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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27일 <경향신문>에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라는 제목의 칼럼이 실렸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가 지난해 12월 자신과 여권 영문까지 동일한 '김민섭'을 찾아 항공권을 양도하기 위해 '김민섭 찾기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그 결과를 보고하는 글을 쓴 것이다. 당시 아이 병원 일정으로 후쿠오카에 못 가게 된 그는 비행기 표를 다른 이에게 양도하려 신문에 광고를 냈고, 3일 만에 1993년생 김민섭을 찾았다. 

항공권 양도를 위한 절차를 밟는 동안 그에게 한 고등학교 교사는 "항공권이 있어도 그 외 여행비용이 부담돼 갈 수 없을 수도 있으니 자신이 숙박비를 부담하겠다"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두 사람을 연결했고, 그 사연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93년생 김민섭과 수지
  
 <위를 봐요!> 뒤표지
 <위를 봐요!> 뒤표지
ⓒ 은나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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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의 댓글이 이어지는 가운데 유효기간이 남은 후쿠오카 그린패스권, 와이파이 렌털 업체의 제품 제공, 후쿠오카 타워 입장권 등을 보내겠다는 댓글이 이어졌다. 나중에는 카카오에서도 스토리 펀딩을 통해 여행을 후원하게 됐고, 결국 한 청년이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도 미래를 상상할 수 있을 만큼의 비용이 모였다.

93년생 김민섭씨는 후쿠오카로 가기 위한 비행기를 타러 가면서 주위 사람들을 유심히 보았다고 한다. '저 사람이 날 도와주지 않았을까, 저 사람 덕분에 내가 여행 갈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어서 그랬다고 한다. 93년생 김민섭씨는 나중에 "2003년에 태어난 김민섭을 찾아 여행을 보내줄" 거라며 출국장을 나갔다. 우리 주변의 평범한 청년을 돕기 위한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만들어낸 따뜻한 이야기다.

영하 10도의 한파가 시작된 아침에 읽은 기사 한 편에 몽글몽글한 부드러운 포근함이 방안을 감쌌다. '저 사람이 날 도왔을까' 생각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봤다는 93년생 김민섭씨가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천만 원이 넘는 등록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며 불안한 미래를 좇던 청년이 새로운 꿈을 꿀 수 있게 된 핑크빛 세상이었을 것 같다.

이 이야기를 읽고 떠오른 그림책이 있다. 정진호 작가의 <위를 봐요>. 육아로 인한 고립감이 절정이었던 3년 전 겨울, 처음 이 그림책을 만났다. 다시 사회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까마득함과 막막함 때문이었을까. 나는 그림책 속 수지에 빠르게 이입됐다. 그래서 많이 울었다. 그때와 달리 오늘은 93년생 김민섭씨 이야기를 떠올리며 다른 느낌으로 읽었다.

가족여행 중 수지는 다리를 잃었다. 휠체어에 앉아 건물 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수지 눈에는 사람들 까만 머리만 보인다. '개미 같아.' 사람들이 있는 아래로 내려가지 못하는 수지는 '내가 여기 있어요. 누구라도 좋으니 위를 봐요'라고 소리 없이 외친다. 그때 한 아이가 위를 바라본다.

'왜 내려와서 보지 않고 거기서 내려다 보냐'던 남자아이는 다리가 아프다는 수지 말에 '이건 어떠냐'며 벌러덩 길바닥에 눕는다. 사람들 머리 꼭대기만 보던 수지가 자신을 잘 볼 수 있도록 누운 남자 아이. 그 옆을 지나가던 아줌마가 그 옆에 눕는다. 한 명, 두 명...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누워서 수지를 바라본다. 이윽고 수지도 웃는 얼굴로 위를 바라본다.

다리를 잃은 뒤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관찰만 하던 수지, 신체 일부분밖에 볼 수 없었던 불완전한 수지를 완전하게 받아준 사람들의 공감과 행동이 수지를 변화시켰다. 수지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왔고, 위를 보며 웃을 수 있게 됐다.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
 
 <위를 봐요!> 표지
 <위를 봐요!> 표지
ⓒ 은나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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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를 봐요>는 수지와 수지를 위해 길바닥에 누운 사람들 이야기다. 단순한 줄거리를 가진 이 그림책의 묘미는 글이 아닌 그림에 있다. 무거운 주제를 위트있게 표현한 작가의 시선이 멋진 그림책이다.

보통의 그림책은 사물의 측면이나 정면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 책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본 시선이다. 건축학을 전공한 작가가 건축설계 평면도처럼 그림을 그렸다. 검은 점으로 표현된 사람들과 주인공 수지 사이의 까마득한 거리가 1차원 평면에서도 잘 느껴지는 그림이다. 그래서 책을 보는 동안 독자는 수지의 머리 위에서 수지랑 같이 아래를 내려다 보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나도 모르게 주인공의 감정에 이입하게 된다.

구도가 독특한 <위를 봐요>는 무채색의 흑백이다. 건조한 색감이 슬프고 우울한 수지의 마음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흑백으로 이어지던 그림에 색이 입혀지는 부분이 있다. 수지가 아래로 내려와 길에서 위를 바라보는 장면이다. 사람들과 단절되어 있던 수지가 사람들 속으로 들어왔을 때 세상에 색이 입혀진다.

비싼 등록금과 취업난에 허덕이는 우리 사회의 평범한 청년, 93년생 김민섭씨는 생면부지의 자신을 위해 기꺼이 선의를 베푼 사람들 덕에 후쿠오카에 다녀왔다. 김민섭씨의 후쿠오카 여행을 위한 댓글이 이어지던 일이 수지를 위해 길거리에 눕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나는 장면과 겹친다.

벚꽃 잎이 흩날리는 길거리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을 바라보던 수지도 93년생 김민섭씨처럼 '저 사람이 날 위해 길에 누웠을까? 저 사람은 왜 나를 위해 누웠을까?'를 생각했을 것이다. 한 소녀의 삶을 바꾸고 그녀가 새로운 미래를 꿈꿀 싹을 키울 수 있게 한 사람들의 공감과 선의. 그림책에서만 가능한 일이 아니란 걸 '김민섭 찾기 프로젝트'가 증명해줬다. 

세계 평화와 조국 통일 같은 거대 담론이 아닌, 수지가 사람들 모습을 잘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 평범한 청년이 잘살았으면 하는 마음. '당신이 잘되면 좋겠다'는 작지만 따뜻한 마음이 한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킨다.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말이다.

위를 봐요!

정진호 글.그림, 은나팔(현암사)(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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