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2월이다. 2018년도 다 지나갔다. 올해도 수많은 영화들이 극장 또는 IPTV를 통해 관객들과 만났고 즐거움과 감동을 주었다. 한 해가 지나가면 꼭 하는 일 중 하나는 지난 1년을 돌아보는 것이다. 올 한해 내가 무슨 일을 했고 어떤 성장을 이루었으며 성과를 냈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기 마련이다. 이번 기사에서는 2018년 보았던 영화들 중 재미있게 본 영화 5편을 뽑아보았다. 극장 개봉작을 조건으로 선정하였으며 개인적인 주관이 평가 기준이다.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스틸컷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스틸컷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혐오의 시대에 외치는 사랑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셰이프 오브 워터>를 통해 본인의 기이한 판타지 세계에 로맨스를 주입시키는데 성공했다. 우주 개발 경쟁이 한창이던 6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언어장애를 지닌 청소부 엘라이자(샐리 호킨스 분)와 온몸이 비늘로 덮인 괴생명체 사이의 사랑과 교감을 다룬다.

엘라이자는 이웃의 화가 자일스(리차드 젠킨스 분), 같은 청소부인 젤다(옥타비아 스펜서 분)와 서로를 보듬어 주지만 말을 할 수 없기에 완벽한 공감을 이루지 못한다. 엘라이자와 교류하는 화가 자일스는 동성애자이며 친구인 청소부 젤다는 흑인이다. 이들은 사회의 소수자이며 당시의 냉전 구조 속에서는 소외된 이들이다. 이들과 대비를 이루는 인물이 리차드(마이클 섀넌 분)다. 실험실의 보안책임자이며 백인 우월주의자인 그는 권력을 휘두를 줄 알며 폭력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성의 영역이라는 과학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는데 반해 사상과 사고는 비이성을 향하던 시대, 감독은 이 시대에 괴생명체 하나를 떨어뜨렸다. 이 생명체는 인간과 전혀 다른 생김새를 지녔지만 교감이 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다.

괴생명체가 엘라이자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은 혐오 대신 아름다움을 준다. 특히 화장실을 물에 잠기게 한 뒤 서로 사랑을 나누는 장면은 눈길을 사로잡는다. 여기에 괴생명체와 인간의 사랑이라는 어려운 소재를 흥미롭게 풀어내기 위한 스토리텔링의 과정이 참 좋았다. 로맨스를 중점에 두면서 사회 소수자인 인물들의 결합으로 단단한 연대를 보여준다. 

<셰이프 오브 워터>가 보여주는 이미지는 그 어떤 영화보다 더 강하고 진하며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작품이 보여주는 감성은 깊은 심연에 빠진 듯 전신을 적신다. 눈보다는 마음으로 더 크게 울 수 있는 영화라 할 수 있다. 
  
 영화 <쓰리 빌보드> 스틸컷

영화 <쓰리 빌보드> 스틸컷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쓰리 빌보드> 딸의 죽음에 대한 분노 표출하는 어머니
 
사건이라는 건 하나의 케이스로 귀결되지만 그 하나하나를 자세히 살펴보면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다른 모습을 지닌 인물들과 입장이 등장한다. <쓰리 빌보드>는 '딸이 살해당한 뒤 엄마의 분노'라는 구절로 추측할 수 있는 모든 상상을 입체적으로 다룬다.

영화의 시작, 밀드레드(프란시스 맥도맨드 분)는 돈을 들고 세 개의 빌보드 광고판 담당자를 찾아간다. 그녀는 이 광고판에 세 개의 문구를 올린다. "내 딸이 죽었다" "아직도 범인을 못 잡은 거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경찰서장?" 이 지점에서 관객은 상상할 것이다. '아, 피해자 엄마와 경찰의 대립이구나. 그리고 결국 범인을 잡는 이야기로 흘러가겠구나.' 

밀드레드의 화살이 향하는 경찰서장 월러비(우디 해럴슨 분)는 이 마을에서 '절대 권력'을 가진 사람이다. 백인으로 이뤄진 마을의 경찰들은 자신들끼리의 유대감이 강하다. 그리고 밀드레드는 그들이 "흑인들이나 괴롭힐 뿐 딸의 범인을 잡는 데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며 분노를 토해낸다. 그런데 시한부 삶을 살고 있는 월러비는 겉으로는 강인해 보이지만 속은 연약한 인물이다. 그는 남을 돌볼 줄 알고 용기를 북돋아준다. 월러비는 자신에게 가해지는 비판과 밀드레드의 딸의 살인범을 잡지 못했다는 사실에 괴로워한다. 

이런 캐릭터의 반전은 월러비의 부하인 딕슨(샘 록웰 분)에게도 나타난다. 딕슨을 비롯한 마을 경찰들은 그들 사이의 유대감은 강하지만, 경찰이 지켜야 할 정의나 사명감은 부족하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면이 딕슨이 광고판을 관리하는 레드 웰비(케일럽 랜드리 존스 분)를 폭행하는 장면이다. 딕슨이 밀드레드의 광고판을 허락해 준 레드 웰비를 폭행할 때 이를 제지하는 동료 경찰은 아무도 없다. 그들은 딕슨의 슬픔에만 공감하며 그가 휘두르는 만행에는 눈을 감는다.

반면 딕슨의 캐릭터는 밀드레드를 도와주는 쪽으로 변화를 보여준다. 그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어머니를 홀로 돌보아야 한다는 스트레스 때문에 껄렁한 외면을 가지게 되었다. 그가 월러비의 편지 한 장에 마음이 바뀌게 된 건 내면 만큼은 그 누구보다 순수하고 착한 심성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동전 같은 양면성을 지닌 인물들, 그리고 사건을 향한 여론을 보여주는 존재가 언론이다. 사건의 실체가 완전히 드러나지 않았음에도 속보만 전달하다 보니 그때마다 여론을 바꾸는 역할을 한다. 처음 세 개의 빌보드 광고판에서 세 줄의 광고가 실렸을 때 언론은 딸을 잃은 어머니인 밀드레드의 분노에 주목하고 범인을 잡지 못한 경찰서장 월러비에게 비난의 화살을 쏜다. 허나 월러비의 죽음 후, 그에 대한 책임자로 밀드레드가 거론되자 전과는 전혀 다른 소리를 한다.

이 작품은 범인을 잡아내는 범죄 스릴러의 쾌감보다는 영화가 다루고 있는 사건의 원인이 되는 세 개의 빌보드 광고판을 통해 이들 사이의 모순성과 부조리함에 대해 말하고 있다. 다양한 캐릭터의 색깔과 그들 사이의 관계, 사건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점, 관계를 통한 상처와 회복 등을 경험하고 나면 범인을 찾는 과정과 반전을 다룬 기존의 범죄 스릴러 작품과는 결이 다른 색다른 재미를 맛볼 것이다.
  
 영화 <죄 많은 소녀> 스틸컷

영화 <죄 많은 소녀> 스틸컷 ⓒ CGV 아트하우스

  
<죄 많은 소녀> 충격과 전율 동시에 품은 영화

올 한 해 한국영화는 상업영화보다 다양성 영화가 더 돋보였던 한해였다. <소공녀><살아남은 아이>는 물론 뒤늦게 개봉에 성공한 <수성못> 등의 작품들이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중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화제가 되었던 <죄 많은 소녀>는 충격과 전율을 동시에 품은 영화라 할 수 있다. 극단적인 소재를 다룬 다양성 영화들이 그 소재와 자극에 빠진 채 갈피를 잃어버리는 반면 이 작품은 그 힘을 오롯이 견뎌내고 나아간다.

경민(전소니 분)이라는 소녀가 실종되고 경찰은 수색에 나선다. 경찰은 경민이 실종되기 전날 영희(전여빈 분)와 함께 했다는 걸 알게 되고 그녀를 가해자로 의심한다. 영희는 자살을 꿈꾸는 경민에게 자살과 관련된 말 한 마디를 했다는 이유로 가해자가 된다. 경민의 어머니, 사건을 해결하고자 하는 경찰, 이 상황을 빨리 끝내고 싶은 담임, 친구 한솔까지 모두 그녀가 경민을 죽였다고 몰아붙인다. 그리고 영희는 '죄 많은' 소녀가 된다. 

형사는 영희의 말을 무시하고 담임은 가혹한 폭행을 가한다.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한 이들은 영희의 말을 거짓으로 몰아간다. 그녀가 범인이 되어야만 그들이 만든 원인은 지워진다. 선생도, 형사도, 경민의 어머니도, 친구들도 영희의 말을 믿지 않고 들어주지 않는다. 그녀가 범인이 되어야만 경민은 추모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희가 당하는 고통은 경민이 겪었던 고통과 같다. 그 고통의 정체는 환경이다. 

<죄 많은 소녀>가 무서운 건 이 엄청난 에너지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영희를 연기한 여배우 전여빈의 위력이다. 영희는 나약한 소녀도, 억울한 희생양도 되려하지 않는다. 구원과 빛을 찾는 대신 어둠을 온몸으로 껴안는 그녀의 연기가 내뿜는 에너지는 관객들을 압도한다. 영화가 지닌 절망 그리고 집단의 이기심이 깊어질수록 더 큰 에너지를 뿜어내는 영희의 모습은 강렬한 이미지를 선사한다.
  
 영화 <어느 가족> 스틸컷

영화 <어느 가족> 스틸컷 ⓒ 티캐스트

 
<어느 가족> 사랑이 있다면 누구나 가족

<어느 가족>의 아버지 오사무(릴리 프랭키 분)는 아들 쇼타(죠 카이리 분)에게 도둑질을 가르친다. 그는 매장에서 물건을 훔치는 행위에 대해 "주인이 없는 걸 가져오는 것이니 줍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가르친다. 그의 가족 형태 역시 마찬가지다. 구성원은 모두 가정이 없거나 가족에게서 버림받은 이들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그의 커리어 내내 가족영화를 통해 '진정한 가족'에 대한 질문들을 던져왔다. 단편적으로 퍼져 있던 이 질문들을 하나로 모은 영화가 <어느 가족>이라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고레에다 가족영화의 집대성이 이 영화이다. '줍는 것과 훔치는 것'이라는 독특한 질문을 통해 현대의 가족해체를 다루면서 '사랑'이 있으면 '가족'이라는 당연하지만 뜻 깊은 주제를 전달한다.

아버지 오사무와 어머니 노부요(안도 사쿠라 분), 아들 쇼타와 딸 유리(사사키 미유 분), 할머니 하츠에(키키 키린 분)와 이모 아키(마츠오카 마유 분) 모두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들은 가정을 이룬다. 오사무는 학대당하는 소녀 유리를 '주워'왔고, 아내 노부요는 유리를 집에 돌려보내지 않기로 결정한다. "이건 유괴"라는 오사무의 말에 그녀는 이렇게 대꾸한다. "우리는 감금을 시킨 것도 아니고 몸값도 요구하지 않았으니 이건 유괴가 아니"라고 말이다. 

영화는 이를 통해 현대의 가족 해체를 주목하며 가족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말한다. 훔쳤든 주웠든 사랑이 있으면 가족이라는 이 영화의 외침은 고레에다 감독이 여러 작품들을 통해 던졌던 가족의 의미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올 9월, 생을 마감한 배우 키키 키린이 연기한 하츠에가 혈연이 아닌 사랑으로 이어진 가족들을 바라보며 '고마웠어'라고 입모양을 웅얼거리는 장면은 가족이란 테두리를 이루는 진정한 가치를 보여주는 명장면이라 할 수 있다.
  
 영화 <로마> 스틸컷

영화 <로마> 스틸컷 ⓒ 판씨네마(주)

 
<로마> 가정부의 시선으로 말하는 사랑과 구원

<로마>는 자전적 이야기를 다룬 영화들 중 손에 꼽힐 만한 성과를 이룬 영화라 할 수 있다. 1970년대 정치적 격랑을 겪은 멕시코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칠드런 오브 맨>, <그래비티>를 통해 본인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인류애를 이야기했던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장점이 잘 담겨있는 영화이다. 자전적 이야기의 주인공이 자신이 되어 본인의 시점으로 이야기하는 영화들과 달리 <로마>는 자신을 돌보아 주었던 가정부의 시선으로 그 당시를 추억한다.
 
가정부 클레오의 시선을 택한 이 영화는 사랑과 구원을 이야기한다. 1970년대 민주화에 대한 물결이 거셌던 당시 멕시코시티 내 로마 지역을 담아내면서 사람이 만들어 낸 파도가 사람에게 상처 입히는 모습을 조명한다. 부모의 불화로 해체의 위기에 놓인 가족을 지탱해 주는 건 가정부 클레오이다. 동시에 사람에게 상처를 받은 클레오에게 믿음과 사랑을 주는 건 아버지라는 기둥을 잃은 고용인의 가족들이다.
 
서사보다는 장면이 중심이 된 흑백의 화면은 당시 감독의 기억을 설명하기보다는 재현한다는 느낌을 주어 더 깊게 빠져들게 만든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본인이 아닌 클레오를 중점으로 추억을 말하며 그녀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낸다. 영화의 느린 호흡이 지루함을 가져다 줄 지도 모르지만 감독이 구현하고자 하는 이미지와 사운드의 조화, 그 속에 담긴 연대와 사랑을 찾는다면 매료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 키노라이츠, 루나글로벌스타에도 실렸습니다.
올해의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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