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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6 쿠데타 직후의 박정희(오른쪽 선글라스).
 5·16 쿠데타 직후의 박정희(오른쪽 선글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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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 초기 주체세력이 이른바 '용공분자'라 하여 검거한 인사들을 재판절차없이 대량 살육할 가공한 음모가 있었다는, 쿠데타 실세의 한 사람이던 유원식 예비역 준장의 증언이다.

5ㆍ16 직후 한ㆍ미 관계가 극도로 악화되어 군사정권과 미국정부가 평행선을 달리며 긴장이 고조되어 있을 때 박정희 소장은 그의 사상이 의심받고 있음을 알고 그의 측근자들과 함께 자신들이 좌익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 마침내 가공할 만한 사건을 야기할 뻔하였다. 소위 용공분자 일제 검거가 그것이다. 

육군본부에서 지금의 세종문화회관 별관인 전 국회의사당으로 이사한 이튿날 아침에 출근해서 박정희 부의장실에 들어갔을 때 마침 김종필이 들어왔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박 부의장에게, "어젯밤에 모두 잡아 넣었습니다. 약 2만 8천 명 가량 되는데, 수송에 필요한 열차도 준비하였습니다. 이제 남은 문제는 그들을 거제도로 데려가서 한데 모아 놓고 기관총으로 한꺼번에 사살해 버리는 것뿐입니다." 

나는 옆에서 이 말을 듣고 무슨 내용인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얼마 후에 알아보니 김종필이 그 때 당시의 정보과장으로 치안본부에 가 있던 방(方) 모 대령에게 극비리에 지시하여 전국의 요시찰인 명부에 실려있는 사람을 일제히 검거했다는 것인데, 김종필의 아침 보고는 그 검거가 모두 끝나고 사후 대책까지 마련되었다는 일종의 결과보고였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전혀 모르고 있었던 사실이기에 이해가 잘 되지 않아 몇 번씩 물어 본 끝에 비로소 그 전상을 파악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이들을 한꺼번에 학살하겠다는 계획에 대해서는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이며, 비정상적인 정신병자라도 생각하기 어려운 만행이었다. 유태인을 집단 학살한 나치의 만행에 비견할 야수와도 같은 광란이다.
(주석 1)
 

다행히 일부 인사들의 반대로 '집단학살극'은 취소되었다. 장일순도 하마터면 이때 거제도로 끌려가 처형될 뻔하였다.

주석
1> 유원식, <5ㆍ16비록 혁명은 어디로 갔나>, 296~297쪽, 인물연구소, 1987.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무위당 장일순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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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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