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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어느 때보다 나눔에 대한 마음이 커지는 시기다. 구세군 종소리는 청각을, 공공기관 곳곳에 놓인 모금함은 시각을 자극한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주머니를 뒤적여 본다.

며칠 전 지하철역에서 들리는 구세군 종소리에 지갑을 꺼내 들었다. 카드 뭉치 사이로 오천 원짜리 지폐 하나가 접혀 있다. 적은 돈이지만 좋은 곳에 쓰이길 바라며 모금함에 손을 갖다 댔다. 나눔의 계절이 몸으로 느껴진다.

어릴 적 나는 누구보다 나누는 걸 싫어했다. 엄마는 '콩 한 쪽이라도 나눠 먹어야 한다'는 말로 나누며 살라고 가르쳤지만, 세 자매에게는 어렵기만 한 일이었다. 경제적으로 넉넉한 환경이 아니었기에 더했다.

과자 한 봉지만 있어도 셋이 달려들어 과자를 입에 넣기 바빴다. 유치원 시절 기억이지만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친구 생일이라고 유치원에서 받아온 과자봉지를 숨겼다가 언니들에게 들켜 구박받기도 했다.

나눌수록 내가 가진 것이 적어지는 게 무엇보다 싫었다. 막내로 자라면서 언니들이 입다가 작아진 옷을 물려받는 일도 당연했지만, 그땐 나누는 것 모두가 못마땅했다. 그래서인지 적어도 집에서만은 나누지 않아도 되는 외동 친구들을 많이 부러워했다.

그러던 내가 우연한 기회로 나눔 활동을 시작했다. 대형병원 내 소아암 병동에 봉사를 다니던 친구를 따라가면서다. 일주일에 한 번이지만 오가는 것까지 5시간이 소요됐다. 취업준비에 한창인 나에게 적지 않은 시간이었다. 아르바이트 시간은 줄여야 했고, 교통비는 더 부담해야 했다.

대신 쳇바퀴 돌아가듯 이어지는 지루한 대학 생활에서 성취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어릴 적부터 나눌 줄 모르는 '나쁜 아이'라는 타이틀을 뗄 기회이기도 했다. 난 잃을 수밖에 없는 것과 얻을 수 있는 것을 셈한 후 나눔 활동을 시작했다.

소아암으로 치료받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1시간 안팎이다. 병동 한쪽에 마련된 놀이방에서 아이들과 미술 활동을 하는 것이다. 오리고, 붙이고, 그리며 일주일에 하나의 미술 작품을 만든다. 미술 작품이라는 것은 부채, 모빌, 가면 등이었다. 거창하지는 않지만 손수 만든 작품이라 그런지 아이들이 무척 좋아했고, 그 모습을 보니 성취감이 들었다. 예상대로였다. 여기까지는.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은 한 주 한 주를 거듭할수록 일정하게 더해져 갔다. 이는 곧 내가 아이들을 위해 쏟은 시간이기도 했다. 내 계산대로라면 얻은 것도 비슷한 수준이어야 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나와 마주한 현실은 머릿속 계산과 다르게 그려지고 있었다. 아이들은 그 이상으로 주고 있었다. 나눔의 진짜 의미가 무엇인지 나에게 가르쳐주는 듯했다.

처음에는 눈도 마주치지 않던 아이가 몇 달 뒤에는 달려와 내 품에 꼭 안긴다.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다가온 아이가 집으로 돌아가는 내 볼에 입맞춤한다. 또 다른 아이는 언제부터 아껴놨던 것인지 부서진 과자를 내 손에 건넨다. 혼자 먹으려고 가방에 과자를 숨겨놨던 어릴 적의 내가 자꾸 생각나서 매번 얼굴이 붉어졌다.

몇 시간 동안 무엇을 했느냐가 중요하지 않았다. 서로 마음을 나누는 하루하루의 추억이 더 소중해져 갔다. 이것저것 따지며 나눔 활동을 해왔던 나 자신이 참으로 부끄러웠다.

초등학생 때 배우는 사칙연산.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 가운데서 가장 먼저 계산해야 하는 것이 곱하기와 나누기다. 우선 순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곱하기와 나누기, 그중에서도 가장 나중에 배우는 것이 나누기다. 그만큼 중요하고 어렵기 때문은 아닐까. 인생의 사칙연산도 마찬가지다. 인생에서도 나누기가 가장 어렵지만 중요한 일이다.

수학 공식으로는 이해될 수 없지만 나누기는 곱하기보다 더 큰 수를 만들어 준다.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계산하는 셈법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https://blog.naver.com/hobag555)


태그:#봉사 , #나누기, #마침표 대신 물음표, #구세군, #봉사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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