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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기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 10일 오후 2시, 여의도 국회 앞에서 중년의 기사가 몸에 인화물질을 뿌린 뒤 불을 붙였다. 카카오모빌리티(카카오)가 카풀 서비스를 강행한 뒤 사흘만에 터진 비극이었다. 

고인 최씨는 불과 한 달 전에 첫 손주를 얻는 기쁨을 맛본 상태였다. 앞으로 오랫동안 손주의 재롱을 누릴 젊은 할아버지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고인이 남긴 유서의 마지막 문장이 말해준다.

"카풀이 제지되는 날까지 나의 시신을 카카오 본사 앞에 안치해 주기 바란다."

고인은 피부가 타들어가는 순간에도 운전석을 떠나지 않았다. 주인을 마지막으로 태운 차는 국회를 바라보고 있었고, 스러져가는 망자의 탄식은 카카오 본사를 향했다. 불 붙은 운전석은 최씨 자신과 가족을 지켜온 일자리가 처한 현실을 보여주는 듯했고, 택시가 놓였던 국회와 망자가 시신으로 찾아가고자 했던 대기업 사옥은 이 사태를 불러온 장본인으로 그저 서 있을 뿐이었다. 

여기서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거나, '4차산업혁명은 거부할 수 없는 대세' 같은 이야기를 하려는 분이 있다면, 여기서 글 읽기를 멈추시기를 권한다. 그런 독자에게 별 도움이 안 되는 글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것 하나는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카카오의 서비스 강행은 택시 기사들뿐 아니라, 카풀 승객과 운전자를 위해서도 매우 무책임하고 위험한 처사라는 사실이다.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는 것

나는 카카오(다음)에 비교적 좋은 인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겪으며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이윤에 눈먼, 냉혹하고 무책임한 기업이다. 

분신 사건의 직접적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며 7일 정식 서비스 개시를 발표한 카카오 경영진이다. 이는 자신들이 강조해온 '합의'와 '상생'의 약속을 스스로 차버린 행위다. 그리고 문제는 한 가장의 안타까운 죽음만이 아니다.

인명을 실어나르는 일은  매우 큰 책임이 따르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운전자와 승객 모두 사고로 인한 사망이나 부상은 물론, 강도, 강간, 폭행 등 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고나 범죄의 책임 소재에 대해 카카오는 구체적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이런 책임 공백의 상태에서 회사는 운전자('크루')를 모집하고 승객을 태우고 있다. 

나는 카카오측이 7일 시험서비스를 개시하기 전에 운전자와 승객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리라 믿었다. 사고가 발생할 때 회사가 어떤 법적 책임을 지고, 어떤 보험사를 통해 얼마 한도의 배상과 보상을 하며, 운전자와 승객은 어떤 권리와 책임을 지는지 말이다.

이것은 위험부담이 따르는 사업의 기초 중의 기초다. 고객이 권리와 책임을 정확히 알아야 서비스를 이용할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고, 불의의 사태가 발생할 때 겪어야 할 법적 혼란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회사 웹사이트를 방문해 어떤 내용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놀랍게도, 카카오는 이에 관한 단 한 줄의 정보도 게시하지 않고 있었다. 시험서비스 개시 후 한 주가 지난 13일까지도 웹사이트에는 회사의 법적 책임에 관한 어떤 내용도 올라와 있지 않은 상태다.

문제 많다는 우버에도 있건만
 
카카오티의 웹사이트. 홍보성 글 이외에 고객의 법적 권리와 책임과 담은 정보는 찾아보기 어렵다.
 카카오티의 웹사이트. 홍보성 글 이외에 고객의 법적 권리와 책임과 담은 정보는 찾아보기 어렵다.
ⓒ 카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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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찾은 '카카오 티(T)' 웹사이트는 한눈에 보기에도 낯익었다. 개편 전 우버 사이트를 빼닮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슷한 점은 디자인뿐이었다. 우버 사이트에는 사고시 운전자와 승객이 누릴 권리와 회사가 질 책임이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만, 카카오 사이트에서는 이런 최소한의 배려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우버는 별도의 웹페이지에서 사고 상황을 세 가지로 구분한 뒤, 각기 배상 한도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예컨대 1) 운전자 실책으로 다른 차량의 운전자, 보행자, 3자 재산의 피해를 야기한 경우, 2) 타인의 실책으로 신체상 피해가 발생했지만 당사자가 무보험이거나 보험 한도가 충분치 않은 경우 등이다. 

우버는 앞의 모든 경우에 사고당 최소 1백만 불(약 11억 2천5백만 원)을 책임지겠다고 밝히고 있다. 카카오는 어떨까? 웹사이트를 샅샅이 뒤져 찾아낸 것은 고작 아래 문장 하나였다. 

"[카풀] 함께 이동하는 즐거움 - 복잡한 출퇴근길도, 불금이나 야근 후에도 귀갓길 걱정 없이 같은 방향으로 이동하는 크루를 찾아 목적지까지 쉽게 갈 수 있어요."
 
우버의 웹사이트에 게시된 운전자와 승객의 피해 배상과 보상 안내문. 우버는 문제점이 많은 서비스지만, 카카오 카풀은 이보다 더 심각한 위험을 안고 있다.
 우버의 웹사이트에 게시된 운전자와 승객의 피해 배상과 보상 안내문. 우버는 문제점이 많은 서비스지만, 카카오 카풀은 이보다 더 심각한 위험을 안고 있다.
ⓒ 강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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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홍보문은 책임의식보다는 회사가 품은 야심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불금'을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 '출퇴근 카풀' 이상의 시장 확대를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보험'이라는 말이 하나라도 들어간 글귀를 보기 위해서는 '크루'에 지원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앱 설치를 위해 앱스토어나 구글플레이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카풀 카즈아-! 카카오 T 카풀 - 차가 있는 운전자라면 누구나, 카카오 T 카풀하자!"

회사는 여기서도  "차가 있는 운전자라면 누구나" 가입할 것을 권하고 있었다. 글 밑에 붙은 "더 보기" 링크를 클릭한 뒤에야 다음 글귀가 보였다.  

"대인 보험 한도를 넘는 사고에 대해서도 보장되는 카풀 안심보험까지! 이제 안심하고 카풀하세요!"

이게 전부다. 회사는 '한도를 넘는 사고에 대해서도 보장'을 장담하지만, 구체적 조건은 나와 있지 않았다. 운전자 실책을 포함한 모든 경우에 적용되는 것인지, 승객 피해도 책임지는 것인지, 보장 한도는 얼마인지 등은 알 수 없었다.

회사는 카풀 운전자 모집에 열을 올린 나머지, 홍보에 방해가 될 만한 모든 정보는 함구하는 듯 보였다. 이 불투명한 상황은 이후 '소송의 지옥'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회사야 스스로 청한 일이니 그렇다 쳐도, 그 피해가 고스란히 운전자, 승객, 3자 운전자, 보행자 등에게 돌아간다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인명은 베타 테스트 대상이 아니다
 
카카오 카풀을 소개하고 있는 사이트. 오직 운전자와 승객 유치를 위한 홍보성 정보만 존재할 뿐, 서비스 과정에서 발생할 불의의 사태에서 책임소재를 다루는 정보를 찾아볼 수 없다.
 카카오 카풀을 소개하고 있는 사이트. 오직 운전자와 승객 유치를 위한 홍보성 정보만 존재할 뿐, 서비스 과정에서 발생할 불의의 사태에서 책임소재를 다루는 정보를 찾아볼 수 없다.
ⓒ 카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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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버 서비스에도 심각한 결함이 있다고 믿는다.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운전자와 승객을 대상으로 한 범죄다. 성범죄 하나만 해도 2018년 초까지 100명이 넘는 우버 운전사가 강간 등 성폭력으로 기소된 상태다. 물론, 신고되고 재판이 시작된 후 알려진 사건만 이렇다.

여기에 난폭운전, 마약과 음주운전, 사고시 승객 배상 책임의 모호성 등의 문제가 상존해 있다. 우버는 사전에 운전자의 범죄와 교통사고 경력을 조회한 뒤 채용하는데도 이런 사태가 일어났다. 카카오는 범죄나 사고 경력 어느 것도 확인하지 않고 있다.

물론 현행법상 플랫폼 사업자가 개인정보에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카카오의 무책임한 사업 강행이 합리화되는 것은 아니다. 경력 조회도 없이 운전자를 모집해서 이윤을 취하려 한다면, 최소한 범죄 예방과 피해복구 책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고작 '112 문자신고 기능' 하나로 책임을 면하려 해서는 안 된다.  

택시의 승객도 범죄에 노출되지 않느냐고 묻는 이도 있을 것이다. 물론이다. 택시 기사의 경우, 강간이나 폭력 등 강력범죄나 상습 음주운전 경력자는 면허를 받을 수 없고, 취득 후에도 정기적으로 범죄 경력을 조회해 면허를 취소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죄가 일어난다는 점이다. 조심해도 독감에 걸린다고 해서, 조심하기를 포기하는 게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카카오 카풀의 또 다른 문제는, 사고시 승객 피해 복구의 책임이 법적 사각 지대에 놓이게 된다는 점이다. 현재 카카오는 보험 한도가 높은 '대인배상2'에 가입한 운전자에게 등록을 허락하고 있다. 사고시 승객 피해를 운전자 보험으로 해결하려는 계획으로 보이는데, 이 경우 보험사에 따라 지급이 거절될 위험이 있다. 카카오 크루는 자가용으로 보험에 가입한 뒤 금전을 받고 차를 운행하기 때문이다. 

현재 보험업계에서조차 카풀을 수익 목적의 '유상운송'으로 봐야 하는지에 의견이 갈리고 있다. 카카오 카풀은 시간이나 거리 제약을 두지 않고 있기 때문에 논란의 소지가 더욱 크다. 회사측이 자신의 책임을 명시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사고의 피해를 입은 승객은 또 다른 법적 무책임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또 하나의 문제는 수익 모델의 건전성이다. '공유경제'는 '4차산업혁명' 이상으로 허구적인 개념이다. 공유는 둘이 나누는 것이다. 여기서 제3자가 끼어들어 이익을 취하는 게 공유일 수는 없다. 

카카오 카풀은 하나의 정규직 일자리를 쪼개 서너 명에게 '용돈'으로 나눠주면서 수수료를 취하는 '파괴적 독과점'일 뿐이다. 이런 식의 사업모델이 공동체에 어떤 해악을 끼치는지 다음 글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카카오 카풀 대 택시 갈등 관련기사]

"카카오가 택시를 배신했다? 소비자를 선택한 것" http://omn.kr/1f4e9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낫다" 격앙된 택시기사들 http://omn.kr/1f0yu
카풀 그리고 택시, 진짜 싸움은 이게 아니다 http://omn.kr/1ciwb

태그:#카카오모빌리티, #카카오 카풀, #공유경제, #4차산업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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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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