드북 <임정로드 4000km>의 출간을 효창원에 잠들어 계신 선열들께 고하는 헌정식도 거행됐습니다.

이 책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오마이뉴스>의 청년 기자 4인(김종훈·김혜주·정교진·최한솔)이 20박 21일 동안 중국 상하이부터 충칭까지 임시정부의 발자취를 답사한 뒤 펴낸 국내 최초 대한민국 임시정부 순례길 여행가이드북입니다.

특히 이 책에는 김구 선생과 함께 임시정부의 파수꾼 노릇을 했던 독립운동가 동암 차리석 선생의 아들 차영조 선생의 추천사가 들어가 그 의미를 더하고 있습니다.
 
부친 차리석 선생의 묘전에서『임정로드 4000km』를 들고 있는 차영조 선생
 부친 차리석 선생의 묘전에서『임정로드 4000km』를 들고 있는 차영조 선생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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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창원 선열들께『임정로드 4000km』출간을 고하는 차영조 선생
 효창원 선열들께『임정로드 4000km』출간을 고하는 차영조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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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후손 자격으로 참배단을 대표해 책을 헌정한 차영조 선생은 "우리 젊은이들이 국권회복을 위해 힘쓰다 돌아가신 순국선열들의 발자취를 좇아다녀온 뒤, 이렇듯 멋진 책을 내주어서 너무나도 기특하고 감격스럽다"는 소회를 밝혔습니다. 그리고 "여기 잠들어 계신 순국선열들께 이 책을 먼저 바친다"는 말을 고하며 부친을 비롯한 선열들의 묘전에 책을 헌정했습니다.
 
효창원 선열들께『임정로드 4000km』를 헌정하는 차영조 선생
 효창원 선열들께『임정로드 4000km』를 헌정하는 차영조 선생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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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 선생을 시해한 안두희를 정의봉으로 처단한 의인(義人) 박기서 선생께 『임정로드 4000km』를 헌정하는 모습
 백범 김구 선생을 시해한 안두희를 정의봉으로 처단한 의인(義人) 박기서 선생께 『임정로드 4000km』를 헌정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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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를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선생은 "올해 대한민국 100주년을 맞아 정말 의미 있는 책을 만나 행복한 날"이라며 "많은 청년들이 이 책을 들고 우리 선열들의 흔적을 찾아 떠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걷지 않는 길은 사라진다

올해는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지만, 우리의 역사와 뿌리에 대한 기억은 점점 희미해져만 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 탄생한 '건국절' 논란 역시 우리의 역사에 대한 무지몽매한 태도에서 비롯됐습니다.

"걷지 않는 길은 사라진다"

이 책이 독자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입니다. 역사의 진실이 아무리 귀중해도, 기억하지 않는다면 소용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대한민국 100년을 맞아 임정로드로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 '나는 누구고, 어디에서 왔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화두 삼아 한 번 걸어가 보기를 권합니다. 김구, 이동녕, 차리석, 이봉창, 윤봉길, 장준하 등등... 길 위에서 만나는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그 답의 힌트를 제시해주리라 믿습니다.
 
새해 첫 날, 효창원 선열묘역을 참배한 시민들
 새해 첫 날, 효창원 선열묘역을 참배한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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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영조 선생 추천사 전문]

"우리 부모 세대의 투쟁을 널리 알리는 신호탄이 되어주길"
- 차영조 (독립운동가 차리석 선생 후손 / 효창원7위선열기념사업회장)

내가 태어난 곳은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가 있던 중국 충칭입니다. 나는 1944년 1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이셨던 부친 동암 차리석 선생과 임시정부의 안살림꾼이셨던 모친 홍매영 여사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부친께서 해방 직후 작고하시는 바람에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없으나, 어릴 적 아버지하면 떠오르는 기억은 그저 원망의 기억밖에 없습니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하는 세상'에서 우리들은 정권의 탄압을 피해 정체를 숨기고 살아야만 했습니다. 

모친은 내가 차리석 선생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핍박을 받을까 걱정되어 아예 성을 '신(申)'씨로 바꿔버렸습니다. 제가 '차영조'라는 제 진짜 이름을 되찾은 것은 성인이 된 이후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왜 독립운동을 하셔서 내게 이런 고생을 하게 만드는가" 하고 아버지를 원망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흘러 내가 아버지의 나이가 되고보니 아버지의 마음을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여 나는 여생을 부모님의 명예를 회복하고, 남은 이들에게 우리 부모 세대의 투쟁을 널리 알리는 데 힘쓰기로 마음 먹고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권 아래 불거진 소위 '건국절' 논란과 국정교과서 논란은 다시 한 번 제 가슴에 대못을 박았습니다. 독립운동가들이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살아야만 했던 과거로 회귀하는 것 같아 피눈물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촛불혁명으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역사가 바로 서는 것 같아 내심 다행을 느낍니다.

그러던 차에 <임정로드 4000km>의 출간 소식을 접했습니다. 처음 이 소식을 들었을 때 받았던 충격과 감동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보수 정권의 역사농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역사의 진실과 뿌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청년들이 있다는 사실에 감격했습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이역만리 먼 땅에서 고생했을 부모님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다가도, 청년들의 톡톡 튀는 시각에 웃음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이 책을 시작으로 더 많은 청년들이 우리의 뿌리를 찾아 떠나는 여행에 동참하기를 바랍니다. 시간이 갈수록 그 시대를 증언해줄 수 있는 분들이 하나둘 떠나고 있습니다. 우리 부모 세대의 투쟁을 증언해줄 나와 같은 1세대 후손들도 머지않아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마저 떠나고 나면 과연 누가 우리 부모들의 이야기를 증언해줄 것인가 늘 걱정되지만, <임정로드 4000km>를 따라가려는 청년들이 많다면 안심하고 맡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여 먼 훗날 대한민국 건국 200년, 300년이 지나도 이 땅 위를 살아가는 이들이 자신들의 뿌리를 기억하고 살아갔으면 합니다. 이 책이 바로 그러한 신호탄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차영조 선생이 보내온『임정로드 4000km』인증샷
 차영조 선생이 보내온『임정로드 4000km』인증샷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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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김경준 기자는 책 <임정로드 4000km>의 기획자이기도 합니다.


태그:#필로소픽, #임정로드4000KM, #임정로드, #차영조, #임시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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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사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한국근대사 전공) / 취미로 전통활쏘기를 수련하고 있습니다. / <어느 대학생의 일본 내 독립운동사적지 탐방기>, <다시 걷는 임정로드>, <무강 문일민 평전>, <활 배웁니다> 등 연재 / 기사 제보는 heig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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