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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영 변호사
 김원영 변호사
ⓒ 이지양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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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을 쓴 김원영씨는 골형성부전증으로 지체장애인 판정을 받은 36살의 변호사다. 김원영 변호사가 지난 6월에 쓴 책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은 사회적으로 '실격됐다'고 간주되는 장애인들에 대한 변론을 쓴 책이다. 처음부터 '실격된' 자들은 태어나지 않았어야 할까? 1급 지체장애인 김원영 변호사는 성장기 내내 스스로 물었던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진다. "과연 태어난 것이 태어나지 않은 것보다 더 손해일 수 있을까."

이 물음은 책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이 태어난 모티프가 됐다.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속에는 '잘못된 삶 소송'(장애아의 부모나 당사자가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나았다는 생각으로 의사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 같은 묵직하고 울림이 있는 주제가 여러 개 나열돼 있다.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은 장애인의 존재에 대한 철학적인 물음을 던진다.

또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에서는 이동권 등 장애인이 다룰 법한 보편적인 화두도 다루지만 '아름다움'과 '매력'에 대해서 말한다. 휠체어를 끌 때도 아름다움을 고려하는 대목에서 비장애인들에게는 다소 낯선 모습의 장애인이 훅 들어온다.
 
"이를테면, (나는) 휠체어 바퀴를 1.8초에 한 번씩 규칙적으로 밀 수 있다. 경사가 있는 길에서도, 한 손에 책이나 커피를 들고도 절묘하게 방향과 속도를 유지하며 이동한다. 핵심은 우아함이다. (중략) 혹 움직이는 중에 요철이나 배수로에 바퀴가 걸려 몸이 앞으로 고꾸라질 수도 있다. 그런 일 정도는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균형을 잃고 앞으로 쏠리는 몸의 속도를 늦춰 최대한 자연스럽게 한쪽 손바닥으로 땅을 짚고, 다른 팔은 위로 향하며 손목을 꺾어 바닥과 수평을 유지한다. 커피를 쏟지 않는다. 주위에 동행인이 있다면 침착함을 유지하며 한마디쯤 해도 좋다.

"방금 각도 좋았음?"

- 책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중에서

장애인의 매력에 대해 이야기할 준비

김 변호사는 지난 6월 출판된 책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을 들고 여러 차례 북콘서트를 열었다. 매번 백 명이 넘는 독자들이 참석해 성황을 이루었다. SNS에서는 책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이 '2018년의 책'이라고 손꼽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이 책은 곧 4쇄 출판을 앞두고 있다. 지난 여름과 가을, 두 차례에 걸쳐 김원영 변호사를 만나 책에 대한 뒷이야기를 묻고 들었다.

그는 북콘서트에 대해 언급하자 민망한 웃음을 지으며 "나는 셀럽도 아니고 유명한 저자도 아니다, 장애가 한국 사회에서 마이너한 주제인데 그럼에도 사람들이 많이 와줘서 놀랐다"며 "혐오나 차별에 관심이 많은 시기라 장애 문제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이 와주시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북콘서트에 참여한 사람들 중 장애아동을 둔 부모들이 가장 인상 깊었다면서 "장애 아동을 앞으로 키워야 하는 분들의 구체적인 경험은 내게 의미가 있다, 장애 아동의 부모는 내가 생각했던 굉장히 중요한 독자"라고 강조했다.

"사실 대부분의 부모들이 그렇다. 자녀를 사랑하지만 장애를 수용하지 않는다. 자식을 아끼고 사랑해주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부모의 방법으로 아끼는 게 아닌, 애가 가진 장애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장애인을 다루는 많은 책들이 주어를 '그들'로 설정해둔 점을 지적했다. "'우리'는 '그들'을 배려해야 한다'" 같은 서술이 많다는 것이다.

"3인칭 주어로 설정된 그들과 구별되는 우리가 있다. 나는 의도적으로 '우리'라는 표현을 많이 썼다. 많은 텍스트에서 '그들'이라고 호명된 사람들(장애인)을 '우리'라는 주어를 사용해서 호명하고 싶었다."

어쩌면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은 장애인 당사자가 써서 더 의미가 있는 책이 아닐까.

김원영 변호사는 여기서 더 나아가 장애인 아름다움이나 매력 같은, 비장애인들이 무의식적으로 인식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아름다움에 대해 말을 했을 때) 예상된 비판이 있었다. 장애인이 아름답지 않다고 여기는 건 표준적인 신체만 아름답다고 설정하는 미디어의 힘 때문이라는 점, 또 인권이나 소수자 문제는 사회 구조의 문제이지 (아름다움 같은) 개개인의 인식 문제로 환원할 수 없다는 점 등이다.

매력과 아름다움에 대해 말할 때 불쾌함을 느낄 당사자도 있을 수 있다. '나는 충분히 아름답고 매력적인데 네가 뭔데 그러느냐'는 반응이 나올 수 있지 않나. '당연히 미는 상대적'이라는 걸 부정하지 않았고 책에서도 여러 차례 이를 언급했다.

하지만 그 원인이 구조적이든 개개인의 취향 때문이든, 어떤 사람들은 신체적, 정신적 (매력) 자원의 부재로 소외될 수 있다. 그리고 장애인들은 그런 이유 때문에 소외될 여지가 더 크다. 비공식적이고 사적인 관계에서 발생하는 소외의 문제는 사회 복지 지출을 늘려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물론 장애가 있는 사람들도 풍부한 삶을 살고 개인이 가진 색깔이 분명해지면 타인과의 관계에서 매력과 흥미를 높일 수 있다. 또 장애인들과 상호작용하는 기회가 많아지면 편견이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제도나 법, 문화 같은 거시적인 이야기만 하면서, 개개인의 삶에 존재하는 매력과 소외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은 불충분하다고 느꼈다."


정신 장애인의 자율성, 중요한 화두
 
책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사계절출판사)을 쓴 김원영 변호사
 책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사계절출판사)을 쓴 김원영 변호사
ⓒ 사계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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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영 변호사는 대학생 시절, 장애인 당사자들의 이동권 투쟁이 있었단 걸 알게 됐다. 처음 이동권 투쟁을 알게 됐을 때는 '저래도 되나'라는 심리적 거부감이 들어 함께하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이동권 투쟁이 자신의 개인적인 삶의 확장과 긴밀하게 결부돼 있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까지 이른다.

"공공의 민폐를 끼치지 않고 이동권 같은 문제가 해결된 적이 없다. 신사적으로, 품격을 지켜서 문제가 해결된 적이 없다. 시민들이 화를 내는 것도 이해는 가고 가급적이면 그럴 일이 적게 발생하면 좋겠지만 말이다."

한편, 김원영 변호사는 지금까지 신체장애인을 중심으로 한 이동권 투쟁이 활발했지만, 앞으로는 정신장애인들의 문제가 중요한 화두가 되어야 한다고 의견을 전했다. 조현병, 양극성 정동장애 등의 병을 가진 정신장애인들이 사회에서 격리되지 않고 통합될 수 있는 "아주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 김 변호사의 생각이다.

"정신장애인들이 충분히 돌봄을 받고 자율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적절한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동권 투쟁도 중요하다. 그간 지체장애인들이 선두에 서서 좀 더 먼저 상황이 개선되는 측면이 있었다. 이제 그 운동의 에너지가 정신장애인들에게 가야 할 시대가 왔다.

지금은 휠체어에 앉아 있는 장애인을 혐오하거나 배제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지체장애인의 경우 국회에 비례대표 등으로 많이 들어가 있기도 하다. 하지만 정신장애인들은 어디 들어가려고 해도 주민들의 반대와 혐오가 너무나 노골적이다. 정신장애만을 범죄의 원인이라 여기는 건 사실과도 다르다. 설령 범죄를 저지르는 정신장애인이 있다고 해도 격리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그가 지역 사회에서 적절한 치료와 돌봄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원영 변호사는 정신장애인에 대한 문제의식을 확대해 현재 서울대학교 박사 과정의 논문으로 정신장애인의 자율성을 다루는 글을 준비하고 있다.

"과거에 신체장애인의 경우 누군가의 도움(활동지원)을 받아서 사는 건 자율적이지 않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 이러한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스스로 결정하면 자율적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정신장애는 여기서 더 나아간 질문을 던진다. 내가 스스로 결정을 해야 자율적인 것인가, 스스로 결정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다. 장애인 문제는 단순히 장애인의 삶만이 아니라 인간의 보편성에 의문을 던진다. 무엇이 정상적인 것인가, 그런 맥락에서 정신장애인의 문제도 중요한 화두가 될 수 있다."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김원영 지음, 사계절(2018)


태그:#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김원영 변호사, #장애인,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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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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