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헤미안 랩소디 포스터

▲ 보헤미안 랩소디 포스터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보헤미안 랩소디>는 독특한 전기 영화다.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의 성공과 절망을 재구성한 작품으로, 그가 밴드를 꾸리고 재능을 만개시킨 뒤 방황하고 다시 재활하기까지의 이야기가 담겼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연대기적 구성에 연출적인 특별함은 없다시피 하지만 막판 20분 동안 쏟아지는 라이브 에이드 공연으로 영화 전체가 퀸의 콘서트로 변신한다.

주지하다시피 <보헤미안 랩소디>가 한국의 올 겨울을 뜨겁게 달군 건 오롯이 결말부가 가진 힘 덕분이다. 요컨대 별 볼일 없는 전기 영화에 퀸 음악을 냅다 들이부어 빚어진 작품이라 할 만하다.

감독은 한때 '할리우드의 미래를 짊어질 재능'으로 불린 브라이언 싱어다. 출세작은 <유주얼 서스펙트>로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식스센스>와 함께 세기말을 충격에 빠뜨린 그 유명한 반전영화다. 이후 <엑스맨> 시리즈와 <수퍼맨 리턴즈>의 연출을 맡으며 무시할 수 없는 경력을 쌓았으나, 전형적 블록버스터 연출에만 충실해 개성을 잃었다는 비판도 받았다.

그런 그가 제 필모그래피 안의 작품들과는 결이 다른 <보헤미안 랩소디>를 연출했다기에 기대가 컸다. 블록버스터 냄새가 훅 풍기는 작품만 만들어온 그가 전기 영화를 찍는다니, 드디어 저만의 색깔을 내보이는 건가 싶었다.

히어로물의 문법으로 전기 영화를 찍다니
 
보헤미안 랩소디 프레디 머큐리(라미 말렉 분)와 메리 오스틴(루시 보인턴 분). 이들을 연기한 두 배우는 이 영화를 통해 실제 연인으로 발전했다.

▲ 보헤미안 랩소디 프레디 머큐리(라미 말렉 분)와 메리 오스틴(루시 보인턴 분). 이들을 연기한 두 배우는 이 영화를 통해 실제 연인으로 발전했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서 본 영화는 실망스러웠다. 무려 프레디 머큐리의 전기 영화가 흔한 블록버스터와 별반 다르지 않은 영웅기에 머무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프레디 머큐리란 영웅이 타고난 제 능력을 십분 발휘하며 주변의 무시와 제약을 뛰어넘어 성공에 이르고, 다가온 어려움에 휘둘리다 이를 극복하고 정점을 찍는 이야기. 무엇보다 마지막 20분은 히어로물의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대결전 장면과 기능적인 차이가 전혀 없지 않은가 말이다.

브라이언 싱어가 늘 관심을 내비쳐온 부적응자나 소수자의 이야기 역시 <보헤미안 랩소디>의 프레디 머큐리에 그대로 투영됐다. 동양계 이민자 출신이자 동성애자인 그가 세상의 편견에 맞서 일어서는 과정이 영화의 중추를 이루는 것이다. 더욱이 프레디 머큐리가 사랑에 빠지고 자신의 성 정체성에 혼란을 겪으며 팀원과 갈등을 빚는 과정에서의 드라마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프레디가 메리와 사랑에 빠지는 과정은 물론, 메리가 프레디에게 "당신은 게이야"라고 말하기까지 그녀가 느꼈을 외로움과 단절감이 충분히 그려지지 않은 부분, 프레디가 자신의 성적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고 다시 폴과 같은 이와 관계를 맺기까지의 과정 모두에서 브라이언 싱어의 오랜 약점으로 지목되어온 드라마의 부재가 도드라지는 것이다.

모든 걸 전복시키는 마지막 20분
 
보헤미안 랩소디 후반부 20여분을 온전히 라이브 에이드 공연에 할애한 선택이 영화의 제일가는 승부수라 할 만하다.

▲ 보헤미안 랩소디 후반부 20여분을 온전히 라이브 에이드 공연에 할애한 선택이 영화의 제일가는 승부수라 할 만하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하지만 영화는 마지막 20분 동안 모든 단점을 전복시키는 괴력을 발휘한다. 어쩌면 브라이언 싱어의 승부수였을 이 장면은 놀라운 힘을 발휘해 관객 대다수를 압도하여 마침내 감격으로 이끈다. 그러니 영화를 보고 나온 누가 이 영화를 가리켜 졸작이라 비난할 수 있겠나.

분명한 건 부족한 드라마나마 후반부의 음악과 결합해 감동을 증폭시킨다는 점이다. 검증됐으나 오랜 시간이 흐르며 얼마간 잊혀 있던 퀸의 음악이 앞부분의 이야기와 절묘하게 맞물리며 실제로 힘을 발휘하게 되는 순간, 관객은 온 힘을 다해 공연에 몰입할 밖에 다른 선택을 떠올리지 못한다. 실제 퀸의 음악과 견주어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공들여 재현된 음악의 힘이야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지난해 말 개봉해 입소문을 타며 흥행한 <러빙 빈센트>가 반 고흐의 화풍을 재현한 애니메이션으로 영화 전체를 이끌었다면 <보헤미안 랩소디>는 퀸의 음악 자체로 관객과 승부하기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그와 짝을 이룰 만하다. 다루는 인물이 빚어낸 정수를, 그것이 그림이든 음악이든 간에 곧 영화의 승부수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게 전기 영화가 가지는 제일의 무기라는 사실을 증명한 이 작품들의 선택은 그래서 독특하고 훌륭하다.
 
보헤미안 랩소디 영화의 또 다른 재미는 알 만한 사람은 모두 아는 명곡이 탄생하는 순간을 스크린 위에서 목격할 수 있다는 점이다.

▲ 보헤미안 랩소디 영화의 또 다른 재미는 알 만한 사람은 모두 아는 명곡이 탄생하는 순간을 스크린 위에서 목격할 수 있다는 점이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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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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