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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 : 올해 초, 아르헨티나에 한참 불볕더위가 기승일 때였다. 그때 기자는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입성하게 된다. 그런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본인이 스스로 선택한 현지 영어교사의 길. 

관련 자격증 코스를 시작한 뒤에도 본인이 비원어민이라 뒤처질 거라는 자격지심에 시달린다. 하지만 곧 그런 생각들이 자신을 미운 오리 새끼로 만들었음을 깨달았다.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 목표한 바에 전념한다. 그렇게 시간이 가고 코스를 무사히 마쳐 자격증을 손에 넣었지만 그와 동시에 갑자기 지구 반대편에서 취업 준비생 신분이 되고 마는데...


 88만 원 세대
 
우석훈, 박권일 저의 '88만원 세대'
 우석훈, 박권일 저의 "88만원 세대"
ⓒ 송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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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규직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에 등장하는 현재의 10대와 20대에 해당하는 세대. 이 사회 용어는 2007년 출간된 우석훈 • 박권일 저의 "88만 원 세대"에서 비롯된 말이다.
(출처: 네이버 한경 경제용어 사전)


5년 전, 기나긴 고민 끝에 재수를 중단했을 때였다. 그때 동네 빵집에서 잠깐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당시 내 머릿속에는 잡생각이 파도처럼 끝없이 밀려와 그런 종류의 육체노동만한 게 없었다.

마침 그 빵집은 이름난 곳인데다 시장과 산부인과 사이에 위치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고된 일과와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는 진상 손님들 상대에 집에 오면 파김치가 돼서 쓰러지곤 했었다.

그래도 생애 처음으로 내 손으로 돈을 번다는 짜릿함, 첫 월급봉투를 받았을 때의 기분은 아직도 내 뇌리에 깊게 박혀있다.

식구들끼리 주말에 중국집에 음식을 시켜 먹을 때였다. 나는 헛기침을 한번 크게 하고 "오늘은 내가 낼게"하며 가끔 당당하게 '쏘기도' 했었다. 그때 내 어깨는 하늘로 승천할 듯 으쓱했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남동생은 나를 존경하듯 바라보았다. 동생 입장에서 가족에게 짜장면과 탕수육을 쏠 수 있던 경제권을 가진 나는 이미 성공한 장녀의 그것이었다. 그래 봤자 당시 받았던 월급의 액수가 아마 88만 원, 그 정도를 상회할 것이다. 그리고 그때를 끝으로 나의 한국에서의 경제활동 경력은 막을 내렸다.

그래서 88만 원 세대. 92년생인 내게 이 말은 강 건너 불구경과도 같았다.

2018년 4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카페

같이 집을 보러 다녔던 쉬바와 나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마음에 드는 집을, 마음에 드는 동네에, 그것도 마음에 드는 가격에까지 렌트하는 것이 힘든 것은 나라 밖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마당에 배까지 고파 더 울적해진다. 갑자기 테이블이 지이이야- 하고 진동음이 울린다. 핸드폰 배경화면에 수신자의 이름이 뜬다. 내가 저장한 듯한데 누구인지 기억이 흐릿하다. 그러다 전화를 받는 순간에 퍼뜩 기억이 든다. 저번에 면접을 본 영어학원이다!

"올라!"
(안녕하세요!)


"한국에서 온 크리스티나 송양, 맞으신가요? 여기는 □□ 영어학원인데 면접 결과를 알려드리려고 연락드렸습니다. 저번 주 2차 면접 통과하셔서 최종 합격입니다."

합격! 나는 한 손으로 주먹을 불끈 쥐고 허공으로 흔들어 보였다. 어리둥절해하는 쉬바에게 입모양으로 급히 이 희소식을 전했다. 그녀도 재빨리 두 손을 맞잡고 기뻐한다.

"아,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다음 주부터 일주일간 교육기간이 있어요. 다음 주 월요일부터 참석할 수 있나요?"
"(끄덕끄덕)"


나는 너무 기쁜 나머지 대답하는 것도 잊고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여보세요?"
"아, 네! 물론입니다."

"좋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저번에 시간당 임금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던가요?"
"아... 아니요...?"

"시간당 89페소입니다."


나는 피식 웃음 먼저 나왔다. 89페소면 5천 원이 겨우 될까 하는 액수다. 그래서 나는 잘못 들었다고 백 프로 확신했다. 세상에, 너무 기쁘다고 영어 선생님으로 일할 마당에 영어가 안 들리다니. 아마 앞자리 하나를 흘려들었을 테다.

"다시 한번 말씀해주시겠어요?"
"팔십. 구. 페소.입니다."

그는 이번에는 로 한 음절씩 끊어서 말했다. 내 얼굴과 휴대폰을 쥔 손이 돌처럼 굳었다. 그 뒤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가 그럼 다음 주에 보자는 말을 끝으로 통화는 끝났다. 유체이탈한 듯한 내 모습을 쉬바가 걱정스레 바라본다. 나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아무리 개발도상국에서 일을 한다고 해도 교사라는 직업은 세계 어디에서나 전문직이 아닌가? 나는 영어 교육 전공자는 아니다. 그래도 영어권 국가에서 공부를 마친 바 있고 현지에서 국제영어교사자격증까지 취득했다. 그런데 우리 돈 5천 원 미만의 시급이 말이나 되는 소리란 말인가.

나는 이 충격적인 사실에 대해 쉬바에 열띤 토론을 나눴다. 침 튀겨가며 열변을 토하는데 시킨 음식이 나왔다. 오가닉 카페의 먹음직스러운 대표 메뉴들이 우리 앞에 자리했다. 맛깔스러워 보였지만 우리는 '어이 상실'한 데 이어 '입맛까지 상실'한 상태다.

음식을 깨작거린지 한참 뒤, 쉬바가 입을 연다.

"아마 네가 정말 잘못 들었을 수도 있어. 이 카페가 좀 어수선하긴 하잖아."
"......"
"나 내일 거기 인터뷰 있는 거 알지? 내가 가서 다시 확실히 알아볼게."


그랬다. 그녀에게도 이 사달은 비단 남의 집 일만은 아닌 것이다. 덴마크 출신인 그녀는 만약 그 시급이 사실이라면 집으로 돌아가 돈을 번 다음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여행을 계속하는 게 더 경제적이라는 말까지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나도 내가 지난 4년간 호주에서 외화벌이한 기억을 떠올렸다. 호주 최저 시급과 비교하면 약 4배 차이가 난다. (비정규직 캐주얼 임금의 경우. 각 주마다 조금씩 다르다) 지금 당장 호주로 돌아가 현지 식당에서 접시를 닦거나 음식을 날라도 몇 배는 더 많이 받는 것이다.

최근 최저시급이 인상이 된 한국과도 차이는 확연하다. 더구나 원어민 영어 교사의 대우가 좋은 우리나라의 경우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중국, 일본 그리고 일부 중동 국가와 더불어 영어권 국가 출신 혹은 그에 버금가는 실력으로 영어를 구사하는 외국인 교사들에게 인기가 많다.

이 여행을 시작하고 단기간의 정착을 결심하기까지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종종 있었다. 카드가 몇 주간 현금 인출기에서 읽히지 않은 적도 있었고, 친한 친구와 말다툼을 한 적도 있었으며 하루가 멀다 하고 당하는 캣 콜링(지나가는 여성에게 하는 남성의 휘파람 소리나 성적인 발언)은 일상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방금 접한 충격적인 영어교사 시급은 말 그대로 우리를 '멘붕'에 빠지게 했다. 지금 상황에 완전히 할 말을 잃은 우리는 말없이 글라스에 담긴 음료수로 목만 축였다.

카페는 어느새 손님들의 절반이 나가 한적해졌다. 심지어 빨대로 잔의 밑바닥까지 훑자 나는 소리가 울리는 것도 같았다. 오늘따라 레몬에이드의 레몬 맛이 더 씁쓸하다.

(2부에 계속)

태그:#남미, #아르헨티나, #구직, #영어교사,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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