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포스터

영화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포스터 ⓒ 소니픽처스코리아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자신이 성장했다는 걸 언제 알 수 있을까. 내가 삶을 살면서 내가 성장을 얼마나 했는지 알 수 있을까. 그것을 확실하게 아는 것은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한참을 앞으로 내디뎠을 때 문득 뒤를 돌아보면 나 자신이 한 뼘 성장했다는 추측을 할 뿐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의 성장담을 좋아한다. 성장과정을 지켜보며 자신의 성장을 꿈꾼다.

대부분의 히어로물은 기본적으로 성장담을 기초로 하고 있다. 주인공이 정신적, 육체적 성장을 하는 모습을 보며 관객이 그 인물에게 감정 이입하게 만든다. 아마도 성장이라는 키워드로 말할 수 있는 대표적인 히어로 영화를 하나 꼽으라면 <스파이더맨>을 꼽을 수 있다. 10대가 주인공이고 거미에 물려 갑자기 얻게 된 힘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혼란스러운 시기를 거친다. 특히 삼촌인 벤의 죽음 이후 사랑, 학업 그리고 범죄 조직과 대항하는 고난 속에서 자신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알지 못한다.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만화나 영화 모두 주인공 피터 파커의 성장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다른 차원의 스파이더 능력자가 모두 등장하는 스파이더맨 

12일 개봉한 애니메이션 영화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는 다양한 형태로 변주된 스파이더맨 코믹북 속 주인공들을 한 자리로 불러 모으는 색다른 설정 속에 진행된다. 젊은 피터 파커(크리스 파인), 중년의 피터 파커(제이크 존슨)가 스파이더맨으로 등장하고 스파이더 우먼 인 그웬 스테이시(헤일리 스테인필드)가 등장한다. 거기에 스파이더맨 누아르(니콜라스 케이지), 스파이더 햄(존 멀레이니), 일본 애니메이션 스타일의 패니 파커(키미코 글렌)와 로봇 'SP//dr'까지 등장한다. 그들의 중심에 있는 건 이번 영화의 주인공인 마일스 모랄레스(샤메익 무어)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는 무엇보다 주인공 마일스의 성장담에 집중하고 있다.
 
 영화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의 한 장면

영화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의 한 장면 ⓒ 소니픽처스코리아

  
한곳에 모인 스파이더 초능력자들은 모두 누군가 가까운 사람의 죽음으로 과거에 어려움을 겪었고 자신의 비밀을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지 못하는 공통적인 상황을 겪고 있다. 특히나 다른 차원에서 온 중년의 피터 파커는 부인 메리 제인과 이혼하고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배불뚝이 아저씨다. 모인 인물 중 가장 정통적인 스파이더맨에 가까운 그는 중년의 나이에 또 한 번 방황하는 캐릭터다. 자신이 능력을 얻은 이후 겪은 어려움으로 인해 10대부터 이미 많은 성장을 했지만, 그의 삶은 자기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중년의 피터 파커, 마일스와 만나 세대교체를 시작하다

'큰 힘은 큰 책임을 불러온다'는 삼촌 벤 파커의 말을 바탕에 두고 삶을 살아오던 스파이더맨은 그 역시 평범한 중년의 한 사람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10대부터 스파이더맨과 함께 성장했던 수많은 독자와 관객들도 이미 많은 수가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그들도 그들 자신의 능력을 찾아 발전시킬 방법을 찾고 각자의 삶을 유지시키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을 것이다. 그래서 중년의 스파이더맨, 피터 파커는 어떤 삶의 회한을 보여주는 캐릭터이다. 어느 정도 삶의 쓴 고비를 넘겨온 중년의 스파이더맨과 이제 막 초능력을 얻은 10대 스파이더맨의 관계는 이 영화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면서 중요한 설정이다. 영화 속에서 이 둘의 관계가 변하는 과정 자체가 세대의 전환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제 갓 스파이더맨의 초능력을 얻은 마일스 앞에서 피터는 능력을 효과적으로 조정하는 것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평범하게 살라"고 한다. 그는 능력을 얻어 좋은 일을 하고자 노력했지만 시간이 한참 지난 이후에 자신의 삶이 병드는 모습을 그대로 경험했다. 그런 이유로 자신을 희생시키는 영웅의 일을 피하고자 애쓰고 마일스에게도 똑같은 이야기를 해준다. 즉 중년의 피터 파커는 수많은 경험 끝에 변화를 두려워하는 보수적인 성향을 띄는 반면 마일스는 보다 진보적인 성향을 지닌다. 

마일스는 의욕만 넘치는 전형적인 10대 소년이다. 능력을 어떤 식으로 활용하는지 전혀 모르고 좋아하는 이성 앞에서 당황하고 긴장하는 소심한 그에게 능력이 생긴 건 어쩌면 그 자신을 드러낼 좋은 기회일 수도 있다. 이 모습은 이미 우리가 10대의 피터 파커에게서 봐왔다. 10대라는 그 시기는 자신을 드러내고 능력을 뽐내고 싶어 하는 시기다. 이것은 어느 세대나 똑같다. 그래서 마일스의 그런 반응이나 행동들은 과거 피터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영화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의 한 장면

영화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의 한 장면 ⓒ 소니픽처스코리아

  
또한 영화 속에서 마일스와 중요하게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은 아버지와 삼촌이다. 여기서 삼촌은 과거 피터의 벤 삼촌과 거의 동일한 역할을 하는 캐릭터이고, 아버지는 마일스가 스파이더맨이 되겠다는 결심을 하는데 고민을 던지는 캐릭터다. 영화 속에서 이들과 교류하고 갈등하는 모습은 아주 평범하지만 그 평범함 속에 깔린 믿음과 사랑이 결국 마일스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마치 피터 파커와 메이 숙모의 관계와 흡사하다. 

피터 파커와 마일스 못지않게 이 영화에서 중요한 캐릭터는 스파이더 우먼 '그웬'이다. 유일한 여성 스파이더 초능력자로서 마일스와 비슷한 또래로 설정되어 있다. 그리고 그웬은 자신감 넘치고 활기찬 여성 캐릭터이고 피터와 마일스를 위기에서 구해줄 정도로 뛰어난 능력자다. 그는 영화 내내 몇 번이나 마일스를 구해내고 마일스가 한 단계 성장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성으로서의 따뜻한 호감을 교환하기도 한다.  

각기 다른 캐릭터 작화를 하나의 스타일에 모두 담다

영화는 마일스의 세계에서 스파이더맨이 죽임을 당한 이후(영화 초반 설정으로 스포일러가 아님)에 다른 차원의 스파이더 능력자를 차례차례 등장시키며 특유의 오프닝 멘트를 반복한다. 각기 처한 상황과 성향이 다르고 인물이 다르기 때문에 중복되는 캐릭터가 없어 영화를 보면서 혼란스럽지는 않다.

이들이 하나하나 등장할 때, 코믹스의 팬이라면 굉장히 반가울 설정들이 많다. 이를테면 각 캐릭터가 등장할 때, 각 코믹스 스타일의 신들이 펼쳐지는데, 그 특유의 분위기가 그대로 살아있으며 본 영화와 잘 어우러져 있다. 마일스 세계의 분위기와 다르지만 적절한 작화로 이질감을 최소화했다. 특히나 일본 애니메이션 형식의 캐릭터라서 이질감이 큰 패니 파커도 이 영화에 적절히 녹아들어 있다. 

결국 영화는 마일스의 성장과 2세대 스파이더맨이 되어가는 과정을 디테일하게 보여준다. 마일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중년의 피터 파커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조절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마일스에게 이렇게 말한다. "언제 그걸 할 수 있을지는 몰라, 그냥 자신을 믿고 앞으로 뛰어가는 거야."

마일스는 그가 처한 어려운 상황에서 자신을 믿고 그저 앞으로 뛰어간다. 작은 실패들을 바탕으로 큰 성공을 만들려고 노력했고 좋은 결과를 얻었다. 그는 그렇게 자신을 성장시키며 스파이더맨이 된다. 그리고 중년의 피터도 그 말을 뱉으며 다시 한번 성장한다. 메리 제인과의 이혼과 히어로 역할에 질려 하던 그도 결국 자신을 믿고 앞으로 뛰어간다.
 
 영화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의 한 장면

영화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의 한 장면 ⓒ 소니픽처스코리아


성공적인 세대교체

영화는 10대 소년의 성장과 중년의 성장을 동시에 보여준다. 우리는 10대에도, 20대에도, 30대에도, 중년이 되는 40대 이후에도 계속 성장한다. 여러 고비들을 넘기고 느끼며 자신을 한 단계 성장시킨다. 영화 속 중년 피터 파커는 10대 소년 마일스의 모습을 보며 자기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된다. 그리고 마일스 세계를 잘 지켜낼 수 있다는 말을 남기며 그의 세계로 돌아간다. 그렇게 두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 끝에 피터 파커에서 마일스로의 세대교체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다. 

기존의 스파이더맨 영화들에 비해 더 신나고 빠르게 전개되는 애니메이션 영화로 기존 영화와 코믹스의 팬이라면 만족할 영화다. 일반 관객들보다는 기존 팬들이 더욱 만족할 만한 영화로 영화에 실린 각종 힙합과 랩 음악도 이 영화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다.

만화가 스탠 리가 가장 애착을 가지고 있던 마블의 코믹스 캐릭터는 바로 '스파이더맨'이었다. 이 영화는 스탠 리의 사망 이후 처음 개봉하는 영화로 여기에도 그가 카메오로 등장한다. 어쩌면 그가 가장 사랑했던 캐릭터 속에 등장했기 때문에 이 영화가 진정한 스탠 리의 유작일지 모르겠다. 이 영화를 스탠 리가 본다면 피터 파커와 마일스의 성장 이야기에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동근 시민기자의 브런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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