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윙키즈' 배우 박혜수.

영화 <스윙키즈>에서 박혜수의 존재가 빛을 발한다. 극중 양판래 역으로 시대적 비극을 관통한 한 여성을 소화해냈다. ⓒ 권우성


한국전쟁 당시 포로수용소에서 불었던 춤바람, 이제 막 피기 시작한 청춘들의 열정과 시대적 비극의 대비가 지금 상영 중인 영화 <스윙키즈>의 묘미 중 하나다. 재즈와 팝 음악에 맞춰 발을 구르는 배우들은 단순히 춤만이 아닌 각자의 감정과 시대적 비극을 몸으로 표현해야 했다.

북한의 소년 영웅 로기수(도경수)나 여타 캐릭터들과 함께 우리는 양판래(박혜수)라는 인물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앳된 얼굴이지만 포로수용소를 맴돌며 춤에 대한 열정을 보인다. 애초에 팀원으로 합류할 수 없는 조건이었지만, 4개 국어를 선보이며 극에서 미군 감독관의 주목을 받는 것에 성공하는 인물. 주어진 상황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만들어 나가는 성격을 엿볼 수 있다.

속 시원했던 오디션

<스윙키즈> 제작 과정에서 과연 판래 역을 누가 하느냐에 대한 설왕설래가 많았다. 로기수와 달리 극에 또 다른 결을 만드는 인물이며, 연출을 맡은 강형철 감독이 본인의 할머니를 떠올리며 만들었을 정도로 애착을 담은 캐릭터기도 했다. 감독의 선택은 이제 막 데뷔해 작품 경험을 하기 시작한 박혜수였다.

의외라고 여겨졌던 선택은 영화가 공개된 이후 극찬의 대상이 됐다. "몇 번을 봐도 판래는 박혜수씨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던 강형철 감독의 말에서 알 수 있듯 영화에서 박혜수는 온 몸으로 판래를 품고 스크린 이곳저곳을 누볐다. 

"사실 이 작품이 얼마나 크고 대단한 작품인지 모른 채 오디션에 임했다. 강형철 감독님의 전작을 너무 좋아했거든. <과속스캔들> <써니>를 보면 등장인물이 많은데 다들 생동감이 넘치잖나. 이번에도 당연히 그런 작품일 거라 생각하면서 오디션에 제가 할 수 있는 준비는 다 해갔다. 탭댄스와 노래, 영어 대사 등을 준비했다. 한참 오디션을 많이 볼 때라 기대를 하진 않았다. 그래도 보고 나면 개운한 오디션이 있고, 뭔가 말린 것 같아 찝찝한 오디션이 있잖나. <스윙키즈> 오디션은 보고 나서 시원했다. 그러다 감독님이 또 보고 싶어한다는 말을 듣고 조금씩 '어? 좋은 징조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웃음)."
 

 영화 '스윙키즈' 배우 박혜수.

"한참 오디션을 많이 볼 때라 기대를 하진 않았다. 그래도 보고 나면 개운한 오디션이 있고, 뭔가 말린 것 같아 찝찝한 오디션이 있잖나. <스윙키즈> 오디션은 보고 나서 시원했다." ⓒ 권우성

 
 

 영화 '스윙키즈' 배우 박혜수.

영화 '스윙키즈' 배우 박혜수. ⓒ 권우성

 
춤 자체로는 조금 뒤쳐질지언정 감독은 박혜수가 가진 성정과 이미지가 적격이라 생각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박혜수가 해석한 판래, 그리고 그가 판래를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스윙키즈>가 전하려 한 주제의 축소판이기 충분했다. 춤 자체는 다른 배우들과 5개월 간 연습하며 준비했고, 언어 역시 당시 상황에 맞게 약간 한국식 발음이 들어가게 익혔다. "제 존재만으로 판래를 표현하기 위해선 인물의 전사(작품에 드러나지 않는 앞선 히스토리)를 탄탄하게 해야했다"며 박혜수는 본인의 해석과 준비 과정을 설명했다.

"언어 감각도 있고 총명한 판래는 전쟁이 아니었다면 뭔가 크게 됐을 인물이었다. 당시 시대 배경을 많이 공부하려 했다. 실제로 제 외할머니가 판래랑 한 살 차이가 난다. 할머니 말씀을 많이 들으면서 살을 붙여 나갔다. 감독님이 제게 판래는 이 땅의 모든 할머니들에게 바치는 인물이라 말씀하셨는데 그 말에 어깨가 무거워지더라.

저도 제 할머니를 존경하고 사랑하기에 우리 세대에겐 생소하고 역사책에서 볼 수 있는 일이지만 준비를 하면서 보니 할머니들이 지금 제 나이일 때 겪은 일이더라. 멀지 않은 과거였다. <스윙키즈>를 만나고 나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할머니들이 존경스러웠다. 우리 외할머니도 허리가 안 좋으시다면서도 10키로 20키로 김치를 나눠주시러 다니신다. 그 전쟁통에 5남매를 키우셨는데 본래 성격이 그렇다기 보단 시대를 지나며 그렇게 변하실 수밖에 없으셨던 것 같다.  

개인을 포기하는 게 지금은 어려운 일인데 그땐 당연한 걸로 받아들여졌잖나.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진짜 판래를 잘 해내고 싶었다. 배우로서 잘 표현해서 어떤 좋은 평가를 받가 보다 우리네 할머니들이 이 영화를 보실 때 옛 생각을 하시며 위로를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시대 때문에 자신을 포기한다는 말이 제겐 되게 폭력적으로 다가왔다. 지금은 절 포함한 20대와 청소년들이 뭘 좋아하고 뭘 하고 싶은지 고민하는 게 자연스러운데 그땐 그렇지 않았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개인적으론 그래서 <스윙키즈>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마냥 흥겹지만은 않은 영화 분위기에 아쉬움을 표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그 시대가 품고 있던 걸 표현하기 위해선 우리 영화가 그랬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 <스윙키즈>의 한 장면.

영화 <스윙키즈>의 한 장면. ⓒ NEW

 
곧 빛을 발할 다재다능함

집안의 가장으로 모든 걸 나서서 해야 했던 판래의 입체적 모습이 그런 고민의 결과물이었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를 여러 번 보며 박혜수는 "혼자 길을 걷다가 갑자기 턴을 해보기도 하고, 발을 구르기도 했다"며 최대한 야외의 바람을 느끼며 인물의 감정 표현과 춤을 연습한 사연을 공개했다.

극 중 '모던 러브' 노래에 맞춰 달려가는 판래를 표현해내기 위해 박혜수는 학교 운동장과 동네 주변을 가리지 않고 뛰어 다녔다. "처음엔 사람들 눈치가 보이긴 했는데 판래의 뜨거운 감정이 촬영 현장에서도 찾아와주길 바랐다"며 간절했던 당시 마음을 전했다.

세심하게 인물을 준비해나갈 만큼 열정적인 그다. 이 대목에서 정작 박혜수는 "배우라는 꿈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고 고백했다. 알려진대로 그는 2014년 SBS 예능 < K팝스타 시즌4 >에 출연하면서 지금의 길을 걷게 됐다. "그저 전 노래하는 게 좋았고, 막연하게 노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며 박혜수가 말을 이었다.

"아버지가 꿈이 시인이셨고 노래하는 걸 좋아하셨다. 제게 편지를 써주실 때도 한자를 섞어가며 시를 적어주시기도 했다. 제가 아버지를 너무 닮았다(웃음). 저도 음악 좋아하고 시도 쓰고 싶어서 어릴 때부터 여러 악기를 배웠다.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국문과를 택했고(박혜수는 현재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재학 중이다-기자 말), 노래하고 싶어 < K팝스타 >에 출연한 거다. 솔직히 큰 기대는 안했는데 라운드를 거듭하며 올라가는 게 신기했다. 탈락한 뒤엔 복학해서 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지금의 소속사에서 연기를 제안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연기자에 대해 전혀 몰랐던 때다. 막연하게 글과 친한 직업이라 생각했다. 감정을 표현함으로써 감동을 줄 수 있고, 인문학적 고민을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를 통해 감정을 전달하는 걸 좋아했는데 배우도 그럴 수 있더라. 뭔가 제가 좋아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아 선택하게 됐다. 그리고는... 정말 되게 무식하고 용감하게 도전했지(웃음). 작품을 만나 연기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못했는데 너무 운이 좋았고, 좋은 기회가 왔다고 생각한다."

 

 영화 '스윙키즈' 배우 박혜수.

영화 '스윙키즈' 배우 박혜수. ⓒ 권우성

 

 영화 '스윙키즈' 배우 박혜수.

"개인을 포기하는 게 지금은 어려운 일인데 그땐 당연한 걸로 받아들여졌잖나.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진짜 판래를 잔 해내고 싶었다. 배우로서 잘 표현해서 어떤 좋은 평가를 받가 보다 우리네 할머니들이 이 영화를 보실 때 옛 생각을 하시며 위로를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 권우성

어렸을 때부터 곡을 썼고, 평소 읽는 시를 통해 가사에 대한 영감을 얻는다. "제가 쓴 곡들을 나중에 들어보면 되게 부끄럽더라. 더 좋은 노래를 써야 한다는 마음으로 예전 건 대부분 삭제했다"며 "그래도 평소에 쓰는 글들은 남겨둔다"고 그가 멋쩍어하며 웃어보였다. "지금은 또 재즈에 빠져 있다"며 박혜수는 그간 말하지 않았던 일화 하나를 공개했다.

"<스윙키즈> 촬영을 마치고 아무 생각없이 혼자 뉴욕에 덜컥 다녀왔다. 영화에 카네기홀이 나오잖나. 너무 궁금해서 진짜 무모하지만 부모님 몰래 티켓을 예매해놓고 나서 가겠다고 말씀드렸다. 걱정 많이 하셨지(웃음). 하지만 잘 다녀왔다. 재즈바도 일곱 군데나 다녔고, 카네기홀에 가서 공연도 봤다. 거기서 사진을 찍어 감독님과 피디님께 '판래가 대신 카네기홀에 왔어요!'라고 보내기도 했다(웃음)."

박혜수는 데뷔 이후 만난 <사임당> <청춘시대> <내성적인 보스> 등의 작품들에서 말 그대로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했다. 앞서 그가 말한대로 이제 막 연기에 대해 정체성을 다져가는 때에 정신없이 압축적으로 시간을 보낸 느낌이지 않을까. 박혜수는 현재진행형인 자신의 고민을 털어놨다.

"보통의 대학생이라면 4년에 걸쳐 공부하고 졸업한 뒤 사회에 나가는데 전 연기하면서 갑자기 넓어진 느낌이다. 아직 어리고 여린데 물가에 혼자 다니는 느낌이 있었다. 지금은 오히려 사회를 빨리 접하게 돼서 뭔가 제 안에 단단함이 만들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제 앞에 놓인 게 엄청 많았다. 처리할 서류들이 땅바닥에 널브러진 느낌이었고, 그걸 제대로 정리를 못해서 친구나 가족에게도 상처를 줬던 것 같다. 지금은 다시 회복하고 있다. 다행히 소중한 존재들이 제 주변에서 자리를 지켜주고 있더라. 앞으로 주위를 좀 더 돌보며 살아야겠다.  

연기를 잘하고 싶다는 말이 신기한 게 소소해 보이면서도 활자로 보면 되게 거창해 보이더라. 지금 생각하고 있는 건 근데 정말 그거다. <스윙키즈>로 좋은 평가를 받는 건 너무 행복하지만, 전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좋은 연기를 보여드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영화 '스윙키즈' 배우 박혜수.

"뭔가 제가 좋아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아 선택하게 됐다. 그리고는... 정말 되게 무식하고 용감하게 도전했지(웃음). 작품을 만나 연기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못했는데 너무 운이 좋았고, 좋은 기회가 왔다고 생각한다." ⓒ 권우성

 

박혜수 스윙키즈 강형철 도경수 한국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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