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2.11 09:06최종 업데이트 18.12.11 09:08
날카로운 통찰과 통통 튀는 생동감으로 가득차 있는 2030 칼럼 '해시태그 #청년'이 매주 화요일 <오마이뉴스> 독자를 찾아갑니다. 홍승은님은 페미니즘 에세이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를 쓴 작가입니다.[편집자말]
내 20대는 원룸에서 원룸으로 옮겨 다니는 시기였다. 비교적 월세가 저렴했던 춘천의 한 대학가 원룸촌에 살면서 겪은 에피소드는 장르로 치면 공포 스릴러에 가깝다. 스물셋 여름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옷을 갈아입으려고 티를 벗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고개를 돌려 무심코 창문을 보다가 창문 너머에서 나를 바라보는 눈과 마주쳤다.

분명 창문 앞에 있는 오래된 빌라 건물은 몇 년 전부터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인데, 그럴 리 있나? 처음에는 나를 의심했다. 잘못 봤겠지. 그런데 아니었다. 다시 봐도 사람의 눈이었다. 창문 밖으로 고개를 90도로 꺾어서 내밀고 나를 쳐다보는 눈. 공포영화에서 본 것 같이 순식간에 그 눈이 내게 줌 인 되었고, 눈이 마주친 몇 초 동안에도 그는 피하지 않고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나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당시 연애하던 A는 내 연락을 받고 겁도 없이 그 건물로 달려갔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분노한 A는 작은 과도를 하나 챙겨갔다고 한다. 그의 말에 의하면 건물은 이제 막 공사를 앞둔 것처럼 벽이 조금씩 허물어져 있었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고 사람의 흔적도 찾아보기 힘들다고 했다. 사람이 살지 않는 건물이 맞았다.

하지만 내가 말한 그 지점에서 A는 버린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 삼각 김밥 껍데기와 컵라면, 빈 캔 맥주를 발견했다. 그 사람이 언제부터 그곳을 드나들며 나와 주변을 훔쳐봤을지 가늠이 안 됐고, 혹시 눈이 마주쳐서 나를 해코지하러 오진 않을까 두려웠다.

곧바로 이사를 준비했다. 원룸촌의 이사는 간편하다. 학교 커뮤니티에 방을 내놓고, 나도 커뮤니티에 올라온 방 중에 하나를 골라 옮기면 됐다. 내 방에 들어올 세입자에게 차마 그 사실을 알리지 못하고 방을 떴다.

내 경험은 많은 사람이 콕 찌르면 하나쯤은 나올 만큼 흔한 일이다. 친구들과 오랜만에 둘러앉아 무서운 이야기를 할 때면, 귀신 이야기보다 각자가 경험한 원룸 스릴러를 나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밤을 새울 수 있다.

버스에서 만난 아저씨가 원룸 현관문 앞까지 쫓아와서 황급하게 문을 잠그고 다음 날까지 집밖에 못 나온 친구의 이야기, 새벽에 귀가할 때 짙게 선탠한 자동차가 쫓아와서 골목을 돌고 돌아 겨우 집에 갔다는 친구의 이야기, 자는 중에 스토커가 문을 따고 들어왔던 친구의 이야기.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새벽마다 종종 이런 게시물이 올라왔다. "지금 새벽 3시인데, 누가 현관문을 슬쩍 건드려요. 어제도 그랬어요." "옆방에서 여자 비명이 들리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분위기가 이러니 고전처럼 전해지는 '혼자 사는 여자의 생활 수칙'이 있다. 배달이 올 때면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처럼 연기하기, 현관에 남성 신발 한 짝(군화면 더 좋다) 비치하기, 베란다에 남자 옷(군복이면 더 좋다) 걸어놓기, 현관 잠금장치는 적어도 2중 이상으로 설치하기와 같은 수칙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 <도어락>은 원룸에서 여성이 겪는 공포를 다룬 생활밀착형 스릴러다. 영화 시사회에서 한 출연 배우는 영화에 대해 "영화를 관람하면 혼자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 것"이라며 "본격 결혼 장려 영화"라고 소개했다. 조심하라는 조언이 확산되고, 경험과 주위 이야기, 미디어를 통해 안전에 대한 확신이 사라지면서 공포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부풀어 오른 공포는 하나의 메시지를 향한다. "그러니까 여자 혼자 살면 위험해. 지켜줄 남자가 필요해."
 

영화 <도어락> 스틸컷 ⓒ 영화 도어락

 
이 논리에 따르면 세상에는 두 타입의 남성만이 존재한다. 낯선 나쁜 놈과 친밀한 착한 놈. 간편한 이분법은 친밀한 나쁜 놈의 존재를 지운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살인 사건 피해자 다섯 명 중 한 명이 아내폭력으로 살해되었다. 전체 301건 가운데 아내 살해 55건, 애인 살해 26건. 그 수를 합치면 전체 살해 피해자 3.7명 중 한 명이 남편과 애인에 의해 살해됐다. 그나마도 전 남편, 전 동거인, 전 애인의 경우는 유형별 집계가 되지 않아 규모조차 확인되지 않는다.

지켜줄 남자가 필요하다는 미신은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채 폭력을 방관하는 말이다. 곰곰이 따져보자. 정말 이성애 사랑과 가족은 안전을 보장할까? 어린 시절, 집이 안전한 공간이기만 했던 사람은 얼마나 될까? 왜 세상에는 '안전이별'이라는 말이 생겼을까? 폭력은 친밀감과 상관없다. 오히려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장 잔인한 흔적을 남길 수 있다.

'여성이 위험하다'는 메시지는 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 소위 묻지마 범죄에서 여성이 표적이 되는 이유는 혼자 다니거나 혼자 살아서가 아니라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친 구조적인 성차별 때문이고, 이는 제도와 문화, 성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로 연결되어야 한다. 아내폭력, 아동폭력, 데이트폭력처럼 친밀한 사이에서 이뤄지는 폭력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건 피해자가 조심할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때리는 사람, 죽이는 사람, 몰래 보는 사람이 없으면 맞거나 죽거나 찍히는 사람도 없다. '현실 스릴러'에 공감하는 대중 공포는 눈 가리기 미신이 아닌, 사회적 개입을 요구한다.

원룸에서 타인과 눈이 마주친 그 집에서 이사하고, 이후 또 다시 이사하게 된 계기는 나를 지켜주겠다고 굳게 약속하던 A 때문이었다. 다른 남자로부터 나를 보호하려고 위험한 상황도 불사하던 정의로운 A는 데이트 폭력을 휘두른 가해자이기도 했다.

나와 다툰 새벽이면 복도가 떠나가라 소리치며 현관문을 쾅쾅 두드렸고, 귀가가 늦으면 말없이 집 앞에서 기다리고, 헤어지자는 말에 불쑥 집에 찾아와 난동을 부렸다. 도어락으로 안전하게 잠긴 방 안에서 나는 그에게 밀쳐지고, 그가 던진 책에 맞았다. 그와 마침내 '안전'이별을 한 다음, 나는 바깥을 잠그는 도어락이나 남자가 나를 안전에서 지켜준다는 미신을 믿지 않게 되었다.

혼자 살아도, 친구와 살아도, 가족과 살아도, 실수로 문을 잠그지 않아도, 늦은 밤 귀가하거나 이어폰 두 쪽을 다 꼽고 밤길을 걸어도 누구나 맞거나 죽임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몇 년 전 독립잡지 <젋은여자>에 나는 썼다. "현관에 T-팬티를 걸어 놔도 몰카, 강간, 살해당하지 않는 세상에 살고 싶다." 아직 나는 그 세상에 닿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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