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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교직 생활 중 대부분을 중학교와 혁신학교에서 보낸 나에게 올해 전입한 일반계 고교의 직장 문화는 큰 충격이었다. 더 무서운 것은 이 암울한 현실이 많은 고교의 현실이라는 점이었다.

아이들 입장에서 고등학교는 공교육의 마지막 관문이다. 이 3년 동안 아이들은 입시 제도를 중심으로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을 통제 가능형 인간으로 재구성되고 마는 것이다. 오랜 시간 이런 환경에 야금야금 스며들어 적응해 온 동료들과는 다르게 나는 온몸으로 거부감을 느꼈다.

'자율권이 보장되지 않는 교사가 학생들 저마다의 특성을 이해하고 키워줄 수 있을까?'

결코 가능하지 않다. 결정권이 없는 교사들은 동료와 학생들의 요구를 억압할 수밖에 없다. '반문이 사라진 학교', 두려웠다. 예감할 수밖에 없었다. 용광로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공교육의 뒷 모습을.

그래서 주말이면 광장으로 뛰쳐나가 '공교육 정상화'를 외쳤다. 그리고 학교 안에서 학교민주화를 위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고독하고 혹독한 고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 시작 지점에서 우석훈 박사의 페이스북 포스팅을 통해 '직장 민주주의'라는 주제의 집필 과정을 접하게 되었다. '직장 민주주의'라는 주제만으로도 내 고독한 행보의 근거가 되어주니 출판이 되기도 전에 이미 든든한 지팡이를 짚은 듯 했다.

많은 이들이 우리 사회는 이미 민주주의 사회로 정착했다고 착각한다. 안타깝게도 우리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학교와 직장 속으로 걸어 들어가 보면 민주주의는 여전히 먼 나라 이야기이다.

저자는 우리의 조직문화가 일본식 군대문화를 토대로 발전해 왔기 때문임을 지적한다. 그러나 이미 일본에서도 퇴색한 이 조직문화가 오늘날 우리 직장 내에서 탄탄하게 뿌리내리고 있는 현실은 우리 사회의 직장 민주주의가 얼마나 뒤늦었고, 시급한 과제인지를 강력히 인식하게 한다.

2007년, <88만원 세대>라는 제목으로 우리 시대의 아킬레스건을 강타하며 사회학 분야의 베스트셀러를 낳았던 우석훈 박사는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라는 제목으로 다시 한 번 우리 사회의 시기 적절한 파동을 꾀한다.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 저자의 말
▲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 저자의 말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 저자의 말
ⓒ 김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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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경제는 좌우를 넘는다>, <국가의 사기> 등을 포함, 단독 저서만으로도 36권째 도서를 출판해 왔지만 유독 이 책,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가 널리 읽히도록 최선을 다해 발로 뛸 계획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직장 민주주의는 우리 사회의 수많은 근로자를 죽고 살게 할 절실한 문제라고 보는 것이다.

저자는 팀장 민주주의, 젠더 민주주의, 오너 민주주의 등의 여러 관점으로 공무원 사회부터 크고 작은 민간기업이나 골목 상권의 자영업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와 경쟁력 그리고 경제적 효율성의 관계를 현장감 있는 목소리로 조목조목 짚어냈다. 이로써 직장 내 민주주의가 머나 먼 이념의 세계가 아닌 우리 생활에 속히 스며들어야 할 절대적 가치임을 절절히 설파하고 있다.

지난 12월 22일 오후 3시, 신촌 한겨레 문화센터의 5층 카페에서 우석훈 박사의 블로그와 페이스북으로 소개된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의 티타임이 있었다.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 티타임에 참석한 독자들의 소감을 듣는 모습
▲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 티타임 장면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 티타임에 참석한 독자들의 소감을 듣는 모습
ⓒ 김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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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각지에서 모인 대기업 및 소규모 민간 기업 회사원, 공무원, 교사, 간호사, 문화예술 기획자, 가정주부, 중학생, 출판계 종사자 등 다양한 분야에 몸 담고 있는 20여 명의 독자들과 함께한 자리였다.

저자와 차 한 잔을 마시며 둘러앉아 집필 동기와 과정 그리고 앞으로의 행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질문을 주고받으며 소감을 나누는 자연스럽고 편한 시간이었다. 이 책을 통해 각자의 조직에서 갖게 된 물음과 반응, 그리고 예상되는 균열들이 그야말로 생생하게 공유되었다.

특히, 고 김용균 군의 죽음을 떠올리며 화두가 된 위험한 직종으로 내몰린 비정규직 또는 외주화 문제를 논의할 때 우리 모두 격하게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직장 민주주의는 더 이상 고상한 사회학적 이론이 아닌, 외면할 수 없는 우리 시대의 필수 요건'임을.

저자는 '복지 정책은 돈이 많이 들지만 직장 민주주의는 그냥 하면 된다'고 여러 차례 반복하여 주장하고 있다. '돈을 들이지 않고도 경제적 효율성을 높이는 일'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그것이 온 사회에 속속 스며들 수 있도록 국가가 해야 할 일을 간결하고 명쾌하게 제언하고 있다. 이 책을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전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마음이 설렌다. 문재인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손에 잡히는 정책 제안들이 속속들이 제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1등급부터 9등급이 고루 공존할 수밖에 없는 고등학교 교사인 내게 있어 '직장 민주주의'는 그저 좀 더 나은 생활을 보장하는 장치로만 여겨지지 않는다. 사회의 여러 계층에 속해서 살게 될 우리 아이들이 자신의 정서적, 신체적 안전과 건강성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기르는 일이요, 절실한 생존의 문제로 인식된다.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학생들', '그들의 의견을 기꺼이 경청할 수 있는 교사들', '교사들의 생각과 결정을 존중하는 학교', 그것부터 시작해야 보다 빠른 시간 안에 모든 계층의 조직 내에서 직장 민주주의가 구현되리라 확신한다.

'학교 민주화'를 외치며 피투성이 된 마음으로 고독한 길을 걷고 있는 내게 있어 결국은 '기', '승', '전', '민주시민교육'으로 한층 더 뜨거워진 의지를 다잡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

우석훈 지음, 한겨레출판(2018)


태그:#우석훈,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 #직장 민주주의,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 티타임, #학교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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