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반 군둘리치 동상 주위의 광장에서 매일 아침마다 시장이 열린다.
▲ 군둘리치 시장. 이반 군둘리치 동상 주위의 광장에서 매일 아침마다 시장이 열린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새벽부터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장대비가 숙소 밖 골목길로 쏟아지고 있었다. 창문을 열어 밖을 보니 구시가 골목을 꽉 메웠던 노천식당과 여행자들은 모두 사라지고, 반들반들한 대리석 길바닥에 빗줄기가 사정없이 내리꽂히고 있었다. 오늘 하루 여정이 조금 걱정되기는 했지만, 나는 얼른 샤워를 한 후 우산을 들고 다시 구시가로 나왔다.

나의 발길은 숙소 주변의 군둘리치 시장(Gundulić Market)으로 향했다. 군둘리치 시장은 이반 군둘리치(Ivan Gundulić, 1589년~1638년) 동상을 둘러싼 광장에서 매일 아침 7시마다 열리는 시장이다. 작은 노점에서 신선한 채소와 과일, 라벤더 제품, 수공예품, 기념품 등을 파는 작은 시장이다. 두브로브니크 현지인들의 생생한 삶의 현장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곳이기에 아침에 일찍 방문해 볼 만한 곳이다.

아내는 아침 일찍 군둘리치 시장에 함께 가서 크로아티아 인기 과일인 납작 복숭아와 작은 사과 등을 사서 먹어보자고 했다. 하지만 예상대로 아내는 아침 일찍 일어나지 못했고, 나 혼자 나와 시장으로 향했다. 숙소 밖으로 조금 걸어가니 다행히 비는 조금씩 그치고 있었다.

두브로브니크의 시인
      
군둘리치 광장, 이반 군둘리치의 동상 주변은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과 카페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나는 아내가 사오라고 명령한 과일들을 산 후 군둘리치 동상을 둘러보았다.

자유시인이라 불리는 이반 군둘리치는 두브로브니크 출신의 유명한 시인이다. 그가 지은 서사시극 <오스만(Osman)>은 크로아티아를 대표하는 시로 남아있으며, 이 작품으로 인해 두브로브니크는 한때 '남슬라브의 아네테'라는 문향(文鄕)으로 불리기도 했다.

우리나라 통영과 같이, 무역이 발달한 항구에서는 넘치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문인들이 많이 탄생하는데, 이 두브로브니크도 해상무역을 바탕으로 크로아티아를 상징하는 많은 문인들이 태어났던 것이다. 특히 이반 군둘리치에 대한 두브로브니크 사람들의 각별한 애정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군둘리치는 1628년에 청춘의 아름다움을 묘사한 목가극 <두브라프카(Dubravka)>을 발표했다. 지금도 두브로브니크에서는 매년 여름 축제를 시작할 때마다 루자 광장(Trg Luža)에서 이 <두브라프카>에 포함된 '자유의 찬가'를 서곡으로 부르고 있다.

그는 '자유의 찬가'에서 '오 아름답고, 오 귀중하고, 오 달콤한 자유여. 하느님은 우리에게 귀한 보물인 자유를 주었다'라고 읊고 있다. '자유는 세상의 어떤 보물과도 바꿀 수 없다'는 군둘리치의 말들은 두브로브니크의 정체성을 '자유'라는 한 단어로 집약하고 있다.
 
보기만 해도 달달함이 느껴지는 색색의 캔디와 젤리를 팔고 있다.
▲ 구시가 캔디 가게. 보기만 해도 달달함이 느껴지는 색색의 캔디와 젤리를 팔고 있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군둘리치 광장 앞에서 다시 구시가 골목으로 들어서니 눈길과 발길을 붙드는 가게들이 문을 열고 있었다. 그중 가장 이목을 집중시키는 가게는 캔디 가게다. 보기만 해도 달콤함이 느껴지는 색색의 젤리와 사탕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군둘리치 광장을 나와 구시가 골목길을 계속 걷다 보니 구시가 안쪽, 내가 묵고 있는 숙소 바로 앞에 여행객들이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는 한 성당이 있었다. 아침, 저녁에만 숙소를 들락거려서 낮에 문을 연 이 작은 성당을 눈여겨 보지 못했던 것이다.
 
크로아티아 내에서의 정교회 교인들은 격동의 역사를 살아왔다.
▲ 세르비아 정교회 성당. 크로아티아 내에서의 정교회 교인들은 격동의 역사를 살아왔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나는 숙소에서 아침에 사온 빵으로 식사를 하면서 아내와 함께 이 성당의 역사를 찾아보았다. 이 성당은 발칸 반도에 자리 잡고 있는 또 하나의 종교, 세르비아 정교회에서 운영하는 성당이었다. 이 성당은 격동의 역사를 살아온 두브로브니크 정교회 교인들의 삶을 담고 있다. 정교회 교인들은 가톨릭이 지배하고 있는 두브로브니크에서 그들의 권리와 존엄성을 확보하기 위해 부단히 투쟁해왔다.

세르비아 정교회는 크로아티아인들에게도 부담스러운 종교이다. 유고 내전 당시 세르비아 군인들이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를 공격하면서 크로아티아 가톨릭과 세르비아 정교회 간의 갈등은 더욱 심화됐기 때문이다.

1877년에 지어진 이 세르비아 정교회 성당은 양쪽에 첨탑이 마주 보고 있는, 정교회의 전형적인 외관을 보여주고 있었다. 간결한 외관의 이 성당은 누가 보아도 두브로브니크 내의 화려한 가톨릭 성당과는 외관이 확연하게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성당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환영받지 못한 성당
  
눈에 익숙하지 않은 정교회 건물 내부를 두리번거리고 있다.
▲ 정교회 성당의 여행자들. 눈에 익숙하지 않은 정교회 건물 내부를 두리번거리고 있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성당 안에는 신자 한 분이 앉아 예배를 드리고 있고, 여행자 몇 명이 들어와 성당 안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나는 차분하게 앉아서 눈에 익숙하지 않은 정교회 성당 내부를 둘러보았고, 아내와 이런 대화를 나눴다.

"이 성당은 두브로브니크의 대다수를 점하는 가톨릭 교인들에게는 환영받지 못하는 성당이지. 현재 이 성당에서 정교회 예배는 할 수 있지만 성당 이름에 '세르비아 정교회(Serbian Orthodox Church)'라는 표기를 하지 못하게 되어 있어. 세르비아인들이 사용하는 키릴 문자도 두브로브니크에서는 사용하지 못하게 되어 있지."

"오랜 종교적 다툼과 유고 내전으로 크로아티아인들의 세르비아에 대한 앙금이 상당한 것 같아. 뿌리가 같은 민족에 언어도 거의 동일한 민족인데 참으로 안타까워."
   
 
주제단의 최후의 만찬 성화는 가톨릭의 성화와 크게 다름이 없다.
▲ 최후의 만찬 성화. 주제단의 최후의 만찬 성화는 가톨릭의 성화와 크게 다름이 없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금박으로 번쩍거리는 주제단에는 정교회의 성화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정교회 제단 위에는 예수가 중앙에 자리한 최후의 만찬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최후의 만찬 성화를 유심히 바라보았으나 가톨릭에서 그린 최후의 만찬 성화와 크게 다름이 없었다. 아무리 봐도 한 계통에서 나온 이 두 종교 간의 다툼은 이해하기가 힘들다.

나와 아내는 복잡해진 마음을 접고 다시 구항구로 향하는 골목길로 나왔다. 즐거운 마음으로 향한 곳은 두브로브니크에서 유명한 생선요리 식당이었다. 우리는 두브로브니크 구항구 앞의 바다를 바라보는 그라츠카 카바나 아스날(Gradska Kavana Arsenal)이라는 식당을 찾아갔다. 시청사 1층에 자리한 해산물 전문 레스토랑이어서 현지인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곳이다.

이 식당의 입구는 두 곳인데, 한쪽은 구시가의 루자 광장 쪽을 향하고 있고 다른 한쪽은 항구 쪽을 바라보고 있다. 같은 식당의 두 입구가 내부에서는 연결돼 있지만 어느 쪽에 앉느냐에 따라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나와 아내는 아드리아해의 풍경을 만끽하기 위해 바다 쪽 테라스석에 자리를 잡았다.

전통의 식당답게 직원들은 참으로 친절하고 식당의 분위기도 아늑하다. 비싼 두브로브니크의 물가를 생각하면 음식 가격도 괜찮은 편이다. 바닷가 앞에 위치한 이 식당은 당연히 생선요리, 홍합요리, 문어샐러드 등 두브로브니크의 해산물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다.

우리가 앉은 좌석 주변에 앉은 사람들도 주로 생선요리를 먹고 있다. 그들 앞에 놓인 생선요리에 바다내음이 가득해 보인다. 우리도 이 식당의 대표 메뉴인 신선한 생선 필렛(fillet) 요리를 주문했다. 우리가 주문한 생선 요리는 '신선한 생선의 뼈를 발라내 저민 살코기와 함께 따뜻하게 조리한 채소 요리'라고 돼 있었다. 우리는 크로아티아 요리가 대체로 짜다고 들어서, 너무 짜지는 않게 요리해 달라고 종업원에게 부탁했다.
 
현지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해산물 전문식당이다.
▲ 그라츠카 카바나 아스날 식당. 현지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해산물 전문식당이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식당 종업원은 우리 앞에 오더니 마치 쇼를 하듯이 생선의 살코기를 발라내 주었다. 생선 뼈를 순식간에 제거하는 모습이 신기해서 사진을 찍으려고 했더니 웃으면서 자세를 잡아준다. 얼굴에 웃음을 머금은 종업원이 신선한 생선의 몸통 전체를 보여주며 직접 시범을 보이는 모습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친절한 종업원은 생선의 커다란 머리와 내장, 꼬리를 완전히 제거했다. 싱싱해 보이는 생선의 몸통은 그의 현란한 손놀림 속에 완전히 해체됐다. 작은 물고기를 먹고 사는 물고기인지 살이 통통했다. 그는 생선살을 마치 스테이크처럼 길게 발라주었다. 속살만 남은 생선은 유난히도 색이 새하얗다.
 
두브로브니크 생선요리.
▲ 두브로브니크 생선요리. 두브로브니크 생선요리.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생선요리는 올리브 오일에 푹 끓여내서 예상외로 한국인의 간에 딱 맞았고, 담백한 생선살은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 생선의 살코기도 워낙 양이 많아서 한 끼의 식사로 부족함이 없다. 아쉽게 바다 바로 앞 좌석을 잡지는 못했지만 눈 앞에 펼쳐지는 바다의 전경이 아늑했다.

크로아티아의 고양이

이 식당 앞에서는 두브로브니크 앞의 로크룸(Lokrum) 섬으로 가는 유람선이 수시로 들락거리고 있었다. 우리는 섬으로 가는 여행객이 배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면서 커피를 마셨다. 유난히 파란 하늘이 바다에 닿은 절벽 위로 펼쳐지고 있었다.

바닷가와 이어진 식당 안으로는 비둘기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 여유로운 사람들은 식당 안 비둘기들을 쫓아내지 않았다. 우리 발밑에도 비둘기들이 돌아다니고 있는데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두브로브니크를 대표하는 단어가 '자유'이듯이 이들은 비둘기들에게도 완전한 자유를 주고 있었다. 우리는 자연스러운 그들의 자유와 여유를 느끼며 차분하게 식사를 했다.

구항구 주변에는 유난히 고양이들도 많다. 크로아티아에서는 길가에서 고양이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이 고양이들은 하나 같이 사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람들도 이 길고양이들을 쫓아내거나 구박하지 않고, 아침이면 집 주변의 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준다.
 
구항구 주변의 고양이들은 뱃사람이 전해주는 생선을 기다리고 있다.
▲ 생선 앞의 고양이. 구항구 주변의 고양이들은 뱃사람이 전해주는 생선을 기다리고 있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우리나라 고양이들은 사람을 보면 도망 다니지만 이곳의 고양이들은 바닷가의 대로 한복판에서도 만사가 귀찮다는 듯이 늘어져 있다. 항구 주변 고양이들은 뱃사람들이 던져주는 생선을 기다렸다가 받아먹고는 다시 늘어지게 누워서 낮잠을 청한다. 우리나라 고양이와 외모는 똑같이 생긴 고양이들의 게으른 행동을 보니 괜히 웃음이 나왔다. 동물들도 주변의 사람들로 인해 이렇게 성격이 달라지는 것이다.

식당 앞의 구항구는 예전에 두브로브니크의 선박이 전 세계로 나아가는 출항지였다. 항구 한편에는 요트들이 정박돼 있고, 곧 항해를 떠날 유람선들이 가득 모여 있었다. 식당을 나서자마자 여러 유람선 회사 직원들이 나에게 다가와 호객행위를 했다. 주변에는 두브로브니크 앞바다를 돌거나 로크룸 섬 행 페리를 타려는 사람들이 대기 중이었다.

나와 아내는 해변에서 이어지는 플로체 게이트(Ploce Gate) 주변까지 산책을 했다. 우리는 플로체 게이트의 나무로 만든 도개교를 답사했다. 두브로브니크는 구시가 전체가 유적지라는 말이 실감 났다.
 
소나무가 가려주는 그늘 밑에서 바다를 감상할 수 있다.
▲ 바다를 바라보는 노천카페. 소나무가 가려주는 그늘 밑에서 바다를 감상할 수 있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우리는 플로체 게이트 앞의 한 노천카페, 비스트로 레블린(Bistro Revelin)의 야외 좌석에 앉았다. 몸통 굵은 소나무 가지가 그늘을 드리워주는 편안한 곳이었다. 우리는 생과일주스를 마시며 잔잔한 아드리아해를 감상했다.
       
벤치에 앉은 여행객들이 반짝거리는 바다를 감상하고 있다.
▲ 방파제 산책로. 벤치에 앉은 여행객들이 반짝거리는 바다를 감상하고 있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바다를 향해서 뻗어있는 방파제는 걷기 좋은 산책로가 되어 이어지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산책로의 벤치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푸른 바다가 햇빛을 받아 하얗게 부서지고 있었다.

태그:#크로아티아, #크로아티아여행, #두브로브니크, #두브로브니크여행, #아드리아해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