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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편 : 따스한 제주도에도 춥고 슬픈 곳이...)

이튿날 아침에 찾은 섯알오름 학살터는 서귀포 대정읍에 있다.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자 정부는 전국적으로 좌익전향자나 북에 도움을 줄 것 같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보도연맹원이라 하여 체포, 구금했다.

제주에서도 820여명을 예비적으로 검속하였고, 모슬포에서는 374명이 검속되었는데, 이들 중 150명을 대정읍 상모리 절간 고구마 창고에 수감했다가 1950년 8월 20일 집단 학살하였다. 같은 날 섯알오름 자락 옛 일본군 탄약고터에서 집단학살된 132명의 시신들은 6년 여 세월이 흐른 1956년 5월 18일이 되어서야 뒤엉킨 뼈들을 대충 맞추어 집단 묘역으로 만들 수 있었다.

하여 백조일손(百祖一孫, 서로 다른 132분의 조상들이 한날, 한시, 한곳에서 죽어 뼈가 엉키었으니 그 후손들은 모두 한 자손이다)지지라 한다. 끌려가며 죽음을 예감한 희생자들이 마을사람들이 시신을 찾을 수 있도록 고무신과 동전 등 소지품들을 떨어뜨렸던 것을 기려 위령비 앞에 놓인 검정고무신들을 보니 당시의 암담하고 절박했던 모습이 그려져 먹먹하다.

위령비 뒤의 묻힌 돌들에 이렇게 새겨 있다. 風悲日曛沒만벵디諸位鎭魂 腷臆誰訴沒西卵百祖鎭魂(바람은 슬프고 해는 어슴프레하구나 만벵디에 묻힌 여러 혼을 위로하다/ 답답한 가슴 누구에게 하소연하랴 섯알오름에 묻힌 백명의 조상혼을 위로하다)  
 
 섯알오름 예비검속 희생자 추모비
 섯알오름 예비검속 희생자 추모비
ⓒ 서울K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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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 강점기 고사포 진지
 일제 강점기 고사포 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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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섯알오름에서 샛오름을 지나 동알오름으로 걸어가본다
 섯알오름에서 샛오름을 지나 동알오름으로 걸어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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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락가락 내리고 바람이 차다. 동광리 무등이왓은 4.3 당시 토벌대에 의해 아예 사라져 버린 마을이다. 영화 '지슬'로 만났던 그 마을.

할머니와 함께 그 마을을 직접 가보는 대신 복지회관에서 홍춘호 할머니 말씀을 들었다. 올해 81세인 할머니는 당시 11살이었고 큰넓궤(동굴)에서 50~60일을 숨어 있었다. 먹을 것은 턱없이 부족했고 물도 동굴 천정에서 떨어지는 것이나 바닥에 엎드려 빨아먹어야 했다.

굴이 발각되었을 때 영화에서처럼 마른 고추를 태워 쫓아내고 그 후 경찰이 동굴입구를 꽉 막아 놓은 돌을 들어내고 탈출하였지만 끝내 잡혀 일부는 서귀포 정방폭포에서 집단 살해당하고 할머니는 감금되어 여러 날을 너무나 배고파 바닷가 해초 등을 따먹으며 살아남으셨다고 한다.

남동생 셋 중 둘을 동굴에서 잃고 그 후 아버지와 어머니를 차례로 잃은 할머니는 남동생을 혼자 키우며 고통 속에 말 못하고 지냈는데 십여 년 전부터 이야기 할 수 있고 지금처럼 사람들에게 안내하는 것이 좋다 하신다. 그동안 '창피했다'고, '폭도들'이라고 손가락질 당했기에 창피했지만 이제는 괜찮다 하신다.

함께 답사 간 김창섭 선생님은 말씀 듣는 내내 뜨거운 눈물을 흘리셨다. 모두 같은 심정일 터. 울먹거리며 할머니와 포옹하고 거친 손을 잡고 이리 살아 오셔서 말씀해 주시니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헤어졌다. 그런 험악한 세월을 지나 오고서도 환하게 웃으며 이제 살 만하다고 하시는 강인한 생명력과 여유가 경이롭다. 
  
 4.3 당시의 경험을 나눠주시는 홍춘호 할머니
 4.3 당시의 경험을 나눠주시는 홍춘호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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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춘호 할머니 증언을 듣고 동광리 복지회관 앞에서
 홍춘호 할머니 증언을 듣고 동광리 복지회관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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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선인장마을 월령리 4.3의 피해로 후유장애인이 되신 무명천 할머니 댁에서 살아생전 할머니 모습을 만났다. 1949년 1월 나이 서른다섯에, 경찰 토벌대의 총탄에 아래턱을 잃은 채 평생을 제대로 씹지도 말하지도 못한 채 2004년 90세에 하늘나라로 가셨다.

원래 명랑한 성격의 할머니 모습과 씹을 수 없어 항상 소화불량에 시달려야 했고 피해의식으로 대문 앞에 나올 때도 늘 문을 잠그는 모습을 화면에서 뵈니 가슴 답답하고 화가 난다. 할머니가 30여년을 사셨던 자그마한 방에는 할머니의 한복과 침구류, 약봉지, 실패, 머리빗 등이 자리하고 있다. 할머니, 그동안 얼마나 힘드셨어요. 이제 편히 쉬세요. 인사를 드리자니 눈앞이 흐려진다. 돌담 아래 하얀 국화와 선인장은 여전히 예쁘다. 
 
 진아영 할머니 삶터에서
 진아영 할머니 삶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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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목의 폭낭(팽나무)과 떨어진 빨간 동백꽃은 아름다운 제주를 참혹했던 제주와 함께 떠올리게 한다. 모든 과정을 지켜봤을 그 나무들은 지금도 푸른 잎과 꽃을 피워내며 살아가고 있다. 70여년 세월 희생자들과 가족들도 기억의 끈을 놓지 않으려 울음을 삼키며 고통의 시간을 견뎌왔다. 4.3 당시 제주도민들은 스스로 주인이 되어 자유롭고 통일된 나라에 살고자 한 마음밖에 없었다.

이제 붉은 섬 제주는 슬프고 아프기만 한 땅이 아니다. 자유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위한 발걸음이 씩씩한, 소중하고 끈질긴 생명의 땅이다. 이제는 제대로 기억하자. 불쌍하고 비통한 학살만이 아니라 당당하고 요망진(똑똑하고 야무진) 제주를 말이다. 제주다크투어와 함께한 기행 내내 가득한 아픔과 애석함은 아름다운 풍경의 제주와 강인하고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며 감사한 보석을 만난 심정이 되었다. 떠나오는 제주공항에서 되뇌었다. '제주도 촘말로 귀하고 아름다운 보물이우다!' 

* 기억하고 싶은 길 - 제주다크투어 
'제주다크투어'는 제주4·3 평화기행, 유적지 기록, 아시아 등 국가폭력 피해자들과의 국제연대 사업 등 제주 4·3 알리기와 기억하기에 주력하는 비영리 단체입니다. 
[블로그 주소] blog.naver.com/jejudarktours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장혜주님은 서울KYC 소속으로 제주다크투어와 함께 한 '제주 4.3 평화기행'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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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싶은 길 - 제주다크투어’는 제주에 위치한 비영리 단체입니다. 제주다크투어는 여행 속에서 제주 4.3을 알리고 기억을 공유합니다. 제주를 찾는 국내외 사람들과 함께 제주 곳곳의 4.3 유적지를 방문하고 기록하며 알려나가는 작업을 합니다. 국경을 넘어 아시아 과거사 피해자들과도 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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