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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경기도 수원의 한 요양병원에서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외삼촌의 부음을 듣고 요양병원에 달려간 조카는 진료비가 적힌 쪽지를 내밀며 막아서는 경비원을 마주해야 했다. 그 조카는 진료비 170여만 원을 먼저 지급해야 시신을 인도할 수 있다는 경비원의 말에 망연자실했다.

이들의 승강이는 경찰이 출동해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러나 고인은 10시간여 동안 일반 환자들이 생활하는 병실에서 눈도 감지 못한 채 싸늘히 식어갔다. 결국, 150만 원을 주고 시신을 인도받은 유족은 고인이 사망한 지 12시간이 지나서야 장례 절차를 밟을 수 있었다.'


많은 이들의 공분을 자아낸 이 뉴스는 고령화 시대를 맞은 대한민국의 씁쓸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사망자 3명 중 1명은 노인 요양병원이나 요양 시설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구체적인 숫자로는 9만7985명에 이른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죽음이라면 좀 더 고귀하게 맞이할 순 없는 걸까. 최근 출간된 <더 없이 홀가분한 죽음>은 이러한 현실에 이정표가 될지도 모른다. 이미 고령화 시대를 먼저 겪은 일본의 사례이기에 더욱더 그렇다. 게다가 이 책의 저자 오가사와라 분유는 1000명의 마지막을 함께 했다.
 
 <더 없이 홀가분한 죽음> 표지
 <더 없이 홀가분한 죽음> 표지
ⓒ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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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사와라 분유는 일본 기후 시에 내과를 개원한 의사다. 일본 재택호스피스협회의 회장도 맡고 있다. 그는 대학병원에서 응급진료를 담당하며 연명치료로 고통스럽게 삶을 마감하는 사람들을 목격했고 '죽음은 슬프고 괴로운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개업 3년 차였던 25년 전에 겪게 된 어느 말기 암 환자의 임종은 그의 의료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꾸는 계기가 됐다. 집에서 생활하며 낚시를 즐기고 부인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환자에게 자신은 그저 말 상대나 해줄 수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환자는 늘 사용하던 가방과 구두를 머리맡에 두고 부인에게 '내일 떠나게 될 거야'라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뒀다. 온화한 얼굴의 시신, 그 곁에서 자신은 행복하다며 감사의 말을 건네는 부인의 모습에서 '마지막까지 집에서 지내고 싶다'라는 환자의 희망이 이뤄졌을 때 죽음은 고통스럽고 두려운 것이 아니라 더없이 홀가분하고 행복할 수 있음을 실감했단다.

오가사와라의 처방은 간단하다. 간암 말기 진단을 받고 스스로 목을 매 자살하려던 환자와 술잔을 기울이니 말이다. 진짜 마셔도 되냐고 묻는 환자에게 그는 이렇게 말한다.

"드셔도 됩니다. 게다가 간암에 걸린 사람은 술을 조금만 마셔도 취하니까 돈도 많이 안 들잖아요. 그런데 술은 어디에 있나요?"

언뜻 보면 돌팔이로 느껴지지만, 그가 강조하는 것은 마음의 평화이다. 암으로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은 대개 지레 겁을 먹기에 십상이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후 남은 날에 대한 걱정 때문에 마인드 콘트롤을 제대로 할 수 없고 그저 병상에 누워있거나 병원을 산책할 뿐이다.

반면 재택 호스피스를 선택할 경우 환자가 익숙한 환경에서 자주 들렀던 공원을 산책하고 심지어 그림을 그리며 노래를 부르는 등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다. 즉, 암에 걸렸다고 좌절하지 말고 일상 생활을 즐기면 면역이 증강돼 조금 더 연명할 수 있다고 오가사와라는 강조한다.

물론 오가사와라의 처방이 모든 암 환자에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초기 암의 경우 수술이나 항암치료로 완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오가사와라의 임무는 말기 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환자들이 암에 대해 자기 결정권을 갖게 하고 웰다잉(Well-Dying)을 돕는 것이다.

"항암치료로 암이 완치될 가능성이 높은 환자에게는 항암제를 사용해야 합니다. (…)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뭔가에 의지하고 싶어 하거나 치료를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기적을 바라며 포기하지 못하는 환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현재 우리나라에서 약 74%의 사람은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가족들이 돌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혼자 살기 때문에, 재택 의료는 돈이 많이 들 것 같아서' 등의 이유로 집에서 보내는 삶의 마지막 순간을 포기하는 사람도 많다.

우리나라는 이미 제도적으로 웰다잉에 대한 장치가 마련돼 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를 통해 자기 부담을 15%만 하면 재가급여(가정 방문 요양사 등)를 이용할 수 있다. 또한, 지난 2월 시행된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라 이제는 병원에 머물지 않고 집에서 편안히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특히 일본 만성기 질환 의료의 대표적인 예로 꼽히는 '지역 커뮤니티 케어'는 한국에서도 내년에 시범 사업을 앞두고 있다. 지자체와 연계해 집이나 그룹 홈 등 지역사회에 거주하면서 개인별로 필요한 서비스를 누리고 지역사회와 함께 어울려 살아가며 활동하는 사회 서비스 체계다. 홀로 사는 노인이나 치매 환자를 비롯해 만성기 질환 돌봄 서비스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밖에도 오가사와라가 소개한 가정형 호스피스, 방문 진료 등의 서비스는 앞으로 우리나라 의료 환경이 맞이할 변화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

<더 없이 홀가분한 죽음>은 오가사와라가 함께 한 말기암 환자 50여 명의 마지막을 기록한 책이다. 이중 몇몇은 기적처럼 몇 년을 더 연명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아주 조금 더 살았을 뿐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더없이 홀가분하고 행복하게 죽었다'는 사실 말이다.

"사람은 반드시 죽습니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웃으며 죽음으로써 남겨진 가족에게 슬픔을 안겨주지 않을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행복한 죽음은 없을 것입니다."

더 없이 홀가분한 죽음 - 고통도 두려움도 없이 집에서 죽음을 준비하는 법

오가사와라 분유 지음, 최말숙 옮김, 위즈덤하우스(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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